✦ 본 게시글은 수연님(@Team_Laputa)의 크툴루의 부름 7판 팬메이드 시나리오, 「12시의 도밍게즈 Chapter1. 시계 바늘의 방향」을 더블크로스 The 3rd Edition으로 룰 컨버팅한 세션의 백업 로그입니다. 열람 시 스포일러에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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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C 인장 출처 (@najunwan)님 배포
✦ 그랜드 오프닝
✦ #Scene 3. 도밍게즈의 첫날
✦ #Scene 1. 타이머와 카운터의 상관관계
✦ #Scene 2. 훈련실과 CCTV
✦ #Scene 3. 세계 멸망의 징조는 홀연히,
✦ #Scene 4. 우리의 끝은 태연히
✦ #Scene 5. 어떤 스케쥴
✦ 그렇게 두 사람의 어딘가가 겹쳤을 때,
✦ #Scene 6. 축제 전야
✦ #Scene 7. 도밍게즈 건국 축제
✦ #Scene 8. 타이머 전시회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645
✦ 전시관 관람
✦ #Scene 9. 세계 멸망 피날레
✦ 능력을 활용한 쇼맨십
✦ 파직!
BGM OFF
✦ 제13시 페어가 어둠을 거두자
✦ #Scene 10. 시계 바늘의 방향
Anxious Mood Instrumental Music
✦ 연구실
✦ #Scene 11. 어떤 ■■
"Nightsky" by Tracey Chattaway
✦ #Scene 12. 정지된 세계
✦ 클라이맥스 전투
✦ 전투 종료
The Lost City of Amdapor Hard Mode Theme
✦ #Scene 13. 날 선 바늘의 끝

메인
GM
《그랜드 오프닝》
◆ #Mater Scene 1. Intro
“다가오는 마지막 계절에, 세계가 멸망한다.”
초봄의 건조한 바람을 타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출처 모를 소문이었지만, 입에서 입으로 역병처럼 퍼진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불길하게 쑥덕거리기를 소문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떠들어대곤 했죠.
2052년 12월 31일, 23시 59분. 지구 멸망까지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았다고, 도밍게즈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질 일만 남았다고…….
도밍게즈의 구원자, 타이머가 버젓이 살아 숨 쉬건만! 우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요. 세계 멸망 같은 허황한 말들에 넘어가지 마세요.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이곳에 있으니까.
딩동.
시작은 벨 소리였습니다.
새벽 별이 떠오르듯, 세계가 무너지듯, 파도가 밀려오듯……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리자 연달아서 그것들이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에는 간결한 메시지가 선명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고,
「 2052-03-07, 21:00
타이머 14회의실 소집 요망 」
불길한 예언 대신 바람을 타고 온 것은, 타이머의 소집령이었습니다.
《씬 종료》
◆ #Scene 2. 시간이 데려온 운명
당신은 DOT의 14회의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살면서 무수히 많이 들어 보았을 이름의 주인. 도밍게즈의 구원자,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오늘부터 당신의 파트너가 될 신성현을.

이연화
(얌전하고 고운 얼굴로 서 있지만 가슴이 두근대는 건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어린 이연화는 감정까지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화면 너머로 바라볼 때면 시간이 멈추는 듯했고 첫눈에 빠진 것 같았던 그 사람을… 내가 만나게 된다니요. 제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GM
이름을 곱씹는 것만으로 미묘하게 기분이 들뜹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당신의 삶에는 이상한 일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까, 봄처럼 소리소문없이 드러난 시간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부터요.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12살의 생일과 달리 시간, 운명…… 혹은 이름 모를 무언가가 당신을 붙잡는 것처럼 각인을 따라 희미한 열감이 두드러졌습니다.
당신이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는 유일한 구원자, 타이머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았죠.
신성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DOT에 연락한 그날, 그래요, 평범한 일상이 덜그럭덜그럭 기묘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날부터였습니다.

이연화
(그날은 신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것만 같았어요. 신 따위는 믿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었음에도,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바람이 이루어지는 쾌감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신성현, 그 이름을 읊조리자, 입안에 자리 잡은 각인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의 중력이 나의 의지에 따라 복종하는 감각. 손짓 한 번으로 모든 걸 들어 올릴 수 있는 나의 힘이, 실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연화가 난생처음으로 발현한 능력은 전부 신성현을 닮아있었습니다. 이 앞이 고된 길이어도 상관없어요.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DOT에 온 것입니다.)
GM
당신이 명령하면 세상의 어떤 물건이든 중력을 거슬러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당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간결하고도 파괴적인 힘의 파동. 그것은 분명한 신성현의 힘.
이유, 방식을 불문하고 당신이 DOT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를 보는 양 황망하고, 황당함을 가득 담아 깜빡이던 눈꺼풀과 다물지 못하던 입술 사이로 새던 신음성.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가 깨어났군.”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과 흐릿한 남색 제복을 입은 사무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하인리히 장교가 감탄을 흘렸습니다. 익숙한 얼굴이었습니다.
DOT의 장교, 실질적인 책임자로 종종 TV에도 얼굴을 비추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장교를 비롯한 그 누구도 당신의 자격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혀 정중앙에 새겨진 두 자리의 숫자란 도밍게즈에서 그토록 절대적이거든요.
당신은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라는 명분하에 DOT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지옥 같았던 집보다 천국이었던 도밍게즈는 세계 멸망의 소문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DOT가 당신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일컬어 신성현, 타이머의 짝이라 불렀습니다.

이연화
(내가… 신성현의 짝. 타이머의 파트너. 그는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높은 곳에 서 있는 그가 자신을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요? 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직 만나기 전인데도 그에게 질문할 거리를 100개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만큼 신성현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어요.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것들 중 하나니까.)
GM
당신의 마음도 모르고 시간은 하루, 이틀, 사흘…… 흘렀습니다. DOT에서의 생활은 평이했습니다.
아쉽지만 당신의 존재는 신성현에게도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타이머를 혼란케 하지 않으려는 조치라더군요.
당신은 연구원들이 머무는 동관에서 사무원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연구원의 신체검사 따위에 응하는 것을 제외하면 쭉 홀로였습니다.
긴 밤 내내 당신이 운명의 짝, 자신의 파트너, 자신과 같은 시간의 타이머인 신성현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도 그럴 게, 아주 가까이, 바로 너머에 머물고 있었는걸요.

이연화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에요. 홀로 지내는 일은 나를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은 단순한 외로움일 뿐이에요. 한 줌 남은 외로움마저 내게 올 타이머, 신성현이 거두어 가 줄 거예요. 눈을 느리게 깜빡거립니다. 이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게 해주세요. 달콤한 희망을 맛본 뒤 추락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없거든요.)
GM
초조하게 설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면, 기나긴 회상을 깨고 하인리히 장교가 타이머들의 도착을 예고합니다.

하인리히 장교
곧 도착한다는군.
GM
기다렸다는 것처럼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복도를 가르고 안내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상냥하게 건네는 안내가 문턱 너머로 들립니다.
그리고 문 너머로 ‘왔어요?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하는 DOT 직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신성현이 그 복도를 건너 당신에게 오는 동안 당신은 그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요.
세계가 예비한…… 운명을 마주하기 직전에!

이연화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야, 신성현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버렸는걸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저 문 너머로 들어올 사람의 발소리만이 제 머릿속을 울렸습니다. 코앞에서 보는 신성현의 모습을 기다려요. 1초가 1분 같았습니다. 휘몰아치는 속마음과 다르게 조용함을 학습한 표정은 잔잔하기만 했습니다.)
GM
똑똑.
형식적인 노크와 함께 14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섰습니다.

신성현
…. (회의실에 들어선 신성현은 당신을 보고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의 표정은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직 덜 여문 존재이기에 눈동자 속에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푸른 눈동자 위로 선명하게 새겨진 숫자가 당신을 주시한다.)
GM
도밍게즈의 구원자,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어떻게 그의 얼굴을 모를 수 있겠어요?
그러나 당신이 그를 알아본 것은 눈에 익은 얼굴이라는, 그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깜빡, 깜빡. 당신이 눈을 깜빡이자 신성현 또한 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입니다.
그래요, 분명히 낯익은 얼굴이에요. 낯익기 짝이 없어요.
도밍게즈의 국민으로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본 얼굴이었으니까.
TV도, 신문도, 휴대폰 속 무수히 많은 게시글마저 그를 주목했는걸요.
그러니 하나도 특별한 것 없는 대면이건만. 어째서일까요?
이토록 그 ‘존재’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러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과 기분, 생각과 언어, 감정과 본능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 충동 판정 : 난이도 10 ⚜

이연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할 수 없습니다. 바다보다 깊고 푸른 눈동자에 갇혀 떨리는 숨결을 내쉬었습니다. 신성현, 도밍게즈의 구원자, 시간이 선택한 타이머… 손끝이 움찔거립니다. 본능이 말하고 있어요. 그가 나의, 시간이라고. 당신과 저를 연결하는 숫자 두 자리가 그토록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4+0)dx 의지 판정 (4DX10) > 7[3,4,5,7] > 7
GM
가까이 가고 싶다는, 명백한 욕구가 고개를 쳐듭니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몇 걸음이나 걸어 나간 후였습니다.
손을 잡았던가요, 아니면 숨소리가 들릴 만큼 바짝 다가섰던가요?
눈앞에 훅 가까워진 얼굴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립니다.
아, 그래요.
당신은 운명이 안배한 일련의 사건을 따라 새로운 구원자가 되었고, DOT에 도착해, 기어코 눈앞의…… 신성현을 만나고 만 것입니다.
얼굴을 보자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어째서 ‘운명’이니 ‘파트너’라느니 거창한 칭호를 붙여댄 건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연화
아….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당신에게 다가가, 그 손을 쥔 후였습니다. 화들짝 놀라 떨어질 생각도 없이 당신에게 빨려 들어갑니다. 부드러운 살갗에서 전해져오는 온기가 결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달콤했습니다. 몽롱하게 여린 목소리를 흘렸습니다.) 신성현… 형? (네 목소리를 들려줘. 지금 당신이 곁에 존재한다고 느끼게 해줘.)

신성현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너와 닿고 싶어. 처음 보는 사람이 분명한데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인지. 아이가 잡아준 손을 타고 온기가, 전류가 흐른다. 내색하지 않으려던 얼굴이 달콤함으로 흐려진다. 잔잔한 선율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간신히 한 마디를 꺼낸다.) 맞…아. 내가, 신성현이야. (이게 아닌데. 넌 누구고 나는 왜 너에게 끌리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할 말을 잃게 만들어.)
GM
기묘한 이끌림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소리가 가볍게 새어 나옵니다.
웃음소리는 방아쇠를 당기고 지나간 기억을 꿰뚫습니다. 무척 익숙한 웃음입니다.
그야,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도 하인리히 장교는 비슷하게 웃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과 신성현은 들이닥치는 서로의 존재감에 휘둘리고 있었을 겁니다.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혹은 이끌리거나, 밀어내거나, 도망가고 싶어지는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가길 반복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머에게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신성현의 각인이 눈에 띕니다.
당신과 다르게 드러난 눈동자에 새겨진, 똑같은 두 자리의 숫자.
그가 당신의 운명이자 단 하나뿐인 파트너라는 증명.
고작 숫자에 불과하건만……

하인리히 장교
인사하게.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GM
어쩜 이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지.
하인리히 장교는 익숙하게 타이머들에게 카운터들을, 카운터들에게 타이머들을 소개합니다. 설명이 지나치게 단출하군요.

신성현
(미리 설명을 들었던 당신과 달리 신성현은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놀란 기미를 숨기지 못했다. 당신을 잡은 손에 약한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아플까 봐 스르륵 풀어진다. 머리로는 이 상황이 기묘하다고 이해하지만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에서 눈을 지그시 깜빡인 신성현이, 당신에게 물었다.) …미안, 네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어. 괜찮다면 내게 말해줄래?

이연화
(신성현의 목소리가 제게 돌아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니, 완전히 깨진 못했습니다. 마법처럼 엮어진 손가락에 집중할 뿐입니다. 한 박자 늦게 이연화가 고개를 듭니다.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이연화. 이연화예요, 형. (당신의 짝이 될 사람. 그에게 확실히 각인시킵니다. 아직 어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훗날 이것을, 소유욕이라 표현할 것입니다. 신성현이라는 완벽한 구원자에게 이연화라는 존재를 묻히는 것. 이제 너는 내 것이고 나는 네 것이라는 말.)

신성현
이연화…. (이연화. 들뜬 신성현이 당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곱씹는다. 당신이 말할 때면 드러나는 저와 같은 숫자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하인리히 장교의 말이 맞아.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과 감정을 주는 너는, 이연화는 자신의 짝이 될 것이다. 당신의 부드러운 뺨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다루는 손길이었다. 당신처럼 눈앞에 서 있는 작은 존재가 사라질까 봐, 이게 꿈일까 봐.) 나는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너는 알고 있었어?

이연화
(몸이 흠칫, 떨립니다. 신성현이 만져주는 곳은 전부 기쁘게 달아올랐습니다.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애정이 느껴져,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한 발자국. 당신에게 더 다가가 가까워집니다. 물에 잠겨가던 사람이 겨우 공기를 만난 것처럼. 처음 느껴본 애정을 향한 욕심이 커집니다. 이연화가 어여쁘게 끄덕거립니다.) 미리 알고 있었어요. 형의 짝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신성현의 짝은 나예요…. (내가 아니면 안 돼.)

신성현
(일렁이는 눈동자가 다시 한번 감겼다가, 떠진다. 한층 잠잠해진 그가 옅게 미소 짓는다. 너와 나의 연결이 이렇게 선명하고 서로의 운명을 두 자리의 숫자가 증명해 주고 있구나.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물러나지 않고 당신의 거리를 받아들인다. 당신에게서 힘겹게 눈을 뗀 신성현은 하인리히 장교를 바라본다. 이 만남이 비현실적이라는 건 너도 느낄 거야.) 이런 아이를… 어떻게…. (마법처럼 데려왔느냐고.)

하인리히 장교
그렇게 봐도 그 아이는 자네의 짝이 될 사람일세. (뻐꾸기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친절하게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짚어줄 뿐이었지만. 타이머의 당황한 얼굴을 한껏 즐기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라면 각인이 드러난 후, DOT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설명입니다.)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네. 물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지. 하지만 예언의 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야. 이미 세간에서는 반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이건… 아주 좋지 못한 조짐일세.

이연화
(하인리히 장교는 짓궂은 사람이군요. 신성현에게 바싹 달라붙은 이연화는 그의 팔을 끌어안았습니다. 놓고 싶지 않아요. 눈 깜빡하면 어디론가 사라져 있을 것 같아요. 비어버린 마음 어느 구석을 채워준 그와의 연결을 벅차게 받아들입니다. 장교의 이어지는 설명을 한 귀로 흘리게 될 것 같습니다.)

신성현
(복종해야 하는 장교님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살면서 지금처럼 집중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이연화의 존재는 말 한마디 없어도 크게 다가왔다. 그의 은은한 체향, 조금씩 꼼지락거리는 손이 장교가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남몰래 주먹을 꾹 쥐었다.)

하인리히 장교
(두 사람이 가까이 붙은 것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장교에게는 한없이 귀여운 장면이므로. 모른 척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멸망이 실재한다고 해도 문제지만,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더 문제거든. 멸망이 예정된 세계의 법과 도덕, 규칙 따위를 누가 지키겠냔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세계는 무너질 테고, 점차 아수라장이 될 테지.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넘쳐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이전부터 세계 멸망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자신의 수염을 가다듬은 하인리히 장교가 드디어 본론을 꺼내 들곤,) 결론부터 말하지.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걸세.
눈앞의 이가 그 증거일세. (당신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당깁니다.) 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어.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운 데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거든.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이연화
(앗… 장교에게 끌어당겨져 신성현과 떨어진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티 내지 않으면서 마음을 삭입니다. 신성현과 만나게 해준 저 자에게 지금 밉보이는 건 잘못된 선택입니다. 잠시, 착한 아이로 돌아왔습니다.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구원자가 깨어났군.’ 그 말이 저런 뜻이었군요.) 그래서 같은 숫자가 각인된 우리를 모아놓고, 짝을 이루어 도밍게즈를 수호하게 만들려는 건가요? (‘다가오는 마지막 계절에, 세계가 멸망한다.’ 불길한 예언.)

신성현
(능숙하게 아쉬움을 감춘다. 이연화가 제 짝이 될 것이라면 앞으로 붙어 있을 시간은 충분했다. 한순간 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려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니, 이연화의 존재는 정말이지… 너무나 새로웠다. 새로운 구원자. 나의 파트너.) 그래서 나타난 자들이 저 아이들이란 겁니까.

하인리히 장교
정답이야. 반년 전쯤부터 예언을 따라 새로운 능력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네. 바로 이들이지. 정확히 열네 명, 자네들과 같은 각인이 새겨져 있어. (두 사람의 이야기 전부 수긍한다. 아이들에게 시선을 맞추어 상체를 숙인 장교가 웃는다.)
우리는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기로 했네.
GM
이미 예비 된 만남이었다니. 이것은 당신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이연화
(카운터. 타이머와 카운터라니, 시간을 상징하는 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름이었습니다. 타이머 신성현의 카운터가 될 자신의 미래를 감히 그려봅니다. 장교의 웃는 얼굴을 넘어 신성현과 손잡은 옆의 인물이, 내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시선이 절로 돌아갑니다. 내 타이머를 찾아.)

신성현
(카운터. 당신과 함께 속으로 중얼거린다. 예비된 만남인지는 상관없었다. 정말 내 운명이 나타났고, 타이머의 곁에 카운터가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했을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닌 둘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시선에 당신을 마주 본다. 눈빛이 어지러이 얽힌다.)

하인리히 장교
세계 멸망의 초읽기를 앞둔 작금의 상황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흘린다. 세계를 구원하는 역할에 도취한 것인지, 예언의 탑을 한 방 먹일 즐거움에 심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하인리히 장교는 하나씩 카운터의 시간과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제0시부터 제13시까지……. 모두 열넷이었지만 당신은 오직 신성현의 이름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연구 결과 카운터가 타이머와 똑같은 능력, 자질이 있으며 시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됐어. 그뿐만 아니라 타이머의 능력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을 거란 가설이 등장했지.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오늘부터 서관에서 함께 지내게 될 거야. 수업부터 시작해서 모든 타이머의 활동과 역할을 부여받아, 자네들과 동행할 걸세. 그러니 인사들 나누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보라고. (가볍게 통보합니다.)
GM
모든 것은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고.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어떤 재해가 밀려와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함께라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노라고.
즉, 이것은…… 대의이자 명령. 개인의 의견은 묵살하기 딱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전달 사항은 이걸로 끝이라네. 서관으로 데려가서 건물 소개도 좀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해지도록 해. 다음 달쯤 건국 축제에서 정식으로 카운터의 존재를 발표할 예정이니 외부에 유출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일방적으로 명령한 장교가 절도있게,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섭니다.)
GM
회의실에는 침묵과 함께 타이머와 카운터, 두 개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고요.
······.
14명의 타이머 중 누구도 시간이 데려온 운명의 상대에게 표정 관리를 하는 법은 훈련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각기 짝을 지어 흩어지고, 당신의 앞에는 여전히 신성현이 서 있습니다.

신성현
(신성현은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금빛 머리칼을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자신 나름의 달래는 방법이었다. 어색하게나마 웃는다. 처음에는 무거운 얘기보다 아이들이 흥미로울 만한 걸… 흥미로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자신의 말솜씨에 좌절한다.) 나랑 같은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게 정말이야?

이연화
(멍하니 장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연화는 그 자리에 딱 굳었습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이 생소했습니다. 동그란 눈동자가 당신에게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느리게 손가락을 돌리면, 제 베레모가 둥둥 떠 벗겨집니다. 말갛게 웃었습니다.) 형이랑은 다른 느낌이지만요. 같은 능력을 쓰고 싶었는데, 나는… 형 같은 힘이 없었어요. (시무룩해집니다.)

신성현
(웃었다… 인형 같은 얼굴로 화사하게 웃으니까,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연화만큼 예쁜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꼭 편히 쓰다듬으라고 모자를 벗어준 느낌이다.) 그럴 수 있지. 원래 능력이 비슷해도 응용하는 건 각자 다르잖아. 난 힘이 좋은 대신 너는 능력을 조절하는 게 뛰어나니까, 서로 보완해 줄 수 있겠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딱히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기묘한 이끌림에 시달리고, 신경 쓰인다.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숙소로 돌아갈래? 겸사겸사 DOT를 안내해 줄게.

이연화
(자신이 아름다운 얼굴로 태어나서 다행이라 느낀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잠깐 웃어준 것만으로 그의 멍해지는 진귀한 눈빛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네, ‘좋다’라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형은 상냥하네요.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해 주니까. 구원자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곁에 서서 1cm의 거리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이 자요? (빼놓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 눈동자가 조금 반짝거립니다.)

신성현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이상해할 것 없어, 앞으로 불편한 거 있으면 꼭 말해야 해. 나는 이곳에서 자란 지 오래돼서 감각이 무뎌졌거든. 너무 무리하지 말고 편히 지내. 당장 세계를 구원하라는 게 아니야. (꼭 붙어오는 게 강아지 같았다. 자꾸 쓰다듬고 싶어지는 마음을 꾹 누른다. 당신을 데리고 나아가려다 덜컥 멈춘 신성현이 심각하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네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한 번 물어볼게, 걱정하지 마. (다른 쪽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당신을 데리고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온다.)

이연화
(배려 많은 신성현의 선언을 들은 이연화는 흡사 쿠궁, 하는 듯했습니다. 다급히 당신을 졸졸 따라가며 도리도리 고개 젓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난 사실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해요. 앞으로도 다정하게 대해주면 안 될까요…?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형이랑 같이 지내고 싶어요. 장교님도 같이 지내라 하셨고 붙어 있는 게 모쪼록 타이머와 카운터 간 신뢰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셨어요. (이연화는 딱히 세계 구원할 생각 없고 신성현만 보고 싶어서 온 것뿐이라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필사적으로 시무룩한 연기를 합니다.)

신성현
응? 그, 그래? (당신의 간절한 매달림에 당황스러워했다. 고민하던 신성현이 뒤를 돌아 당신의 두 손을 잡아준다. 3살이나 어린 아이가 저리 말하는 걸 의심할 생각도 못 했다. 그러기엔 너무 여리고, 귀엽고, 예쁘지 않은가.)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익숙해질 때까지 네 곁에 있어 줄게. 그 외에 또 부탁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줘. 큰 이상이 없는 한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게 될 거야. 그렇지?

이연화
(만나자마자 신성현과 떨어지게 될까 콩닥콩닥 뛰던 가슴이 진정합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이 제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성현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간신히 당신을 속아 넘긴 이 아이는 처연한 연기를 연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신의 품에 폭 안깁니다.) 익숙해질 때까지만 부탁해요. 형이랑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어두운 밤을 잘 넘기게 도와줄 것 같아요. 우린 어쩌면 평생 함께하게 될 거예요. (아직 어린 신성현의 품이 포근했습니다.)

신성현
당연하지. 우리에게 새겨진 10시 숫자와 기묘한 이끌림은 틀림없이 운명의 파트너라는 걸 알려주고 있어. 무엇보다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나쁘지 않은 첫인상이다. 책임감과 리더십이 높은 성격이 당신에게 비호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게 안긴 당신의 등을 토닥, 토닥 쓸어내린다.) 진정됐으면 본관부터 소개해 줄게.

이연화
(더 안겨있고 싶지만… 첫날부터 포옹을 과도하게 요구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따뜻한 온기를 잔뜩 머금고 떨어집니다. 아직 12살인걸요. 사람의 온기가 필요해요. 순수하게 웃었습니다. 신성현의 손을 꼬옥 잡아 저를 맡겼습니다.) 좋아요. 형과 내가 파트너라는 건 각인이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어요. 난 그걸로 충분해요. (네 옆자리가 나라서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

신성현
착하다. (머리카락 톡톡. 강아지 다루는 느낌이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저보다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는 게 중독적인 행위라는 걸 깨닫는다. 금으로 짜여 반짝이는 비단실 같아. 당신이 꼭 잡은 손을 이끈다. 지금 자신이 설렌 상태임을 깔끔하게 인정한다.) 여긴 본관의 회의실이라 복도만 지나면 돼.

이연화
(설령 신성현이 저를 개 다루듯 쓰다듬어도 좋아할 겁니다. 강아지처럼 귀여워해 주고 예뻐해 준다는 뜻이잖아요. 다만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건 많이 질투 날 것 같은데. 아무 말 없이 온순하게 당신을 따릅니다.) 안에서 봐도 정말 넓어요.
GM
신성현과 14회의실을 빠져나오면 DOT 본관의 복도입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은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신성현에게는 낯익은 풍경이었고 이연화, 당신에게는 어쩐지 무척 그리운 풍경이었죠. 낯익기 짝이 없어서 꼭 제자리를 찾아 온 듯했습니다.
처음 발을 들였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기마저 친숙했어요.
당신은 어떤 감각을 느낍니다. 기시감일 수도, 괴리감일 수도 있습니다.

이연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기시감? 신성현을 만나기 전 여기서 머물며 상태를 점검받아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모르겠네요. 내가 있던 곳은 어둡기 그지없는 지하실 아니면 DOT의 동관이었습니다. 거기가 여기와 비슷하던가… 신성현을 부단히 따라가며 고민했습니다.)
GM
역시 당신이 머물던 연구원들의 동관과 비슷해서 느낀 감각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새로운 지금, 당신이 이 건물의 구조를 알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신성현이 당신을 안내해 주고 있으니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파트너와 함께 머물게 될 이곳을.
《씬 종료》
◆ #Scene 3. 도밍게즈의 첫날
복도를 자박자박 걸어 창문으로 본 DOT의 풍경은 대부분 흰색과 남색, 짙은 원목으로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바닥은 대리석을 깔아 반지르르 윤이 나고, 천장은 남색 페인트 위로 희게 별자리를 각인한 탓에 밤하늘 아래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DOT란 도밍게즈를 위해 존재하는 곳. 까닭에 정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입구는 열어둡니다. 청동으로 빚은 단단한 문들은 활짝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상징이자 존재의 의의입니다.

신성현
(저를 부단히 따라오는 당신을 귀엽게 힐끔 바라본다.) 우리, 그러니까 타이머와 카운터가 정식 임관을 받으면 본관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어. 그전까지 우리는 서관에서 아이들끼리 생활하고. 연구원님들이나 사무원님들을 비롯한 모든 직원께서는 본관의 지하에서 식사하시니까 식사 시간에 찾아가면 참고해. (당신에게 본관 구조 지도를 보여줍니다.)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이연화
(이연화는 당신이 안내해 준 본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바빴습니다. 짧은 12살의 다리로 뛰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넓은 공간입니다. 밤하늘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물 아래 가장 돋보이는 건 당연히 신성현이지만요. 당신에게 해맑은 아이인 양 웃어줍니다.) 내가 열심히 커서 카운터의 가치를 인정받으면, 형이랑 여기에 올 수 있다는 거죠? 지금 돌아다녀도 될까요….

신성현
맞아. 크게 사고 치지 않고 잘 따라온다면 정식 임관은 문제없어. 여태까지 선배들이 그러셨듯이. (따라오는 게 힘들진 않을까 걸음 속도를 늦춘다. 느긋하게, 천천히 둘러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장교님께서 건물 소개를 하라고 하셨으니까. 그건 서관이었지만 어차피 잘 지내려면 대략적인 구조 정돈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본관 건물 중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이연화
사고… 잘 모르겠어요. DOT가 봐주는 사고는 어느 정도의 사고예요? 명령에 불복종하기? (확실히 알아둬야 나중에 쓸모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물어봅니다. 신성현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질문으로 꾸밉니다.) 다른 곳은 대충 알 것 같고, 옥상이 궁금해요. 잠깐 들렀다가 가요. (지도를 보고 총총 앞서갑니다. 이연화는 유별나게 머리 좋은 아이였습니다.)

신성현
(앞선 이연화가 무언가에 걸리지 않도록 넓은 복도를 가리키며 따라간다. 순수한 연기를 하는 당신이 제게는 한없이 돌봐야 하는 아이로 보였다. 잘 돌아다니는 그를 보면 옅은 웃음이 난다.) 글쎄, 난 사고를 쳐본 적이 없고, 주위 타이머들도 대부분 그렇게 훈련받아 엄하게 혼난 적은 없는 것 같아. 불복종한 게 어느 명령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시민을 위협하라는 부패한 상관이라던가. (신성현은 정직한 군인 성향이었다.)

이연화
매체로 봤을 때 느꼈지만 형, 정말 정직하네요. 보통 아이들은 말썽 피우고 사고도 좀 쳐주고 그러잖아요. 형은 한 번도 그래본 적 없어요? (신성현이 그렇게 생기긴 했습니다. 저 멀리서 봐도 ‘나 우등생이에요’ 하죠. 신성현의 도움을 받아 수월한 길로 옥상에 도착한 이연화가 탁 멈춥니다.) …만약 내가 말썽 피우면 참아줄 거예요? (궁금한 게 많습니다.)

신성현
난 그게 편해. 부모님부터 DOT 관련인이시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더라.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땐 나도 수많은 사고를 쳤겠지, 그런데 이제 기억 안 나. (열린 옥상 문을 매끄럽게 민다. 싱그러운 풀의 향기가 코끝에서 느껴진다. 햇살을 등지고 당신을 돌아본 신성현이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원래 아이들은 그렇게 크는 거래. 말썽 피우고 사고 치고, 어른들한테 혼나면서. 심각한 사고가 아니라면 투정은 언제든 받아줄게. 넌 이제 내 파트너니까.
GM
신성현이 연 옥상 문 너머는 공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싱그러운 풀잎과 나무, 꽃들이 심어진 스카이라운지로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어 휴식을 취하기 적당해 보입니다.
바로 코앞에 위치한 주의사항에 미성년자는 낮에만 방문할 수 있다고 적혀있네요.

이연화
(얕은 바람이 불어와 신성현의 머리칼이 흩날리는 게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언제 봐도 믿음직스럽고, 세계를 구원할 타이머다운 얼굴입니다. 상기된 얼굴로 눈을 내리깝니다.) 나도 어른들한테 들었어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래요. 내가 형 믿고 지나친 투정을 부리면 어떡하려 그래요. (당신의 하나뿐인 파트너라는 말에 취해 저지를 짓은 무궁무진합니다. 신발 아래 밟힌 풀잎을 짓이깁니다.)

신성현
뭘 걱정해? (내려간 당신의 두 뺨을 감싸 제게로 올렸다. 풀잎 말고 내게 집중해. 너와 시선을 맞추고 싶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관계에 큰 욕심 없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타이머와 카운터라는 연결 관계가 영향을 준 것이겠지. 처음 생긴 어린 파트너가 걱정하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네 생각보다 튼튼한 사람이야. 타이머가 된 후로 훈련받은 걸 여기에 써야지 어디에다가 쓰겠어.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게. 즉 내가 싫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전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야.
정 걱정되면 우리, 약속할까.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이연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신이 내민 새끼손가락을 깜빡깜빡, 바라보았습니다. 타의로 고개가 들려져 이젠 자의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풀잎을 짓이기던 발끝이 멈추며 당신이 무슨 속셈일지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습니다. 저 올곧은 눈동자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신성현은 입으로 내뱉는 모든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뿌리 깊게 박힌 불신이 당신의 앞에선 전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말하지 않으려 했던 속마음이 튀어나옵니다. 날 받아달라고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요. 난 형이 생각하는 그런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사실은 착한 척하고 있는 나쁜 아이예요.
그래도 내 손을 잡아줄 거예요? 형의 파트너로 생각해 줄 거예요?

신성현
잡아줄 거야. 내 파트너로 생각할 거야. (단호한 대답이었다. 당신이 소심하게 엮은 새끼손가락을 강하게 감쌌다. 받아달라는 당신의 의미를 단번에 환신시켜 주었다. 비록 아무 효과도 없는 어린아이의 새끼손가락이지만 그 무엇보다 신뢰 있는 약속이다. 마음을 담아 연결했던 새끼손가락을 슬 놓아준다.) 나쁜 아이면 뭐 어때, 사람은 누구나 달라질 수 있어. 내가 옆에서 올바르게 이끌어 주면 돼. 사고 칠 때 어르고 달래서 데려오고 투정 부리는 널 감당해 줄 수 있어. (순진한 아이의 사고로 생각하던 신성현이 문득 목소리를 깔고 속삭인다. 머뭇머뭇, 물어보는 것이.)
…사람은 안 죽였지?

이연화
…네? (뜬금없는 말에 되물은 이연화가 한 박자 늦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진짜 미소였습니다. 이걸 본 건 아마도 당신이 최초일 거예요. 나조차 지금 이 미소를 지어본 적이 없거든요. 아주 짧고 미약한 웃음이었으나 찬란하게 빛났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든 미소인걸요.) 그게 뭐예요. 으응… 역시 안 되겠어요. (아까처럼 당신의 폼에 폭 안긴 이연화가 얼굴을 부비적거립니다. 어떡해. 너무 좋아질 것 같아, 이 존재가. 내 타이머가.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넣어서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어. 당신의 목덜미를 사랑스럽게 둘러안았습니다.)
평생 나 감당해야 해요. 형이 먼저 시작한 약속이에요…. (머리를 기대 눈감습니다. 전신이 나른해져 옵니다.)

신성현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힘은 나의 것인데 역으로 당신에게 시간이 멈춘 것이다. 안에서 본 미소와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웃음이 제 심장께를 어루만졌다. 동시에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아마도 지금 네 웃음을 평생 잊지 못할 테지. 크게 떴던 두 눈이 사르르 내려앉는다. 당신을 따라 예쁘게 웃었다.) 그럴 생각으로 약속했어. 도밍게즈의 타이머와 카운터는 싫어도 붙어 다녀야 할 운명이 될 거거든. (당신의 허리를 조심스레 감싸 들어 올린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힘은 우리의 능력 덕분이었다. 공기처럼 이연화를 안아 든 신성현이 당신의 등과 다리를 받친다.) 졸려? 서관으로 갈래?

이연화
(공기처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진 이연화가 당신의 목덜미를 감싼 자세를 편안히 고칩니다. 작은 아이의 품은 견고한 성벽 같았습니다. 제 머리칼을 간지럽히는 숨결, 시원하고 아직 달콤함이 빠지지 않은 그의 체향을 들이켜다가, 발을 위아래로 앙증맞게 흔들었습니다.) 자꾸 나 설레게 하지 마요. 지금 참느라 위험하단 말이에요. (알 수 없는 말을 한 이연화가 동관이 있는 쪽을 가리켰습니다. 딴죽걸기 전에 말을 돌립니다.) 저기는 안 가요?

신성현
위험… 뭐? (그러고 보니 사람 죽여봤냐는 질문엔 결국 대답 안 한 거 아닌가? 했으나 다시 물어보기에는 이미 주제가 바뀌었다. 얼떨결에 당신에게 휩쓸려 동관을 턱짓한다. 앙증맞은 동동질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사람들이 왜 귀여운 아이를 좋아하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저긴 연구동, 연구소라고 불려. 그런데 타이머의 입장이 제한되어 있어. 카운터인 너도 비슷할 것 같아. 일반인 연구원과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곳이라서 미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야. (갈 명분이 없는 신성현은 당신을 안고 옥상을 나와, 서관으로 향한다.)

이연화
아무것도 아니에요. (순진한 신성현. 벌써 내 계략질에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갈 미래가 그려집니다. 마음에 드는 신성현을 마음껏 껴안았다는 것에 흡족해하며 동관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합니다.) 형 만나기 전엔 저기에 지내면서 임시로 몸 상태 검사를 했어요. 설마하니 출입이 제한된 곳이라니. 정확한 내부 구조는 몰라도 별로 볼 거 없던데. 뭐어, 굳이 무리해서 가볼 필요는 없겠죠. (돌아다닐 땐 연구원들이 함께 가주었지만.)

신성현
정말? 그럼 타이머들이 카운터들의 존재를 몰랐던 게 말이 되네. 연구원님들이 얼마나 꼭꼭 숨겼으면 당일날 장교님의 장난에 당했겠어. (당황스러웠던 첫만남이 생경했다. 천천히 본관을 빠져나와 서관으로 들어선다.) 본관의 회의실에서 면담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무단출입은 관둬. (그 장소가 면담 장소로도 쓰이는 듯했다.)
GM
신성현에게 달랑 들려 이송당한 서관은 타이머와 카운터가 현재 지내는 곳이라 했습니다.
내부 구조는 본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이연화
거기가 면담 장소로도 쓰이는군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불려 갈 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갈게요. (그렇게 생긴 곳이긴 했지. 싹수가 노래봤자 혼나는 건 싫은 아이라서 당신의 목덜미를 꽈악 끌어안습니다. 반짝거리는 서관을 크게 둘러봅니다.) 본관과 비슷하네요. 우리 내일부터 2층 교실에서 수업받아요?

신성현
회의실은 평소에 쓰이지 않는데, 임무를 받거나 중요 전달 사항이 있을 때 호출 장소로 이용하기도 해. 사고 안 친 사람은 찔릴 구석이 없지. (이연화에게 꽈악이 자신에겐 꼬옥이었다. 전혀 목 막히지 않은 얼굴을 주억거린다.) 일반적인 교과목을 배워. 세계의 구원자가 무식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지루해도 잘 들어. 숙소로 바로 데려가 줘?

이연화
찔릴 구석 없도록 정갈히 생활하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거죠? (입술을 조금 삐죽 내밉니다. 신성현 만난 건 좋아도 엄격한 군대는 제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게 저의 성격입니다. 온순한 양의 털을 쓴 짐승이요. 적어도 어린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당신의 머리 위에 턱을 올립니다.) 저기 옥상은요. 옥상은 왜 출입 금지예요? (궁금한 거 다 알려주고 가라는 소리입니다.)

신성현
그런 셈이지. 너도 혼나지 않게 잘 해봐.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인 아이의 질문을 상냥히 들었다. 당신이 잘 볼 수 있게끔 몸을 옥상 쪽으로 돌린다.) …모두가 늘 규칙을 잘 지키는 건 아니야. 면담을 각오하고 올라가 본 타이머의 말에 따르자면 그냥 아스팔트 바닥과 견고한 난간이 전부랬어. 아이들한텐 위험해서 올라가지 말라는 거 아닐까? DOT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넌 혼나고 싶어?

이연화
아뇨, 나는 누구한테 혼나는 거 싫어요. (정말 싫어서 힘차게 부정했습니다. 이어 속닥거립니다.) 형은 내가 좋아하는 타이머이자 내 파트너가 될 사람이니까 잔소리 세 번 정도는 참아줄게요. (완전 특혜입니다. 의기양양하게 당신의 머리칼을 하얀 손가락으로 간지럽힙니다.) 훈련실은요? 훈련실에서 무슨 훈련 해요?

신성현
세 번…? 너무 적지 않나. 음, 노력해 볼게. 과연 네게 잔소리 세 번 이상 할 만큼 사고 칠 날이 올까 궁금하네. (그리고 훗날 신성현은 이 말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직 이연화의 엄청난 성격과 노란 싹수를 알아보지 못한 참사였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당신의 손을 잡는다.) 간지러워. 훈련실에서는 평소에 능력 운용, 능력 실험 등 타이머를 위한 말 그대로의 훈련을 해. 지금은… 카운터라는 파트너가 등장해서 뭘 할지 잘 모르겠다. 다음날이 되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연화
나한텐 세 번이 정말 많이 양보한 거예요. (그렇습니다. 지나치게 비상한 두뇌라 오히려 상식을 뛰어넘은 이연화의 성격, 그리고 속에 들어앉은 미친 본성을 깨닫게 되는 날이 신성현이 후회하는 때가 될 것입니다. 기분 좋게 당신의 손가락과 제 손가락을 엮어 장난쳤습니다.) 아마 같이 힘을 합치거나 협동하는 등의 훈련을 하겠죠. 그런 건 내일 직접 알아보기로 하고, 슬슬 숙소로 돌아갈래요. 같은 방을 쓰겠죠? (기대감 가득합니다.)

신성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착하게 양보한 파트너로 쳐줄게. (지금처럼 웃는 날이 얼마나 가게 될지 모르겠다… 풋풋한 평화를 즐겼다. 당신의 온기를 느낀 신성현이 숙소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기분 좋아 보이는 이연화가 품에서 흔들리지 않게.) 방을 새로 증축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아무래도… 다시 말하지만 불편할 땐 꼭 말해줘.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GM
DOT 건물 탐방을 대략적으로 마치자 슬슬 해가 지고 있습니다.
당신과 신성현은 짐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관 숙소로 돌아갑니다.
당신이 바라 마지않던, 몇 타이머와 카운터들은 곤란할 1인실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하긴 여태 타이머가 14명뿐이었으니 그럴 만하기도 하지요. 카운터의 등장은 갑작스러운 것이니까요.
카운터의 짐은 이미 타이머의 숙소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DOT는 어떻게든 타이머와 카운터를 붙여두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습니다.
구원자들이 사용할 방은 호화스럽고 2인 침대가 놓여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이연화
(혼자였던 자신에게 짐이라 부를 만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DOT에 와서 챙겨준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들어가자마자 문과 가장 먼 침대를 가리켰습니다.) ‘우리’ 저기서 자요. 문 근처는 바람 들어올 것 같아요. (당연히 같이 자줄 거죠? 하는 마음을 담아 아주 예쁘게 바라봅니다.)

신성현
그럴… 아니, 같이? (반사적으로 놀랐다가 급히 덧붙인다.) 싫다는 건 아니야.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함께 있어 줄 수 있어. 침대도 충분히 넓고… 정말 나랑 같이 자고 싶어? (처음 오는 건물에 잠깐 무서워서 잘못 선택한 건 아닌가, 한다. 당신이 원한 안쪽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명색의 DOT가 바람 새는 숙소를 주었을 리 없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이연화
네, 같이요. 같이. (강조한 것도 모자라 한 번 더 말합니다. 폭신폭신 보드라운 시트에 앉은 상태에서도 당신을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습니다. 멀뚱멀뚱 바라봅니다. 혹시 싫냐고 죄책감을 자극할 생각이었는데 이미 막혀버렸네요. 이렇게 된 이상 신성현이 받아줄 때까지 버팁니다.) 나 혼자 자면 악몽 꿔요. 잘 못 자고 울 수도 있어요. 내버려 둘 거예요? (뻔뻔)

신성현
(이런 성격이었나…?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혼란스러움이 찾아온다. 깊이 생각하기엔 신성현의 안목은 아직 당신의 연기를 간파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래도 되는 건지 망설이던 신성현이 끝내 당신 옆에 앉는다.) 어쩔 수 없지, 불편하다 느껴지면 언제든 떨어져도 좋아. 당분간은 네 옆에서 자줄게. 이거면 될까. (악몽을 꾼다는 건 15살밖에 안 된 아이의 마음을 자극했다. 안타깝게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이연화
(연약한 척과 뻔뻔한 요구를 적절하게 섞어야 신성현을 구워삶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낸 이연화가 연기를 풀고 보송한 눈웃음을 쳤습니다.) 고마워요, 형. 이런 날 돌봐줘서. 형 덕분에 오늘은 꿈 없이 푹 잘 것 같아요.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요. DOT에 오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악몽 같았으니까. 당신에게 안겨 침대로 끌어당깁니다. 폭신하게 누운 이연화가 달콤한 숨소리를 흘립니다.)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평생 오늘 같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형, 잘 때 자장가 불러주세요.

신성현
(간혹 유별난 소리를 해대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라고 아이가 생각했다. 저항 없이 함께 누운 신성현이 당신의 불편할 베레모를 벗겨주었다.) 실은 나도 좋아. 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함께 있을 누군가를 바랐나 봐. 인간은 그런 동물이었지. (외롭지 않게 해줄 파트너를 바라는 것. 제게 온 선물 같은 당신의 숨결을 느낀다. 느긋하게 일어나 당신의 볼을 쿡 찌른다.) 못 부른다고 뭐라 하지 마. 따뜻하게 씻고 나와서 불러줄게.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회의실을 나올 때와 같은 웃음이다.)

이연화
형의 목소리는 노래를 못 불러도 고운 음색이라 괜찮아요.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요. (너도, 나도. 부족한 아이들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받아내 채우는 것입니다. 이연화는 제게 언제나 손 내밀어 주는 당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할 수 없어졌습니다… 지구와 달이 중력으로 이끌리듯 불가항력으로 신성현의 손을 잡습니다. 내내 채워진 적 없는 가슴이 차올랐습니다. 나지막하게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잘 부탁해요, 신성현.

신성현
불러본 적 없어서 실망시켜도 난 몰라. (이연화와 닿는 곳은 우리의 중력이 파장을 맞추어 얽혀드는 감각이 물결쳤다. 카운터는 타이머의 능력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 그와 함께하는 동안 장교가 말해준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그때 이연화에게 이끌리던 건 지구와 달이 서로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와 비슷했다. 불변의 법칙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나의 파트너를 각별히 일으켜 세운다. 같은 시야에서 손깍지를 낀다.) 잘 부탁해, 이연화.
GM
가느다란 손가락이 얽히고 얽혀 붙드는 풍경은 흡사 지구와 달이 중력으로 엮이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누가 지구인지, 누가 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뿐.
운명에 등을 떠밀려 만난 두 사람이 어떤 첫날 밤을 보냈는지는……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일 거예요.
도밍게즈의 태양이 저물어갑니다.
그것이 타이머 신성현과 카운터 이연화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
더블크로스 The 3rd Edition Written by. 수연
⚜ 12시의 도밍게즈 ⚜
Chapter.1 시계 바늘의 방향
날선 바늘의 끝은 정확히 우리를 가리켰다.
TIMER. 신성현 COUNTER. 이연화
Date. 2023.11.24
더블크로스― 그것은 배신을 의미하는 말.
»»———— ⚜ ————««
《오프닝 페이즈》
◆ #Scene 1. 타이머와 카운터의 상관관계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3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6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31 → 34
[ 신성현 ] 침식률 : 32 → 38
GM
우여곡절로 가득 찬 첫날 밤이 무사히 지났습니다.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정식 임관을 받지 못한 우리들은 임무보단 수업과 훈련이 주 일과를 이룹니다.
따스한 햇살에 눈을 뜨면 어느새 DOT에서의 첫 수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성현
일어나, 이연화. (막 깬 당신을 흔들어 깨운 신성현은 다정하게 엉킨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아침 먹고 수업 들으러 갈 거야.

이연화
(아침잠이 많은 이연화는 비몽사몽 일어나 잠이 덜 깬 눈으로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5분만 더 자면 안 돼요…? (신성현을 껴안고 냅다 드러누워요.)

신성현
(윽, 방심하던 차에 끌어당겨져 침대에 풀썩 눕게 된다. 어쩔 수 없다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 신성현이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안 가면 선생님들이 혼내셔. (당신을 이불째로 가볍게 든다. 화장실로 옮겨버린다.) 세수시킬 동안 잠 좀 깨봐.

이연화
으음…. (당신의 안락한 품에 안겨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어제 자려는 신성현을 붙잡고 밤새 말 걸어서 그런가 봅니다. 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연화가 세수 당할 동안 머리를 굴립니다.) 형이 아침 뽀뽀해 주면 잠이 깰 것 같아요.

신성현
뽀뽀? 내 파트너는 정말 애교가 많네. (이연화의 얼굴을 깨끗하게 문질러 닦던 신성현이 나지막하게 웃는다. 비누를 씻어 뽀송한 볼을 수건으로 톡톡 문질러 주고, 그곳에 가볍게 입술을 맞댄다.) 이제 깼어?

이연화
(인형처럼 당신의 손길을 받다가 톡, 볼에 당신의 입술이 닿는 동시에 놀랍게도 이연화의 눈이 뜨입니다.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예쁘게 바라봅니다. 어제 느낀 술렁이는 이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심장이 막 두근거려요. 당장 일어나서 돌아다녀도 돼요. 형도 해줄까요? (빤히)

신성현
장난하고는. 난 사양할게, 뽀뽀 받을 나이가 한참 전에 지났어. (당신의 계략을 장난이라 받아들인다.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의 애교일 뿐이라고. 세수한 뒤 반짝반짝해진 당신에게 DOT 옷을 꺼내 건네준다.) 옷은 혼자 갈아입을 수 있지?

이연화
(신성현이 건네준 제 옷을 건네받은 이연화가 처연한 연기를 시작합니다. 그의 손길로 막 반짝해진 시점이기에 효과는 몇 배로 뛰어났습니다.) 연화한테 뽀뽀 받기 싫어요…? (옷을 끌어안는 행동까지 보여줍니다. 이 정직한 신성현을 꼬드기는 법을 슬슬 알 것 같습니다.)

신성현
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효과는 굉장했다. 단번에 당황한 신성현이 당신의 어깨를 붙든다.) 아니야, 그냥 해줘. 네가 해주는 건 전부 좋을 것 같아. (울리기 전에 뭐든 받아줘야겠다. 당신에게 제 볼을 내밀었다.) 자.

이연화
진짜죠? 내가 해주는 건 다 좋은 거죠? (승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말이지 순진하고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파트너예요. 내가 12살이 아닌 성인이었다면 잡아먹고도 남았을 것이리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신성현의 고개를 돌려 볼이 아닌 입술에 쪽, 뽀뽀하고 떨어집니다. 그가 할 말 없게 변명합니다.) 책에서 읽었는데 가장 친밀한 사람에겐 이렇게 해준대요. 형에게 주는 내 선물이에요.

신성현
으응. 하나뿐인 파트너인데 왜 싫겠…어? (방금 입술에 해준 거 아닌가? 그렇게 신성현의 말은 한발 빠른 당신의 대처에 또 먹혀들었다. DOT에서 순수하고 순진하게 자란 신성현은 약간 붉어진 제 귓가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구나. 고마워, 네게 가장 친밀한 사람이 되어 영광이야. 다만 남한텐 절대로 이러면 안 돼. (저 얼굴이 해주는 스킨십은 정말 파급력이 강했다. 침착함을 가장해 당신을 놓아주었다.) 옷 갈아입고 나와.

이연화
(달아오른 신성현의 귓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집요했습니다. 저 얼굴, 본인 딴엔 숨기려 하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나만 보고 싶었습니다. 신성현 본인은 자신의 얼굴 또한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이렇게 부추길 순 없었습니다. 바야흐로 이연화의 소유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껴안는 사람, 뽀뽀해 주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은 평생 신성현밖에 없을 거예요.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킵니다. 그는 실로 완벽한 나의 구원자였습니다.) 빨리 입고 나갈게요.

신성현
(방금 본인이 무엇을 부추겼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당혹감을 회복해 다정하게 끄덕였다. 성인도 안 된 아이가 당신의 흑심을 눈치챌 수 있는 날은 그리 빠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괜히 간지러워지는 분위기를 마음속으로 휙휙 저어버린다.) 그럼 다행이고. 넌 너무 여리게 생겨서 나쁜 사람이 많이 다가올 것 같아. 함부로 따라가지 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이미 당신에게 꼬드겨진 신성현이 고민 가득한 시선을 겨우 떼어냈다. 욕실 밖으로 나선다.) 밖에서 기다릴게.

이연화
응, 형 말 잘 들을게요. 모르는 사람 안 따라가고 형만 따라다닐게요. (그의 앞에서 착한 아이 정도는 언제든 되어줄 수 있습니다. 네가 바란다면. 신성현이 욕실을 나가 혼자 남은 이연화의 입꼬리가 반달처럼 휩니다. 나중에 더 크고 나서 신성현에게 그대로 돌려줄 겁니다. 나처럼 유혹하는 사람 따라가서 당신을 탐하게 하지 말라고요. 저런 탐스러운 구원자를 노릴 사람은 무궁무진할 거예요. 신성현과 다른 의미로 불안과 초조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지니고 열심히 환복합니다.)
GM
각자 서로에게 말하지 못할 생각을 품고 아침을 시작합니다.
신성현은 옷을 환복한 당신을 식당, 서관 지하 1층으로 데려가 식당 안내와 아침 식사를 도와주었습니다.
이후엔 드디어 서관 2층의 교실로 향했고요.
14개뿐이던 교실 책상과 의자는 28개가 되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네요.
신성현과 당신을 발견한 교사가 재촉합니다.

교사
어서 자리에 앉아요. (그가 가리키는 자리는 나란히, 딱 두 개가 남아있습니다.)

이연화
(당연하다는 듯이 신성현의 손을 잡아 남은 자리에 가 앉습니다. 형은 내 옆. 내 거.)

신성현
(당신의 손에 끌려가 남은 자리에 앉는다. 어차피 파트너이며 연약한-자신에겐 그렇게 행동하는- 이연화를 혼자 둘 생각은 없었다.)
GM
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수업이 시작됩니다.
창틀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집니다. 꽃샘추위도 누그러진 초봄은 앉아서 수업을 듣기엔 아까울 정도로 완벽한 날씨입니다.
교사는 칠판 위로 분필을 움직입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부드럽게 흔들리는 커튼, 책상 위의 그림자…….
평소와 똑같지만 단 하나, 옆에 앉은 사람만이 어제와 다르군요.
그러고 보니 입학하고서도 딱히 교과서나 시간표를 안내받은 적이 없는데…… 교실에도 교과서는커녕 공책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수업이 이렇담?

이연화
(사실 웬만한 지식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이연화에게 수업이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노이만이 아닌데도 그 정도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흥미를 느껴 신성현에게 속닥댑니다.) 형, 오늘은 소개만 해요? 교과서나 공책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신성현
아, 첫 수업은 일반 교과목이 아니라 DOT의 자체 과목인 ‘시간’이라서 그래. (당신에게 속닥대며 친절히 알려주었다.) 보통 DOT에 입학하면 초반에 듣는 수업인데 능력의 정의를 비롯한 다루는 방법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능력을 사용해도 되는 상황과 사용해선 안 되는 상황 같은 걸 배워. 이런 건 처음이야?

이연화
시간이라. (생각보다 본격적인 수업이네요. 자신이 그의 파트너, DOT의 이능력자가 되었단 게 갑자기 와닿습니다. 집중할 책이 없으니 대신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댑니다.) 능력에 대해 배우는 건 처음이죠. 형은 많이 들었나 봐요, 되게 능숙하게 설명해 주시네요. 그 외에 특별한 수업은 있나요?

신성현
난 15살이니까. 넌 아직 12살이었지? 처음 들어볼 만했네, 나도 첫 입학 땐 너처럼 신기해했어.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실 테지만 오늘은 첫 수업이라 간단하게 시작하실걸. 몇 개 빼고는 대부분 국어, 수학, 과학 같은 것들이야. (선생님 몰래 당신을 쓰다듬는다.)

이연화
최소 연령이 12살이라 딱 시작할 나이죠. 몇 개 빼곤 지루한 일반 수업인가요… 막 시험이나 벌점 같은 것도 있어요? (설마 DOT가 귀중한 타이머와 카운터를 퇴출할 일은 없겠지만 궁금했습니다. 책상 밑으로 당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자체 과목 시간인 오늘만큼은 수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신성현
일단은 학교니까 시험도 있고, 선생님께 주의를 받거나 혼나긴 하겠지.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건물을 무너뜨린다든가 하는 큰 사고만 안 치면 괜찮아. (저번에 물은 훈계와 벌점, 이 아이는 혼날까 봐 걱정이 많다는 착각을 한다.)

이연화
(신성현의 착각을 굳이 정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을 유약하고 어린 존재로 인식하는 만큼 동정심과 비슷한 마음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시름 놓았다는 한숨으로 당신의 착각에 어울려 줍니다.) 정식 임관 전까진 풀어주는 느낌이에요. 형 덕분에 조금쯤은 알 것 같아요.

신성현
당연히 DOT를 위해 본격적으로 일하는 정식 임관 뒤에는 더 바빠. 아직 네겐 먼 미래니까 당장 생각하진 마. (훌륭한 연기에 속아 넘어간 신성현은 그저 당신이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신경 써서 살핀다.)
GM
우리가 속닥속닥 대화하는 동안 교사는 분필로 다각다각 글씨를 새깁니다.
1.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2. 타이머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 것인가?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자.

교사
자, 새로운 친구들이 왔으니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 볼까요. (운을 뗀 교사는 첫 번째 문장을 읽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질은 무엇인가? 별 것 아닌 문제 같지만, 도밍게즈에서 타이머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죠.
카운터 또한 건국 축제를 기점으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테니,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볍게 덧붙여 당신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이연화
타이머와 카운터의 자질…. (교사와 시선을 맞춰 깊게 고민합니다. 너무 자세한 대답을 내놓으면 아이 같지 않겠죠. 그렇다고 대충 답할 수도 없는 질문이라 그 사이에서 고심하느라 몇 초 뒤에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자. 도밍게즈는 타이머를 구원자로 여깁니다. 한 번에 한 명밖에 나지 않는 그들에게 세상이 바라는 것이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힘은 의지를 지니고 노력하면 자연스레 따라올 거예요.

교사
훌륭하군요. 똑똑하고 착한 아이에겐 상을 줘야겠어요. (박수를 딱 친 교사가 당신에게 다가와 레몬맛 사탕을 사탕 위에 올려줍니다. 단상으로 돌아간 교사가 만족스럽게 웃습니다.) 우리 이연화 학생이 말한 ‘의지’는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지요. 그 외에도 강한 능력, 자비로운 마음씨, 단호한 결단력… 여러 가지 의견이 많은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적어도 ‘타이머가 아닌 나와 타이머인 나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GM
그럴싸한 대답인가요? 혹은 의외의 대답인가요?

이연화
(선생님이 준 레몬 사탕을 손에 쥡니다. 동그란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밍게즈 행성 같다고 여겼습니다. 손가락으로 빙글 돌리는 이연화는 교사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타이머가 아닌 나와 타이머인 나를 분리하는 것’.) 구원자가 될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될 것이라서, 인가요.

교사
정답이랍니다. (당신이 예상했을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이에요. 언제나 구원자, 타이머, 카운터라는 이름에 휘둘렸다간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힘들어진다면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사회적인 껍질을 뒤집어쓰고, 개인으로서의 일은 잠시 차치해 두는 거죠.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단 쉬울 거예요.

이연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구하려던 자들이 제게 보내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다든가, 회피한다든다 하는. 신성현에게 눈동자를 굴립니다. 넌 어떨까. 구원자의 이름이 무거울까? TV가 보여주던 신성현은 고작 그런 것에 무너질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짜’ 신성현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신성현
(이연화의 시선을 느낀다. 네가 무슨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호기심 가득 바라오는 눈이 반짝이고 있었으므로. 당신의 손등에 간결한 문장을 적어넣는다.) ‘나는 세상을 구원하는 게 좋아.’ (천성이 세계를 지키는 것,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었다.)

이연화
(그가 적어준 문장을 깨닫고 주먹을 쥐었다가, 폅니다. 화면 속 동경하고 바라 마지않던 완전한 타이머의 모습. 그는 제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매체가 신성현의 모습을 완전히 담지 못한 것 같아요. 그의 감히 탐내고 싶을 정도로 찬란했습니다. 기분이 들뜨는 것 같습니다. 모든 마음을 담아 당신의 손등에 대답합니다.) ‘난 형의 곁이면 전부 괜찮아요.’

신성현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글자를 손등에 적어주는 당신의 표정은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도 좋나,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주고 있을까. 실례일까 봐 묻지 않았던 이연화에 대한 것들을 알고 싶었다. 네가 날 알고 싶어하듯이. 공책이 있었다면 필담이라도 나누었을 것을. 정말 아쉬웠다. 한 사람을 알고자 하는 감정을… 놓고 싶지 않았다.) ‘고마워. 어쩌면 나도 네 곁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교사
(아이들의 대답을 하나씩 들은 교사의 분필은 이윽고 2번째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자, 그럼 생각해 보죠.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요?

이연화
(꿈만 같은 마지막 문장을 받아들이느라 느리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머릿속엔 신성현이 말해준 말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내 곁을… 신성현이 내 곁을. 핫, 정신을 차립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어요.)
(진정한 이연화는 선생님이 말해준 질문을 생각합니다. 타이머가,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멸망할까. 다가오는 마지막 계절에 세계가 멸망한다. 하지만 장교는 새 계절을 맞으리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뜻은 즉,) 장교님은 저희가 나타나고 도밍게즈가 멸망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라진다면 멸망한다는 예언이 실제가 되지 않을까요.

교사
하인리히 장교님 말이지요? 그분의 말씀을 역으로 해석다하니, 이번엔 정말 똑똑한 친구가 왔네요. (즐거워 보이는 교사가 칠판에 무언가를 적습니다.) 사실 이건 도밍게즈가 생겨난 이래, 타이머와 카운터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으므로 명확히 기다, 아니다를 나눌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연화 학생의 말처럼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여겨지고 있어요.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이연화
(막 12살이 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엔 어려운 내용이 아닌가 싶군요. 물론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지라 잘 알아듣습니다. 세계의 부여된 시간과 멸망, 이정표. 떠나가는 시간을 순환하도록 붙잡아 둘 책갈피라는 말보다 제물이라는 말이 가장 신경 쓰였습니다. 우린 세계를 위해 희생할 운명이라는 건가요.)

교사
사람들은 시간이 있기에 타이머가 태어난다고 믿지만, 실상은 반대예요. 타이머가 있기에 시간이 존재하는 거죠. 인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덤덤히 설명하다가 읊조립니다.) 모두 가설이지만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섭리를 인간이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하지만 타이머가 둘이라면 시간은 더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흘러갈 거예요. 끝은 멀어질 겁니다. 영원히 미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초읽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죠. (마지막 문장만큼은 단호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여러분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요.
GM
……당신은 문득, 멀리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정체불명의 소리입니다.

이연화
(진지하게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던 이연화의 고개가 홱 돌아갑니다. 방금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뭐지?)

신성현
(당신만이 아닌 신성현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정체 모를 소리, 의아함이 얼굴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GM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에게도 들린 모양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들거나 의아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리의 정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유인물이 배부됩니다.

이연화
(신성현의 손을 톡톡 건드립니다. 기괴한 괴물이나 울음소리는 아니었으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는 건 찝찝했습니다.) 선생님께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신성현
지금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건 타이머와 카운터들이지 선생님이 아니야. 어른들이 들으셨다면 무어라 하셨을 거야, 나도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려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일이 생겼을 땐 DOT 직원분들이 알려주시겠지. (당신을 토닥토닥 진정시킨다.)

이연화
그렇네요, 일반인들이 아닌 우리들에게만 들린 소리였나 봐요. (더 찝찝해졌습니다.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단서가 없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일단 상황을 지켜볼게요. 나중에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아무 일 없던 척 배부된 유인물을 듭니다.)

신성현
응.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너는 어른들과 내가 지켜줄게. (예민한 감각을 곤두세워 회색의 종이를 든다.)
GM
지금 알아볼 수단이 없으니 정체불명의 소리에 대해서는 나중으로 미뤄야겠습니다.
회색의 종이에는 익숙한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도밍게즈 신화입니다. 도밍게즈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3. 도밍게즈의 건국 신화를 읽고, 시간과 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자.

교사
그 마지막 숙제는 유인물의 뒷장에 적어 내면 된답니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 조금 일찍 마치도록 할까요? (경쾌하게 인사합니다.) 친해지라는 의미로 주는 휴식이니까, 되도록 타이머와 카운터는 함께 다니세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건국 축제까지는 바깥에 나가지 않도록 하고요.

이연화
(도밍게즈 신화… 익히 들었던 내용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보통 1부터 시작하는 숫자가 아니라 0부터 13까지. 완벽한 수의 기원이 마냥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유인물을 곱게 챙겨 순하게 대답합니다.) 오늘 수업 감사드려요.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같이 다니면야 저야 좋죠.)

신성현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숙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당신에게 챙길 걸 이것저것 알려준 신성현이 유인물을 품에 넣는다.)
GM
당부와 함께 교사가 먼저 교실을 떠납니다. 교실에는 타이머와 카운터, 그리고 유인물이……
어라,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었네요?

이연화
형, (교사가 나가고 건국 축제에 관해 물으려던 이연화가 멈춥니다. 이게 뭐지, 품에서 스르륵 미끄러진 또다른 종이 한 장을 듭니다.)

신성현
궁금한 거 있어? (당신의 부름에 바라본 신성현이 또 다른 유인물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제 것을 살피고 당신과 같이 멈추었다.) 두 장이었네.
GM
또 다른 유인물은 ‘연구 보고서’입니다.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심지어 제일 마지막 줄에 필수 제출하라고 쓰여있습니다. 꼼짝없이 함께 붙어 있을 수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연화
모르고 지나갔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숙제가 그리 많진 않아서 다행이네요. (연구 보고서를 뚫어져라 봤습니다. 번진 글씨는 뭘 나타내는 걸까요.) 형 것도 번져있어요?

신성현
내 것도 그래. 이미 번진 원본을 인쇄해서 주셨나 봐. 그런데 언제까지 하라는 거지? 날짜가 안 적혀있어. (빈 뒷장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GM
신성현이 소리없이 의문을 표했을 때, 타이밍 좋게 문자가 도착합니다.
「 2052-03-08, 09:18
제10시 페어 10번 훈련실 사용 가능
연구 보고 협조 요망 」

이연화
뭔가 우리를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별로예요.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기대고 있던 신성현의 허리를 꼭 끌어안습니다.) 당장 바로 가야 하는 거예요…?

신성현
세상에 또 다른 타이머의 존재가 나타난 건 그만큼 이례적이니까 어쩔 수 없지. 혹시 모를 부작용이 나타나면 어떡해, 그런 걸 대비하는 걸 거야. (당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보들보들 강아지 같아.) 바로 오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어디 보자. 점심 먹기 전까진 괜찮겠어.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이연화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데. (당신의 손길에 불만 가득하던 얼굴이 조금 풀립니다. 신성현과 나의 관계는 오로지 내 것이라고요. 나만의 것. 공유하고 싶지 않아요. 번진 글자도 신경 쓰이고.) 막 하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물어볼 게 몇 가지 있어서요. 아까 들은 정체불명의 소리라던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였죠… 대체 뭐였을까요.

신성현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너무 싫으면 말해. 연구원님께 이야기해 줄게. (어쨌든 신성현은 당신을 신경 쓰고 있었으므로 당신이 우선순위였다. 어린 아이잖아. 그럴 수도 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짐작 가는 게 없어.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봤는걸. 차라리 나중에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까, 뭔가 아실지도 몰라.

이연화
정말 괜찮을까요…. (저 연구 보고서와 이상한 소리 전부가요. 알지 못해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은 썩 취향이 아니란 말이에요. 언제까지 불평만 할 순 없는 터라 한숨만 쉽니다.) 아니에요, 괜히 말했다가 우리만 듣는 소리라고 뭔갈 시키면 어떡해요. 조금 더 지났을 때도 아는 게 없으면 말해요. 그보다 나 궁금한 게 있어요. (고개를 들어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신성현
나는 네 말대로 할게.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것 같아. 어린 아이들에게 이상한 걸 시키실 분들이 아니라서. 자세한 보고는 해야겠지만 무섭게 추궁하시진 않을 거야. (귀여운 동생이 하나 생긴 기분이다. 귀찮은 기색 일절 없이 전부 받아준다.) 내가 아는 건 뭐든지 대답해 줄 수 있어.

이연화
나 기분 좋아지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죠. (그럴 생각이었다면 성공입니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이연화가 당신을 더 끌어안습니다. 당신에게 한참을 부비적대다가 떨어집니다.) 이건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건국 축제가 뭐예요?

신성현
아니라고 할 순 없겠지? (네가 기분 좋아할 때 짓는 미소는 나도 좋아하니까. 투정 같은 애교를 잔뜩 귀여워한 신성현이 당신에게 축제에 관해 알려줍니다.) 도밍게즈 건국 축제는 매해 봄의 가운데, 4월 19일에 열리는 축제라고 해.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이연화
(한가로운 상태로 신성현의 설명을 들은 이연화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건국 축제… 건국 축제. 지하실에 갇혀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사이에서 간혹 들려오던 시끌벅적한 소리가 이것이었나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여하는 축제가 신성현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점에 눈동자가 반짝거립니다.) 거기서 카운터인 내가 형의 파트너로 정식 발표돼요?

신성현
첫날 하인리히 장교님이 건국 축제를 기점으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해주신다고 하셨어. 별 이상이 없는 한 아마도. (도멩게즈의 국민인 이상 한 번쯤은 겪는 큰 축제를 모르는 눈치에 쓰다듬던 손을 멈추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어?

이연화
내가 형의 파트너를…. (당신이 반문하자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는 걸 떠올립니다. 나는 신성현에게 관심이 있었지 나를 알리는 것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참에 써먹어 볼까… 신성현은 어디까지 약해질까. 아무렇지 않은 게 오히려 나을 테니 해맑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님 없이 자랐는데, 임시로 돌보아 준 친척 어른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어두운 지하실이 세상의 전부였죠.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형의 얼굴을 봤어요. (이건 진심입니다. 새카만 어둠을 닮았지만, 전혀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 당신의 얼굴을. 그 순간 당신을 만나던 순간처럼 시간이 정지하는 줄 알았습니다.) 형은 이미 내 구원자예요. 타이머 신성현을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이연화가 당신과 마주합니다.)

신성현
…. (이연화가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는 자신에게 무겁고, 뜨겁게 다가왔다. 그간 이 아이가 제게 보여준 태도와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단번에 이해한다. 너는 그런 힘든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었구나.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널 구원했다니. 쉽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순수하게 바라보는 당신을 제 품으로 끌어안는다.) 지금은… 어때. 여긴 네게 버텨야 할 상황을 줄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아. (어둠이 무섭진 않은지, 작은 몸으로 떨고 있진 않은지, 내가 네 아픔을 못 보고 지나친 건 아닌지. 당신의 어깨가 유독 작게 보였다.) 신성현이 이연화에게… 도움이 됐어? 정말?

이연화
도움이 됐어요. (고민할 필요 없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구하러 오지 않아도 누군가를 구원할 방법은 많습니다. 당신의 존재로 버틸 수 있었던 나처럼.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저를 단단히 감싼 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을 그냥 만난 것도 아니라, 무려 파트너의 자리에 서 있잖아요.) 있죠, 형. 여기가 또다시 버텨야 하는 공간이어도 난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이제 내 옆에 진짜 신성현이 있어요. (‘난 형의 곁이면 전부 괜찮아요.’ 했던 문장. 결코 가볍게 적은 말이 아닙니다. 당신의 품에서 눈을 감습니다.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미 맛본 따뜻함을 놓을 수 없습니다.) 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신성현
(이연화에게 신성현이란 단순한 구원자가 아님을 이제 알았다. 너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그 순간을 오로지 나라는 존재에 의지해 버텨주었다. 그래서 지금, 나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거야. 당신이라는 빛이 제 눈앞을 밝혀준다. 아직 온전한 구원자가 되지 못한 미성숙한 내가 누군가를 구했다는 의미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당신에게 크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머뭇거림 없이 약속한다. 잡아줄 거야. 내 파트너로 생각할 거야. 단호하게 약속했던 그때와 같이.) 떠나지 않아. 네가 내 옆이 편한 그날까지 함께할래. 내가 그러고 싶어. (당신의 머리에 얼굴을 묻는다. 참으로 따스한 온도였다.)

이연화
(아… 어쩜 당신은 이토록 나의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완벽한 존재인지. 화면 너머 움직이는 당신을 바라보며 상상하고, 예상했던 내 마음속의 신성현과 다른 것 하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며 정의로울 당신을 제 쪽으로 붙들고 싶습니다. 타이머가 시간을 세계에 머물고, 존재하게 하는 제물이라고 했었나요. 아뇨, 그렇게 둘 순 없습니다. 고작 세상 따위에 이 존재를 잃는 건 불공평해요. 신성현이 세계가 아닌 나를 위한 존재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이 알아선 안 되는 생각이 흘러갑니다. 쿵, 쿵. 살아 숨 쉬는 고동 소리가 들립니다. 진지하게 묻습니다.) 나랑 결혼해 줄 거예요?

신성현
(당신이 제 고동 소리를 들을 동안, 나는 조용히 색색대는 당신의 생이 이어진다는 증거에 귀를 기울인다. 맞닿은 가슴께의 고동이 서로의 박자에 맞추어 일정해진다. 깜빡깜빡, 눈꺼풀을 움직이던 우리가 똑같아진 첫 만남을 따라. 그 때문에 당신의 갑작스러운 물음을 넘길 뻔했다.) 그래, 당연히 결혼… 뭐라고? 그, 그건 왜?

이연화
(에이, 분위기에 묻어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이미 말 꺼낸 겸 몸을 일으킨 이연화가, 신성현의 새끼손가락과 자기 새끼손가락을 알아서 엮습니다.) 형이 평생 내 옆에 남아주겠다고 말했잖아요. 그게 곧 결혼이랑 다를 바 없죠.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가면 혼낼 거예요. (그 자체로 개연성인 아름다운 얼굴로 웃습니다.)

신성현
어… 응? 으응. (멍하니 당신이 하는 대로 새끼손가락을 엮어버렸다. 뭐지, 뭔가 되게 속아 넘어간 느낌이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경고등을 눈치채기엔 당신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괜찮겠지. 단순히 어린 날 감정에 휩쓸린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나보단 엄청 예쁜 네가 더 위험한 거 알아?

이연화
(금빛 눈은 당신을 흘겨봅니다.) 정말 모르고 말하는 거예요? (그렇겠죠. 바보 같이 얼떨떨해하는 저 얼굴은 진짜니까요. 한숨을 푸우욱 쉬었습니다.) 형. 형은 자기 외모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원래 사람들은 형 같은 잘생기고 조각 미남인 사람들한테 홀리게 되어 있다구요. 나 같은 아름다운 미인도 수요가 꽤 되지만 형은 무려 타이머잖아요? 도밍게즈의 구원자. 그런 사람이 잘생기기까지 하면 인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이상한 말 그만하고 빨리 알았다고 끄덕여요. 형은 크면 연화랑 결혼할 거예요.

신성현
…미안한데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분명 내가 3살 더 많은데… 이연화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차마 받아들이지 못해 한 귀로 흘렸다. 얘 12살 맞아? 당신의 이마를 짚어 열이라도 재본다. 멀쩡하군.) 그러니까 네 말은 미래의 내가 파트너인 널 두고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 약속해 달라는 거지. 내가 잘생겨서…? (필사적으로 삐걱대는 두뇌를 굴린 그가 결론을 도출했다.) 결혼은 잘 모르겠고 곁은 안 떠난다고 약속할게.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먼 미래 아냐…?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이연화
(눈을 무섭게 부릅뜹니다. 내가 넘어가 줄 것 같나요.) 아뇨. 연화랑 결혼한다고 약속해요.

신성현
…약속, 약속할게. (당신의 기세가 너무 심상치 않았다. 계략에 빠져들고 만다.)

이연화
좋아요. 역시 형은 나만의 구원자예요. (이것도 신성현이 더 커서 머리가 굳으면 할 수 없는 몰아치기 방법입니다. 손안에 가득한 수확을 뿌듯하게 쥔 이연화가 방금 건 잊으라고 애교부립니다.) 혀엉, 우리 슬슬 연구 보고인가 뭔가 하는 거 해보러 갈까요? 연화 빨리 숙제하고 형이랑 놀구 싶어요. (볼에 쪽)

신성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방금 태풍이 지나간 것 같다. 겉은 멀쩡한데 정신이 너덜해진 신성현이 하얗게 불탄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당신의 계략에 당했다는 건, 2년 뒤인 17살쯤에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냥 바보 같이 말려든다. 쪽 소리가 멀리서 퍼진다.) 그럴까… 훈련실로 가서, 응. 숙제해야지. (유인물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연화
번진 글자가 뭔지 직접 확인하러 가봐요. (내 신성현이 똑똑해지기 전 말랑말랑할 때 얼른 구워삶아야 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놈에게 관심 가지지 않도록. 내게 하필 신성현의 파트너 자리를 준 걸 후회하게 될 거예요, DOT. 머지않아 미친놈으로 자라날 이 싹수 노란 이연화는 조신하게 당신의 곁에 섭니다.)

신성현
이야기하느라 곧 점심이기도 하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혼미한 지금의 상황은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눈앞에 내어진 급한 숙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이연화가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아닌 것 같으니까. 그게 자신에게만 그런 줄은 지금 알 수 없었다. 당신을 데리고 10번 훈련실로 이동한다.)
GM
시간은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신속히 흐릅니다. 어쩌면 함께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루했을 수업이 눈 깜짝할 새 끝난 느낌은, 역시 착각일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흐를수록…… 이끌림은 짙어집니다.
《씬 종료》
◆ #Scene 2. 훈련실과 CCTV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8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1
….

이연화
…. (토닥)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34 → 42

신성현
(그냥 웃습니다)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38 → 39
GM
호출을 따라 훈련실로 걸음을 옮기면,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페어 별로 진행할 모양입니다.
문 앞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연구원 애쉬
왔어? (연구원들 중 두 사람을 가장 친숙하게 반깁니다.)

이연화
(기억에 없는 사람입니다. 우선 끄덕 인사합니다.) 여기서 연구 보고 협조를 해달라고 들었어요.

신성현
이분은 애쉬 연구원님이야. 내 12살 시절부터 도와주셨어. (그의 친숙함은 신성현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연구원 애쉬
잘 알고있구나. 듣던 대로 영민하네. (당신에게 상냥히 말한다. 일지에 ‘제10시 페어, 타이머 신성현, 카운터 이연화’라고 적은 그가 오늘의 연구 방식에 관해 설명합니다.)
보고서로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별로 어려운 건 아냐. 첫 만남의 소감은 되도록 진솔하게 적어주고, 지금부턴 타이머와 카운터 간의 상관관계나 영향력을 검사해 볼 거거든.
몇 가지 단계에 맞춰 진행 가이드를 띄워놨으니까 보고 따라가면 돼. 힘들거나 불편하다 싶으면 너무 무리하지 마, 어쨌건 오늘은 처음이니까.

이연화
애쉬 님이군요. (내가 모르는 12살의 신성현을 알고 있는 사람…? 빙그레 웃습니다. 아니, 신성현의 파트너는 나예요. 연구원이 타이머와 카운터 간의 관계를 넘볼 순 없어요. 적대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최대한 예쁘게 보입니다.) 보고서를 적는 게 1번일 거고, 2번이 영향력 검사인가 봐요. 유인물엔 글자가 지워져 있었는데 이건 뭐예요?

연구원 애쉬
들어가면 알게 돼. (재미난 표정입니다. 당신의 반응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너희에겐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닐 거야. 연구를 도와주겠니?

이연화
(지금 말해줄 모습은 아니네요.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알았어요. 연구원님들이 저희에게 이상한 짓을 할 리는 없다고 들었어요. 형도 괜찮은 거죠.

신성현
네 말대로 연구원님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리 없으니까, 괜찮아. (그들에게 신뢰를 지니고 있었다. 걱정 말라고 당신의 손을 잡아준다.)
GM
우리가 연구에 협조하겠노라고 하면, 애쉬는 신성현에게 작은 패드를 부착합니다.
당신에게도 다른 연구원이 같은 위치에 패드를 붙입니다.
뺨, 귀 뒤, 목덜미와 손목 안쪽……. 피부색과 엇비슷한 그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연구원 애쉬
봐봐, 잘 됐어?

신성현
조금 더 아래쪽이 나을 것 같아요.
GM
저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다정한 거죠? 유난히 거리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비정상적으로 가까운 거리 아니야?

이연화
(연구원에게 맡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느라 손끝만 움찔댑니다. 거슬려요. 신성현의 저런 점을 걱정해서 제 옆에 묶어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계의 구원자는 누구에게나 다정하겠죠. 연구원이 패드를 다 붙이기가 무섭게 신성현의 팔을 꼬옥 잡습니다.)

신성현
왜, 혹시 무서워? (당신의 마음을 알 길 없이 그저 걱정하는 눈빛만 보내온다. 애쉬가 붙여준 패드를 꼼꼼히 점검하고 당신을 쓰다듬는다.) 연구원님이 아픈 일은 아니래.

이연화
(머리를 굴린 이연화가 유약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훈련실에서 훈련할 줄 알았지 연구할 줄은 몰라서 긴장한 것 같아요. 이상한 패드까지 붙이고…. (걱정해 줘. 저 사람 말고 날 봐줘.)

신성현
(어린 아이에겐 낯선 환경이었나. 당신을 제 품에 끌어안아 주었다.) 여기엔 전류도 흐르지 않고 이상한 신호도 안 와. 그냥 우리의 신체 수치를 측정할 뿐이야. 그렇죠, 애쉬님. (당신의 마음과 다르게 그는 연구원을 부른다.)

연구원 애쉬
(당신과 신성현의 사이를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 모습은… 확실히 한창 꽁냥대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춰줍니다.) 신성현 타이머의 말이 맞아. 벌써 사이가 좋은가 본데? 이 형이 도와줄까? (은근히 눈빛을 보낸다.)

이연화
…내가 할 수 있어요. (신성현의 뒤로 쏙 숨습니다. 그러나 경계는 옅어졌습니다. 흐음… 적어도 신성현을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아니었네요. 오히려 도와준다는 마음까지 내비쳤어요, 이 정도면 됐습니다. 방해나 하지 말라는 아이답지 않은 눈빛으로 돌려줍니다.) 혀엉, 연구원님이 나 겁줘요.

신성현
애쉬님. 연화는 겁이 좀 많아요. (둘 사이에 끼어서 난처한 건 신성현이었다. 보이지 않는 진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애쉬의 요상한 시선으로부터 이연화를 가린다.) 설명을 빨리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연구원 애쉬
하하! 재밌는 게 들어왔네, 넌 고생 좀 하겠다. 알았어, 알았어. 장난이야. (신성현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립니다. 당신은 눈빛이 싸늘해 쓰다듬지 못했지만. 큼큼 목을 가다듬은 그가 설명해 줍니다.)
타이머와 카운터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영향을 주지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좋은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유력해. 실제로… 다른 페어들의 결과도 좋았고. 자리를 비켜줄 테니까 테스트해 봐. 수치는 전부 기록될 거야. 뭘 하고, 얼마큼 편차가 있었는지 보고서로 작성하면 끝. 어렵지 않지?
GM
애쉬는 상당히 경쾌하게 설명합니다. 설명만 듣자면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세상만사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주의점이지만요.

이연화
(신성현의 머리를 헝클어뜨릴 땐 잠깐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자신까지 쓰다듬지 않은 것으로 넘어갑니다.) 물리적 거리라는 건, 지금처럼요? 여기서 바로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신성현을 끌어안아요.)

신성현
연구는 훈련실에서 해야 해. 그쪽이 방해 없는 방이야. (둘 사이에 오가는 기류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는 신성현은 멀뚱하게 안기기만 한다.)

연구원 애쉬
들었지? 진행 가이드는 안쪽에 있단다.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당신들의 등을 떠밉니다.) 이연화 카운터, 네겐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

이연화
보상? (저렇게까지 힌트를 주는데 모르는 게 이상합니다. 눈을 빛낸 이연화가 신성현의 손을 잡아, 훈련실이라는 곳을 찾아 걸어갑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형. 물리적 거리 연구하러 가요.

신성현
진짜 괜찮겠어? 도중에라도 불편해지면 말해. 도와줄게. (영 미적지근하더니 태도를 바꾼 당신이 의아한가 보다. 나쁠 것 없었으므로 당신을 훈련실로 데려간다. 연구원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고.) 다녀오겠습니다.
GM
마지막으로 심장과 가까운 쇄골까지 패드를 부착한 두 사람에게 훈련실의 문이 열립니다.
당신은 소독약 냄새를 맡습니다. 짭조름하고, 화한…… 약물 특유의 그 냄새.
바람도 불지 않는데 머리카락이 조금 흔들리고, 거세게 뛰지도 않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막습니다.
긴장인지 설렘인지 모를 애매한 감각입니다.
사실 연구 보고를 돕는 일이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여태까지 신성현과 만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위해서 몇 번이고 거쳤던 과정이잖아요.
심장박동과 능력의 효율을 확인하는 패드를 부착하고, 능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한 후의 신체 변화를 검사하기도 했었죠. 건강 검진이랑 비슷해서 조금도 여상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번 연구는 좀 다른 것 같지만요.
훈련실 내부는 깨끗하기 짝이 없습니다. 천장도 바닥도 반지르르하니 윤이 납니다.
자리를 비운 지 오래된 건지 스크린만 바닷속 풍경을 비춥니다. 거품이 일다가 흩어지고, 다시 일다가 부서지고……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히면 당신은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이연화
(바닷속… 제1구역에 가면 언제나 볼 수 있는 광경인데 유난히 시선이 갔습니다. 푸르른 스크린 속에서 더 새파란 신성현의 눈동자를 봅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분명히, 설렘일 거예요. 약물 냄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과 함께 있는 건 그보다 좋네요. 어렵게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진행 가이드는 어디에 있어요?

신성현
(심해를 닮아 눈동자에 비추는 스크린 파도가 저를 바닷속으로 만들었다. 반짝이며 부서지는 포말 속 살랑거리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홀린 듯 바라본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리고 해야 할 일을 떠올린 그가 조금 늦게 반응한다.) 저기 스크린에. (진행 가이드라 적힌 글씨를 가리킨다.)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한 줄이 전부입니다. 손깍지, 포옹, 이마 맞대기, 비쥬, 입맞춤. 다시 읽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습니다.
네, 그러니까 Baiser. 흔히 ‘비쥬’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인사법으로 양 뺨을 번갈아 맞대며 마치 입을 맞추듯 ‘쪽’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구 보고라는 게……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나요?

이연화
…. (애쉬의 장난스런 반응을 보았을 때 대강 짐작한 내용입니다만 적나라한 글씨로 확인 사살 당하니까 할 말을 잊었습니다.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뜁니다.) 형, 이런 연구가… 전에도 있었나요?

신성현
…. (침묵이 흘렀다.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신성현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처럼 심장 박동이 약간 빨라졌음을 느낀다.) 아니, 한 번도. 애초에 이런 걸 실험할 짝이 없었어. 이게 능력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GM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심장박동이 점차 선명하게 들립니다. 쿵쾅, 쿵쾅, 쿵쾅…….

연구원 애쉬
힘들거나 불편하다 싶으면 너무 무리하지 마. 어쨌건 오늘은 처음이니까.
GM
불현듯 애쉬의 당부가 생각납니다.
그래요, 이대로 돌아나간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게, 만난 지 이제 고작 하루인걸?
차라리 눈에 보이지라도 않으면 좀 나으련만 스크린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글씨를 출력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황망히 헤매던 시선이 스크린의 반대편 모서리에 닿습니다.
온통 하얘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검은 점이 반질반질 빛나며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
동관의 실험실, 연구소도 비슷한 장치가 있었죠. 아무리 봐도…… CCTV입니다.

이연화
(이런 걸 자신과 처음 한다는 신성현의 말에 기뻐할 새도 없었습니다. 완벽히 닫힌 공간, 어디에서 우리를 보고 있으리란 생각은 했지만 저런 CCTV로 직접적인 감시를 하는 건 달갑지 않았습니다. 머뭇거립니다.) 형…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나랑 이러는 거, 별로예요?

신성현
별로…라니. (당신보다 더 복잡한 표정일 것이다. CCTV가 신경 쓰이고, 조심스레 묻는 당신은 더 신경 쓰였다. 한참 어물거리던 그는 작게 중얼거린다.) 예상치 못한 일은 맞아. 이런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오기도 하고. 하지만…
싫은 건 아니야. 너랑 닿을 때 이끌리는 그 감각이 나쁘지 않았어. 나는 그냥… 너처럼 어린 아이에게 이래도 되는 건지 고민돼서 그래. (그렇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3살 차이라곤 하나 12살과 15살. 너무 애매하게 곤란한 위치였다.)

이연화
(숙였던 고개를 듭니다. 저를 옆에 둬 주겠다는 신성현이 스킨십까지 괜찮아할지 미지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로 확신을 얻은 지금, 자신이 느낄 기쁨은 패드가 연구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겠죠. 당신에게 한 걸음 다가가 두 손을 맞잡습니다.) 난 괜찮아요. 아니, 형이 해주는 건 전부 좋아요. 내 이름을 걸고 진실이라고 약속할게요. 형. 신성현.
형이 원한다면 CCTV는 가려도 좋아요.

신성현
(망설이는 자신에게 다가와 준 당신을 마주 본다. 당혹감에 일렁이던 눈동자가 차츰 가라앉는다. 맞닿은 손이 따뜻했고, 네 얼굴은 기쁘게 들뜨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제 얼굴도. 가쁘게 숨을 내쉰다.) CCTV는 DOT의 기물이라 부술 수 없을 거야. 우린 연구에 참여 중인 거라서 기록되는 걸 막을 수도 없겠지. 나 역시 네가 싫은 건 안 해. 대신… 그래도 괜찮다면, 연구원님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곤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이연화
(고작 손깍지, 포옹, 이마 맞대기, 비쥬, 그리고 입맞춤. 남들에겐 간단하기 그지없는 스킨십들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신성현의 붉어진 귓가와 그 모든 걸 나만 보고 싶었습니다. 현재 힘없는 자신의 신분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동시에 우리에게 마련된 자리를 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해요. 눈을 감은 이연화가 몇 초 뒤 CCTV를 향해 말합니다.)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으실까요?
GM
당신의 말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CCTV에서 웅―, 하는 기계음이 두 번 울립니다.
이내 사방이 다시 잠잠해집니다.
연구원들은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CCTV는 계속 눈을 빛내고 모든 것은 기록되고 있겠지요.

이연화
(다행이다, 들어주는구나. CCTV에서 고개를 돌린 이연화는 당신의 손을 놓습니다. 서로의 속눈썹까지 자세히 보이는 가까운 거리. 당신에게 수줍게 말했습니다.) 난 싫어하지 않아요. 형과의 접촉은 기꺼이 받아들일 거예요. 아니, 오히려 내가 원하고 있어요. 무리하지 말고 싫을 땐 싫다고 해줘야 해요. (놓았던 손을 들어 손바닥이 당신을 향하게 합니다. 첫 단계는, 손깍지. 살갗과 살갗의 접촉일 뿐인 이게 무어라고 긴장되는지.)
준비됐어요… 형.

신성현
(당신에겐 뽀뽀도 받아보고 둘이 껴안고 자기까지 했는데 손깍지 하나를 시작하는 데에 심장이 너무나 요동치고 있었다. 긴장, 설렘,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뒤섞인 감정들.) 나랑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네. 여기서 싫다고 밀어내야 하는 건 네가 될지도 몰라. (제게 내밀어진 하얗고 작은 두 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중력처럼 이끌리듯 당신의 손에 제 손을 엮는다. 피부 가득, 따스한 온도가 맞닿는다.)
시작할게, 이연화.
GM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그보다는 조금 더 큰 손가락이 서로를 엮습니다.
⚜ 충동+RC 판정 : 난이도 7 ⚜

이연화
(4+0)dx | 충동 판정 (4DX10) > 6[1,1,3,6] > 6
(4+0)dx+1 RC 판정 (4DX10+1) > 5[2,2,4,5]+1 > 6

신성현
(2+0)dx+1 RC 판정 (2DX10+1) > 10[4,10]+6[6]+1 > 17
GM
당신은 신성현의 손을 잡는 것으론 모자란다고 느낍니다.
조금 더…… 더한 것을 원해요.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주위의 공기가 두 사람이 내뿜는 중력에 이끌리기 시작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옷깃이 천천히 나풀거립니다.

이연화
(아, 하고 탄식을 내쉬었습니다. 능력을 사용하며 접촉하는 건 처음이에요. 뭔가 강렬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이 느낌은… 뱃속을 날카롭게 긁는 허기. 당신의 온도와 숨결을 삼키고 싶다는 충동. 신성현을 만나기 위해 각성한 후로 저를 괴롭혀 대던 그 감각이 지금 눈을 떴습니다. 이연화의 기운이 불안정하게 떨립니다. 당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습니다.) …부족해요. 형. 조금 더 주세요. 조금 더. (그가 원하는 것은 자명했습니다. 저를 닮아 화려하게 빛나는 금빛 마안이 하나, 둘, 셋. 허공을 휩씁니다.)

신성현
(당신과 맞잡은 손을 타고 찌릿한 감각을 느꼈다. 극명하게 갈구하는 눈은 아니지만 조금 붉어진 뺨, 상기된 표정. 안정적인 중력이 당신의 불안정한 만유인력을 감싸 달랜다. 너는 나를 끌어당기고 나는 너를 끌어당기는 것. 적어도 이 순간, 중력은 우리 둘에게 작용된다. 같은 검푸른 빛 마안 하나, 둘, 셋. 움직여 당신을 끌어안는다. 네 중력은 저를 밀어내지 않고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착하지… 천천히, 진정해. (자신을 제외하고 짓누르려 날뛰는 중력을 다듬는다.)
GM
⚜ 충동+RC 판정 : 난이도 8 ⚜

이연화
(4+0)dx | 충동 판정 (4DX10) > 7[3,4,5,7] > 7
(4+0)dx+1 RC 판정 (4DX10+1) > 5[3,3,4,5]+1 > 6

신성현
(2+0)dx+1 RC 판정 (2DX10+1) > 6[1,6]+1 > 7
GM
신성현에게 끌어안긴 당신은 그를 꽉 끌어안다 못해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떨어지기 싫어. 그것 단 하나만 떠오릅니다.
조금 더, 한 번만 더, 잠시만 더…….
이상한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접촉인데 왜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죠?
아니, 이상한 일은 훨씬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어요.
신성현, 상대의 존재를 실감한 그 순간부터. 그리고…….
침식률이 2D10 상승합니다.

이연화
(무의식중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던 것 같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이런 건, 들어본 적 없어요. 신성현에게 끌어안긴 자신과 제 힘이 맹렬하게 회전합니다. 나는 너를 삼켜버릴 것처럼. 내 힘은 네 힘을 짓눌러 흡수해 버릴 것처럼. 당신의 등허리를 한가득 움켜쥐었습니다. 품에 얼굴을 묻어 체향을 한껏 들이켜는데 배 속이 허전했습니다. 열기 섞인 숨을 내뱉습니다.) 이상해요… 형이 날 안아주는데도 형을 끌어안고 싶어요. 더 안아주었으면 좋겠어요. 형이, 신성현이 나만 봐주었음 해요. 이건… 이런 건 뭐라고 불러야 하죠? (당신에게서 해답과 애정을 갈구합니다.)
2d10 | 침식 상승 (2D10) > 11[10,1] > 11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42 → 53

신성현
(네가 느끼는 충동을 난 느끼지 않고 있지만, 정신이 아찔했다. 아까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당신의 힘은 급격하게 커져 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잔잔한 물결이 파도치는 해일에 삼켜진다. 격동치는 능력에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땐… 괴롭지 않았어. 태풍의 눈은 언제나 조용했다. 이곳에 물건이 있었다면 이미 무거운 중력을 버티지 못해 찌그러졌을 것이다. 당신의 숨결이 귓가를 스치는 게 지나치게 뜨거웠다. 네 뺨을 간신히 감싼다.) 미안, 잘 모르겠어.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도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걸. 버겁고, 뜨거운 감정이라서. (힘들었다. 네가 전해주는 감각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이마를 맞댄다. 달콤해.) …중요한 건 네 향기가 중독적일 만큼 황홀하다는 거야.
2d10 | 침식 상승 (2D10) > 5[3,2] > 5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39 → 44
GM
⚜ 충동+RC 판정 : 난이도 9 ⚜

이연화
(당신이 제 뺨을 감싼 손을 역으로 감쌌습니다. 황홀하다, 그게 딱 맞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나가 되고 싶어요. 그를 완전한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눈동자가 당신에게 취해 몽롱해지고 있었습니다. 원래도 네 존재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였는데, 이런 감정을 느껴버리니 얼마나… 그래요. 미칠 것 같은지. 눈을 감아버립니다. 제게 속삭이는 그의 입술을 보고 있노라면 자제하지 못하고 다가갈 것 같아요. 숨을 멈추었습니다. 금빛 마안이 당신의 검푸른 마안과 맞닿아, 블랙홀처럼 빨아들입니다.) 그럼 형도 모르는 감정을… 나는,
애정이라고 부를래요.
(4+0)dx | 충동 판정 (4DX10) > 8[1,3,4,8] > 8
(4+0)dx+1 RC 판정 (4DX10+1) > 9[4,4,6,9]+1 > 10

신성현
(금빛이 검푸른 빛에 침범한다. 이상하게도 네 그런 행위가 싫지 않았다. 하나로 합쳐지고자 몸부림치는 중력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뱃속을 헤집는 촉각도 감각도 아닌 모든 게 뒤섞이는 기분이다. 나와 똑같은 능력. 서로에게 개입하고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중력. 매끄럽게 합쳐진 마안은 전보다 훨씬 커져 푸르고, 금빛 반짝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의 은하를 담아놓은 것 같았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애정이라 부를 수 있을 테지.
그냥 애정보다 특별한 너만의 애정.
(2+0)dx+1 RC 판정 (2DX10+1) > 4[1,4]+1 > 5
GM
이마를 맞댑니다. 숨결이 바로 코앞에서 느껴집니다.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이 애틋하고, 완벽하고, 더할 나위 없어서…… 놓기 싫어.
떨어지기 싫어.
욕심은 계속 커져만 갑니다.
아, 어쩌면 이 충동은…… ■■과 닮아있어요.
침식률이 2D10 상승합니다.

이연화
(그냥 애정보다 특별한 나만의 애정. 마안이 완전히 섞여 들어가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비로소 신성현을 자신이 삼켰다는 착각을 합니다. 이렇게라도 널 내게 종속시킬 수 있다면. 손을 뻗어 네 온몸을 내게 묶어둘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리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금빛 마안이 푸른 마안을 완전히 에워싸 가둬버렸습니다. 당신의 뺨에 제 뺨을 댑니다. 쪽, 흉내가 아닌 진짜 입술을 맞추어서.)
형도 내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나요?
2d10 | 침식 상승 (2D10) > 8[2,6] > 8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53 → 61
[ 이연화 ] BN : 0 → 1

신성현
(온몸이 답답했다. 이연화에게 가두어져 속박된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제 힘은 당신이 가져가 마음껏 주무르고 있었고, 나는 네게 홀려 바라보기만 했다. 그럼에도 벗어나지 않는 건 이연화의 말이 맞는다는 증명이다. 당신에게 다가가 뺨을 맞대, 쪽. 애정을 표현한다.) 응, 하나뿐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은… 특별한 애정이 분명해.
나는 생각보다 널 훨씬 좋아하고 있나 봐.
2d10 | 침식 상승 (2D10) > 10[5,5] > 10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44 → 54
GM
쪽, 양 뺨을 번갈아 맞대고 서로의 뺨에 키스합니다.
⚜ 충동+RC 판정 : 난이도 10 ⚜

이연화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당신만을 바라봅니다. 내 하나뿐인 파트너, 나와 연결된 타이머라는 표시가 각인된 당신의 눈동자에. 그 아래 눈가를 쓰다듬어 전기가 찌릿거리는 양 흠칫거리는 이 접촉을 즐깁니다. 당신을 손에 쥔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걸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바라 마지않던 신성현. 나의 타이머, 나의 구원자.) 내 이름, 불러줘요. 형. 성현 형이 생각보다 훨씬 좋하고 있는 내 이름이요.
(4+1)dx | 충동 판정 (5DX10) > 8[1,1,7,7,8] > 8
(4+1)dx+1 RC 판정 (5DX10+1) > 8[1,6,7,7,8]+1 > 9

신성현
(그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엔 희미하게 드러나는 혀의 숫자가 보여서, 라는 이유도 있었다. 네가 내 눈동자에 새겨진 숫자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아, 우리는 이것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네가 내 파트너라는 사실은 이것으로 부정할 수 없겠구나. 고운 목소리가 제 것을 호명한다.)
이연화, …이연화. (몇 번이고.)
(2+0)dx+1 RC 판정 (2DX10+1) > 7[6,7]+1 > 8
GM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편 누가 찌른 것처럼 애쉬와 신성현의 친근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와도 이런 인사를 나눴을까요?
싫은 기분이 가득해지고, 가득해지고, 가득해져선…… 이유를 찾아냅니다.
신성현이 문제예요.
신성현만 없어지면 다 해결될 텐데.
아주 충동적이고, 말도 되지 않지만.
살해 충동이 고개를 듭니다.

이연화
신성현. (당신의 이름을 부르자 순식간에 뒤바뀐 제 감정은 저조차 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연화의 동공이 확장합니다. 짐승의 눈동자가 확장할 때는, 먹잇감을 사냥할 때입니다. 당신의 어깨를 확 잡아챈 이연화가 중얼거립니다. 맞아요, 네가 문제야. 네 목소리를 들으면 통제 불가능해지고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가 없어지게… 그를 삼켜 나와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 버릴 거예요. 이성을 놓은 이연화의 사고는 한쪽으로 엇나가 저를 충동질했습니다. 아까부터 이 허기를, 견딜 수 없어졌습니다. 온순했던 금빛 마안이 당신의 마안을 폭력적으로 짓누릅니다.)
부디 거부하지 말아요….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연화가 신성현의 입술을 삼켜옵니다. 단순한 입맞춤이 아닌 잡아먹기 위한 입맞춤입니다. 하는 법도 모르면서 무작정 입술을 부딪친 이연화는 그의 입술을 콱, 짓씹습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피와 숨을 먹기 위한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당신을 끌어안아 놓아주지 않습니다.)

신성현
잠…깐, 이연화. (눈가를 찌푸렸다. 이상해, 온순했던 중력이 갑자기 날뛰고 있어.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던 마안은 급격히 저를 짓눌렀고 그 탓에 강한 충격을 받는다. 폐가 찌그러드는 고통을 느끼면서 힘겹게 호흡하고 있을 때, 당신의 나지막한 부름이 들려온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사근사근 날갯짓 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납게 그르렁대는… 그런 위협이었다. 무어라 말하려던 신성현의 입술이 당신에게 집어삼켜진다.)
(흐윽…, 옅은 신음을 흘렸다. 당신에게 씹힌 입술에서부터 아릿한 고통이 올라온다. 벗어나기엔 강한 중력이 저를 붙들고 있어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연화에게 화날 만한 일을 했나.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살해 충동 아래서 허덕인다. 당신의 어깨를 어떻게든 밀어낸다. 정신 차려….)
GM
⚜ 충동+RC 판정 : 난이도 12 ⚜

이연화
쉿…. (방해하는 건 용서 못 해. 그에게 흘러나온 피를 할짝대 빨아들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닥쳐온 허기를 해결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조금 더 힘을 주어야 할 것 같아요. 이래선 살점 하나마저 얻을 수 없어. 한 번 더, 입질합니다. 당신에게 어여삐 쓰다듬 받던 강아지가 아니라 고삐 풀린 개를 닮았습니다. 신성현의 여린 살점을 송곳니로 꿰뚫습니다.)
(4+1)dx | 충동 판정 (5DX10) > 9[2,2,6,7,9] > 9
(4+1)dx+1 RC 판정 (5DX10+1) > 9[1,4,6,9,9]+1 > 10

신성현
아, 아파, 이연화…! (한 발짝 물러서기가 무섭게 달라붙었다. 이연화의 팔을 잡은 손끝이 바르르 떨린다. 턱을 타고 흐르는 피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급한 대로 당신의 입 사이에 손을 밀어 넣어 대신 물린다. 잇자국 모양대로 발갛게 부은 입술에 감각이 없었다. 그의 송곳니에 죄 다 찢어져 피로 흥건했다.) 너, 괜찮아? 상태가 이상해. 그만하는 게 좋겠어. (마안을 맹렬히 회전시킨다. 가슴이 지끈거렸다.)
(2+0)dx+1 RC 판정 (2DX10+1) > 8[2,8]+1 > 9
GM
죽여버리고 싶어. 치사량의 애정을 쏟고. 쏟고, 쏟아부어서……
그 아래에 파묻힌 네가 익사했으면 좋겠어.
감히 그런 걸 바라.
다디단 입맞춤 끝에 남는 것은 원죄로 가득한 저주.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기분이 제멋대로 널뛰며 방향을 종잡지 못합니다.
아, 어째서 이렇게…….
끔찍하고, 사랑스럽지?
그것은 위기감이었습니다. 신성현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떨어져야 한다는, 벗어나야 한다는!
훈련실은 조용하기 짝이 없건만 누가 울리는지 알 수 없을 적색경보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입을 틀어막습니다. 호흡이 가빠집니다.

이연화
(헉, 입을 틀어막아 숨을 멈추었습니다. 혀끝에 남은 다디단 혈향이 꿈만 같았습니다. 안 돼, 이렇게 둘 순 없어. 도망치려는 신성현을 잡아당겨 넘어뜨린 이연화가 그대로 위에 올라탑니다. 제 팔 안에 당신을 가둬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맹렬히 회전하는 당신의 마안을 짓뭉개버립니다. 가지 마. 내 밑에서 죽어. 내게 익사해서 사라져 버려… 끔찍함과 사랑스러움이 혼합됩니다.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다가도 저것을 먹어야 한다는 충동이 부딪치는 겁니다. 그의 손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괴로운 소리를 냅니다.) 이상, 해요… 형…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이럴 생각 없었단 말이야. 벌써 네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정말 없었단 말이야.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릅니다. 신성현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네가….)
나 좀… 어떻게, 해줘. (제발.)

신성현
(큭… 시야가 뒤바뀐다. 누군가에게 휩쓸려서 정신을 차렸을 땐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백색 공간을 채운다. 요동치는 마안이 사방을 때렸고 서로의 머리칼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린다. 이젠 태풍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당신을 밀어뜨리려던 신성현이, 불현듯 멈춘다. 사나운 목소리 속 간절하게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와서. 촉촉이 젖은 두 눈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결국 신성현은 당신의 뺨을 감싼다. 이제 원점이다.) 이연…화. (짓누르는 중력 때문에 숨이 부족했다. 붉은 피가 난잡하게 번진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떠올린다. 내가 네게 했던 약속들을. 나는 널 떠나선 안 돼. 그게 우리가 한 약속이니까. 눈을 질끈 감고 결심한다.)
괜찮아…. (착하지. 자신이 할 줄 아는 달램을 속삭인다. 고로,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다. 도망가지 않을게. 네 곁에 있을게. 괜찮아… 나의 파트너에게 진실된 입맞춤을.)
GM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미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과 닿을 때마다, 신성현과 닿을 때마다 빈 구석이 있었던 것처럼 능력은 계속해서 몸집을 부풀립니다.
더욱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완벽해지는 과정을 스스로 느낍니다.
한순간 커진 능력은 쾅, 굉음을 내며 어설픈 모양을 갖췄다 사그라듭니다.
조금 전의 그건, 꼭 강렬하게 힘을 담아 터뜨리는 신성현의 방식이었습니다.
마치 두 사람의 능력이 닮아가는 것처럼…….
동시에 위태롭기만 했던 당신의 모든 충동이 감쪽같이 사그라듭니다.

이연화
아, (시간이 정지합니다. 복잡하게 겨루던 마안이 터져 이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너와 나, 신성현과 이연화만이 남아있을 뿐. 거짓말처럼 잠잠해진 마음과 다르게 머리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멍한 목소리를 흘렸습니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고 나자 이명이 울리던 귀가 잦아듭니다. 흡, 다시 입을 틀어막아 당신에게 벗어났습니다. 경기를 일으키듯. 벽 쪽으로 뒷걸음질 쳐 잘게 떨었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신성현의 입가에 흥건한 피와 손날에 새겨진 잇자국이 두렵게 다가옵니다.) 혀… 형, 나는… 나는 그냥,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나를… 움직여서, (눈앞이 새카매져요. 어떡하죠. 그가 날 버리기라도 하면.)

신성현
(버티다 보면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반쯤 포기한 채 당신에게 몸을 맡긴 신성현은 어느덧 가벼워진 몸을 느낀다. 제 눈에 들어온 건 확실히 같아진 우리의 능력. 그것을 감상할 새도 없이 이연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겨우 붙잡은 당신이 제게 멀어진다. 덜덜 떠는 그 모습에 차마 다가가지도 못한 채 몸을 일으켰다.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입가의 피를 문질러 닦고, 불규칙한 숨을 안정시킨다. 당신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다가간다.) 이연화… 이연화! (당신의 어깨를 쥔 신성현이 단호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 말 기억하지? 괜찮아, 진정해. 널 혼내려는 게 아니야. 내가 익숙하지 않은 네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봤어야 했는데… 미안해. (전부 진심이다. 어린 아이가 격렬한 충동을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익숙한 자신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끌어야 했다. 당신을 부드러이 끌어안는다.) 숨 쉬어. 난 널 미워하지 않아.

이연화
형… 읏, 혀엉, (당신의 온기에 기어코 눈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잘 돌아가던 머리가 지금은 멈추어 버린 것 같아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울음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던 이연화의 들썩임이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진정됩니다. 아직 놀란 가슴은 쿵, 쿵 뛰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이 당신을 감히 끌어안기란 불가능했습니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미안해할 건 나예요. 왜 형이 사과해요? 잘못한 건 난데 왜… 왜 형이 날 달래줘요? 화 안 내요? (두서없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런 상태로 저를 챙기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신성현
…. (어깨가 젖어드는 만큼 자신의 심장이 조여왔다. 중력에 짓눌러진 것과 동일한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쓰다듬는다. 서툰 손길이 당신의 울음을 어루만진다.) 네가 우는 게… 난 마음이 아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빈말이 아니야. 넌 내 하나뿐인 파트너고… 또 카운터니까.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화나진 않았어. (처음과 비슷한 대답이다. 싫지 않아, 네가 좋아. 어린 아이를 돌보는 건 조금 더 큰 자신의 역할이다. 토닥토닥. 등을 쓸어주었다.) 넌 싫은 사람한테 먼저 뽀뽀해? 아니잖아. 그런 거야. (마지막에 다가간 것은 자신이다.)

이연화
뽀뽀…? (아무런 신빙성 없는 어린 아이의 말인데, 왜 이리…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근거 없는 말이라 더 힘이 빠졌습니다. 당신의 말은 흔들림 없이 저를 달래주고 있어서. 신성현의 따뜻한 애정은 거짓없어서…. 이연화가 어깨를 늘어뜨렸습니다. 사그라든 불꽃 같은 힘없는 속삭임이었습니다.) 그게… 뭐예요. 이러면 내가 더 나쁜 아이가 되어버리잖아요. 잘못한 데다 화내기까지 한 쓸모없는 파트너가 되잖아요. (당신에게 기댑니다. 항상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었습니다.)

신성현
쓸모없지 않아. (신성현의 목소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신에게 애정을 주고 있었다. 네 불신을 녹여버릴 수 있는, 달콤한 애정을. 식은땀에 젖은 이마를 소매로 닦아준다. 촉촉이 젖은 눈가와 입술까지.) 나는 네 존재로 크게 위안을 받고 있어. 혼자가 아닌 둘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의미가 내겐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아? …가장 값지다는 보석을 구해와도 바꿀 수 없어. (고개를 떼어낸다. 비로소 당신에게 보인 신성현의 얼굴은, 눈동자는 당신을 처음 만난 그때 그 기쁨과 설렘을 떠올렸다. 벅찬 가슴이 두근, 두근 뛴다.) 곁에 있어줄게.

이연화
(곁에 있어줄게. 한 마디가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겨우 말랐던 눈망울에 물기가 차오릅니다. 당신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꾹 삼켜냅니다. 훌쩍거리는 그는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기쁘니까. 너무 기쁘니까, 오히려 눈물이 나는 겁니다. 넌 언제나 나를 구해주는구나. 내게 몰려오는 어둠을 걷어주는구나. 당신의 손을 소심하게 잡아 옵니다. 오랜만에 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내가 아까 같은 일을 또 저지른다고 해도요? 곁에 있어 줄 거예요?

신성현
반드시. 내 이름을 걸고. (새끼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건다. 멋대로 약속한 신성현이 옅게 웃는다.) 이제 좀 진정됐어? 눈 다 붓겠다, 오늘은 쉬게 해달라고 부탁해야겠어. 물론 내가 곁에서 진정될 때까지 돌봐줄 거고. (곁에서, 를 강조한다. 당신의 손을 깍지 껴 잡는다.)

이연화
우응…. (한 번 더 훌쩍인 이연화가 끄덕끄덕. 붉은 눈가를 끔뻑댑니다. 운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요… 진정하고 나니까 뒤늦게 수치스러워집니다. 나 이런 사람 아니거든요. 애석하지만 변명하면 더 추해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대신 뻔뻔해지기로 합니다.) 동화책 읽어주세요.

신성현
그래, 그래. (강아지로 돌아온 이연화를 복복 쓰다듬는다. 아까 동화된 능력에 대해서는 연구원들에게 말해주어야겠다. 완전히 회복하고 나서 말을 꺼내봐야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GM
신성현이 당신을 어르고 달래 완전히 진정할 때쯤, 훈련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립니다.

연구원 애쉬
고생했어. (두 사람을 다독여 줍니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아마 연결된 모니터로 신호는 다 받고 있었을 테니 구태여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점심 식사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쉬고 와. 귀여운 카운터의 상태를 고려해 점심 식사부터 저녁 식사까지 싹 비워줄게. 좋지? (찡긋.)

이연화
(핫, 퍼뜩 완벽하게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추태들을 저 사람들도 전부…?!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오늘따라 이연화답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신성현의 뒤로 후다닥 숨습니다. 그의 뒤에서 애쉬를 노려봅니다.) 형… 연구원님들이 나 괴롭혀요….

신성현
애쉬님…. (방금 간신히 달랬다며 제발 넘어가 주길 눈빛으로 간청한다. 제 뒤에서 노려보는 당신의 기세는 눈치채지 못했다.) 비워주시는 건 정말 감사합니다. 보고서는 문제없이 작성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연구원 애쉬
내가 언제~ (어깨를 으쓱한 애쉬가 자리를 비켜준다. 둘의 상황을 고려해 특별히 넘어가 주는 것이다.) 연구를 끝까지 훌륭하게 수행했으니 봐주겠어. 저녁 시간 전까지만 적어서 제출해. (손을 살랑거립니다.)

이연화
(끙끙대는 노란 강아지가 신성현의 팔을 꼬오옥 붙들었습니다. 이제 보니 여우 같습니다. 신성현의 앞에선 연약하고 귀여운 아이인 척합니다.) 그런 건 당연히 할 거예요. 우리에게 내려진 과제니까요. 가요, 형. (빨리요. 잡아당깁니다.)

신성현
명심하겠… 아, 알았어. 천천히 가 이연화. 다시 뵙겠습니다, 애쉬님. (그에게 급히 인사하고 당신에게 이끌려 훈련실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급히 걸으면 넘어져.
GM
연구 결과에 만족한 연구원들은 두 아이를 붙잡지 않습니다.
DOT에서 내어주는 밥값은 방금 차고 넘치게 했으니 당연하죠. 너무 넘쳐서 문제입니다.
아무튼 축하해요, 이연화. 이로써 구원자가 되는 한 걸음을 훌륭히 내디뎠군요.
고생한 두 사람은 보고서 제출 전에 여유로운 자유시간을 잠시 만끽하도록 해요.
《씬 종료》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61 → 42
[ 이연화 ] BN : 1 → 0
[ 신성현 ] 침식률 : 54 → 39
GM
◆ #Scene 3. 세계 멸망의 징조는 홀연히,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2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1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42 → 44
[ 신성현 ] 침식률 : 39 → 40
GM
연구원 애쉬의 말대로 점심 식사부터 저녁 식사까지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다른 카운터들에게도 주어진 시간의 명목은 카운터의 적응을 위해서라는 이유였습니다.

이연화
이게 그냥 적응을 위한 시간일 리 없어요. 아무리 봐도 그 실험, 이상한 실험을 겪은 우리에게 주는 진정 시간이라구요. (아직 꿍해 있습니다. 어쨌든 이연화는 12살이고 투정 많을 나이입니다. 숙소 침대에 엎드려 보고서를 끄적끄적 작성하면서 다리를 흔듭니다.) 형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나만 그런 거예요? (자신의 행동이 완벽한 제 통제를 벗어났다는 충격에 좀 우울해집니다.)

신성현
그러게,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도 같은 실험을 했다면 우리랑 같은 일을 겪었을 것 같아. 역시 최초로 나타난 카운터의 존재는 타이머에게 영향을 끼치는 걸까. 하지만 난 괜찮았고 네 상태만 좋지 못했는데. (엎드려 꿍해진 이연화의 옆 책상에서 사각사각, 보고서를 작성한다.) 능력이 향상된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때 잠깐이나마 네 능력이 나와 완전히 합쳐졌어.

이연화
(신성현과 만날 때 얼마나 설렜는지, 기분은 얼마나 들떴고 그에게 끌어당겨지는 감각은 얼마나 오묘했는지 다 적은 이연화가 침대에서 일어나 끄트머리에 걸터앉습니다. 턱을 괴고 신성현을 주시합니다.) 불공평해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형과 힘을 사용할 때 방해될 거예요. 난 형의 완벽한 파트너가 되고 싶었던 거지 걸림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우울….)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형과 중력 자체를 잘 다루는 나는 능력 활용에 차이가 있었는데, 스킨십을 하면 할수록 내 능력이 형에게 맞춰지는 걸까요?

신성현
너무 우울해하지 마. 네가 느끼는 충동이 언제 사라지는지 조건을 알기만 하면 문제없을 거야. 그걸 위해 연구원님들이 보고 요청을 해주신 것 아니겠어? (당신과 비슷할 문장을 정갈하게 적어낸 그가 일어선다. 당신의 연약한 모습, 귀여움, 기묘한 이끌림을 적어두었다. 얼추 마무리된 보고서를 내버려 두고 당신의 옆에 앉는다. 지금은 그의 손을 잡아도 그때 같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능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운 손등을 쓰담쓰담.)
힘이 흡수된 게 아니야. 내가 쓴 능력은 조절이 정교했고, 네가 쓴 능력은 힘이 커졌었어. 둘이 얽혀서 내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정리하자면 우리가… 그… 얼마나 깊은 스킨십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우리의 손가락을 엮는다.)

이연화
충동이 사그라들 만한 행동은 형이 내게 키스해 준 것밖에 없… 설마. (그가 자신에게 ‘특별한’ 스킨십을 해주면 충동이 잦아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성현이 손등을 간지럽히고 손깍지를 껴도 아까와 같은 충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간질간질한 따뜻함만 전해집니다. 우울했던 얼굴이 상기됩니다. 몸을 신성현 쪽으로 가까이 기울였습니다.) 충동과 능력이 극대화된 순간은 우리가 입맞춤할 때였어요. 마지막에 형이 뽀뽀해 주고 나서 충동이 잦아들었죠. (웅웅, 이연화의 옆에 금빛 마안이 하나 생겨납니다. 당신을 중심으로 달처럼 회전했습니다.) 형, 한 번만 다시 해줄 수 있어요?

신성현
지금? 여긴 물건이 많아서…. (고민했다. 이연화의 말이 맞아. 울먹이는 그를 차마 거절하지 못해 입맞춤 한 뒤에 상태가 진정됐었다. DOT 기품을 파손하면 안 된다는 이성과 이연화의 상태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욕구가 겹쳐 결국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딱 한 번은 괜찮겠지. 대신 아까처럼 자제 못 할 것 같을 땐 반드시 떨어져야 해. (중력이 한쪽에 모여들어 검푸른 빛 마안을 생성한다.)
(이어 이연화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한다. 짧고 수줍은 접촉이었으나 안에 담긴 마음은 진실이었다. 그를 걱정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 내 파트너를 향한 애정.)
GM
신성현과 접촉하며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아까 느꼈던 알 수 없는 감각이 올라왔지만, 신성현의 진실된 입맞춤이 느껴지면 곧 잦아듭니다.
웅― 웅, 두 마안이 맹렬하게 공명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들 스스로 몸집을 키워갑니다.
숙소 안에 배치되어 있던 물건들이 하나 둘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이연화
…! (죽여버리고 싶어. 치사량의 애정을 쏟아부어 익사시키고 싶어. 또다시 통제를 벗어난 감각이 파도처럼 밀려들기가 무섭게 당신의 입맞춤이 저를 해일 속에서 건져냅니다. 흠칫거리는 손은 그의 목을 잡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끔찍하고 사랑스러웠던 감각에서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감각으로. 마안을 급히 없애버립니다. 무엇이든 기물 파손할 수 있을 만큼 붕 뜬 상태입니다.) 맞는 것… 같아요. 형의 입맞춤이 맞는 것 같아요. 나쁜 충동이 사그라들었어요, 분명히요. 나 멀쩡해요. (쓸모없는 파트너에서 쓸모 있는 파트너로 격상 당한 이연화가 기쁘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충동을 느끼고 형은 안 느끼는 건지 아직 의문이네요. 타이머와 카운터 사이에 뭔가 있나?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갸웃. 신성현에게 폭 안겨듭니다.)

신성현
괜찮아? (갑자기 능력을 꺼뜨려서 놀라 바라봤는데, 멀쩡하게 웃는 당신을 보고 안심한다. 가슴을 쓸어내린 신성현이 제게 안긴 당신을 꼭 안아준다. 복잡할 감정을 느낄 당신과 다르게 카운터의 접촉으로 간질거리는 이끌림을 감지한 것 빼면 멀쩡했다. 중력으로 흐트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자신의 능력도 해제한다.) 중요한 건 스킨십의 단계가 아니라 진실된 마음인지, 스킨십도 함께 해야 하는지는 나중에 알아보자. 넌 오늘 많이 무리했으니까. (많이 가라앉은 눈가를 톡톡. 어루만진다.)
아니면 다른 카운터들에게 직접 물어볼래? 곧 저녁 식사 시간이잖아, 식당에 가서 전부 만날 수 있어. 그전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연화
(신성현 덕분에 아주 괜찮은 이연화는 그저 신성현의 어깨에 부비부비, 자기 체취를 묻히느라 바쁩니다. 일종의 영역표시 같은 거예요. 눈가를 어루만져 주는 신성현 손까지 쪼물딱 댄 이연화가 끄덕입니다.) 무리해서 형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죠. 아직 우리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실험해 보도록 해요. 연구 보고를 시키는 이유가 다 있었어요. 그 시간을 이용해 봐요. (내일도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신성현의 말을 듣고 보고서를 챙겨 침대에서 내려옵니다.)
지금 물어보러 갈래요!

신성현
(귀엽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누른다. 우는 게 아닌 아이처럼 밝게 말하는 파트너의 모습이 그제야 마음을 풀어지게 해주었다. 완전히 회복돼서 다행이다. 자기 몫의 종이를 들고 일어선다. 온몸이 이연화에게 점령당해 달콤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훈련실을 빌려달라 말하면 빌려주시기도 하고. 민폐라 생각하지 말고 네 건강을 생각하도록 해. 가장 중요한 1순위거든. (당신의 손을 잡아 뽈뽈 보고서를 제출하러 간다.) 이거 내고 식당으로 데려가 줄게.

이연화
(충동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연화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싱숭생숭했던 마음을 신성현이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달래주었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당신을 쫓아갑니다.) 으응, 명심할게요. 형이랑 내 건강을 1순위에 둘래요. 파트너는 하나라고들 하잖아요. (그의 곁에 오래 있으려면 자신 또한 챙겨야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조신한 척 귀엽게 굽니다.)

신성현
우리 연화는 착하네. (착하다, 착하다. 아무리 봐도 착한 아이인데 왜 스스로 나쁜 아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당신의 연기와 외모 필터링에 깜빡 속아 넘어간 신성현은 이런 생각이나 하며 당신 걸음 속도에 맞추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면 되겠어.
GM
10번 훈련실로 뽈뽈 걸어가 연구 보고까지 마치면 드디어 숙제 하나를 해결했습니다.
그 사이 바야흐로 두 번째 밤이 찾아왔습니다.
DOT의 흰 건물 위로 어김없이 밤이 내려앉습니다.
12개라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선선한 봄바람이 운동장의 잔디를 부드럽게 훑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신성현과 보낸 시간은 특별했나요?

이연화
(특별함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요. DOT에서 본 나의 파트너는 정말 완벽하고, 흠 없는 사람입니다. 신성현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약하다는 걱정거리가 있지만 그건 크면서 내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예쁘고 수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연구실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 하나를 빼면 알찬 하루였어요. 그마저도 우리의 능력과 스킨십, 내 충동을 제어하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잡아준 손이 뜨거웠습니다.)

신성현
(특별함 그 이상의 하루였지. 타이머의 파트너, 카운터란 존재가 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았고 그럴 땐 위험하다는 중요한 점까지 발견했다. 아마 연구원들도 파악하고 조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훌륭하게 지내다 보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본관에서 함께 세계를 수호하고 있지 않을까. 이연화와 함께 서 있는 광경을 그리곤 했다. 작고 여린 파트너가 마음에 쏙 들었다.)
GM
잠시 회상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종소리가 들립니다. ‘저녁 식사’를 알리는 특별한 종소리입니다.

신성현
방금 그게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야. 저게 울릴 때 서관의 지하로 향하면 돼. 가자, 이연화. (다정하게 이끈다.)

이연화
학교 기숙사 생활하는 것 같아요. 단체 생활보다 파트너와 보내는 생활에 가깝다는 점이 너무 좋아요. (난 신성현만 있으면 됩니다. 당신의 팔을 사랑스럽게 껴안았습니다.)

신성현
정식 임관을 받기 전엔 DOT를 거의 벗어날 수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네. 안에서 수업이랑 훈련도 하고. (옅은 미소로 이연화의 애교를 받아주었다.)
GM
우리는 함께 서관의 지하로 향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건 기분이 어떻건 간에 사람이 끼니는 챙겨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걸요.
띵.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입을 크게 벌리고 신성현과 당신을 기다립니다. 벌써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이연화
(엘리베이터로 먼저 들어가 지하를 눌러요. 나 잘했죠, 하고 신성현을 봅니다.)

신성현
혼자서 잘 하는 대견한 어린이야. (자기도 어린 아이면서 복복 쓰다듬는다.)
GM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도착하자 분주한 식당의 풍경에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저녁은…… 음, 고기가 있군요.
식당은 28명, 아니, 어제까진 14명을 위한 곳이라기엔 지나치게 호화롭습니다.
남색 천장, 깨끗한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액자’들, 푹신푹신한 흰색 양탄자(식당에 배치하기엔 정말 호화스럽지 않나요?)와 56명은 앉을 수 있을 만큼 길고 커다란 ‘테이블’.
음식은 이미 차려져 있고 개인의 앞접시가 있어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미 도착한 몇 명은 식사 중이군요.

이연화
(아침에 왔던 풍경이지만 그땐 조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말짱한 정신으로 온 식당은 레스토랑 같았습니다.) 식당이 아니라 미술관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액자 앞으로 총총 다가갑니다. 음식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신성현
시간별로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이젠 두 명인 타이머와 카운터를 보호하는 곳이라 좋은 시설이어야 한다고 들었어. 우리로서는 다행인 점이지. (당신이 뛰어다니다가 넘어질까 봐 열심히 따라간다.)
GM
알록달록한 하늘, 푸른 장미 아치, 검은 호수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연화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네요. 세계를 위해 희생당하는 구원자들인데 이 정도는 누려도 되겠죠. (고급 입맛인 이연화는 그저 만족스러웠습니다. 알록달록한 하늘을 가리킵니다.) 이건 뭐예요?
알록달록한 하늘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대조적입니다. 창틀 따위에 단단히 매인 긴 줄에는 우산과 깃발, 손수건과 종이학 같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꽃이 핀 것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신성현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장면이야. 이번에는 카운터의 존재를 알리는 날이기도 해. 그때 그림보다 예쁜 광경들을 볼 수 있어, 기대해도 좋아. (당신만의 도슨트가 되어 친절히 설명했다.)

이연화
이게 세상에 우리의 존재가 드러날 날의 모습인가요… 건국 축제라더니 걸맞은 풍경이군요. 그때 형이랑 축제 데이트할래요. (수작질을 선언한 이연화가 푸른 장미 아치를 콕 집습니다.) 그럼 이건요?
푸른 장미 아치
은색 아치문을 따라 피어난 푸른 장미가 유난히 화려합니다.

신성현
데이트? 음, 틀린 말은 아닌가? 네가 원한다면야….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신성현은 처음 겪어보는 축제에 들떴나 보다, 라고만 넘어간다.) 푸른 장미 아치는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인데,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그 아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어.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도의 연인에게는 꽤 명소지.

이연화
(연인? 고개가 홱 돌아갑니다.) 우리 저기 가요. 나랑 손 잡고 저기 가기, 약속. (재빠르게 새끼손가락 걸어요)

신성현
(어어, 눈 깜빡할 새에 약속을 해버린다. 멋쩍게 웃는다.) 굳이 약속 안 해도 축제 때는 대부분 해줄 거야. 걱정하지 마. (쓰담쓰담)

이연화
거기서 막 누가 잘생긴 형 보고 데이트 신청하면 어떡해요. (미리 신성현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두어서 다행입니다. 당신의 옆에 착 붙어 검은 호수를 바라봅니다.) 호수 색이….

신성현
유명한 타이머에게 말 걸어오는 사람은 많긴 한데. 그건 당일날 되면 알 수 있을걸. (표정이 애매했다.) 저건 수도의 유명한 관광지, 코마니 호수야. 건국 축제 단 이틀간 호수의 수면이 검게 물드는 특이한 습성을 지녔어. 축제 때면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기리고자 많은 사람이 손수 접은 종이꽃을 띄워 보내곤 하더라.
검은 호수
새까맣게 물든 호수에는 흰 종이꽃이 떠다닙니다.
GM
사진 속 호수를 바라보던 당신은 문득 불안함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를 생각할수록, 원인을 찾을수록 두통이 밀려옵니다.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집니다.

이연화
(뭘까요, 이 기분은. 신성현의 잔잔한 설명을 들으며 호수를 바라보던 이연화는 불현듯 얼굴을 찌푸립니다. 찾아오는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숨을 빠르게 쉬었습니다.) …그뿐이에요? 뭔가, 더 특별한 건 없어요? 불길한 곳이라던가.

신성현
불길하다기엔 내가 말한 전설만 있는… 이연화? 어디 아파? (찌푸린 당신의 얼굴을 눈치채고 고개를 제게 돌린다. 당신의 머리를 살살 문지른다.) 아까랑 비슷한 느낌이야?

이연화
(입술을 꾹 다뭅니다. 신성현이 만져주자 두통이 조금씩 가시고 평정을 되찾습니다. 호수에서 시선을 뗀 효과일지도 모르겠네요. 얼굴 도리도리.)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 능력을 많이 썼더니 잠깐 머리가 아팠던 것 같아요. (저걸 보고 뭔가 잊은 것 같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속이 답답했습니다.)
그만 보고 밥 먹으면서 쉬는 게 좋겠어요…. (당신의 소매를 소중히 잡아당깁니다.)

신성현
역시 겉으론 티가 안 나도 속은 무리한 게 분명해. (걱정스러운 눈길로 당신을 훑는다. 사람들이 보약이라 부르는 걸 챙겨야 할까 봐. 당신이 알면 기겁할 생각을 이어간다.) 오늘 든든히 먹어. 몸에 좋은 거 담아줄게. 테이블마다 지정된 우리의 자리로 가면 돼. (이연화를 안내했다.)
GM
신성현이 당신을 데리고 테이블로 갑니다.
테이블마다 배치된 네임 카드와 은식기. 신성현과 이연화의 이름은 서로 마주 보고 놓여 있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가까운 곳에 배치한 의도가 훤히 보입니다.
냅킨은 토끼 모양으로 접혀 있고, 음식 사이사이 푸른 장미가 꽂힌 화병이 있어서 꼭 비싼 레스토랑에 데이트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네요.
게다가 저 푸른 장미는 도밍게즈의 국화입니다.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의 상징이죠.

이연화
(이유 모를 불안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습니다. 신성현이 이상한 생각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당신의 시선을 돌립니다.) 혀엉, 연화 고기 먹고 싶어요.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좋은 냄새 났잖아요. (제 자리에 빠르게 앉아 턱을 괴고 예쁘게 바라봅니다.)
이러니까 꼭 레스토랑 데이트하는 것 같지 않아요?

신성현
DOT의 식단은 영양이 골고루 잡혀 있으니까 적당히 덜어서 먹으면 될 거야. 고기 냄새라면… 치즈를 얹은 스테이크 정식이겠네. (당신의 맞은편에 앉아 음식을 담을 식기들을 건네준다. 이동할 필요 없이 이곳에 모든 음식이 있으니.) 연화는 데이트가 그렇게 좋아? 아까도 데이트하자 하고.

이연화
당연하죠. 좋아하는 사람이랑 단둘이 오붓하게 시간 보내는 거, 싫어하는 사람 없어요. 여기가 개방된 공간이 아니라 둘만의 공간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너무 욕심이겠죠. 슬슬 배고픈 건 맞았으므로 음식들을 살펴봅니다.) 형은 별로예요…? (알차게 써먹는 시무룩하기 수법입니다.)

신성현
아니, 아니. 난 네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 싫은 건 명확하게 싫다고 말하니까 자꾸 슬퍼하지 마. (네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계속 당하는 수법에 계속 당황했다. 당신에게 얼른 스테이크 정식을 담아주었다.) 나중에 카운터의 외출이 허락될 때… 같이 밥 먹으러 갈래?
GM
오늘의 저녁 식사는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토마토 두부 카프리제, 잘 녹은 치즈를 얹은 스테이크 정식, 흰 소스를 곁들인 연어 스테이크와 색색의 과일 스프링롤.
참치를 깍둑깍둑 썰어 채소와 상큼한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콩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나는 두유 스무디…… 디저트로는 바싹 구운 무화과 쿠키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일컫는 구원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진실하고 진솔한지는 풍성하고 호화로운 DOT의 식단이 증거합니다.
집에 가고 싶다니, 함께 있기 싫다니 옥신각신,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도 식사 때가 되면 재깍재깍 테이블 앞에 앉곤 했으니 말 다 했죠(조용히 식사만 하지는 않았어도).

이연화
(호화로운 식사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던 이연화는 당신을 딱 바라봅니다. 의자에서 살짝 일어나 당신에게 가까워집니다.) 방금 그거… 나랑 밖에서 밥 먹자는 데이트 신청이죠? 그렇죠? 앞으로도 내가 하는 건 다 좋다고 해줄 건가요? (순수하게 깜빡깜빡. 스테이크 접시를 받아 내려둡니다. 붙어있기 싫다고 싸우는 건 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입니다.)

신성현
네가 나랑 단둘이 밥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12살에게 데이트 신청이니 뭐니 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연화의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배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괜찮아. 외출이 완전히 허가될 때쯤이면 이연화는 성인일 것이다. 침착하게 당신에게 부응한다.) 이상한 것만 아니면 무엇이든.

이연화
이상한 거… 이상한 거의 기준을 알려줘요. 형 싫어하는 거 빼고 하고 싶은 일 적어둘게요. 약속했으니까 나랑 다 해줘야 해요. (기분 좋게 자리에 앉은 그가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토마토 두부 카프리제, 색색의 과일 스프링롤을 비롯한 무화과 쿠키를 조금씩 가져옵니다. 능력으로 스테이크 칼을 들어 손 안 대고 썰었습니다.) 밖에서 뽀뽀하기는요? 응?

신성현
(능력 잘 쓰네… 저런 능력을 스테이크 써는 것에 할 말을 잃기도 잠시 샐러드 몇 점과 연어 스테이크를 담아 우물댄다. 샐러들을 씹어 삼킨 그가 심각하게 고민한다.) 밖은 사람의 시선이 많을 거야. 타이머와 카운터의 행실을 보여야 하니 너무 격의 없는 행동은 힘들겠지… 사람 없는 곳에서 몰래 뽀뽀하는 건 넘어가 줄게. 손 잡기는 언제나 괜찮고. (진지.)

이연화
이럴 땐 전부 좋다고 해줘야죠. 방금 완전 실격이었어요. (뭘 저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건가요? 우습구 치사합니다. 난 남들에게 신성현은 이제 내 파트너라고 알리고 싶어 안달 난 상태인데 말이죠. 예쁘게 조각낸 스테이크를 합 입에 넣고 호화로운 맛을 음미합니다. 앞에 신성현 두고 먹으니까 더 맛있어요.) 그런데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요?

신성현
실격이라니, 수업에서 우리 역할을 배우고 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걸. 우리의 역할은 생각보다 무거워. (고기만 먹지 말고 채소도 먹으라며 샐러드를 옆쪽에 옮겨주었다. 참고로 당신과 같은 중력을 사용했다. 드레싱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절제된 솜씨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게 힘든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해. 스테이크 더 줄까? (7년이나 버텨야 한다는 걸 알면 속상해할 것이다. 모른 척 맛있는 주스를 이연화의 컵에 따른다.)

이연화
어렵네요… 형이랑 함께 파트너가 되는 건 좋지만 밖에서 뽀뽀 못 할 정도로 제약을 받는 건 싫어요. 어떻게 안 되나요. (방금 얼버무린 기분이 드는데요? 어린 이연화의 관심은 그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것에 쉽게 넘어갔으므로 어떻게든 넘어갑니다. 열심히 챙겨 먹는 그의 포크가 샐러드는 남몰래 밀어냅니다.) 스테이크는 충분하고 형의 뽀뽀를 먹구 싶어요.

신성현
사실 정확한 제약은 잘 모르겠어. 카운터의 존재는 나에게도 처음이니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타이머와 카운터가 어느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는 정식 임관 뒤에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붙여두는 걸 보면 걱정 없을 수도 있고. (이연화의 수작을 애교로 넘긴 신성현은 샐러드를 스테이크 위에 올린다. 싱긋 웃는다.) 편식은 안 돼.

이연화
(윽, 신성현에게 들킨 이연화가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했습니다. 다만 자신만 들킨 게 아닙니다.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운 미소를 지은 이연화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정식 임관… 우리 데이트 임관 받고 해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때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밖도 그때 보내준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똑똑하다!)

신성현
…. (수업 때 비상했던 이연화의 두뇌를 까먹고 있었다. 침착하게 샐러드를 도로 가져온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모양이다. 애꿎은 채소를 입 속에 넣은 신성현이 중얼댄다.) 축제 전까지 나갈 수 없는 건 확실해. 그런데 그 이후가 애매하네. 미안. (카운터의 존재란 여러모로 변수인 탓이다. 어물쩍 말을 돌린다.)

이연화
외출이라. (신성현은 아마 여러모로 변수가 많은 우리의 존재를 의식한 DOT가 쉽게 내보내 주지 않으리란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비상한 두뇌는 애매한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제일 쉬운 법이 있잖아요. 내일 선생님께 물어보는 거예요. (샐러드 가져간 덕분에 한 발자국 물러나 주었습니다.)

신성현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확실하겠지? 그게 좋겠다, 잘 모르는 걸 둘이 고민해 봤자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일은 내가 확실하게 알아 올게. 든든하게 먹어. (전부 간파당한 신성현은 그저 웃기만 한다….)

이연화
(형은 지금 날 이길 수 없어요… 어쩌면 영원히 내 머리를 넘을 수 없어요. 내가 가만히 있는 건 형의 곁이 좋아서, 착한 아이인 척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신성현을… 포크가 스테이크를 콱 찍습니다.) 괜찮아요. 난 형과 함께 여기서 지내는 것도 충분히 행복해요.
언젠간 데이트 해주기예요.

신성현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오늘 날씨가 춥나? 어느 계략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기분이었다… 괜스레 어깨를 떤다.) 약속할게. 언젠가는 도밍게즈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서 네가 모르는 곳이 없게 될 거야.
훌륭한 파트너가 돼서 그렇게 만들어 줄게.
GM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맛있게 식사합니다.
밥을 먹는 동안은 개도 애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므로 식사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디저트를 먹을 무렵에……

신 훤
카운터란 거 진짜야? 세계가 멸망한다는 예언은 오늘 또 떨어졌다고.

신 현
아, 무슨 소리야. 아까 분명히 헤일리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랬어. 누구한테 들은 찌라시야?

신 훤
뭐? 난 렌한테….

신 현
예언의 탑이 아니라?

신 훤
거길 누가 믿어?

이연화
(귀 쫑긋)
GM
치열한 대화가 그릇 위를 오갑니다. 세계 멸망? 예언?
렌과 헤일리라면 11시, 예언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이름입니다.

이연화
(신성현에게 눈짓합니다. 옆에서 투탁대는 현의 어깨를 콕콕 건드립니다.) 저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세계 멸망이라니.

신성현
(마침 신성현도 관심이 있는지 그들에게 고개를 돌린다.) 누가 세계가 멸망한다 했다고?

신 현
응? (당신의 예쁜 얼굴을 마주하고 웃어줍니다.) 예언의 카운터와 예언의 타이머가 같은 날, 같은 시에 서로 다른 예언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대요.

신 훤
연구원도, 사무원도, 하인리히 장교님도 쉬쉬하는 것 같지만 본인들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예언의 내용은……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연화
(우물대던 쿠키를 다 삼켜 내려놓습니다. 주스로 입가심하고 의아하게 묻습니다.) 카운터랑 타이머가 들은 예언이 너무 정반대인 거 아니에요? 누구는 멸망이고 누구는 멸망하지 않는다니. 진짜예요?

신 현
예언의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직접 들은 얘기예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렇게 말했다니까요. 서로 다른 경우의 수를 예언한 건 아닐까요?

신 훤
아니지. 같은 예언의 페어인데 둘이 다를 리가 없잖아! 두 가지 모두 결국 같은 이야기일 거야. 왜, 쓸데없이 고지식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해석하면 결국 같은 말인 것처럼.

이연화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팔짱을 낍니다. 의자에 기대 고민하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렌과 헤일리는 어디에 있어요? 형, 같이 가서 직접 들어봐요. 밥도 다 먹은 겸.

신성현
그럴까.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신성현이 당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변을 둘러본 그가 저 끝에 자리 잡은 렌과 헤일리를 가리켰다.) 저기 있네, 같이 가서 물어보자. 둘의 예언이 괜히 다를 리가 없어.

이연화
이런 건 확실히 해둬야 해요. 장교님이 우리가 나타남으로써 세계는 멸망하지 않을 거라 말했잖아요. (그런데 멸망이라고. 무언가 불길합니다. 신성현이 알려준 자리로 가 렌과 헤일리를 찾습니다.)

신성현
이것도 카운터가 나타난 변수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이상해. (당신에게 동의한다. 자리를 정리한 뒤 뒤따라 렌과 헤일리에게 다가간다.)
GM
테이블의 끝 쪽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렌과 헤일리는 우리가 다가가면 고개를 돌려 맞이합니다.

렌 샤이
(이미 여러 질문을 받은 듯 온화하게 미소짓습니다.) 예언을 물어보러 온 거니?

이연화
네에. (렌 앞에 서서 얌전히 기다립니다.) 타이머와 카운터가 예언한 내용이 다르다고 들었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왜 다른 거예요?

헤일리 로렌스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같은 결과였어요. (헤일리가 오묘한 표정으로 설명합니다.) 카운터인 저는 멸망을 예언했고, 타이머이신 렌님은 새 계절을 예언하셨죠. 저희도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설명해 드리긴 힘들 것 같아요.

이연화
결국 예언이 다른 이유는 그 누구도 모르는 건가요. (곤란합니다. 자리에 서서 끙 생각합니다.) 연구원, 사무원, 장교님까지 쉬쉬하신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데 숨긴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왜 숨겨야 할까요. 도밍게즈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신성현
여러 이유가 있겠어. 카운터의 등장으로 멸망은 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예언은 멸망을 말하니까, 네 말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숨기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원인을 찾고 있어서 숨기는 중일지도 몰라. 세계가 정말 멸망할까…?

이연화
…지금의 우리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겠죠. 예언이란 현실로 다가와야 진가를 드러나는 힘이니까요. (하는 수 없이 추궁하는 건 포기했습니다. 그들이 모른다는 건 사실 같았습니다. 신성현에게 착 붙어 속삭입니다.) 세계는 멸망해서는 안 돼요. (내가 어떻게 너를 만났는데. 어떻게 네 파트너가 되었는데. 그의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믿어요. 우리는 멸망을 막고자 타이머와 카운터가 된 거예요.

신성현
(조용히 이연화의 손을 잡는다. 깊어진 눈이 바닥을 향했다가, 당신에게 돌아온다. 따뜻한 접촉이 동요하던 마음에 평온을 가져왔다. 작은 웃음을 흘린다.) 응, 우리에겐 상관없을 고민이네. 도밍게즈의 멸망이 확실하다면 우린 그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일 테니까. 너도, 나도 그날을 대비하려고 이 자리에 있어. (두 명의 타이머가 등장한 지금 예언이 엇갈리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일지 알 수 없었다. 손깍지를 낀다.)
식사 방해해서 미안, 마저 먹어. (가자는 듯 당신을 이끈다.) 너도 다 먹었어?

이연화
난 이제 더 안 먹어도 괜찮아요. 너무 배부르면 오히려 기분 나쁘거든요. (그렇게 말했지만 신성현도, 저도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당연했습니다. 도밍게즈의 멸망과 새 계절. 어느 쪽이 진실일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의 말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타이머는, 카운터는 멸망을 막을 수 있을까요? 맞잡은 손을 꼼지락댑니다.) 있잖아요, 형. (엘리베이터로 가 버튼을 누른 이연화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고 말합니다.)
형은 만약 세계가 멸망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신성현
알 것 같아. 너무 배불러서 움직이기 힘들고 소화 안 되는 그거. (그렇다면 이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당신이 버튼을 눌러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하나의 질문을 품에 안고. 우리 사이에 고요하게 감돌던 침묵은 띵, 울리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깨뜨렸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세계를 지키기 위해 타이머가 된 내게 부여될 임무를 완수할 거야. 내 희생이 멸망을 몇 분, 몇 초라도 막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리할 수 있어.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딛는다.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당신을 바라본다.)
넌 어때?

이연화
(당신을 바라보는 이연화의 눈은 그럴 줄 알았다는,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게 선택권은 없습니다. 신성현의 곁에 내 미래이기에, 당신이 가는 곳을 자신은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열린 문 안으로 성큼 들어갑니다.) 나는 형의 곁에 있을 거예요. 멸망하는 세상 속에서 이연화가 있을 곳은 곁을 내어주겠다는 파트너밖에 없어요.
형, 신성현 형. (망설임을 지워내고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나 혼자 두고 가지 마요.

신성현
(단순히 두고 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 나이인 동시에 타이머, 카운터의 무게를, 역할을 모를 수 없는 나이였다. 당신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단단하고 빠지지 않도록 쥐었다.) 원래는 멸망하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건 네가 바라는 게 아니겠지. 다른 말을 꺼냈다.)
정말 그날이 온다면…
우리가 손을 놓게 될 때가 와도, 널 놓지 않을게.

이연화
(입술이 서서히 진실된 미소를 덧그립니다. 내가 원한 대답이에요. 멸망하는 세계에 둘 중 하나를 홀로 남겨둘 마음 따윈 없습니다. 끈질기게 그의 손을 잡아당길 거예요. 한날한시에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지금 생각하긴 이른 고민이지만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신성현을 믿고 있을게요.

신성현
유일한 파트너가 나를 믿어준다니 더 노력해야겠어. 네 손을 놓지 않으려면 멸망을 이겨낼 만큼 강해져야 해. (당신 덕분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 앞이 어떨지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여도 괜찮았다. 세계가 부서지는 그 순간까지 곁에 있어 주겠다는… 파트너가 존재했다. 혼자가 아니라.) 나도 널 믿어.
GM
세계는 멸망할까요? 멸망하지 않을까요? 찜찜한 의문과 함께 저녁 식사가 끝납니다.
하지만 예언이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지금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해요.
system
[ 이연화 ] 로이스 : 3 → 4
[ 신성현 ] 로이스 : 3 → 4

이연화
아…! (숙소로 돌아가려던 이연화는 걸음을 딱 멈춥니다.) 형, 우리 가장 중요한 걸 까먹었어요.

신성현
중요한 거? (이연화를 따라 걸어가던 신성현이 덩달아 멈춘다.)

이연화
카운터들한테 나랑 같은 충동을 느꼈는지 안 물어봤잖아요! 지금 숙소로 찾아가면 볼 수 있을까요? 식당으로 다시 내려갈래요? (생뚱맞은 예언에 정신이 팔려 새카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신성현
맞다, 원래 그거 물어보기로 했었지. (생뚱맞은 예언에 정신이 팔려2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4층에 도달한 엘리베이터를 보고 우선 당신을 이끈다.) 식당으로 돌아가기보단 숙소에 있을 카운터를 찾아가는 게 좋겠어. 카운터는 몰라도 타이머끼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있을 만한 타이머가… 9시 타이머 어때? 거기도 사이가 좋은 것 같더라.

이연화
9시 타이머요? …성격이 꽤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쪽 카운터는 조용한 편이었으니 괜찮겠죠. 얼른 물어보고 나랑 숙소로 돌아가서 놀아줘요. (신성현을 쫑쫑 따라갑니다. 9시의 카운터, 조용하다기에는 자신과 동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지요. 파트너에게 온순한 척하는.)

신성현
…. (부정하지 못한다. 9시 타이머의 앙칼지고 제멋대로인 성격은 자신도 웬만해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나,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우리 사이에서는 유명한 공주로 불리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마찰을 일으키지만 마. 돌아가서 동화책 읽어줄게.
GM
깜빡 잊어버린 질문을 물어보기 위해 간 곳은 9시, 치유 타이머와 카운터의 숙소입니다.
신성현이 가볍게 노크를 두드리면 곧 쾅, 거칠게 문이 열립니다.

메이 란
누구세요? …뭐야, 10시 애들이잖아? (예쁘장한 금발의 아이가 도도하게 턱을 높입니다.)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쓸데없는 일로 귀한 내 시간을 뺏는 거라면 당장 때려버리겠어. (팔짱까지 끼고요.)

카렌 멜라니아
메이 님, 그렇게 갑자기 가시면 안 돼요. 아름다운 메이 공주님을 노린 나쁜 사람이 찾아온 거면 어떡해요. (선선하게 웃는 카운터가 그의 뒤를 따라옵니다. 이연화와 눈을 마주치며 싸…하게 동류의 눈빛을 보내옵니다. 메이에게 푸딩을 먹여줍니다.)

이연화
(카렌 멜라니아의 웃음에 지지 않는 싸한 미소를 보내줍니다. 그리고 공주에게 굴하지 않는 미모도 보여주고요. 어차피 관심 없는 애들이지만 지는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타이머와 카운터 간에 일어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

신성현
(공주의 패악질은 익숙하게 받아넘긴다.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닌가 보다. 적당히 무시해야 대화가 가능했으므로 당신을 도와준다.) 이번에 훈련실에서 한 보고 말이야, 너희 해봤어? 그때 나는 아무 일 없었는데 카운터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어.

메이 란
충동? (고운 미간이 찌푸려집니다. 카렌의 에스코트를 받아 푸딩을 오물오물 씹은 공주가 손뼉를 짝 쳤습니다.) 그랬지. 그 낯부끄러운 스킨십을 하면서 능력을 쓰는 중에 카렌이 이상하게 행동하지 뭐야.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네, 그때 네가 어떻다고 했더라?

카렌 멜라니아
(메이가 잘 받아먹는 것을 보고 발그레 좋아하는 카렌이 수줍게 말했습니다.) 정확히 무어라 하긴 힘들어요. 그것과 가장 가까운 감정은…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감각이었어요. (당신과 같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궤를 달리했습니다.) 입맞춤 땐 공주님이 저를 떠날까 봐 꼴사납게 매달리곤 했지요. 외롭고, 두렵고, 무서웠어요. 지금 돌이켜 봐도 이성을 잃은 것 같아요.

메이 란
그래, 저거야. 카렌이 달라붙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으으, (그때 일을 떠올렸는지 제 볼을 감싼 공주의 얼굴이 조금 붉어집니다. 당신들처럼 여러모로 일이 많았나 봅니다.) 그런데 너희도 그랬다고? 카운터들에게 뭔가 있는 건가?

이연화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우연이라고 하기 힘들죠. 이래서는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까지 비슷한 모습이겠어요. (손으로 턱을 괴고 고개를 기울인 채 생각에 잠깁니다.) 아직 카운터만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순 없어요. 먼저 나타난 타이머와 그 후에 나타난 카운터. 세울 만한 가설이 너무 많은 게 문제네요. (신성현의 말이 맞습니다. 카운터라는 최초의 변수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계속 일어나요.) 충동은 어떻게 사라졌어요?

신성현
연구원님들의 결과와 많은 실험 사례가 나타나지 않은 지금 우리가 추측할 만한 건 별로 없어. 그저 카운터가 능력을 사용하는 동시에 타이머와 깊은 스킨십을 할 때 충동을 느낀다는 것만 알 수 있지. 우린 충동에서 자유롭지만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같고. (그때 상황을 돌이켜 본다. 정신없을 때라 기억 나는 게 많지 않았다.)

메이 란
그러게. 처음에는 카렌이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로 생각했는데 너희까지 그랬다니 심상치 않은 일이야. 훈련실에서 마주친 다른 애들도 비슷한 모습이었어. 타이머는 멀쩡하고 카운터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지. 충동은… (아리송하게 으음… 뜸을 들였습니다.) 내가 카렌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나서 멈추었을걸?

카렌 멜라니아
공주님께서 미천한 제게 해주신 말씀은 정확히 ‘너는 나에게 꽤 쓸모 있고 예쁜 하인이니까 버리지 않아!’ 라고 하셨어요. 제 ‘존재’를 증명받은 것 같아 너무나도 기뻤답니다. 전 앞으로 공주님만의 하인이 될 거예요…. (이연화 당신과 비슷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엇나간 성격으로 보입니다.)

이연화
하인… 특이하네요. 둘의 미래를 응원해요. (둘의 성격은 이상하지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정보입니다. 동족 혐오가 올라와 소름이 돋았으나 인내를 가지고 계속 들어줍니다. 저 사이에 끼고 싶지 않다는 것만 빼면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우린 진실된 접촉을 하고 나서 가라앉았어요. 각자 진정시키는 방법이 다르다거나,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나 봐요. 그 외에는요? 더 특별한 건 없었어요?

신성현
(이래서 가급적 이곳으로 발걸음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오묘한 카운터와 만나고 나서 메이 란의 공주 패악질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본성이 그나마 착해서 다행이지. 나름… 착하다. 역시나 외면한다.) 다른 거… 능력, 능력에 대해 말해줘. 마지막 스킨십을 했을 때 달라졌던 너희의 능력을. 우린 능력이 서로를 닮아가는 모양새였어.

메이 란
내가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당연히 응원해 줘야지. (카렌 덕분에 메이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하늘을 뚫다 못해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유려하게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휙 넘깁니다.) 너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서로를 닮아가는 것 말이야. 원래 내 능력은 ‘치유’에 집중하여 단순히 상처를 치료하는 것만 할 수 있었어. 그런데 그땐, 카렌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더라구! 끝나자마자 사그라들었지만.

카렌 멜라니아
제 방식은 공주님과 다르게 치유를 역으로 이용하는 거였어요. ‘누군가에게 난 상처를 타인에게 옮길 수 있는’ 치유 능력이죠. 잘만 이용하면 공격 능력도 되는 방식이에요. 때문에 저희 둘은 능력이 같아도 방식은 전혀 달랐는데, 그 순간 서로의 능력을 터득했어요. 저는 상대방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고 공주님은 자신의 상처를 제게 옮길 수 있었죠. 대답이 되었을까요? (얼른 메이의 머리칼을 단정하게 정리해 줍니다.)

이연화
(이젠 카렌과 메이가 꽁냥거리거나 말거나 생각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신성현처럼 대부분 무시하는 스킬을 터득했습니다.) 감이 잡혀요. 타이머와 카운터가 긴밀하게 접촉해서 능력을 사용하는 건 정말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만, 우리는 기이한 충동을 겪어야 해요. 그건 타이머만이 진정시켜 줄 수 있는 충동이고 진정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거나 여러 개. 이것에 관한 질문은 이제 괜찮아요. (정보들을 정리한 이연화가 신성현의 팔을 끌어안습니다. 심신이 치유됩니다.)
마지막으로 렌과 헤일리의 예언에 대해 어떤 생각이신지만 알 수 있을까요.

신성현
(달라붙은 이연화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준다. 메이 란과 신성현은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타이머였다.) 카운터와 타이머가 들은 예언이 다르다잖아. 세계 멸망과 계절 지속. 너희는 어느 쪽을 믿어?

메이 란
너, 수업 때도 느꼈지만 똑똑하구나? (당신의 두뇌에 흥미를 지녀 호기심 생긴 눈으로 바라봅니다. 팔짱을 푼 메이는 방 안으로 몸을 돌리며 차갑게 대꾸했습니다.) 난 타이머야. 이번 연구도 그렇고 여러모로 알 수 없는 카운터의 말은 쉽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구.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자라 멸망이라니, 능력 향상과 기묘한 이끌림이 아니었다면 이미 항의했을걸!
공주님의 자비는 여기서 끝이야. (놀랍게도 이성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홀랑 들어가 버립니다.)

카렌 멜라니아
(메이가 관심을 보인 당신에 대한 경계를 20% 정도 상승시킨 눈빛입니다. 입은 웃고 있습니다.) 저는 메이 님이 가시는 곳을 따라갈 뿐이에요. (그리 말하고 메이가 완전히 멀어지자, 웃음을 지웠습니다. 무미건조하게 덧붙입니다.) 깊이 생각할 게 무엇이 있겠어요. 멸망을 막기 위한 우리의 존재가 도밍게즈를 살리리라 믿어요. (이어 메이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연화
카운터의 존재…. (그들을 붙잡지 않습니다. 들을 만한 건 거의 들었습니다. 그보다 메이 란의 말이 걸렸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어느 날 나타나 타이머의 카운터가 된 존재들. 게다가 타이머가 겪지 않는 충동을 홀로 겪곤 합니다. 우리는 무엇일까요. 또 다른 타이머가 맞는 걸까요.) 형.
카운터의 존재가 멸망을 불러오는 거라면 어떡해요?

신성현
그게 무슨 소리야. (메이 란의 답을 생각함으로써 결코 작지 않은 추측을 내놓은 이연화를 제 쪽으로 돌린다. 당신의 볼을 감싸 엄지로 쓸어댔다. 말랑하고 보드러운 생명의 감촉. 네 이마에 입을 맞춘다.) 카운터가 정말 세계의 멸망을 불러오는 존재였다면 우린 만나지 못했을 거야. 연구원님들과 장교님이 반드시 처리하려 했겠지. 그런데 그분들이 그랬어? 아니, 오히려 네 존재가 멸망을 막을 카운터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어.
새로운 구원자, 시간의 선택을 받은 능력자. 적어도 우리를 바라보는 하인리히 장교님의 기쁨은 진짜였어.

이연화
(멀거니 붙잡혀 신성현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습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그에게 맞추어 진동합니다. 적막해진 복도에 울리는 목소리가 편안했습니다. 단순한 의문을 말한 것뿐인데 저를 걱정해 주는 게, 이연화가 신성현의 옆을 꿰찼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신의 입술에 쪽, 뽀뽀합니다. 사르르 웃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형은 내가 신성현에게 몇 번이나 구원받았는지 모를 거예요.
형은 만약 내가 멸망의 원인이어도 날 좋아해 줄 건가요. (세계와 나 중에서 망설임 없이 나를 선택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질문, 끊임없는 요구는 당신이 저를 받아들이길 종용했습니다. 그런데 이연화는 대답을 듣기 전에 당신의 입술을 검지로 막습니다. 나는 알아요. 세계의 구원자인 네가 할 선택을.)
이만 방으로 돌아가요.

신성현
이연화. (가느다란 검지 따윈 이 입을 막을 수 없는데도 말할 수 없었다. 네 눈은 이미 나의 마음을 파악한 눈이었다. 이연화가 멸망의 원인이 된다면, 그를 좋아할 것인가. 정해진 대답을 목구멍 너머로 숨겨두었다. 신성현은 이연화를…. 당신의 손을 움켜쥔다. 무언가를 마음먹은 그가 숙소 열쇠를 당신 손에 쥐어준다.) 나는 네가 원하는 만큼 구원해 줄 생각이야. 더 이상 네게 구원자가 필요하지 않을 날이 올 때까지. (그게 이연화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먼저 방에 가있을래?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준비물이 좀 필요해.

이연화
(신성현이 쥐고 있던 열쇠는 당신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했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 소중히 쥐고 장난스레 농담합니다.) 구원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원래 이런 서프라이즈에 잘 안 놀라는데, 형이 준비한다는 건 그게 뭐라도 놀랄 것 같아요. 빨리 와야 해요. 난 1분 1초라도 형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어린애거든요.
내가 형을 필요하지 않게 될 날은 오지 않아요.

신성현
비슷해. 서프라이즈 선물은 이따가 직접 열어봐. (이 아이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 어떨 땐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강렬한 호의를 보내준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그러므로 이연화를 더 웃게 해주고 싶었다. 내 옆에서 보여주는 그 진실된 미소를.) 날 필요한 파트너를 위해 지각할 순 없지. (톡톡, 어깨를 두드린다.)
다른 곳 가면 안 돼. 알겠지? (엘리베이터를 누른다.)

이연화
나는 파트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요. 다른 길로 새지 않을게요. 그 어떤 선물보다 형이 더 좋아요, 부담 갖진 말아요. (과연 신성현이 보여주고 싶다는 건 뭘까… 궁금했지만 얌전히 몸을 돌립니다. 그가 보는 동안 숙소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녀와요.
GM
어디론가 내려가는 신성현을 뒤로하고 숙소로 갑니다.
당신이 숙소에서 오늘 받은 숙제를 작성하거나 신성현을 기다리다 보면, 얼마 있지 않아 그가 돌아옵니다.
그의 손에는 반짝이는 가루 몇 병이 들려있습니다.

신성현
(병의 뚜껑을 따 침대로 올라간 신성현이 당신을 재촉한다.) 이연화, 이리 와. 천장 바라보고 침대 누워봐. (옆자리 톡톡.)

이연화
그건 뭐예요? (한가하게 숙제를 완료한 이연화가 총총 다가옵니다. 호기심 많은 얼굴로 그가 든 병을 살핍니다. 고운 모래 같아요.) 이걸로 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신성현의 옆으로 가 발라당 눕습니다.)

신성현
응. 이번에 네 뛰어난 능력 조절을 경험하고 생각 난 방법이야. 너와 내가 만들어 낸…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 (당신을 따라 눕는다. 중력을 사용해 불을 끄고, 커튼을 치고 나면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 속에서 빛나는 건 야광 물질을 품은 듯한 병 속의 가루들뿐이었다.)
시작할게, 준비됐어?

이연화
우리가 만들어 낸…. (왜인지 신성현이 보여줄 선물이 짐작 갔습니다. 알고 보는 선물은 재미가 없는 게 당연할 텐데,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려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신성현의 옷자락을 잡습니다.) 나 준비됐어요. 빨리 보여주세요!

신성현
알았어, 지금 시작할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런 걸 보여주는 신성현은 덩달아 설렜다. 심호흡하고, 병을 든 팔을 쭉 뻗었다. 어둠 속에 가린 마안이 섬세하게 중력을 조종하여 반짝이는 가루들을 퍼 올린다.)
GM
당신이 기대감에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이었습니다.
검은 천장을 우주 삼아 펼쳐진 야광 가루들이 제 자리에 정렬하기 시작합니다.
몇몇 가루들은 우주를 수놓은 별로, 그리고 조금 더 뭉친 가루들은 그 사이에서 모양을 이룬 별자리로.
이리저리 얽히듯 천장에 그림을 그린 가루들이 어여쁘게 반짝입니다.
신성현이 능력을 조절해 오로라를 만들기도 하고, 하늘에서 파도치는 별들의 운동을 만들기도 합니다.
푸른빛과 금빛을 띤 가루가 부딪치는 모습은, 꼭……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을 닮았습니다.

신성현
나는 생각이 많은 밤이면 가끔 영상에 기록된 밤하늘과 우주를 찾아보곤 해. 여긴 밤늦게까지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아서 별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잖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별들의 파도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만들어 줘서… 언젠가 너랑 같이 진짜 밤하늘을 보러 가고 싶어. 별이 아주 잘 보이는 10구역으로. (가루들을 움직이며 당신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이연화
(이연화는 말이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당신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느라 할 말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요. 그저, 알 수 없이 기쁘고 또 기쁜 마음만 느껴졌습니다. 옷자락을 더듬어 당신의 손을 잡아 옵니다. 약간 몽롱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건… 이런 건, 반칙이에요. 형을 대체 어디까지 좋아지게 할 셈이에요. 대체 어디까지 좋아하게 할 셈이에요…. (자신이 갇혀 있던 곳은 별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었습니다. 밤하늘도 매체 속에서만 보았을 뿐 직접 본 적 없는데, 당신이 나에게 최초의 별들을 보여주었어요. 안락한 포말이 부서지는 우주 한 가운데에 놓인 듯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너머로 당신의 반짝이는 가루들이 보였습니다.)
…나랑 진짜 별 보러 가요. 오로라도 보고 바다도 보러 가요. 잊으면 안 돼요, 그리고 반드시 내가 처음이어야 해요.
나는 신성현의 처음이 되고 싶어졌어요.

신성현
마음에 들어 보여서 기뻐. 오로지 널 위해 생각한 선물인데, 마음껏 좋아해도 돼. 내 파트너가 된 너는 더한 것을 바라도 돼. DOT에 온 걸 환영하는 선물이라기엔 하루 늦었지만…. (능력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가 희미하게 웃는 당신을 비춰주었다. 내가 바란 얼굴이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밝게 웃어주는, 미약할지언정 진심을 품은 미소. 우리의 손가락을 엮는다. 나지막하게 제 처음을 건네기로 한다.) 별과 바다가 아니더라도 네가 가고 싶은 곳, 나랑 가고자 하는 곳 전부 가줄 거야. DOT에서 살아온 내겐 가져갈 처음이 아주 많으니까.
이연화. 네게 나의 처음을 주면… 나에겐 너의 처음을 줄 수 있어?

이연화
(신성현이 제게 묻는 동시에 참을 수 없어졌습니다. 모든 인내심이 바닥난 이연화가 신성현을 당깁니다. 그를 제 품에 넣어 어디에도 갈 수 없도록 가둬버립니다. 겉으로만 보면 자신이 안긴 모양새지만, 그것조차 좋았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제게 흘러들어온 별이었습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거워짐에 따라 늘어나는 중력이 우리 사이를 이어주었습니다. 영원히 떨어질 수 없게끔. 이연화가 속삭입니다.)
형이 처음을 가져가려 하지 않아도 내 처음은 이미 온전한 신성현 게 되었어요. 내 삶은 신성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제 형 없는 시간은 생각하기가 싫어요. 형, 아까 물었던 질문, 그냥 답해주세요.
내가 멸망의 원인이어도 날 좋아해 줄 건가요?

신성현
(가루가 한 군데로 뭉친다. 모이고 모여 반짝임을 더한 그것은 항성을 만들었다. 빛나는 항성의 고리, 그 주위를 회전하는 행성. 한참 공중에 머물던 가루가 병으로 부유하며 돌아온다. 누군가는 카운터의 존재가 달갑지 않다지만 자신은 달랐다. 신이 안배한 나의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끌리는 사람이었다. 병까지 내려놓으며 제게 안긴 당신을 꽉 끌어안은 신성현이 마주 속삭였다.)
좋아할 거야. 너는 내 옆에서 함께 세계를 구원하고 싶다고 해줬어. 먼저 옆에 있겠다고. (단순한 어린 아이의 구원자 노릇이 아니야.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 나는 ‘신성현’으로서 ‘이연화’를 애정하게 됐어. 이 품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를 느낀다.)
이 감정이 타이머와 카운터의 이끌림이라고 해도,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이연화
(당신의 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반짝반짝, 천장에 떠오른 광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고정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평생 날 이끌어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어요. 온몸이 신성현의 품에 가려져서 한계까지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았습니다. 그의 입술에 쪽, 뽀뽀하고 도로 숨었습니다.)
…나는 왜 어린애일까요. 빨리 자라서 형이랑 데이트하러 갈래요. 얼른 축제 날에 내 존재가 발표되고, 형의 파트너로 정식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진짜 형을 독점하죠.
그 말, 철회하는 순간 형 가만 안 둬요. (어디 가둬버리고 나만 볼 거예요. 팔로 단단하게 옥죕니다.)

신성현
어린애가 왜 어린애냐는 질문을 하면 어떡해. 어릴 때 하고 싶은 걸 즐겨야 하지 않겠어? (푸스스 웃었다. 수줍게 뽀뽀하고 숨어버리는 모양새나 저를 답답하게 감싸 안은 모양새나 전부 강아지였다. 제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데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홀로서기를 각오한 순간 나타난, 대가 없는 애정을 주는 이 카운터를.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 너와 내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만 했다.)
네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날은 아마… 우리가 끝을 바라볼 때겠지. (너무나도 멀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지점. 생의 종막. 살아 함께하는 평생 당신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이연화
안 돼요. 연화는 빨리 커서 형이랑 하고 싶은 게 많다구요. (차마 지금 말하지 못할 것들도 많습니다. 벌떡 일어난 이연화가 당신의 얼굴 곳곳에 뽀뽀합니다. 이마, 눈꺼풀, 콧등을 타고 내려와 뺨과 입술까지. 제 것이라는 흔적을 잔뜩 남겨 문질문질 조물딱댑니다. 그러다가 10이 새겨진 왼쪽 눈가에서 멈춥니다. 불순한 마음은 다음 타이머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나 이거 더 자세히 볼래요. 형 각인 보고 싶어요.

신성현
그렇게 많아? 공책 하나 가져와야겠다, 버킷리스트 만들어서 하나씩 처리하게. 생각만 하다 보면 몇 개는 잊어버릴지도 몰라. (당신에게 이리저리 영역표시를 당하고 얼굴을 점령당한다. 그저 귀여워 인형처럼 누워만 있으려는데, 색다른 요청에 몸을 일으킨다. 팟, 커튼을 걷자 밝은 네온사인의 빛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안 될 것도 없지. 바로 불을 켜면 눈이 부실 테니까 작은 것부터 조금씩 키자. 시간은 많아.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켜러 갔다.)

이연화
좋아요, 내가 어른 되기 전엔 보지 말아요! 따끔하게 혼낼 거예요. (저를 꼭 안던 온도가 빠져나가 허전한 감각이 찾아옵니다. 따라가 껴안고 싶은 것 참고 얌전히 기다립니다. 대신 침대에서 조신하게 이불을 끌어안았습니다.)

신성현
원래 남의 일기 같은 걸 보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랬어. 걱정 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부스럭거림이 기분 좋았다. 이곳은 어린애가 혼자 지내기에 지나치게 넓은 곳이다. 제일 약한 불을 켜면, 가루처럼 반짝이는 이연화가 우주를 대신했다.)
GM
그렇게 짧은 시간을 즐겼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 같았습니다.
너도, 나도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까요.
오늘따라 신성현의 품은 유난히 따뜻했고 맞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씬 종료》
◆ #Scene 4. 우리의 끝은 태연히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2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2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44 → 46
[ 신성현 ] 침식률 : 40 → 42
GM
시간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사건은 고장 난 폭탄처럼 순식간에 터집니다.
그래, 사건이라고 불러 마땅한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어요.
음, 언제냐면, 신성현과 당신이 막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을 때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평온한 시간을 맘껏 누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때쯤이요.
그러니까……
카운터의 능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DOT의 지시로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탓에 신성현과 당신은 기쁘게 가까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시선으로 좇던 신성현이 문득 묻습니다.

신성현
좀 흐릿해지지 않았어? (그의 시선은 결국 당신의 혀에 닿습니다.)

이연화
흐릿해졌다고요? (그의 시선은 명백히 제 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너와 나의 연결을 증명하는, …각인. 창백해진 얼굴로 손가락을 펼칩니다. 중력에 이끌린 손거울이 빠르게 손안에 착지합니다. 제 혀를 확인해 봅니다.)
GM
신성현의 말마따나 다소 옅어진 것 같습니다. 한 번 새겨지면 죽을 때까지 평생 지울 수 없는, 각인이자 낙인인 바로 그것이요.
아, 물론 착각일 수도 있어요. 잘못 본 걸지도 몰라요.
눈을 깜빡이면 어제와 다를 바 없었거든요.
하지만……
⚜ RC 판정 : 난이도 10 ⚜

이연화
(심장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하필 신성현의 파트너가 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자는, 미래의 약속을 한 뒤에 이러다니요.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습니다. 내게 이럴 수는 없어요.) 말도 안 돼요. 이래서는 안 돼요….
(4+0)dx+1 RC 판정 (4DX10+1) > 8[3,7,7,8]+1 > 9
GM
쿵, 사방의 물건이 진동합니다. 하지만 강렬하게 요동치진 않습니다.
힘없이 떠오르던 물건들이 하나씩 툭, 투둑 바닥에 떨어집니다.
당신의 능력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어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도망칩니다.

신성현
진정해, 이연화. 낮에 한 실험의 부작용일 수도 있어. 아니면 감정이 격해져서 잠시, 아주 잠시 능력이 흔들리는 거라던가…. (신성현의 표정은 마찬가지로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능력은, 우리의 능력은 이런 상황을 만들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신이 움직인 물건을 억누르고 이연화와 손잡는다.)
GM
사람은 호흡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숨을 들이켜고 내쉬기 마련입니다.
능력자가 능력을 다루는 꼴이 딱 그렇습니다.
시간의 선택을 받으면 능력은 존재의 증명이 됩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죽음에 이를 때까지 타이머와 함께합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삶에서 유일하게.
그래서 타이머는 어떻게 여기냐와 별개로 단 한 번도 능력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싫건, 좋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간에…… 사라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카운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각인이 새겨진 순간부터 능력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었고 당신의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능력을 사용해도, 사용하지 않아도 카운터는 자신의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얌전하던 능력이 무언가 이상하게 새고 있습니다. 당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자꾸만 어디론가 뛰쳐나갑니다.
그 종착지는……
너의 타이머를 봐. 저 애가 네 모든 걸 뺏어갈 거야. 시간이 속삭입니다.

이연화
(타이…머? 신성현과 닿은 부분에서 능력이 흡수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멋대로 날뛰어 제게 빠져나간 능력이 도망쳐 도착한 곳은 신성현이었습니다. 각성한 뒤로 아주 자연스럽게 다루던 내 능력. 신성현의 것이자 나의 것.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형… 내, 내 능력이, 사라지고 있어요. 형에게….

신성현
…뭐라고? (믿을 수 없었다. 이연화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내게 오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러나 점점 미약해지는 중력 파동은 당신의 말이 사실임을 드러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타이머의 능력이 왜 사라져.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게 우리의 능력인데…. (불현듯, 그의 떨림이 멈춘다. 무언가 차오르는 파동이 제게 밀려온다.) 이건,
GM
능력은 순식간에 당신의 몸을 빠져나갑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타이머 또한 그 과정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느낄 수 있었냐고요? 글쎄…… 당신의 표정에 드러나서? 카운터의 행동이 이상해서? 아니면, 능력자 대 능력자로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아뇨, 그저, 스스로가 증거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다루기 쉬운,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넘실거리는 신성현의 능력은 이례적일 정도로 완전하게 차 있었습니다.
카운터와 함께 있으면 능력의 효율이 오를 거라고 했지. 누군가는 그 설명을 두고 타이머를 위한 배터리, 소모품이라고 불렀고.
그 표현이 꼭 맞아요.
그래, 이건 단순히 효율이 오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저 안에 있던 것이 내게로 넘어온 것처럼…….
뒤섞인 능력은 물과 기름처럼 모호한 경계를 긋고 있습니다. 신성현은 자신의 안에 내 것이 아닌 능력이 들어차 있음을 분명히 느낍니다.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46 → 0
[ 신성현 ] 침식률 : 42 → 88
[ 신성현 ] BN : 0 → 2
GM
⚜ RC 판정 : 난이도 ? ⚜

이연화
(자신을 움켜쥡니다. 그 상태로 허망하게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건 더 이상 그럴 리 없다며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등하게 품고 있던 나의 능력이 전부 신성현에게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빠지고, 빠지고, 또 빠져서… 아무리 쥐어짜도 하나의 마안조차 나타나지 않는 저를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숨을 헐떡입니다.) 나… 나는, 이게 없으면 난. (네 옆에 있을 명분이 사라지잖아.)
(4+0)dx+1 RC 판정 (4DX10+1) > 10[2,3,4,10]+2[2]+1 > 13

신성현
(사라지는 이연화의 능력에 비례하여 가득 찬 제 힘을 느낀다.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선다. 상식을 벗어난 광경에 당신만큼이나 하얗게 질린 그의 시선이 스스로를 움켜쥔 이연화에게 향한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남의 것을 빼앗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손끝이 잘게 떨린다. 제 주변에는 금빛과 푸른빛이 섞인 마안이 수두룩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내가… 한 게, 이러려던 게… 아닌데.
GM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고작 하루아침에.
이부자리를 사이에 두고 신성현과 당신은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사라진 것이 저기 있었고, 잃어버린 것이 여기 있었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오롯이 타이머와 카운터만 숨쉬는 작은 방.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었던가요?
불현듯 스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요란하고 끔찍한 소리와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듭니다. 겨울이 지난 후의 봄.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평온하기 짝이 없던 눈앞의 세계와 다정하던 그 문장.
카운터를 소개할 때 하인리히 장교는 분명히 세계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세계 멸망과 엮인 사건인 걸까요?
어느 쪽의 예언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길하고 불길한 예언이 공평하게 저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어두운 밤, 사위가 고요하고, 창 너머의 달만 밝습니다.

이연화
아, (헛숨을 들이켭니다. 너무나 요동친 마음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멀어지려는 신성현을 붙들어 거칠게 잡아당겼습니다. 어딜 가, 내게서 도망치지 마. 내가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어떻게 얻은 네 곁인데… 카운터의 예언은 어쩌면 세상이 아닌 ‘카운터’의 멸망을 예고하는 예언이 아니었을까요? 그리하여 우리의 멸망이 코앞에 목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신성현의 팔목을 압박했습니다.) 솔직하게… 부디 솔직하게 말해줘요.
형이, 그런 거예요? 우리는 타이머를 위한 소모품에 불과한가요?

신성현
아니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아니라고, 너를 이렇게 만들고자 한 게 아니라고. 적어도 겉으로나마 침착해 보이는 당신을 두고 자신이 당황해할 수 없었다. 이연화가 쥔 손이 아프지도 않았다. 머릿속이 뒤엉켜 아픈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입술을 짓씹는다.) 이런 상황은 들어본 적도 없고 가능하더라도 내가 바라지 않았을 거야. 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능력을 바라지 않았어. (마안을 소멸시킨다. 금빛이 섞인 저것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미안해. 내 탓이야. (이유도 모르지만 저 어린 아이의 탓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이연화
…. (눈을 감습니다. 검고 검은 것에 집어삼켜지는 어둠입니다. 끔찍하게 익숙해진 감각이 올라와요. 세상에 나 홀로 버려져 손 내미는 이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하지만 그때 작은 점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니, 수백 수천 개의 점이 떠올라 밤하늘을 이루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선물한 최초의 하늘. 천천히 눈 뜬 이연화가 바란 것은 하나였습니다.) 형 탓이 아니에요. DOT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면 우리에게 일부러 숨긴 것이고 아니라면 이건 그들도 모르는 사태라는 것이겠죠. 형이 얼마나 정직한지는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러니, 숨을 내쉽니다. 까마득한 한숨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요? (두려웠습니다. 능력 없는 내가 신성현의 곁에 존재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겨우 얻은 이 온기를 빼앗기게 될까 봐.)

신성현
그래도,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진다. 무엇이 세계의 구원자고 세상의 수호자라는 것인지. 당장 곁에 있던 파트너 하나 구하지 못해서 숨을 멈추고 있는데. 이연화가 물어뜯은 살을 헤집고 씹어 미약한 고통이 돌아오자 정신을 차린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놀랐을 이연화를 달래는 게 먼저였어. 무겁게 당신을 끌어안는다. 겨우 마음을 보여준 파트너가 다시 무서워할까 봐 단단히 끌어안았다. 네가 침대에서 나를 옥죄었던 만큼.) …응. 괜찮아, 괜찮아… 아직 네 시간의 각인은 선명하니까….
일시적인, 일시적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자. (각인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지표다. 그런 확신을 알려주었다.)
GM
하지만, 어떻게 돌이키지?
DOT에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두고 봐야 하려나? DOT가 꾸민 짓인가?
아냐, 아닙니다. 당신과 신성현에게 이상한 짓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세계를 구원할 유력한 방법인걸요.
절묘하게도…… 내일은 시간표상 이론 수업으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침묵한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무마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습니다. 건국 축제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거든요.
하인리히 장교는 카운터의 존재만이 세계 멸망을 막고, 사회의 평안을 불러올 일인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건국 축제에서는 무조건 등장시키려 들 테니 그날이 온다면 얄팍한 거짓말은 결국 드러나고 말겠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일까요?

이연화
(저를 끌어안은 신성현의 등을 꾹 쥐었습니다. 손톱이 옷자락에 파고들어 제 손바닥까지 괴롭힐 때쯤에야 온몸에 힘을 뺐습니다. 그의 품에서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깜빡거렸습니다.) 세계의 구원자인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DOT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 리 없어요. 그건, 힘을 잃은 카운터를 DOT가 어떻게 할지 예상하게 해주는 사실이기도 해요. (쓸모없어진 구원자를 그들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봅니다. 푸른 눈동자. 심해와 밤하늘을 닮은 그것.)
다른 카운터, 다른 카운터를 찾아가 봐요. 우리만 이러는지 확인해야겠어요.

신성현
(DOT는 신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뾰족한 수 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연화는 이 일로 쫓겨나게 되고 자신은 생에 기적처럼 찾아온 파트너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아프게 찔렀다. 당신을 놓지 않기 위해 끌어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깜빡, 핏기 가신 얼굴이 흔들리는 금빛 눈동자를 내려다본다.) 구원자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DOT는 가만히 있지 않겠지.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 연구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막막하던 차에 당신의 말에 급히 끄덕인다.)
조용히 나가보자. 아직 안 자는 애들을 찾아가서 확인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당신에게 손깍지를 낀다. 빠르게 방을 나선다.)

이연화
가능한 한 많은 카운터를 찾아가 봐요. 이것도 카운터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인지, 타이머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지 우리만 이러는지. 나는… 알릴 수 없어요. 어떻게 알려요. 우리는 구원자들에게 기대하는 어른들을 이길 수 없어요. (유일한 수단이 힘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신성현에게 힘없이 이끌리는 발은 물을 먹은 듯 먹먹했습니다.) 하루…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내일 이론 수업만 있잖아요.

신성현
알았어. 네가 원하는 건 다 할게. 나는 네 편이야, 네게 있었어야 할 힘을 원래대로 돌려놓겠어. (목표를 정하자 떨림이 멈추고 어느 정도 차분해진다. 여기서 무섭다고 도망쳐선 안 돼. 이연화의 곁에 있어주기로 했어… 당신이 힘들지 않게 속도를 늦춰주었다.) 들어오는 훈련 요청은 내 선에서 막아보고. 그 정도는 가능해.
GM
DOT에게 비밀로 한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앞을 바라보면 나아가는 타이머의 표정이, 당신의 표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리송합니다. 엉망진창이에요.
누구를 위한 해결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기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일단 그런 이야기는 모두 차치해 둡시다.
카운터의 존재는 세계에 공표되지 않은 완전한 미지수입니다. 그 말인즉슨 도움을 구할 자료가 없다는 뜻입니다. 해결법을 찾긴커녕 원인조차 알 수 없죠.
그간 DOT에서 데리고 있었다지만, 고작해야 반년이니 제대로 된 자료를 기대하긴 요원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게…… 하인리히 장교와 교사의 이야기 중 태반은 가설에 불과했는걸요. 뭐, 자료가 있단다고 한들 DOT의 눈을 피해 가져올 방법도 없을 거고.
두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험해서, 결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복도로 나와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의 숙소를 찾으려던 우리는 비슷하게 방을 나온 한 아이들과 마주칩니다.
아까 대화를 나누었던 치유의 구원자들입니다.

메이 란
이봐…! (죽인 목소리로 부른 그가 후다닥 달려옵니다.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너희도 카운터의 능력이 사라진 거야?

카렌 멜라니아
…. (생기가 없었던 카렌의 눈동자가 시커멓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연화
(표정이 돌변합니다. 그들처럼 겁에 질린 상태에서 싸늘하게 어느 감정도 띠지 못한 표정으로.) 맞아요. 설명은 안 해도 되겠어요, 지금 깨어있는 아이들에게 찾아가서 상황을 물어봐 줄 수 있나요?

신성현
이번에도 카운터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니. (언뜻 착잡함이 섞여 있는 목소리다. 왜 하필. 충동을 겪는 것도 카운터,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카운터. 네게 이런 일을 겪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시간이 늦었으니까 나눠서 찾아보는 게 좋겠다.

메이 란
이쪽이 제안하고 싶던 일이었어. 우린 저쪽을 돌 테니 너희는 반대쪽을 돌아. 물어보고 내 방으로 와, 아이들이 한밤중에 복도에 모여있으면 어른들한테 의심받아. 이리 와, 카렌! (먼저 안쪽으로 뛰어갑니다.)

카렌 멜라니아
(메이가 뛰어가는 걸 보고 머뭇거리다 말합니다.) 당신과 내가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알리지 않을 거예요. 다만 다른 아이들까지 그럴지는 잘 모르겠군요. (망설임 없이 뒤돌아 메이에게 뛰어갑니다.)

이연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어냈습니다. 맞잡은 신성현의 손을 더 강하게 쥡니다.) DOT가 이런 일을 예상하고 연구를 실행했으며, 다음 날 수업을 이론으로 채워두었다는 건 너무 나간 제 생각일까요.

신성현
(묵묵히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시선은 오로지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우리의 현재로는 확신할 수 없어. DOT가 이런 일을 했는지, 그들은 모르는 일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리는 것을 빼면 전부…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해.

이연화
…그렇겠죠. 우리가 사실을 알아낸다 한들 할 수 있는 게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주,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주었다가 빼앗는 게 더 상실감이 커요. 내가 딱 그런 기분이에요. 이연화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기분과 반대로 화사한 거짓 웃음을 짓는 버릇이. 그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신성현과 함께 발걸음을 옮깁니다.) 나는 신성현만 있으면 돼요. 지금은 그것만 알아둬요.

신성현
(가슴 속이 아프게 끓어오른다. 네가 얼마나 예쁘게 웃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거짓 웃음을 보니까 더 마음이 이상했다. 작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이렇게 없었던가. 네 곁에 선다.) 신성현은 언제나 네 편이 되어줄 거야. 넌 그걸 알아줘. (앞길은 막막했고 해야 할 건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연화와 약속한 건 지킬 수 있었다.)
GM
숙소를 돌아다니며 타이머와 카운터들의 상태를 살핍니다.
전기를 다루는 은발의 아이들은 멀쩡히 서로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미래를 예언하던 고요한 아이들은 당신들보다 몇 시간 전에 능력이 사라졌으며 식물로 투탁대던 아이들은 방문을 열자마자 카운터의 식물이 시들었습니다.
당신은 이것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챕니다.
카운터의 능력을 잃는 사건에는 개인마다 시간 차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몇몇은 DOT에 알리길 원했지만 몇몇은 그대로 숨기길 바랐습니다.
우리는 후자에 해당했지요.
상황을 파악한 우리와 아이들은 약속한 9시 아이들의 방에 모였습니다.

이연화
(모든 상황을 지켜본 이연화가 깔끔하게 결정합니다. 이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성이 될 거예요.) 지금 카운터가 능력을 잃는 것은 기정사실이에요. 시간 차가 존재하지만 결국 모든 카운터가 타이머에게 능력을 흡수당하는, 식의 일을 겪게 되겠죠. 카운터에 대한 자료가 극히 적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어요.
그러니까 알리고 싶다던 아이들은 딱 한 명, 한 명만 DOT에게 알려보는 건 어때요. 너희들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알리고 우리는 DOT의 상황을 볼 수 있으니까. 싫다면 우리랑 같이 숨길 수밖에.

신성현
우선 말해두자면 나는 내 파트너의 말에 따른다. 내일은 이론 수업밖에 없는 시간표야. 하루나 이틀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어. 단, 건국 축제 전까진 해결해야 해.

유메노 히나카
그럼 우리가 알릴게요. (기억의 페어가 손을 듭니다.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일어나 방문을 잡습니다.) 여차하면 기억 조작으로 잘 빠져나오면 돼요. 자칫해봤자 템퍼레리 포즈나 맞고 근신 좀 당하지 않겠어요?

프레헨 크리스틴
저는 괜찮습니다. 기억 조작이야 원래부터 히나카 씨가 더 잘했어요. (능력을 잃은 카운터임에도 상관없다는 듯 굴었습니다.)

이연화
문제없군요. DOT에게 알려보는 쪽은 그쪽에게 부탁할게요. 우린 여기서 어떻게 해야 능력을 되찾을 수 있는지… 건국 축제 전까지 숨길 수 있는지 고민해 보고 있을 거예요.

신성현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뭐라도 나오겠지. 도움이 필요할 땐 말해. 피곤한 아이들은 먼저 들어가서 쉬어도 돼.

유메노 히나카
맡겨둬요. 장교님과 연구원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전부 틀리지 않고 전해줄게요. (기억을 다루는 자들이라 더 자신감 있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을 두고 방을 빠져나갑니다.)

프레헨 크리스틴
돌아올 때까지 부탁드립니다. (간결하게 인사하고 나가는 모습입니다.)

메이 란
(그들이 나가고 나면 이연화를 돌아봅니다.) 그래서, 무슨 방안이라도 있어?

이연화
아뇨? 나라고 무슨 방안이 있겠어요. (당당하게 부정합니다.)

메이 란
야! (사람들이 들을까 봐 작게 윽박질러요.) 아까는 그렇게 자신 있게 이끌더니 이제 와서 방법이 없다고? 이 상태로 건국 때까지 숨어 다녀?

이연화
이런, 성격 급한 공주님이에요. (싱긋 웃습니다. 두 손을 들고 신성현에게 폭 안깁니다.) 나라고 방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의 손을 깊게 엮습니다. 손가락들이 빈틈없이 맞물립니다.) 해볼 만한 실험은 무궁무진하죠.
형, 능력 살짝 써줄 수 있어요? (자신도 없는 힘을 끌어올리려 합니다.)

신성현
그래. (당신의 말을 전부 들어주겠다는 것은 진심이었다. 순순히 손을 잡아 훈련실에서 했던 것을 떠올리며, 중력을 일으킨다. 망가져도 상관없는 휴지 한 장이 저절로 떠오른다.)
GM
신성현과 접촉해서 능력을 일깨우자 당신은 약간의 중력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의 일일 뿐, 능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신성현의 능력을 ‘빌려 쓴’ 느낌입니다.

이연화
흐음…. (이만 됐다며 능력을 꺼뜨립니다. 그럴 능력도 없긴 하네요. 안락한 신성현의 품에서 꼼질거립니다.) 작은 능력을 ‘빌려 쓰는’ 정도는 가능하네요. 연구원들이 추궁할 때 작은 변명이 될어 줄 거예요. 듣자 하니 타이머에게 완전히 흡수된 것이 아니라 물과 기름처럼 모호한 경계를 긋고 있다던데. (신성현의 완전히 섞이지 않은 마안을 가리킵니다.)
이걸 되찾는 게 관건이에요. 적어도 실험의 목표는 정해졌으니 뛰어난 발전 아닌가요.

신성현
…맞아. (이연화의 말로 깨닫는다. 맹렬히 진동시켜도 각자 따로 노는 마안을 빙글 돌렸다.) 카운터의 능력이 흡수된 거라면 능력까지 내 것이 돼야 했어. 내게 느껴지는 건 카운터의 능력이 들어차 있다는 감각이야. 각인도 사라지지 않았고.

신 현
저기, 카운터의 능력이 아직 흡수된 게 아니라면 혹시 점심 때 했던 연구랑 비슷한 상황은 아닐까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신 현이 말을 겁니다.) 짝이랑 함께 있으면 능력이 향상됐잖아요. 그렇다면… 짝이랑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거나, 너무 붙어 있었던 탓에 찾아온 반대급부라거나.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까요?

신 훤
아예 떨어져 있거나 차라리 딱 달라붙어 있어 본다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태평한 생각이지만 그런 확신이 들어요.

이연화
너무, 붙어있어서 그렇다고요? (움찔…, 신성현을 잡은 손이 떨렸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는 같은 능력이에요. 연구할 때 잠깐이나마 서로의 방식을 획득했죠. 그 탓에 능력이 뒤섞여 갈 곳을 착각한 건가… 왜 하필 카운터의 능력만? (이것을 떠올리면 저것이 의문이고 저것을 해결하면 또 이것이 의문입니다.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우리가 정말, …떨어져 있어야 해요? (신성현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신성현
(이연화의 떨리는 손을 남은 손으로 마저 덮는다. 전보다 식었지만 아직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네가 힘들면 떨어지지 않아도 돼. 여기 다른 아이들이 있으니까, 저 아이들이 시도해서 능력이 돌아오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같은 능력에 같은 방식을 획득한 능력이 길을 잃어버린 건 꽤 신빙성 있는 말인 것 같은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연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연화
(동요했던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당신의 고동에 맞추어 똑같이 잔잔하게 뛰는 심장이 차분해졌습니다. 그래요, 반드시 내가 하란 법은 없잖아요. 신성현의 온기를 받아들입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알겠어요. 그런 확신이 든다면 시도를 부탁해 봐도 될까요? (신성현에게 속삭입니다.) 형은 떨어지지 마요. 나 울 거예요.

신성현
당연한 말을 하네.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누가 했더라. (작은 농담이 당신의 걱정을 덜어주길. 한 공간에 같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온도가 더 따뜻했다. 이연화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그가 가장 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내 파트너 울릴 생각은 없어.

신 훤
듣던 중 반가운 말입니다. 마침 얘랑은 연구 목적으로도 붙어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단번에 두 발자국 떨어집니다.)

신 현
내가 할 말이거든? 죽을래? (이쪽 타이머와 카운터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가 봅니다… 신 현이 카운터이기에 전기 보복은 하지 못합니다.)

신 훤
(비웃으며 전기를 파직거립니다.)

이연화
다른 사람 방에서 싸우지 말아요. (정말 애들이네요. 라고 애가 생각했습니다. 가련하게 신성현의 품에 기대 케어 받는 모습은 신성현과 이 아이들의 말소리로 상태를 거의 회복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기억 타이머가 잘 해줘야 할 텐데.

신성현
DOT의 기물을 파손하면 용돈에서 까여, 얘들아. (현실을 직시하라고 이연화를 도와 투탁댐을 정리한다. 녹아내린 이연화의 어깨를 주물러 준다.) 밖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척은 없어. 아직 괜찮은 것 같아.
GM
도란도란 웅성웅성 한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똑똑, 기억의 아이들이 기묘한 얼굴로 돌아옵니다.

이연화
어떻게 됐어요? (벌떡 일어나 그들을 살핍니다.)

유메노 히나카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요. (다쳤다거나 해를 당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떠나갔던 그대로,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옵니다.) 일단 장교님을 찾아가서 당당하게 능력을 잃었다고 말했죠. 그런데 반응이…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어요.

프레헨 크리스틴
심각하게 생각하시질 않았어요. (늘 웃던 프레헨의 얼굴도 요상하게 찝찝함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미 들어둔 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환경이 낯설어서 그럴 거라고, 마음을 편안히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유메노 히나카
덕분에 나만 텃세라도 부린 거냐고 혼났다고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식힙니다.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잘해주라질 않나, 속 썩이지 말라질 않나, 안 그래도 축제를 앞두고 할 일이 많다고 잔소리하질 않나….

프레헨 크리스틴
우리의 존재가 세계 평화를 좌지우지하기에 작은 문제도 괄시하지 않고 방비한다면서,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라면서, 도밍게즈는 언제나 평화로울 거라면서. …음, (쑥스러운 얼굴로 이어 말합니다.)
이참에 한 침대를 쓰라고…,
GM
퍽, 유메노 히나카의 응징으로 프레헨의 말은 끊겨버립니다.

이연화
…. (이미 한 침대를 쓰고 있는 신성현을 봅니다.)

신성현
(약간 귓가가 붉어진 신성현이 당신의 시선을 회피한다….)
GM
딱 들어봐도 하인리히 장교의 말은 간단했습니다.
세계에는 충성을, 명령에는 복종을.
군인에게나 딱 어울리는 요구사항을 목에 걸어주는 꼴이었습니다.

이연화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어요…. (갑자기 모든 게 피곤해집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몸이 신성현에게 도로 허물어집니다.) 카운터의 능력 상실은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부작용이라고요? 모두가 이러는데요. 장교님이 뭔가 숨기는 건 없었나요? 너무 수상해요.

신성현
타이머와 카운터의 존재를 중요시하던 분이시라 더 알 수 없네. 능력이 사라지는 걸 이미 대비하고 계셨다고… 우리조차 능력을 되찾는 방법을 몰라 이리 고민했는데 가볍게 여기셨다니. (이연화를 받아 안는다.)

유메노 히나카
(프레헨의 입을 챱챱 때리던 히나카가 고개를 돌립니다.) 네, 알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어요. 수상한 점이라면… 그거랑은 좀 다른 거예요. 장교님을 만나기 위해 본관에 들어선 우리가 본 게 하나 있거든요.
지하 2층.
장교님이 탄 엘리베이터가 본관 지도에 없을 지하 2층에서 올라왔어요.

프레헨 크리스틴
제가 몰래 타봤는데 그런 버튼은 전혀 없어서 히나카 씨가 기억을 잃은 줄 알았,
GM
퍽, 듣기 좋은 소리가 울립니다.

이연화
지하 2층. 직접 확인해 봤다면 우리가 어떻게 찾을 방법은 없다는 소리인데. 전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새로운 사실에 눈이 번뜩입니다. 히나카가 프레헨을 때리는 소리는 배경음처럼 듣습니다. 신성현의 손을 딱 잡습니다.) 그건 나중에 알아봐요. 지금은 DOT가 능력을 잃은 카운터를 어떻게 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하지만 환경이 낯설어서 그런 거라는 말은 믿지 않을래요. 지하 2층 같은 수상한 걸 목격한 마당에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어요. (주욱 데려와 방문을 엽니다.) 오늘은 이만 해산하고 각자 능력을 되찾는 시도를 해보기로 해요. 다들 괜찮죠?

신성현
(두말없이 이연화를 따라간다. 솔직히 안심했다. DOT가 이연화를 떨어뜨리지 않고 내치지 않는다는 것 하나가 이미 제 두려움을 걷어내 주었다.) 다른 둘이 말한 대로 떨어지거나 가까이 붙어 있어봐도 되고 장교님의 말씀을 들어서 더… 가까이 지내는 것 전부 시도해 보자. 방법들 중 하나는 능력을 되찾게 해줄 수 있을 거야. 우린 당장 닥쳐온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시니까, 2층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해.
궁금하다고 상명하복 어기는 큰일 날 짓 저지르지 말고.

메이 란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어쩌겠어요. 제일 높은 장교님께서 그러시다니 따라야죠. 이래서 군대 오기 싫었는데! (카운터와 가까운 타이머들의 마음은 당신들과 비슷할 것입니다. 카렌을 열심히 쓰다듬었습니다.)

카렌 멜라니아
네, 상부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요. 지금도 저희의 역할을 위해 많이 봐주시는 거죠. (생기가 돌아왔습니다. 얌전히 메이의 손길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도와주어서 고마워요, 10시의 타이머, 카운터 씨. 이 빚은 나중에 갚을게요.

이연화
이건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기도 해요.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죠. (당장 신성현의 곁에 머무를 수 있는지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이 선명해서, 떠올리면 가슴이 또 세차게 뜁니다. 신성현이 안아줘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서기로 합니다.) 가요, 형. 우리 방으로.

신성현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일찍 잠들지 않으면 내일 일어나기가 힘들겠어. (참으로 많은 일이 있던 둘째 날이었다. 이연화가 겪기 힘든 일들뿐이었다. 채 가시지 못한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애써 삼켜내고, 당신을 방으로 데려간다.) 가자.
GM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건 말건 시간은 흐릅니다. 내일이 오려면 아직 길고 긴 밤과 새벽이 남아있습니다.
운명을 휘두르던 세계는 잠이 들었는지 잠잠했으므로 책임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원래 없던 능력뿐인데도…… 전부가 사라진 것처럼, 휑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훗날,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처럼.

이연화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후회라니, 신성현을 만난 것이 내 최대의 선택이었는데요. 지금 이 거리를 부정하는 건 그때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려요. 방 안에 들어온 이연화가 얼굴을 감쌉니다. 등 뒤에 신성현을 두고 심호흡합니다.) 신성현… 형, 내 이름 불러줄래요?

신성현
(지나치게 고요한 방 안이 오늘따라 신경 쓰였다. 불을 켜서 어둠이 찾아오지 않게 만든다. 달빛으로는 부족했다. 이연화에게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당신을 뒤에서 끌어안는다.) 이연화, 이연화. 내 파트너. (이불을 끌어오려던 손이 멈춘다. 당신에게 빼앗은 능력을 사용할 면목이 서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자자. 내일 맛있는 아침이 기다리고 있을걸.

이연화
…응. (눈을 감으면 자꾸만 아른거렸습니다. 신성현이 제게 만들어 준 광경이… 어린 티는 옛적에 벗어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만 속상한 걸까요. 처분당할 일도 없고 DOT에게 내쳐지지 않으리란 이야기도 듣고 왔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몸을 돌려 당신을 마주 안습니다.) 잠들 때까지 그거 해줘요. 밤하늘… 반짝이는 거.
나 대신 형이 만들어 주세요….

신성현
너는…. (네게서 힘을 빼앗은 내가 싫지 않아? 묻고 싶었지만, 아까의 이연화가 그랬듯이 정해져 있는 대답이라 묻지 못했다. 이연화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진심이 가득한 눈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당신을 부드럽게 들어 침대에 눕혀준다. 그 곁에 누웠다. 강해진 힘은 더욱 능숙하게 중력을 조절해 탁자에 놓인 병을 가져온다.) 아무것도 아니야. 자장가도 불러줄까? (가루가 스르륵, 빠져나온다.)

이연화
작은 별로, 우주에 어울리는 자장가 불러주세요. (괜찮습니다. 신성현은 저를 걱정해 안절부절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렇게 불안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 하나쯤은 능력이 돌아올 거예요. 나는 그 방법을 따라 해서 신성현에게 돌려받으면 되는 거예요. 차갑게 식은 머리가 이 기회를 이용해 네 죄책감을 자극하라 명하고 있다면, 너는 날 싫어할까요. 이것 역시… 정해져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첫날부터 훌륭하게 길들인 신성현은 저를 좋아해 줄 거예요. 몸이 노곤해집니다.)

신성현
(운명에 이끌린 행성이 서로를 끌어당겨 자신의 궤도 안에 올려두었는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제 당신에게 떨어지는 방법은 타의로 떨어지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운석이 날아와서 충돌하거나, 저 스스로 수명을 마감하는. 반짝이는 가루가 천장을 수놓는다. 잔잔한 파도의 성단을 이루어 이연화의 마음을 달래본다.)
잘 자, 이연화. (토닥토닥. 당신을 두드리는 신성현이 자장가를 노래한다.)

이연화
(가만히 천장을 구경하는 이연화의 눈동자가 별들에 의해 빛났습니다. 저 하늘은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지겨워지지 않을 거예요. 볼 때마다 달라지고 파도의 물결이 달라지니까요. 세상에 일정하게 치는 파도가 없는 것처럼요. 게다가 그의 곁에 머무는 제 색과 신성현의 색을 함께 품은 마안이… 말 못 할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연화가 예쁘게 웃었습니다.)
잘 자요, 신성현. (휑한 가슴을 신성현의 노래 소리가 채웁니다.)
GM
고요한 방 안에 자장가와 별들의 선율이 울려퍼집니다.
누구는 가까이 붙고 누구는 완전히 떨어지고. 28명의 카운터와 타이머들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도 능력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DOT를 믿어도 될까요? 여전히 알 수 없는 질문입니다.
《씬 종료》
《미들 페이즈》
◆ #Scene 5. 어떤 스케쥴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2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8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88 → 98
GM
하루, 이틀.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능력은 딱히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닌가? 어제보다 나아졌나? 싶으면 다시 한 움큼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타이머와 가까이 있었건, 멀리 있었건 비슷했지만…… 적어도 가까이 있는 쪽이 기분, 마음, 상태, 무엇이든 더 안정적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꺾인 손가락의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는 바닥을 천천히 기어 다녔습니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는가를 문득 깨달으면, 뱀의 비늘이 스치는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전부 기분 탓이겠죠.
일상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일어나고,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시시껄렁한 시간을 죽이고, 농담을 따먹고, TV를 보거나, 훈련하는 평범한 하루의 반복입니다.
능력이 사라진 적 따위 없었던 것처럼.
기다리는 것은 초조했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이연화
(익숙해지는 자신을 눈치챌 때면 더한 초조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래선 안 돼요. 나는 능력을 되찾고 먼 미래에 신성현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티 내지 않고 신성현의 손을 잡고 있으나 속마음은 갈수록 시끄러워집니다.)

신성현
(그동안 신성현은 당신을 조심스레, 신경 써서 돌봤다. 함부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당신이 태연하게 구는 것에 맞추어 함께 태연한 척 굴었지. 네 유약함을 눈치챈 날엔 그가 요청하는 별 무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어깨가 무거웠다.)
GM
그리하여 축제를 이틀 앞둔 날,
똑똑.
손님은 그때 찾아왔습니다. 교실에 앉아서 교사를 기다리던 타이머와 카운터의 시선이 모두 앞문으로 쏠렸습니다.
수업을 위해 드나드는 이들은 노크하지 않았으므로 상당히 낯선 소리가 아닐 수 없었어요.

이연화
(책을 팔랑여 넘기던 것을 멈춰 바라봅니다. 손님인가? 아니면 장교?)
GM
문가에는……

리슬러 부관
리슬러입니다. (정중한 목소리와 함께 하인리히 장교의 부관이 서 있었습니다.)
GM
신성현은 익숙한 눈치지만 당신에게는 낯선 남자였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넘긴 남자는 정장 차림새로 누런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연화
저 사람, 누군지 알아요? (높아 보이는 사람이라 속닥거리긴 힘들었습니다. 신성현 손등에 손가락 글씨를 적습니다.)

신성현
(당신의 손바닥에 대답한다.) 하인리히 장교님의 부관.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거야.

리슬러 부관
( 뱀처럼 얇은 눈꼬리가 새로운 얼굴들을 훑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건국 축제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연화
(신성현의 말을 듣고 부관을 바라본 이연화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건국 축제. 아직 능력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손을 꼭 쥡니다.)

신성현
(당신에게 잡힌 손에 미약한 긴장이 읽힌다. 건국 축제 때 카운터를 선보인다고 했지. 그 방식은….)

리슬러 부관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마지막 순서는 타이머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능력을 선보여 시간이 건재함을 알리고 세계가 평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쇼맨십이죠. 실제로 이 시기면 타이머의 얼굴을 보겠다고 수도로 향하는 관광객의 수가 대폭 늘어나곤 합니다. 보여주기식이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이벤트입니다.

이연화
(능력을 선보인다. 긴장한 신성현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습니다. 혹시나 하며 일으켜 본 능력은 역시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가 아는 것을 부관이 알지 모를지 미지수였습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움찔거리지도 않습니다.)

신성현
(괜찮아… 그가 무어라 할 기색은 없어. 이연화의 손등을 쓸었다. 스킨십 중에 능력을 일으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둡게 가라앉으려는 표정을 수습한다.)

리슬러 부관
(두 사람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잇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카운터…, (아직 그 이름이 낯선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뱉습니다.) 여러분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이니 더욱 중요하게 다뤄질 겁니다. 예년보다 화려하게, 완벽하게, 차질 없이 준비되어야겠죠.
(서류 봉투를 뒤적이며 물었습니다.) 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이연화
…네, 당연하죠. 벌써 어떻게 보여드릴지 방법을 다 구상해 놨는걸요. (이건 진짜입니다. 신성현도 모르는 진짜. 능력만 돌아온다면 당장이라도 준비할 수 있는 축제 준비의 방식은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축제 전까지 능력이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해. 반드시.)

신성현
밤새 연습하고 있습니다. 카운터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려줄 겁니다. (이연화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맞춰주었다. 자신보다 똑똑한 아이니까 이 위기를 넘길 연기일 수도, 정말 무슨 생각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리슬러 부관
아주 좋습니다, 10시의 구원자들. (미세하게 웃습니다.) 장교님께서도 기대가 크십니다. 능력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운터…의 존재. 즉, 새로운 능력자의 등장입니다. 친밀하게, 다정하게, 모쪼록 완벽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고 하시더군요. 서로 간에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결국, 본론은 그거입니다.)
기왕지사 능력을 ‘함께’ 선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는 진지한 얼굴로 ‘함께’에 악센트를 강조합니다.)
GM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이연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설마 여기에서 보여달라거나 하진 않겠죠? 자신이 생각한 방법은 ‘함께’에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에요. 초조하게 신성현의 손등을 두드립니다.) 만약… 실수를 한다거나 능력이 약해지면 어떡하죠?

신성현
(전해지는 진동에 당신을 흘긋 바라본다. 조마조마하게 리슬러 부관을 본다. 부관이 어떤 대답을 할지 예상이 가질 않았다. 혹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리슬러 부관
충분히 그런 걱정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아직 어린 타이머와 카운터들이지요. (안경을 고쳐 쓴 리슬러가 당연하단 듯 굽니다.) 괜찮을 겁니다. 타이머와 카운터의 능력이 약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도밍게즈의 평화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인리히 장교와 같을 답을.)
물론 실수는 여러분들의 몫이지만요.

이연화
…그렇군요. 더 노력하라는 소리시네요, 열심히 해볼게요. (저 사람들은 늘 자신의 맥을 탁 풀리게 만들었습니다. 하나같이 같은 말만 반복하다니. DOT 사람들은 우리를 만능의 신 정도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한숨을 삼킵니다.)

리슬러 부관
예, 혼자가 아닌 둘이니 모쪼록 서로를 보완할 수 있겠죠. 시간마저도 여러분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여러분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습니다. (그에게서는 절대적인 충성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축제 때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첫날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아침을 먹고 외출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반드시 사복을 착용하고 타이머와 카운터는 동행한다는 조건입니다.
GM
카운터의 존재가 발각되어선 안 된다며 DOT 지부 밖으론 한 걸음도 못 내밀게 했으면서. 상당히 파격적인 ‘허가’입니다. 축제이니만큼 어린 것들을 묶어두기가 안타까웠던 것인지.

이연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는… 맞는 말입니다. 지금 내 기분과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해 주고 있는 건 신성현뿐입니다. 조심히 물어봅니다.) 그래도 되는 거예요? 그동안 못 나간 만큼 분위기에 휩쓸리면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몰라요. 우린 아직 어려요. (다가온 기회를 발로 차는 질문이었으나 수상한 걸 삼키는 것보단 낫습니다.)

신성현
그동안 요청했을 땐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축제라 예외로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동행 조건은 없어도 걱정돼서 이연화를 따라갈 것 같았다.)

리슬러 부관
축제 때까지 억압하면 불만을 감당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걱정은 이해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조건을 더 알려드릴 겁니다.
만약 누군가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이야기를 걸어도 되도록 답변하지 마십시오. 공식적인 발언은 언제나 DOT와 사전 협의 후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카운터에 대해서는 더더욱이요.

이연화
(그럼 그렇지. 즐기게는 해주는데 DOT가 곤란할 짓은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가 와닿습니다. 저 정도면 의심하지 않고 나갈 수 있겠어요. 순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명심하고 따를게요.

신성현
(이연화는 걱정 없겠군.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가 자신 외에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리슬러 부관
믿음직스럽군요. 이제 마지막 용건을 전달드리겠습니다. (당부를 마친 리슬러 부관은 서류 봉투의 입구를 엽니다. 우르르, 안에서 쏟아지는 것은 팸플릿입니다.)
저녁에는 전원 전시회에 참여할 겁니다.
GM
전시회?
건국 축제와 전시회라니, 상당히 동떨어진, 개연성 없는 조합입니다.

이연화
전시회…요? 축제에 전시회도 있었나요? (푸른 장미 아치랑 이상했던 검은 호수, 알록달록한 하늘만 압니다. 아! 그러고 보니 형이랑 은색 아치문에 가야 하는데! 능력을 되찾아야 할 100가지 이유에서 101가지로 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이에요! 연인! 사랑!)

신성현
(갑자기 이연화의 불타오름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왜 이러지, 저번에 식당에서 액자에 관심이 많던데 그런 거 좋아하나? 고상한 그의 성격을 생각하니 그럴 만하기도 했다. 알아서 착각하고 참고한다.) 예전 축제 땐 전시회가 없었던 걸로 압니다.

리슬러 부관
이걸 보시면 아십니다. (웬 전시회냐고 묻는 당신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줍니다.)

이연화
(그가 건넨 팸플릿을 받아 살펴봅니다.)
GM
타이머 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구원자에 미친 이 작은 행성은 굿즈와 장난감,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기타 여러 창작물을 넘어서 이젠 전시회마저 열 모양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세계의 섭리를 담았습니다.’ 그럴싸한 홍보 문구는 지나치게 유치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니 세계의 섭리니 알 게 뭐람. 거창하게 구원자라고 부를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이연화
(사고가 멈춥니다. 기이하게 타이머와 구원자에게 목을 매는 세계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황함을 약간 담은 어린 아이의 눈이 깜빡거립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전시회 같은 거창한 걸 열어야 할까요…?

신성현
타이머의 존재가 둘이나 된 걸 기념이라도 하는 겁니까…? (이런 것과 성격이 맞지 않는 신성현은 더했다. 자기도 모르게 난처한 기색을 보인다. 싫은 건 아닌데 너무… 부담스럽지 않나?)

리슬러 부관
굳이라니요. 타이머의 말처럼 구원자가 두 명이나 나타난 시대인데 당연히 전시회 정도는 열어야 합니다. (단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게 무섭다는 점입니다.) 도밍게즈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타이머 전시회인 만큼 첫 번째로 관람한 뒤 DOT로 복귀할 겁니다.
둘째 날은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세팅하고, 리허설에 참여하게 될 거예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 첫째 날 실컷 쉬거나 하고 싶은 걸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설명을 마친 그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무언가 문제라든가 할 이야기가 있나요?

이연화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전시회 자체가 부담스럽고 문제이거니와 이건 마치… 세계에 우리의 존재를 과시해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등의 효과를 너무 노린 것 같잖아요. 하지만 높으신 부관님의 앞에서 불평불만을 막 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단호하게 전시회를 선언한 사람을 꺾긴 포기합니다.) 둘째 날 공연은 몇 시쯤에 해요?

리슬러 부관
오후 10시입니다. (공교롭게도 딱 당신들을 대표하는 시간입니다. 그가 정확히 이연화 신성현,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너무 부담 갖진 마시되 힘내시는 게 좋아 보이네요, 10시의 타이머, 카운터.

이연화
그것참… 영광이에요…. (내가 평범한 어린 아이였다면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하지 않은 카운터… 침착하게 신성현의 손목을 꽈아악 쥐었습니다.) 그전까지 리허설이나 준비하느라 축제를 둘러보진 못하는 거죠?

신성현
(이미 10시임을 알고 있던 신성현은 이번엔 두 사람 몫의 부담이 나눠진다는 것에, 당신이 하필 10시의 부담을 가진다는 것에 손을 잡아주기만 한다. 애매하게 웃는다.)

리슬러 부관
여태껏 여유 시간 없이 다들 바빴던 걸 떠올리면, 이번에는 그 수의 두 배니까 더 바쁠 예정입니다. 말했죠? 첫날 하고 싶은 걸 전부 해두라고. 그런 이유입니다. (봐주지도 않습니다.)

이연화
(하아… 잠깐 쉬고 싶어졌습니다. 신성현의 어깨에 기대서 투정을 부려야 할 타이밍인데 저 부관이 보는 동안은 왜인지 그럼 안 될 것 같단 말이죠. 광기가 느껴져요….) 질문은 다 끝났어요.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리슬러 부관
다들 하고 싶은 질문은 다 마친 것 같군요. 제가 한 말 잊지 마시고, 다음에 뵙죠. (대답을 들은 그는 형식적인 인사만 남기고 교실을 떠났습니다.)
GM
달칵, 문이 닫히고…… 수업을 알리는 종이 커다랗게 울립니다. 수학 시간이에요.
수학 교사는 늘 종이 치면 움직이니까, 한 10분의 여유가 남았군요.

신성현
이연화,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아까 망설임 없이 답하던데. (부관이 나가자마자 당신에게 속닥거린다. 말하진 않아도 부담감이 있었나 보다.)

이연화
있기야 하죠. 내 능력이 돌아와야 연습할 수 있다는 게 문제지만요. (우울하게 드디어 신성현의 어깨에 기댑니다. 다 알고 있는 수학이 벌써 지루했습니다.) 형이 밤마다 보여주는 그 광경이요. 마침 밤 10시니까 딱 어울리지 않겠어요?

신성현
…밤하늘? (표정이 풀린다. 자신 혼자가 아닌 이연화와 함께하는 밤하늘을… 조심조심 당신의 손을 매만진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너와 내가 만드는 10시의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 이번엔 더 많은 반짝이 가루를 준비해야겠네.

이연화
(신성현의 표정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을 가만 받던 이연화가 벌떡 몸을 일으킵니다. 왜인지 부루퉁해졌습니다.) 취소예요. 형이 그렇게 기뻐하니까 형의 밤하늘을 볼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건 우리만의 전유물로 남겨두면 안 돼요? 내게 가장 처음으로 보여준 밤하늘인데…. (예쁘게 처연해집니다.)

신성현
어, 그, 그럴까? 네가 싫은 건 안 할게. (당신의 말에 서서히 설득된다. 하긴, 이연화는 애정에 목마른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에게 애정을 지니고 처음 보여준 밤하늘을 남한테 보여주기 싫어할 수도 있겠다. 이연화 쓰담쓰담) 밤하늘 말고 딱히 생각 나는 건 내가 전에 하던 것들인데. 난 조절보단 힘 계열이라 공중에서 거대한 장식물들을 조립해 보여주곤 했어. 그건 어때?

이연화
농담이에요. 장교님까지 기대하신다는데 엄청난 걸 보여줘야죠. (복복복복 쓰다듬 당하는 이연화의 입가가 풀어집니다. 당황하는 당신의 얼굴이 기분 좋게 만들었습니다. 콕, 당혹감에 찌푸려진 당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폅니다.) 형이 내게 보여준 걸 푼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건 맞지만… 괜찮아요. 단둘이 침대에 누워 반짝이 가루로 날 달래주는 건 앞으로도 남에게 안 해줄 거잖아요. (볼에 쪽)

신성현
너 갈수록 장난이 느는 것 같아….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변함없는 태도의 이연화가 기특했다. 미간을 찌른 당신의 손을 잡고 손깍지 낀다. 압수야.) 널 위해 처음으로 한 일들은 전부 네게만 보여줄 생각이야. 달리 보여줄 만한 사람도 없고… 저런 DOT에게 소속된 타이머인데 함부로 일반인에게 보내줄 리도 없고. 반짝이 가루를 그대로 사용하게?

이연화
형한테만 하는 장난이라구요. 날 잘 받아줘서 느는 거예요. 전시회는 부담스러운데 함부로 보내주지 않는 건 꽤 마음에 드네요? (억지스러운 이유를 덧붙여 당신의 손을 제 볼에 가져다 댑니다. 따뜻함을 양껏 가져옵니다. 내가 괜찮은 이유는 하인리히 장교와 부관의 태도 덕분입니다. DOT에게 충성스러운 부관, 기이한 장교의 태도. 그들이 타이머와 카운터를 중요시하는 건 틀림없어요. 능력이 사라진 일이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면 이미 무슨 일이 났을 거예요. 곰곰 고민하다가,)
조그마한 빛나는 공에 반짝이 가루를 담아놔요. 내가 섬세한 조절 능력으로 형이 만든 밤하늘 가루를 따라 만들어서 우주를 흉내 낼게요. 그 뒤, 형이 힘을 가해 전부 터뜨려 주세요. 별을 눈이 오는 것처럼 내리게 만드는 거예요. (어때요? 반짝거리게 바라봅니다.)

신성현
이젠 네가 있어서 나도 마음에 들지만 예전엔 좀 외로운 조항이었어. (지금은 안 그래, 삐질까 봐 얼른 덧붙였다. 이연화의 복숭아 같은 볼살을 문질문질 만져댄다. 심신에 평화가 찾아왔다… 당신의 심장 소리와 파동은 틀림없이 안정적이었다. 이연화에게 늦은 볼뽀뽀로 보답한다.) 내 파트너는 정말 똑똑하고 능력 있는 카운터인걸. 사람들이 좋아하고 장교님도 만족하실 것 같아. 네 조절과 내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퍼포먼스니까.
능력이 돌아오자마자 연습할게. 네 타이밍을 완벽하게 잡아낼 수 있을 때까지. (희망적인 게 좋지. 당신이 괜찮아질 것을 확정한다.)

이연화
(신성현이 먼저 해주는 스킨십은 자신이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꺼웠습니다. 볼에 닿은 그의 입술이 부드럽고 더 원하게 만듭니다. 역시, 12살이라는 어린 나이가 야속합니다. 당신을 꼭 안아버립니다.) 나도, 형을 완벽한 타이머로 만들어 줄 거예요. 형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가장 화려한 성단을 만들게요. 노랑이랑 파랑 반짝이로 준비해야 해요. (부빗, 어깨에 얼굴을 묻어 체향을 깊게 들이켭니다. 살 것 같아요.)
신성현은 이연화가 평생 책임져요. (외롭지 않게.)

신성현
고마워. 날 위해 힘든 시간도 견뎌내 줘서. (당신은 미안해보다 고마워 한 마디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흐르는 금빛 머리카락이 물결 같았다. 달콤한 이연화의 버터 스카치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본인을 닮은 체향이 갈수록 달콤해졌다.) 파랑은 밤하늘의 색, 노랑은 별의 대표색. 우린 완벽한 우주를 만들 수 있을 거야. (네가 있다면 가능해. 품에 안긴 이 온도가 일상에 녹아들었다.)
평생 네 파트너가 될 운명이네. (시간이 점지한… 타이머, 카운터.)
GM
우리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떻게 능력을 선보일 것인가’를 즐겁게 상의합니다.
능력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돌아올 거라고 모두들 자신하니 준비해두는 게 좋겠죠.
생각보다 짧은 시간인 10분은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교사
늦어서 미안해요. 모두 자리에 앉았나요? (교사가 뒤늦게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이연화
네에. (몸을 바르게 세워 수업할 준비를 합니다.)

신성현
네. (교과서를 꺼내고 공책을 펼쳐요.)
GM
그는 교탁에 프린트의 모서리를 툭툭 쳐서 정리하곤 수업을 시작합니다.

교사
오늘은 3단원을 할 차례였죠.
GM
수학 수업은 유난히 지루하고, 점심시간 직전이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교사가 무어라고 떠드는데, 아, 이런…… 무슨 이상한 주문이라도 외는 것 같아요.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연화
(이런 지루한 수업은 알 바가 아니었지만 태도 불량으로 찍히는 것은 안 될 말이죠. 머릿속으로 신성현과 선보일 능력 상상을 합니다. 책상 밑으로 그의 손을 잡아 와요.)

신성현
(모범생인 신성현은 수업에 집중하여 필기 같은 걸 하고 있었다. 편안히 흘러가는 수업 중 당신이 손을 잡으려 하면 팔을 내려 내어준다.)
GM
그렇게 두 사람의 손이 겹쳤을 때,
따끔!
스파크가 튀더니 시간의 각인이 화끈화끈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당신을 떠나갔던 무언가가 다시금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텅 비었던 어딘가 가득 차는 것을 느낍니다.

이연화
(순간, 눈을 크게 떴습니다.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혀의 각인과 함께 비어 있었던 무언가가 차오르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신성현의 손으로부터요. 잠시 맡겨두었던 것이 돌아오듯 잔잔하게 일렁이는 것 같습니다. 작게 호흡한 이연화가 신성현을 돌아봅니다.) …형.

신성현
(신성현 또한 같은 것을 느꼈는지 놀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이연화가 맡겨주었던 것이 빠져나가 제 주인에게 되돌아가는 느낌. 불편하게 차올랐던 힘의 파도가 느긋하게 가라앉기 시작하고 수면을 내려간다. 그가 끄덕인다.) …응. 이연화.
GM
착각이 아니에요. 방금, 정말로 능력이 돌아왔습니다.
불을 끄는 것처럼, 그리고 불을 켜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처럼, 그리고 달이 뜨는 것처럼.
네가 ■■ ■ 것처럼, 그리고 내가 ■■■ 것처럼!
침식률이 2D10 상승합니다.

이연화
2d10 | 침식 상승 (2D10) > 13[7,6] > 13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0 → 13
[ 신성현 ] 침식률 : 98 → 85

이연화
(하필 수업 때 능력이 돌아오다니. 하인리히 장교가, 리슬러 부관이 확실히 말한 이유가 지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성현과 잡은 손을 깊게 엮어 빈틈없이 맞물립니다. 아직 모자라요. 그와 능력 연구를 했을 때처럼 더 많이, 더 가까이 붙어있어야 해요. 초조하게 손끝을 떨었습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어요. 형과 닿고 싶어요. 내 능력이 돌아오고 있어요, 형. (사실은 정말 바라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능력이 차오르는 만큼 벅차오릅니다.)

신성현
(답답하게 조이던 능력의 밀도가 당신에게 흘러가 균형을 이룬다. 성실히 들어오던 수업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적은 처음 느꼈다. 이연화도 내게 언제나 최초를 선사해 주는구나. 당신을 놓치지 않게 틀어쥐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닌 이연화의 목소리만이 제 귓가를 두드렸다.) 수업까지는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야. 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확인하자. 네 능력이 정말 돌아오는 게 맞는지. (가슴이 세차게 뛴다.)
GM
침식률이 2D10 상승합니다.

이연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기 힘들었습니다. 어떡하죠. 어떡해야 하죠… 신성현과 닿으면 항상 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입을 맞춰 내가 곁에 존재해도 된다는, 신성현의 파트너가 맞다는 증명을 확인받고 싶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선생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데 의무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어요.)
2d10 | 침식 상승 (2D10) > 12[9,3] > 12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3 → 25

신성현
(이연화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였다. 당신이 일어나자 신성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가 같이 갈게요. 어제 감기 기운이 좀 있더니 많이 피곤한가 봐요. (처음으로 말해 본 거짓말. 당신을 위해 함께한다는 것이 죄책감을 지워주었다. 곁에 생긴 존재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85 → 73

교사
(자리에서 일어선 두 사람의 표정을 본 교사는 아무 말이 없더니, 곧 작게 미소 짓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쉬어야죠. 오늘은 숙소로 일찍 돌아가는 걸 허락해 줄게요. 대신 다음 수업 땐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이연화
다음 수업 땐 반드시 열심히 들을게요. 숙제도 해오고요. (교사의 반응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신성현의 손을 잡고 그대로 달립니다.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던 두뇌는 본능에 잠식당해 제게 온기를 나눠주는 존재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둘만이 있을 수 있는 장소로 향해요.) 형, 빨리요….

신성현
(교사에게 대답했던가, 아니면 당신에게 무어라 말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든 신경을 당신에게 내놓은 그는 다른 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으므로. 당신을 따라 달린다. 교실을 빠져나가 우리가 가야 할 숙소까지 거리가 지나치게 먼 것 같았다. 신성현의 주위에서 미약한 중력이 넘실거린다. 통제하지 못할 만큼 격한 감정이라는 뜻이겠지.) 알았어. 더 빨리 뛸게.
GM
교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숙소로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돌아온 것이 맞는지, 정말 사실인지 알고 싶어, 확신 받고 싶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지 못하고 단단히 잡은 손이 뜨거웠습니다. 서로의 고동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손가락을 얽고, 온기를 나누고, 나란히 뛰는 어깨가 유난히 가까워집니다.
비로소 완전하게 충족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은 것처럼.
탁,
두 아이가 들어선 숙소의 문이 닫힙니다.

이연화
(이 상황에 다른 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숙소에 와 문이 닫히자마자 신성현을 끌어안습니다. 당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눈꺼풀에, 콧잔등에, 그리고 입술에 입을 맞췄습니다. 당신과 접촉할 때마다 닿은 부위가 화끈 달아오르고 제 안의 능력이 커져갔습니다. 이연화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거립니다.) 나… 이제 형의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축제 때 신성현의 파트너가 이연화라고 알릴 수 있어요. 형이랑 같이 10시를 장식할 수 있다고요. 내가요. (당신의 모든 것을 탐했습니다.)

신성현
(문이 닫히자마자 당신을 마주 끌어안는다. 당신이 제 이마와 눈꺼풀, 콧잔등, 입술에 입을 맞추면 그는 당신을 끌어안고 서로의 체향을 뒤섞었다. 남은 한 손까지 깍지 껴 맞잡아 제 옆에 묶어두었다. 채워지는 건 당신인데 자신까지 함께 충족되는 기분이다. 저를 바라보는 이연화의 눈동자는 하늘을 수놓은 별보다 사랑스럽게 빛났다.) 다행이야, 네게 이 힘을 돌려줄 수 있어서… 축제 때 밤하늘을 네 반짝임으로 채워줘.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주를 선물하겠지. 비로소 카운터로서 모습을 드러내 내 파트너가 되는 거야.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다. 아이들의 귀여운 뽀뽀와 다름이 없지만 정말로, 소중했다.)
GM
침식률이 3D10 상승합니다.

이연화
(달뜬 숨을 내쉽니다. 폐에 산소가 들어차는 것처럼 능력이 아주 당연하게 발휘됩니다. 신성현에게서 빠져나온 능력은 순수한 금빛 마안을 생성했고, 차츰 크기를 키워갔습니다. 당신과 맞닿은 지금 제 마음처럼 맹렬히 회전하며 허공을 잡아먹었습니다. 신성현의 품에 안깁니다. 당신의 온도를 마음껏 들이켭니다. 방 한쪽에 놓여 있던 병이 떠올라, 뚜껑을 풀어내고 반짝이 가루들을 펼칩니다. 커튼까지 가리면 밤 10시의 빛을 담은 어둠이 완성됩니다. 이연화가 웃었습니다.)
형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을 선물해 줄게요. 내게 선물해 준 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어요. 그걸 바라보고 잠드는 밤에는 내가 형의 파트너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야…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이연화의 중력이 정교해집니다. 당신에게 돌려받은 마안을 움직여 가루들로 우리의 주위를 채웁니다. 반짝이는 알갱이가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3d10 | 침식 상승 (3D10) > 14[1,10,3] > 14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25 → 39

신성현
(그가 만든 공간 안에 서 있는 우리는 마치 우주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뛰어나게 정교한 조종은 수백 수천 개의 가루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조종했으며, 허공에서 주물러 눈이 시릴 정도의 반짝임을 발휘했다. 자신이 하늘을 만들어 주었을 그날 이연화가 느낀 감정을… 지금은 자신이 느끼고 있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나도 하고 싶어. 언제나 옆에서 도와줄게. 이것보다 더 크고, 더 예쁘고, 네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킬 수 있는 우주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의 시간이 각인된 표시를 따라. 당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금빛이 거의 빠져나간 푸른 마안이 제 크기를 되찾는다. 조금만 더… 당신을 품으로 가둔다.)
네가 내 파트너인 게 꿈만 같아.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73 → 59
GM
침식률이 2D10 상승합니다.

이연화
꿈 아니에요. (설렘 가득한 목소리가 당신에게 노래합니다. 공중을 점령한 가루들을 한 데 모아 우리를 빙 둘러 돌리기 시작합니다. 파도처럼 회전하는 그것은 우리라는 행성을 공전하는 고리가 되었습니다. 얼굴을 신성현의 어깨에 묻습니다. 떨어지기 싫어요. 이제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내 품에 고정시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지금도 형의 파트너예요. 며칠 후에 알리는 건 사람들에게 신성현이 내 거라는 표시를 해두는 거예요. 남이 건들 수 없게….
(어떨 때는 일렁이며 고리에서 파도로 바뀌고, 또 어떨 때는 넓게 퍼져 우주를 다시 만들어 내는 등 중력이 이연화의 기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지러운 조절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냅니다. 당신을 끌어안은 이연화의 힘이 살짝 강해졌습니다.)
내가 다 크고… 우리가 정식으로 임관받게 되면, (한 박자 쉰 이연화가 말했습니다.)
내 소원 하나 들어줄래요?
2d10 | 침식 상승 (2D10) > 9[5,4] > 9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39 → 48

신성현
(부드럽게 웃는다. 손가락을 뻗으면 가루들이 손에 얽혀 장난친다. 들뜬 설렘과 기쁨이 잡혀 가슴에 노랫소리를 속삭였다. 오늘만큼은 이 기분에 잠기고 싶었다.) 네 말이 맞아. 너는 날 만난 뒤로 한 번도 파트너가 아닌 적 없었어. 축제 때 함께 나가는 건 그저 도밍게즈의 새 구원자의 존재를 알리는 것뿐이고. (떨어지기 싫었다. 이제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검푸른 마안이 금색 마안을 톡 건드렸다. 우리의 이마가 살포시 닿는다.)
내 파트너가 무엇을 빌고 싶길래 이런 부탁을 다 할지 기대되는걸.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다른 누구도 아닌 너잖아. (눈을 감는다. 달콤한 향기가 기분 좋았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해야겠어.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59 → 50
[ 신성현 ] BN : 2 → 0
GM
어느덧 신성현에게 향한 중력이 당신에게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마안은 서로 똑같은 크기와 힘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완전한 10시의 카운터가 된 것입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간의 각인이 서서히 사그라듭니다.

이연화
약속했어요. 내가 아는 형은 분명히 들어줄 수 있을 거예요. 간절하게 바라는 그 소원은 오로지 신성현만이 들어줄 수 있어요. (당신이 알아챌까 봐 함부로 중얼거리지도 않은 그 소원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알려줄게요. 더 이상 불안정하지도 날뛰지도 않은 능력이 저와 닿은 검푸른 마안을 둘러쌉니다. 제 것이라며 과시하듯 당신의 구체를 이리저리 만져댔습니다.) 모처럼 땡땡이도 치게 되어버렸는데, 나랑 같이 훈련실이나 안 갈래요? 거기서 축제 때 할 퍼포먼스를 함께 연습해 봐요. 연화가 엄청난 실력을 보여줄게요. (쪽. 입술에 뽀뽀합니다.)

신성현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온전한 제 힘의 크기가 돌아왔다. 눈을 깜빡인 신성현이 당신의 입술에 뽀뽀를 돌려준다. 그에게 느꼈던 죄책감이 마침내 떨어졌으니, 완전한 미소로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 귀여운 파트너의 단 하나뿐인 소원이라니. 기대에 미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야지. 네게는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까. (허공을 부유하는 이 별처럼. 답답하기보다 오히려 안락한 마안의 움직임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묘하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간지러워. 선생님께 거짓말할 순 없으니까 의무실 잠깐만 들렀다 가자. 지금 훈련실은 비어있을 거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연화
으응, 연화 부탁 들어줄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요. 난 옆에서 형이랑 같이 노력할게요. 그 누구도 형을 넘볼 수 없도록.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다 해줘요. (뭔가 목표가 약간 다르지만 기분 탓입니다. 배시시 웃습니다. 당신을 삼킨 마안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이연화도 정신차립니다.) …그러고 보니 의무실에 가라는 게 아니라 숙소에 돌아가는 걸 허락해 주셨죠? 선생님도 부관님처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의무실에 들렀다가 가죠 뭐, 대비해서 나쁠 건 없어요. (제 페이스를 되찾아 뻔뻔해졌습니다.)

신성현
네가 아니어도 평범한 사람들은 웬만해선 넘볼 수 없지 않나. 그래도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아. (세상의 누가 시무룩해 있는 동료를 좋아할까. 뻔뻔하고 예쁘게 구는 이연화가 훨씬 나았다.) 그러게… 장교님께 말한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좋으니 됐다고 생각하자. 네 능력을 되찾은 게 가장 중요한 0순위였어. (쓰담쓰담, 이연화를 칭찬한다. 투정 좀 부리면 어때. 그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GM
사방을 수놓던 가루를 집어넣고 우리의 일상을 되찾기로 합니다.
맞잡은 손은, 우리는 여전히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완전히 돌아왔으니 남은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증명받은 당신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 이연화라는 신성현의 파트너를 이 세계에 각인시키는 것.
시간은 우리의 속도를 따라 파도처럼 흐릅니다.
《씬 종료》
◆ #Scene 6. 축제 전야
매해 봄의 가운데, 4월 19일이면 도밍게즈의 건국 축제가 열립니다.
이튿날 동안 사람들은 꽃을 달고, 등을 띄우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지독하게 깨끗한 하늘 위로 매달릴 곳을 잃은 우산이 홀로 떠다닙니다. 창 너머가 왁자지껄합니다.
창밖 건물 사이사이 엮인 긴 줄마다 색색의 것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깃발, 손수건, 우산…… 다 나름의 소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장막을 비유하는 깃발.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리는 손수건. 날씨가 맑기를 기원하며 활짝 펴둔 우산. 건국 축제가 끝날 때까지 화창하기를 비는 거예요.
정말로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날은 화창합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가면, 축제 때문일까요? 가벼운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치아바타와 세 종류의 치즈, 구운 햄, 부드러운 스크램블드에그.
우유와 시리얼은 상비되어 있으니 배가 고프다면 그릇에 따라 먹으면 됩니다. 오늘의 아침 주스는 사과와 케일, 당근을 갈아 넣은 건강 주스입니다.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4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6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48 → 52
[ 신성현 ] 침식률 : 50 → 56

이연화
(어린 나이의 설렘을 채 갈무리하지 못해 신난 발걸음으로 식당까지 내려왔습니다. 물론 신성현의 손을 잡고요! 어째 능력을 돌려받은 그날 이후로 한날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끌다시피 뛰어가 익숙한 자리에 앉은 이연화가 조잘조잘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액자에서 본 것처럼 알록달록하고 시끌벅적하네요. 우린 아침을 먹고 자유시간을 즐기면 된댔죠? (섬세한 중력이 치아바타 사이에 모차렐라 치즈, 구운 햄과 스크램블드에그를 모아 샌드위치로 만들었습니다. 우유부터 한 모금 마십니다.)

신성현
(한날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이연화의 스킨십을 이제는 한 몸처럼 받아들인다. 떨어져 있다가 또 능력이 사라질까 봐, 하인리히 장교의 말대로 이연화가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각별히 신경 쓴다. 능력이 돌아온 건 사실이니까. 당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건강 주스를 마신 신성현이 끄덕인다.) 응, 첫날이라 아침을 먹은 뒤엔 외출할 수 있어. 사복 착용하는 거 잊지 말고, 길 잃지 않게 내 손 꼭 잡고. 저녁엔 전시회에 가야 해. (우유에 시리얼을 만다.)
축제 장소는 나가면 알 거야. 제일 하고 싶은 거 있어?

이연화
전시회는 진짜 가기 싫은데. 지루한 전시회보다 형이랑 데이트하는 게 더 중요하다구요. (중력표 수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은 이연화는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 발을 동동 흔들었습니다. 한 입 더 베어먹어 허기부터 해결한 뒤 또 조잘댑니다.) 푸른 장미 아치요! 거기서 형이랑 손을 잡고 아래를 거닐 거예요. 그다음엔 신경 쓰이는 검은 호수에 가보고 싶어요. (그때,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랑 두통이 찾아왔었죠. 제대로 확인해 볼 때입니다.) 형은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신성현
부관님이 직접 말씀하신 일정이라 빠져나갈 순 없어. 지루해도 조금만 참아보자. 그전까지 열심히 뛰어다니면 쉬는 시간 같고 괜찮을 거야. (천천히 먹어, 말하느라 먹느라 바쁜 당신의 입가에 묻은 빵 조각을 냅킨으로 닦아주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그곳 말이지? 처음 생긴 파트너랑 가기엔 꽤 로맨틱한 장소네… 상관없나. (당신을 애정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차분하게 시리얼로 식사하는 신성현이 고민한다.) 널 데리고 수도 골목에 가보려고. 거기 노점상이 있어서 맛있는 음식들이 많… 샌드위치 너무 많이 먹지 마. (말하다가 깨닫고 급히 말했다.)

이연화
그러다간 형이 날 업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훈련할 때도 내가 제일 먼저 힘들어하잖아요. 불공평해요. (헉, 하나를 다 먹고 새 치아바타를 집어 들려던 이연화의 손이 딱 멈춥니다. 조신하게 무릎으로 올렸습니다. 대신 우유를 쭉 들이켭니다.) 거기 가서 형이랑 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지 볼 거예요. 파트너끼리 가기 딱 좋은 장소죠. (미신이라면 DOT에 불만을 토로해 버리겠어요. 턱을 괴고 설레합니다.) 형이 제일 맛있어 한 음식들을 전부 먹어볼래요. 양손에 하나씩 들어서 돌아다니는 거 내 꿈이었거든요.

신성현
네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너 하나 정도는 부관님께 허락 맡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이연화는 깃털처럼 가벼우니 무리도 아니었다. 중얼거리는 신성현의 얼굴이 진실됐다. 다 먹은 시리얼 접시를 한쪽에 치워둔다. 당신을 따라 건강 주스를 말끔히 비웠다.) 사랑이라니… 우정에 가깝지 않아? 사랑은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 생겼을 때 해야 해. 응원해 줄게. 이번에도 저번 축제 때 내가 먹었던 음식이 나왔으려나 모르겠다. (이연화의 애정이 그런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신성현은 자신 딴에는 충고라고 정정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슬슬 가볼까?

이연화
형이 너무 체력 좋은 거예요. 나도 보통 사람은 된다구요. 됐어요, 그림이 얼마나 이상하겠어요. 정 그러면 중력으로 옮겨주세요. (부루퉁하게 말해 신성현을 따라 일어난 이연화가 당신 옆에 착 붙습니다. 당신의 팔을 끌어안고 스산하게 속삭입니다. 짙어진 웃음이 산뜻했습니다.) 형,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같이 따라 해요.
우리는 푸른 장미 아치에 가서 사랑을 나눌 거예요. (빤히 보는 눈에 매섭게 이글거립니다.)

신성현
…. (슬슬 알 수 있었다. 이연화의 저 웃음은 필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웃음이었다. 이럴 때 달래주지 않으면 엄청난 투정과 삐짐이 뒤따라올 터다. 왜인지 서늘해진 가슴을 진정시킨다.) 나중에 말 바꿔도 난 몰라… 우리는 푸른 장미 아치에 가서 사랑… 사… 사랑을… 나눌… 거야. (저 아이를 저렇게 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잠시 현타가 찾아온다.)
네게 배운 중력으로 옮겨줄게…. (기력이 벌써 빨리는군.)

이연화
좋아요. 이래야 내 파트너죠. 하나뿐인 파트너가 형이랑 사랑을 하고 싶다는데 당연히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의 무한 다정을 먹고 자란 이연화는 나날이 갈수록 뻔뻔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볼에 뽀뽀합니다.) 그런데 왜 말을 더듬어요? 나랑 사랑하기 싫어요? (장난도 한 번 쳐주고)

신성현
아니? 나는 연화랑 사랑하고 싶어서 너무 기대돼. 빨리 가서 푸른 장미 아치를 걷고 싶어. 그럼, 당연하지. (빠르게 정정한다. 전부 자신의 업보지 어떡하겠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나중이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받아주자.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나도 좋아.

이연화
흐음. (눈을 가늘게 뜨고 보던 이연화가 예쁘게 웃었습니다. 신성현은 내가 앞으로도 그의 곁을 차지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겠죠. 괜찮아요, 차차 깨닫게 하주면 되는 일입니다. 우린 아직 어리고 신성현을 주무를 시간은 충분해요.) 날이 날이니까 넘어가 줄게요. 형이 너무 기대된다니 어서 가봐요.

신성현
응… 너무 기대된다…. 이건 진심이야. 너랑 밖으로 나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 (파트너와 함께하는 첫 외출이 건국 축제라니.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당신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결심했다.) 좋아,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자.
GM
식사가 끝날 즈음, 아침부터 반듯한 차림새의 리슬러 부관이 식당에 들어옵니다.

리슬러 부관
오늘 나가볼 건가요? (타이머와 카운터들의 외출을 확인하러 온 모양입니다.)

이연화
네, 성현 형이랑 같이 갈 거예요. 사복 입고요. (깍듯하게 말합니다.)

신성현
이연화는 제가 잘 인도하겠습니다. (그의 손을 잡는다.)
GM
모처럼의 외출입니다. 게다가 건국 축제는 매년 한 번밖에 돌아오지 않아요.
우리는 당연히 축제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가기로 합니다.

리슬러 부관
알겠습니다. (별다른 반응 없이 당부합니다.) 잊지 마세요. 군들은 타이머와 카운터고 세계의 구원자지만, 동시에 개인입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법이에요. 개인적인 행동을 할 때마저 ‘구원자처럼’ 굴 필요는 없습니다.

이연화
(예상 외의 조언에 가만히 듣습니다. 구원자처럼, 이라. 사람들이 아직 어린 우리에게도 그런 걸 바란다는 거군요.)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슬러 부관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대로겠죠. 구원자처럼 굴 필요가 없다는 거지 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니까요. 저번에 말한 제 말만 기억하십시오. (무뚝콱한 대답입니다.)
GM
타이머가 어딘가를 나갈 때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따라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 건지, 오히려 부담을 갖게 하려고 이러는 건지 저의가 헷갈릴 정도로 집요한 충고였지만 그는 올해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타이머가 본인이 개인임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사회 또한 받아들인다는 것’을요.
세계의 구원자라며 추켜 올리는 하인리히 장교의 언행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행보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그러나 장교도 말리는 대신 가벼운 농담이나 덧붙입니다.) 그래, 그래. 내 훌륭한 부관께서 그렇다고 하시는군.

이연화
(마음대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수상쩍은 장교를 힐끔 쳐다보다가 그냥 웃습니다.) 알겠어요. 너무 과하게 역할을 신경 쓰지 말고 축제만 즐기다 오면 되는 거 아닐까요… 노력해 볼게요.

신성현
부담 가지진 마. 오늘은 우리에게도 즐기는 날이야. 달리 할 건 없어.

리슬러 부관
(당신이 고민하는 걸 느끼곤 다시 묻습니다. 깨를 반듯하게 편 리슬러 부관이 두 사람을 내려다 봅니다. 상당히 고지식한 얼굴입니다.) 누군가 바깥에서 군들에게 무언갈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거죠?

이연화
밖에서요? (깜빡깜빡.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빠르게 자신이 고민한 답을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행동에서까지 ‘구원자처럼’ 굴지 말라 하셨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인지, DOT에 피해를 주는 행동인지 판단하고 괜찮은 건 도와줄 것 같아요.

신성현
(자주 들어온 신성현은 익숙하게 대답합니다.)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이연화
(신성현의 말을 들으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구설수에 오를 만한 그 무슨 행동도 하지 말라는 뜻이네요.

리슬러 부관
과연, 똑똑한 카운터이십니다. (가볍게 수긍합니다.) 여러분은 신성현 타이머가 말한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 외에는 자유롭게.
GM
정말 우리를 위한 조언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문제가 될 상황에서 ‘그것은 타이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발을 빼기 위한 수작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렴풋이 리슬러 부관이라면 후자를 의도했을 것 같단 의심이 들지만…… 그래도 상관없죠. 나가서까지 체통을 지키라고 요구받는 것보단 낫잖아요.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별다른 동경도, 애정도, 호의와 영광, 감사마저도 깃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좋아했고, 싫어했고, 편히 여겼고,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바라는 대답은 그것뿐입니다.

이연화
모쪼록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그거나 그거나 비슷한 답변입니다. 그의 앞에서는 순진하고 착한 아이의 연기를 여실히 해냈습니다. 리슬러 부관… DOT에게 충성하는 직장인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신성현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애초에 상관이나 다름없는 분들을 거부할 생각 없는 신성현은 별 생각 없이 따르는 모양이었다.)

리슬러 부관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했는지 그가 작은 종이를 내밉니다. ‘외출증’입니다.) 경비실에 외출증을 제출하고 나가시면 됩니다.

하인리히 장교
첫 외출인 만큼 마음껏 놀다 오게나. 수고하게, 10시의 구원자들. (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곤 부관과 다른 아이들에게 걸음을 옮깁니다.)

이연화
(외출증을 받고 사라지는 장교와 부관을 바라봅니다. 지하 2층과 능력이 사라졌을 때 기묘했던 그들의 태도는 아직도 미심쩍습니다. 장교가 만져주었던 어깨를 툭툭 털어내, 신성현을 껴안아 힐링합니다.) 나 힐링이 필요해요, 형.
데이트하러 가요! (그의 손을 잡고 냅다 숙소로 뛰어요. 옷 갈아입어야지.)

신성현
나도 즐거운 게 필요해졌어.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끄덕였지만 이연화의 말대로 그들의 행보는 미심쩍은 것이 몇 군데 있었다. 아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기에 뒤로 밀어놓고 당신을 따라간다. 그의 온기가 짧게 머무른다.)
천천히 가, 이연화. 넘어질라.
GM
우리는 숙소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외출할 수 없었던 전까지는 입을 리 없던 사복들이 옷장 한구석에 수두룩하게 놓여있습니다.
축제에 무엇을 입고 나가볼까요?

이연화
나랑 커플티 입어요. 내 얼굴은 몰라도 형의 얼굴은 잘 알려져 있잖아요, 가릴 수 있는 후드티랑 모자를 챙겨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활동하기 편한 하얀 후드티와 청바지를 챙겨입어요. 신발은 운동화로.)

신성현
파트너가 바라는 대로 할게. 모자를 쓰는 것도 좋겠다, 돈이랑 혹시 가방은 내가 챙길게. (검은 후드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은 신성현이 휴지와 용돈이 담긴 지갑, 간단한 것들을 챙겨 맸다. 하얀 모자를 당신에게 내밀었다.) 준비됐어?

이연화
(신성현이 준 모자를 쓰고 그의 머리에도 검은 모자를 꾹 눌러줍니다. 잠시 구경한 이연화가 당신의 후드를 당겨 입술에 뽀뽀합니다. 만족스럽게 물러나요.) 가요, 형. 축제 보러!

신성현
(기습뽀뽀에 당한 신성현이 1초 정도 로딩한 뒤 정신을 차린다. 얼마나 신났으면… 모자 쓴 머리 대신 당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최고로 즐거운 날이 될 거야.
GM
커플 후드티와 활동하기 편한 운동화, 청바지.
얼굴을 가려줄 모자까지 챙겨서 기대하고 기대하던 축제로 향합니다.
우리는 경비실에 외출증을 제출하고 DOT의 정문을 나서 긴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수도 외곽이기 때문에 축제가 열리는 중심지까지 가려면 약 20분을 걸어야 합니다.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 화한 향기가 밀려듭니다. 때 이른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밴 탓입니다.
아파트 베란다며 학교의 창문마다 수놓은 새파란 장미가 시선을 훔칩니다.
누군가 장미 다발을 한 아름 안고 지나가면, 미처 챙기지 못한 눈물처럼 꽃잎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주친 몇몇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모자에 가려져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 축제의 막이 올랐습니다.
《씬 종료》
◆ #Scene 7. 도밍게즈 건국 축제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1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2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52 → 53
[ 신성현 ] 침식률 : 56 → 58
GM
도심의 풍경은 화려하기 짝이 없습니다. 건물 사이로 엮은 긴 줄마다 색색의 깃발, 손수건, 혹은 우산 따위가 걸려 화려하게 하늘을 수 놓습니다.
도밍게즈의 국화인 새파란 장미가 창틀과 문지방마다 걸려 있고, 꽤 많은 사람이 품에 안고 있기도 합니다.
늘 이맘때쯤이면 날씨가 좋아요. 하늘은 깨끗하고 바람은 살랑이며 때 이른 장미 향기가 향긋합니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에게 흰 리본을 묶은 새파란 장미라던가 풍선을 선물 받을 거예요.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광장과 골목, 공원으로 흩어집니다.

신성현
광장으로 먼저 가볼래? 거기 커다란 시계탑과 분수가 있어. 처음 나오는 수도니까 모든 곳이 잘 보이는 중앙부터 가보자. (당신의 손을 단단히 붙든다. 많은 인파에 잃어버릴까 봐 옆에 딱 붙어있었다.)

이연화
(우리를 가두다시피 했던 DOT를 벗어나 길을 걷고, 축제에 향하기까지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건 정말 데이트처럼 신성현과 단둘이 걸었다는 것입니다. 데이트가 맞지만요. 신성현과 잡은 손을 꼬물거립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봐요… 들키진 않겠죠? 형이 말한 광장 가고 나서 골목으로 가봐요. 거기 있는 노점상이 궁금해요. (아예 팔을 끌어안습니다.)

신성현
(사방을 신기하게 둘러보는 이 작은 아이의 존재가 사랑스럽기만 했다. 많은 것,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데리고 넓은 광장으로 안내했다.) 무서우면 말해, 안아서 데려다 줄 수 있어. 공원에서 익숙해진 다음에 노점상으로 갈 거야. 기대해. (정말로… 즐거웠다.)
GM
✦ 광장
흰 돌이 깔린 광장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시계탑과 분수가 있습니다. 시계탑은 분침과 초침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침만 존재합니다.
1d3 | 이벤트 발생! (1D3) > 2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에서 돌아다니는 두 명의 어린 아이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겠죠.
그중 익숙한 타이머의 기운을 느낀 아이들이 우리를 돌아봅니다!
아이 1
어… 저 사람, 신성현 닮지 않았어?
아이 2
그러게,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어쩌지? 가서 말 걸어볼까?

이연화
(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냅다 신성현을 돌아봅니다. 그의 모자를 푹 눌러 제 뒤로 가려지게 만듭니다.) 형, 나 분수 보러 갈래요. 타이머님들은 내일 오니까 그렇게 기대하셔도 오늘은 안 오세요! (끌고 가요)

신성현
타…이머님? (당신에게 모자를 꾹 눌려서 당황하던 신성현이 이쪽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눈치챈다. 어설픈 연기 실력으로 따라간다!) 으응, 형 타이머님을 너무 보고 싶어서 머리도 흑발로 염색했잖아. 내일 10시에 어떤 능력을 보여주실까? 연… 너는 어느 분이 제일 좋아? (당신의 이름을 섣불리 부르지 못했다….)

이연화
(절망적인 신성현의 연기를 어떡해야 하나 앞날이 잠시 깜깜했습니다. 이 형, 정말 간절한 건 잘 연기하면서 이럴 땐 지지리도 못하네요. 그의 잘생긴 외모는 모자로도 가릴 수 없다는 걸 깜빡 잊었습니다. 신성현의 후드 끈을 쫘악 잡아당겨 연행합니다.) 흥, 난 형 금발이었을 때가 더 좋거든요. 내일모레 탈색할 준비 해요. 세상에 흑발일 수 있는 건 신성현 님밖에 없어요. (10시가 젤 좋다고 말합니다.)

신성현
앞, 앞이 안 보여. (으악, 짧게 버둥댄다. 곧 포기하고 쫙 조인 후드가 얼굴을 덮은 상태로 당신에게 연행된다. 허우적대며 기민한 예감으로 사람들을 쏙쏙 피해 가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후드 틈을 빼꼼 열어 살폈다.) 염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탈색한다니~. 머리카락이 다 빠질 것 같아~. 그래도 신성현 님만 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연기가 절망적이다.)

이연화
(참다못해 속닥거립니다.) 형, 차라리 조용히 해요. 형은 그 입이 문제예요. 가만히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오히려 잘 먹히겠어요. (후드 끈을 더 꽉 조입니다.)

신성현
…알았어. (입을 꾹 다문 신성현이 손을 내렸다. 아주 살짝 보이는 시야에 의지해 당신을 따라간다. 입 다물자….)
GM
비록 신성현의 연기가 절망적일 정도로 어색했지만… 당신의 뛰어난 언변으로 아이들은 의심을 거둔 것 같습니다.
아이 1
뭐야, 그냥 염색한 거래. 너무 비슷해서 진짜 타이머님인 줄 알았네.
아이 2
형제끼리 놀라왔나 봐. 우리도 공원이나 갈래?
GM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공원 쪽으로 사라집니다.

이연화
(조마조마 뛰던 가슴을 졸입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뒤 조였던 신성현의 후드를 풀어줍니다.) 들었어요? 형제래요. 우리가 그만큼 가까이 보였나 봐요. 형이랑 나는 가족이 될 사이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죠. (그 가족이 그 형태는 아닐 겁니다. 꼼꼼하게 신성현의 모자를 누릅니다.)

신성현
갔어? (속닥인 신성현이 시야가 트인 후 사라진 기척을 느꼈다. 한숨을 푹 내쉰다.) 마스크도 가져올 걸 그랬다. 너랑 난 떼어놓을 수 없는 파트너 사이가 됐어, 지금도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깍지 낀 손을 당겨 분수로 이끌었다.)
여기에 새파란 장미의 목을 꺾어 던지면서 어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지도 모른대. 네 소원 이야기를 듣고 데려와 주고 싶었어.

이연화
이제 얼굴 잘 가리고 조심하면 괜찮을 거예요. 연기할 때 입은 열지 말구요. 이미 나온 이상 어쩔 수 없죠. (슥슥 흐트러진 신성현의 머리칼을 다듬었습니다. 당신을 따라 분수의 이야기를 듣자, 이연화의 눈이 반짝거립니다.) 할래요. 나 소원 빌래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위해 해줄 거죠…? (사용할 만한 장미가 있는지 두리번거려요.)

신성현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건 뭐든 해준다니까. (내가 연기를 그렇게 못하나… 중얼거린 신성현이 주변에서 장미를 팔던 사람에게 가, 두 송이를 사 온다. 당신에게 하나 전해준다.) 오늘은 너를 위한 날이야. 여기서 널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연화
(이연화가 당신의 장미를 수줍게 받아 들었습니다.) 푸른 장미는 도밍게즈의 국화,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의 상징이라고 들었어요. …형과 내가 만난 기적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꽃 받아본 적 처음인 거, 알아요? (꽃의 향기는 은은하게 달콤했습니다. 그의 얼굴이 나른하게 풀어졌습니다.) 고백받은 기분이에요.

신성현
처음이라고? (깜짝 놀란 신성현이 지폐를 꺼내 상인에게 가 아예 꽃다발을 사 온다. 품 안 가득 담길 만큼 큰 꽃다발을 당신에게 안겨주었다.) 진작 말하지, DOT에도 꽃은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우리가 만난 건 분명한 기적이겠지. 수 세기를 거쳐 카운터가 나타난 게 하필 지금이고, 또 그게 나와 너니까. 앞으로도 많은 기적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나풀나풀. 꽃잎 몇 장이 떨어져 우리의 발치를 장식한다.)

이연화
형…. (얼떨결에 안은 꽃다발에서 향기가 모여들어 더 달콤한 향을 이루었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장미 사이에 얼굴을 묻습니다. 행복해요. 이곳이 결혼식장이라 해도 믿겠어요.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합니다.) 고마워요. 형은 약속한 대로 내게 모든 처음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어요.
내가 빌 소원, 알려줄까요. (그가 처음 건넨 꽃은 소중히 꽃다발 사이에 꽂습니다. 저걸 꺾긴 싫었습니다. 꽃다발 중 하나를 꺼내 목을 꺾고, 분수에 던집니다. 사르르 미소 짓습니다.)
신성현이 평생 이연화의 행복한 파트너가 되게 해주세요.

신성현
(이연화가 장미 목을 꺾어 분수에 던지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을… 멍하니 구경한다. 물방울이 반짝거리며 튀는 배경이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푸른 장미가 푸른 물속에 빠져드는 게 느리게 흘렀다. 겨우 입술을 연다.) 난 한 번 한 약속은 절대로 어기지 않으려 노력해.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평생을 확신할 순 없지만, 모든 것을 걸고 지킬 거야. (자신의 꽃송이를 꺾어 분수로 빠뜨린다. 두 손을 모은다.)
이연화가 평생 신성현의 행복한 파트너가 되게 해주세요. (똑같은 소원을 빌고 고개를 든다. 옅게 웃는다.) 이제 이루어질 일만 남았어.

이연화
이건 어딘가에 계실 신님도 무시할 수 없겠는걸요. (같은 소원을 빌 줄 몰랐던 이연화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당신의 눈 색을 닮은 꽃다발을 한껏 껴안았습니다. 무려 타이머와 카운터가 빈 소원인데. 설마 무시하진 않겠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신이 조금이나마 기대하고 싶었습니다.)
난 형이 얼마나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한 번 정을 준 사람에게 어디까지 다정해질 수 있는지 알아요. 내가 살아있는 증인이에요. (그의 애정은 시간에 따라 달콤하고 달콤해져서, 이 꽃향기와 견줄 수 없는 따스함이 됩니다. 빠져나갈 수 없어요.) 그래서 약속을 지키려 할 것도 알고 있어요.
이기적인 소원 하나만 더 빌게요. 신성현. (한 송이 더, 꺾습니다. 한 번에 하나 하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분수에 던져 넣은 이연화가 당신만을 바라봅니다.)
내게만 다정해지세요.

신성현
(느리게 호흡한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이연화의 체향과 뒤엉켜 한층 무겁게 달콤해진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이건 아마 이연화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와 그런 것이리라. 나의 애정과 나의 모든 것을 바라는 그 이기적인 소원이. 이연화에게 가까워진다. 그의 모자를 살풋 들어 드러난 이마에 입술 도장을 찍었다.) 나는 타이머야, 이연화. 필연적으로 세계 곳곳을 다정하게 바라볼 사람이 되어야 해. 하지만…
이연화에게 신성현의 존재를 내어줄 순 있어. (다정과 이것은 너무나도 다른 개념이었다. 신성현은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언정 결국 그가 향하는 곳은 당신의 곁이 될 것이다. 당신의 머리칼을 쓸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타이머의 하나뿐인 카운터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

이연화
(그럼 그렇죠. 신성현의 성격으로 예상한 대답이라 크게 실망하진 않았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돌리려는데, 이어 들려온 말은 제 생각을 사라지게 하기 충분한 대답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얼굴을 한 이연화가 말을 더듬습니다.) 내게… 존재를, 존재를 내어주겠다고요? (그건 너무, …너무 과분한 사랑이었어요. 결국 신성현의 모든 건 이연화만 가질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욕심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타이머 신성현을 손에 쥘 사람은 내가 될 것입니다. 벅차오른 말투로 되물었습니다.)
평생 나만 바라봐 줄 거예요?

신성현
응. 어차피 DOT의 타이머가 있을 곳은 DOT밖에 없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파트너가 된, 파트너가 될 너밖에 없어. 내가 평생 함께할 사람. (고작 곁에 있어 준다는 말을 저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당신이 저를 곁에 두어 따뜻함을 알게 된 것처럼, 자신도 외로움을 씻어줄 온기와 대가 없는 애정을 알았다. 쥐었다가 사라지는 게 더 괴로운 법이다. 한 번 생긴 소중한 존재를 놓고 싶지 않았다.)
이거면 마음에 들어?

이연화
그냥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이을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푹 숙인 고개는 당신을 닮은 꽃다발에 파묻힙니다. 귓가가 붉어져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을 닮아버린 거죠. 놀란 심장이 두근, 두근 큰 소리를 냈습니다. 홱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제 다른 소원이 필요 없을 정도예요.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아요.
형… 한 번 더 뽀뽀해 주세요. (손길이 고픈 강아지의 얼굴입니다.)

신성현
다행이다. 다정한 건 약속 못 해줘서 속상해할까 봐 걱정했어. (기꺼이 당신에게 다가간다. 제 모자와 당신의 모자를 틀어 쪽… 부드러운 입술을 눌렀다. 당신처럼 붉어진 얼굴이 햇살 아래 드러난다.) 잘 어울려, 이연화. (나를 닮은 그 장미와.)
GM
뎅―, 마침 시계탑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가족 나들이, 데이트를 나온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뛰어다닙니다.
한껏 들뜬 우리의 심장처럼 말이에요.

이연화
(한동안 입술을 꾹 닫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에요. 그냥, 입을 열면 신성현이 눌러준 입술의 온기가 날아갈 것 같았어요. 붉어진 얼굴을 꽃다발로 가립니다.) 나… 배고파졌어요. 형 삼키기 전에 뭐라도 먹을래요. (진짜 위험해요.)

신성현
잡아먹어…? (알 수 없는 표현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이 기분은 여태 축제를 즐기던 날 중 최고였다. 당신의 빈 손을 잡는다.) 이제 축제의 꽃인 노점상에 가봐야겠다. 꽉 잡아, 이연화. 놓으면 안 돼. (당신을 데리고 골목쪽으로 데려간다.)

이연화
그런 게 있어요. (얼버무린 그가 당신을 쫄래쫄래 따라갑니다. 달아오른 얼굴이 기분 좋은 바람에 천천히 진정됩니다.) 내가 형을 잃어버릴 일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걱정 마요! (타닥, 바닥을 박찹니다.)
GM
✦ 골목
수도의 골목 곳곳에는 노점상이 열렸습니다. 온갖 축제 음식은 다 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소스를 바른 꼬치구이라거나 과일을 정교한 모양으로 깎아 설탕물을 입힌 사탕, 바람에 흔들리는 색색의 솜사탕, 캐러멜을 입혀 튀겨낸 과자들.
수도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전부 가게를 접고 노점을 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념품이나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팔기도 합니다.
가장 인기인 것은 이번 세대의 타이머를 본떠 만든 봉제 인형이에요.
골목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이연화
형, 나 저거! (이번에도 신성현을 끌고 노점상 앞으로 갑니다. 신성현을 본떠 만든 봉제 인형이요! 하나를 들고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나 이거 갖고 싶어요… 연화 사주세요….

신성현
그, 그걸? (눈동자가 흔들린다. 신성현의 성격상 저런 걸 정말 부끄러워할 사람이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안 돼, 를 외치기엔 당신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나… 하나만이야. 대신 나 안 보이는 곳에 보관해 둬…! (눈을 질끈 감고 하나 사줍니다.)

이연화
응! 연화 침대에 두고 형 잘 때만 꺼내 안을게요! 방 같이 쓰는데 안 보이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도로 가져갈 세랴 신성현의 인형을 꽃다발과 함께 꼬옥 안습니다. 당신의 팔도 끌어안고요.) 그치만 실물이 제일 좋아요. 질투하지 마요.

신성현
질투라니, 인형에 질투 같은 거 안 해. 이상한 소리 마. (인형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네, 같은 방이라 필연적으로 저걸….) 놀리지만 말아줘… 부끄러워. 네 인형이라면 또 모를까. (당신을 설탕물 입힌 과일 사탕 가게로 데려간다. 시야를 돌려야겠다.)

이연화
난 형이 내 인형 가지고 있으면 질투 날 것 같은데요. 형은 나만 바라봐 주겠다고 했으니까 인형에 눈 돌리지 마요. 연화 화낼 거예요. (싱글벙글 신성현의 쑥스러움을 즐깁니다. 하나 사준 보답으로 조신하게 따라갑니다.) 내 인형 갖고 싶어요? (달콤한 샤인 머스캣 사탕을 가리켜요. 연화는 저거.)

신성현
(음. 사과 사탕과 샤인 머스캣 사탕을 골라 산 신성현이 당신의 얼굴을 본다.) 넌 충분히 인형처럼 예쁘고 귀여워서 인기가 정말 많아지겠지. 다만 인형이 너는 못 따라갈 것 같아. 본인이 옆에 있는데 왜 인형을 탐내겠어. …딱 하나만. (탐나긴 하나 봄… 멋쩍게 사탕을 내민다.)

이연화
앞이랑 뒷말이 다른데요? (볼에 바람을 채워 넣을까 하다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칭찬을 들어 넘어갑니다. 신성현 인형의 볼을 쭉 잡아당깁니다.) 내가 주는 것만 받아요. 나도 형이 사주는 것만 받을게요. 이러면 됐죠? (와삭, 포도알 하나를 바삭한 설탕물과 함께 깨물어 먹어요. 달콤해. 토도도 솜사탕 가게로 향해요. 연화 이것두.)

신성현
착각이야. 서로가 주는 걸로 받으면 부끄러워질 인형은 안 가지고 괜찮겠다… 그렇게 하자. (당신이 하는 것을 무척 떨떠름하게 구경한다. 날 저렇게 하고 싶나? 괜스레 볼을 문질거린다. 솜사탕 앞에 멈추어서 꽃 모양 솜사탕을 사 꽃다발 사이에 끼워준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싶다는 바람을 기억했다.) 달콤한 건 그것까지만 먹어. 이 상해. (조금만 폭 뜯어서 당신 입 속에 넣었다.)

이연화
잔소리쟁이. 평소에 형이 준 야채랑 이것저것 다 먹잖아요. 오늘은 달콤한 거 많이 먹을 거예요. (혓바닥에 녹아 감겨드는 솜사탕을 꿀꺽 삼켜, 와앙 크게 베어 뭅니다. 꽃의 1/10이 사라졌습니다. 우물우물.) 캐러멜 과자 하나 더 사주기랑 형 인형 사주기 중에 뭐 할래요? (화사하게 웃어요)

신성현
둘 다 끈적해서 충치 생긴다니까. (말 안 듣는 동생을 둔 형의 심정이 이러할까. 챙겨온 수건으로 설탕이 잔뜩 묻은 그의 입가를 벅벅 문지른다.) …과자 몇 개 먹을래? (그래도 인형은 정말 부끄러웠다… 당신에게 두 손을 들고 지독하게 단 사과 사탕을 기계적으로 씹는다.)

이연화
형은 날 못 이겨요. 오늘 하고 싶은 대로 해주겠다고 한 게 바로 형이니까요! 게다가 우리에겐 치유 타이머와 카운터도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과연 합리적인 이유입니다. 당신에게 챙겨지고 야무지게 단 것들을 섭렵한 이연화가 신나게 캐러멜 가게로 갑니다.) 가방에 들어갈 만큼은 살 거예요. 많이 먹으면서 공원 가요. (단 것 싫어하는 신성현의 떨떠름한 얼굴이 진풍경이었습니다.)

신성현
(그렇다. 오로지 당신에게 맞춰주기 위해 입맛에 맞지 않은 달디단 과자들을 씹어 넘기는 것이다. 설탕이 볼과 혓바닥을 아리게 만들 때마다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필사적으로 웃는다.) 꽃다발이랑 인형도 넣어야 하니 1/3로 타협하자. 치유 능력을 이런 곳에 쓰면 메이 타이머가 신경질 부릴 거야.

이연화
1/3…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형치고는 많이 양보했네요, 좋아요. 내가 언제 이렇게 나와서 군것질을 해보겠어요. 하루에 세 개씩 아껴먹을게요! (어느새 과일 설탕물 사탕은 다 먹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해준 게 있는데 충치 한 번 정도는 치유해 주겠죠. (뻔뻔)

신성현
(하아… 이연화의 머리는 도무지 못 이기겠다. 그가 하는 말이 퍽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게다가 은은하게 마음을 자극하는 말에, 속으로 백기를 든다.) 세 개만 먹는지 검사할 거야. (쓰담쓰담… 캐러멜 과자는 가방의 1/2을 샀다고 합니다.) 액세서리나 기념품은 괜찮아?

이연화
(아까보다 더 밝아진 얼굴입니다. 아이의 군것질 혀는 못 속입니다. 솜사탕을 반 정도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기념품… 형 인형으로 괜찮은 것 같아요. 액세서리는, 갖고 싶은 게 있지만 나중에요. 형 것도 사서 같이 줄 거예요. 아주 비싸고 예쁜 걸로요. (당신의 어깨에 기댑니다. 상상만으로 즐거워요.)

신성현
(이연화에게 건강하지 못한 것을 먹이는 건 아닌지 양심이 콕콕 아픈 신성현은 최대한 모른 척했다.) 비싸고 예쁜 거? 너무 무리하진 마. 네가 주는 것은 전부 귀하게 여길 수 있어. 그렇다면 소화도 할 겸 공원으로 향해야겠네. (천천히 걸어간다.)

이연화
내가 생각하는 걸 직접 보면 말이 달라질걸요? 곁에 있어 주겠다는 형에겐 가장 좋은 것들만 주고 싶어요. (당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거예요. 데이트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거기 푸른 장미 아치가 있다지…. (후후….)

신성현
(장미 아치 진짜 기대하는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표정은 햇살 같은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호언장담하는 선물을 기대해 볼까? 다만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진짜야.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걷는 이 시간이 귀했다. 그것도 너랑 함께하는 첫 축제라 더 그런가 봐. 자박자박 울리는 두 걸음이 마음에 들었다.)
GM
✦ 공원
골목을 빠져나와 광장에서 조금 걸으면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나옵니다. 꽃과 나무를 잘 가다듬어 조경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공원의 한편에 설치된, 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 모양의 터널을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어요. 조건은 반드시 손을 잡고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원의 구석에는 낡은 교회가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이연화
형, 여기. 여기로 와요. (솜사탕과 과일 사탕은 다 먹어 손이 비었습니다. 물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은 손이 신성현을 잡았습니다.) 놓으면 안 돼요. 연화한테 혼나요. 우리 파란 장미 아치 걸을 거예요. (총총총 달려가요.)

신성현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그렇게 궁금해? (순순히 손을 잡고 따라간다. 장미 아치가 시작되는 곳에 서서 깍지를 낀다.) 이러다가 아름다운 카운터 씨의 사랑을 내가 빼앗게 되는 건가 몰라.

이연화
사실 이날을 위해 기다렸어요. 형과 아치를 걸어서 사랑이 이루어질 이때를. (심호흡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임해야 하늘이 들어줄 거예요.) 카운터 씨의 사랑은 사실…
신성현 타이머랍니다. (한 발 내딛습니다.)

신성현
나를? 그럼 넌…. (한 발. 장식된 푸른 장미에서 떨어진 꽃잎을 우리가 밟고 지나간다. 꼭 쥔 손을 어루만진다.) 나랑 사랑이 이루어지고 싶어? 그냥 애정이 아닌 사랑을.

이연화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사뿐사뿐 아치 터널을 통과하는 이연화는 살풋 웃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잡은 손을 살랑 흔들어 걸어갑니다. 흩날리는 꽃잎이 바람에 불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갑니다. 쉿, 제 입술에 검지를 대었습니다.) 지금은 비밀이에요. 언젠가 알려줄게요. (지금은 우리가 너무 어리고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너무 일러요.)

신성현
(이연화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자신에게 주는 애정과 감정은 무겁고, 진실된 것이라는 건 모를 수 없다. 하지만 그 감정이 어느 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떨 땐 애정 같다가도 어떨 땐 알 수 없는 달콤한 꿀을 삼키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 우리가 성인이 될 때 졸업 파티를 해. 그리고 정식 임관을 받지.
그때 다시 여기에 와서… 말해줄래?

이연화
정말요? (정식 임관은 예상했지만 졸업 파티가 있는 건 몰랐습니다. 사관 학교에 졸업 파티라니, 챙겨줄 건 다 챙겨주네요. 어느새 아치의 끝에 도달한 이연화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손은, 아직 놓지 않았습니다. 햇빛을 등지고 당신의 손등에 입을 맞춥니다.)
약속할게요. 그때 내 마음이 뭔지 형에게 알려주기로. 그럼 형은… 내 소원을 하나 들어줘야 해요. 절대로 잊지 말아요. 장미 아치 아래에서 한 우리의 말을.

신성현
이 자리에서 약속할게.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꽃 사이에 서 있는 우리들은 서로 한 가지 약속을 주고받은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곳이 과연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이루어 줄까. 마지막 한 발자국을 걸어 아치의 끝에 선 신성현이 햇살을 받는다. 손등이 화끈거렸다.)
뭣하면 교회에서 맹세해도 괜찮고. (농담조로 낡은 교회를 가리킨다.)

이연화
감당할 수 있겠어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쳤습니다. 당신을 그대로 이끈 이연화가 낡은 교회로 갑니다.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아 마음껏 대화할 수 있는 곳이에요. 무언가를 떠올린 이연화가 불현듯 묻습니다.) 형은 결혼식장 결혼식이 좋아요, 교회 결혼식이 좋아요?

신성현
감당하지 못할 건 뭐가 있겠어. (공원 구석 낡은 교회까지 간 신성현이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처음 들러보는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솔직히 결혼을 생각해 본 적 없어. 아직 15살이잖아, 너무 먼 미래지. 굳이 생각하자면… 그래, 상대가 좋아하는 쪽을 고르지 않을까 싶어. 어느 쪽이든 남이 좋아하는 곳은 분명 나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GM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떨어지는 색색의 빛은 꽤 장관입니다. 먼지 냄새가 묻어나지만, 기도를 올리는데 장소는 중요치 않죠.

이연화
우리 형은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세기의 사랑꾼이 될 것 같아요. 본인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챙기는 신랑이라니.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입니다. 그것이 뭔진 알려주지 않고 교회 안을 거닙니다. 텅 빈 교회의 먼지를 피해 안쪽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걱정 말아요. 형에게는 내가 가장 어울리는 장소들을 꼽아줄 거예요. 타이머의 결혼을 소박하게 치를 순 없어요. (이연화는 꼭 당신의 결혼식을 상정하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신성현
내가 결혼식을 정말 올릴지 아닐지 알 수 없는데도? 예언의 타이머, 카운터였다면 모를까. 그들도 우리 개인의 작은 미래까지는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정말 궁금해지긴 했다. 당신을 따라 안쪽에 선다. 높은 단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모습이 되었다.)
넌… 어느 쪽이든 어울릴 만한 사람이야.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랑이 될 예감이 들어. (지금도 반짝이는데 크면 얼마나 더 반짝일까.)
GM
단상에 올라선 당신은 문득 어느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리로 오세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선 ■■■■ 해요…….”
어쩐지 애절한 목소리가 속삭이다 흩어집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연화
(열리던 입이 다물립니다. 날카로운 눈이 주위를 재빨리 둘러봤습니다.)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신성현
아무것도 안 들렸는데? 왜, 이상한 거라도 있어? (전혀 듣지 못한 모습이었다. 당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긴 하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이연화
이리로 오라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한다고. 그런 소리였어요. 애절한 목소리가… 수업 중에 들었던 소리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복잡한 눈빛으로 물러납니다.) 설마 예언의 타이머, 카운터를 언급했다고 이러는 건 아니겠죠.

신성현
설마, 우리가 같은 예언자도 아니고. 정 그렇다면 나중에 부관님이나 장교님께 말씀드려서 수색을 요청하자. 여긴 인기척이 없어서 짐작 가는 게 없어. (당신의 어깨를 감싸 달랜다.) 별일 아닐 거야. 괜찮아.

이연화
우응…. (대답과 다르게 아직 미심쩍습니다. 이 찝찝한 기분은 꼭… 호수를 봤을 때와 같은….) 호수. 호수는 어디에 있어요? 거기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전에 신경 쓰이던 게 있었거든요. 무언가를 잊은 느낌이요.

신성현
호수는 여기 공원에 있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가 코마니 호수야. (당신을 데리고 교회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바로 저쪽에 위치한 검은 물 앞에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한 번 가볼까.

이연화
고마워요. 답례로 내가 좋아하는 식장을 알려줄게요. (신성현의 도닥임으로 침착해졌습니다. 호수를 향해 다가가며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을 건넸습니다.)
연화는 화려한 결혼식장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래요. (누군지는 신성현만 모릅니다.)

신성현
화려한 결혼식장 아래 결혼하는 이연화…. (자신만 모르는 상대를 상상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설레한다.) 틀림없어. 상대가 또 반할 만큼 성대하게 준비하자. 파트너의 결혼식은 곧 내 가족의 결혼식이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이연화
(이 정도 했으면 슬슬 눈치챌 만한 말을 아직 어린 신성현이라 모르나 봅니다. 한숨을 푹 쉬어 절레절레합니다.) 형은 내가 형 한정으로 인내심 많은 걸 고마워해야 해요. (흥, 총총 앞서가 버립니다.)

신성현
…이게 아닌가? (당연하지. 15살에다가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애라 더 눈치가 없었다. 머리… 모자를 긁적였다. 당신을 빠르게 따라간다.) 같이 가, 이연화.
GM
✦ 코마니 호수
축제가 아니라도 유명한 관광지로 꼽히는 코마니 호수입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호수라서 물에서 짠맛이 나고, 물살이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호수의 바닥은 반짝입니다. 자갈과 모래 사이에 묻은 소금기 때문입니다.
호숫가에는 옅은 색의 잔디가 자랐습니다. 봄이 찾아오는 시기, 희고 노란 들꽃이 바람을 따라 고개를 흔드는군요. 호수는 온통 검고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종이꽃이 몇 송이 떠다닙니다.
호수에 들어갈 수 없도록 세워둔 울타리에는 매달리지 마세요. 삭막한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신성현
(근처 안전선에 멈추어서 당신을 가까이 가지 못하게 붙든다.) 평소에는 바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데, 보기보다 수심이 깊어 성인도 발을 딛지 못하는 호수야.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는 경우가 왕왕 생기곤 했어. 조심해.

이연화
(아직 별 느낌은 없는데. 고개만 쭉 빼 들어 호수를 봅니다.) 우리는 빠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혹시 저기에 들어가면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신성현
…빠져본 적이 없어서 그건 잘. 못쓰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당연했다… 당신의 허리를 잡아 넘어지지 않게 받친다.) 코마니 호수가 유명한 건국 축제 시즌이 되면 수면의 색이 변하기 때문이지. 1년 365일 중 단 이틀, 호수의 물은 새까맣게 변해. 네가 특별한 느낌을 느낀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몰라.

이연화
…그건 그렇죠. 빠져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는걸, 참. (나도 당연한 걸 물었습니다. 살펴보기를 포기하고 당신에게 기댑니다.) 평소엔 맑아요? 왜 변하는지 궁금한데… 이유는 모르는 건가요? 새카맣게 변하는 호수라니, 불길한 징조에도 사람들이 많네요.

신성현
저런 점이 오히려 관광지로 손꼽혀서 그래. (당신과 함께 호수를 구경한다. 새까맣기 그지없는 물.)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신의 섭리라고 여겨. 바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색을 띠는 호수는… 무엇을 탄 것도 섞은 것도 아닌데 그저 그렇게 어둠에 물든다더라. (이어서 속삭입니다.) 제13구역을 연상시켜서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어.

이연화
사람들은 특별한 것에 열광하곤 하죠. 타이머가 도밍게즈의 열렬한 우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요. (자신도 곧 그렇게 되겠죠. 소금기 섞인 물 향이 넘실거립니다.) 어둠이 녹아든 심해. 듣고 보니 비슷하네요. GPS에도 인식되지 않고 돌아오지 못하는 구역과 저 호수가. 둘이 관계가 있을까요. 세상에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신성현
나는 시간이 더 지나서 언젠간 13구역과 호수의 비밀이 밝혀지리라 믿어. 저 호수도 13구역처럼 빠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니까. 물론 시도는 못 해. (근처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보안관을 흘긴다.) 축제 전야부터 호수에서 추모식이 거행되는데, 우린 안 해.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간중간 호수에 떠 있는 종이꽃을 말하는 겁니다.)

이연화
오랜 세월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만큼 쉽게 밝혀지진 않겠지요. 하지만 불가능이란 없어요. (우린 이미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신성현의 꽃다발을 어루만졌습니다. 검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종이꽃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기리는 종이꽃이죠? 나라도 안 하겠어요. 미래가 될지 모르는 광경을 추모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눈빛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신성현
기적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지. (그런 당신을 다정하게 안는다. 꽃다발이 코끝을 간지럽힐 정도가 된 뒤에 떨어진다.) 이 무렵 호수에 들리는 사람들의 목적은 거의 타이머의 추모라 해도 손색이 없어. 추모는 그들의 마음만으로 충분해.
GM
추모식은 역대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손수 접은 종이꽃을 호수에 띄우는 방식입니다.
지난 세대 타이머의 가족들이라면 대부분 이곳에 들렀다 간다고 합니다.
감히 도밍게즈의 모든 국민, 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꽃을 띄웁니다.
검은 죽음 위에 떠다니는 종이꽃들은 마치 등불처럼 희게 빛납니다. 축제가 끝나고, 호수의 색이 다시 변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종이꽃들은 모두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호수 아래로 잠깁니다.
종이꽃은 아주 얇고 부드러운, 물에 잘 녹는 재질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걸핏하면 찢어지곤 하는데 찢어진 꽃을 띄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지므로 주의해야 한다네요.
이것은 그저 신성현과 당신 또한 겪게 될,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입니다.
죽은 후에 기리는 일이 무에 중요할까요?
일평생 세계를 위해 살고, 사람을 구원하고, 죽은 후에도 결국 구원자로 추모받는 삶.
누군가는 명예롭고, 영광되며, 훌륭하다 칭송할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미묘한 감상을 남깁니다.
호수를 가만 바라보다 보면 종이를 파는 노인, 함께 종이꽃을 접는 연인과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가 호수 둘레를 돌아다닙니다.

이연화
(실상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현재. 신성현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그의 품을 느낍니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돌아와 꽃다발에 위로받습니다. 중력을 약하게 일으켜 나아가지 못하는 종이꽃을 밀어줍니다. 수많은 꽃이 반짝이는 게 꼭… 우리가 만드는 우주 같습니다.) 전처럼 이상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아요. 천천히 둘레를 산책해 볼까요, 사람이 많아서 가만히 서 있으면 부딪칠 것 같아요.

신성현
(당신이 힘을 일으켜 종이꽃 밀어주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주 작은 힘이기에 바람으로 꾸며 남들이 눈치채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신성현은 그들을 보며 그저 받아들일 미래라고 여길 뿐입니다. 자신에게도 현재의 당신이 중요했으므로.) 좋아. 괜히 부딪혔다가 모자라도 떨어지면 큰일 나겠지. 천천히 울타리를 따라 걸으면 돼. (당신과 나란히 서 걷는다.)

이연화
(신성현과 만난 건 좋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알 수 없는 소리, 하인리히 장교의 지하 2층, 최초로 나타난 카운터의 존재와 사라지거나 향상되는 능력…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이럴 땐 걷는 게 최고예요.)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잘 붙들어요. 형 얼굴 잘생겨서 드러나면 안 돼요. (그의 곁에서 느긋하게 걸어갑니다. 종이를 파는 노인 쪽입니다.)

신성현
(당신의 말을 듣고 모자를 푹 눌러쓴다. 이연화의 것 또한.) 마찬가지로 사랑스러운 내 카운터께서도 드러나면 안 될 것 같다만, 예쁘게 생겨서 오히려 이목이 쏠릴 것 같아. 조심해서 걷자. (사박사박.)
GM
호수의 둘레를 따라 걷던 우리는 가까이에 있던 종이를 파는 노인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러나 얇고 흰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둔 사람은 신성현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종이를 파는 노인
어이, 자네들도 꽃을 접고 가게! (권하기만 합니다. 나이가 많아서 못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이연화
이런, 우리는 아까 추모하고 다시 들른 거예요. 조금만 더 일찍 말해주시지. (능청스레 위기를 피해 갑니다. 우리가 추모할 순 없어요.) 어르신도 종이꽃을 접으셨나요?

신성현
(저를 알아보지 못한 노인에게 안심하고 후드를 쓴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행동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종이꽃은 양보하겠습니다.
종이를 파는 노인
그래? 그렇담 어쩔 수 없지. (흰 종이를 정성스런 손길로 쓸어내립니다.) 당연한 소릴. 자네들은 타이머를 본 적이 있나?
내가 젊었을 적에 말이야, 그래, 딱 자네들만 했을 때. 그때 우리 마을에 큰 홍수가 났어. 그리고 나도 물을 잔뜩 먹고 판자에 매달려 정처 없이 쓸려 다니고 있었지. 딱 죽을 뻔했다니까. 제1시의 타이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꼼짝없이 죽었을 거야.

이연화
(바로 옆에 타이머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괜히 소란 일으켜 신성현과의 귀중한 데이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이연화는 쭈그려 앉아 노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도밍게즈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해들을 처리해 주시는 분들. 안타깝게도 아직 보지 못해서 내일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에요.

신성현
(시선을 회피했다. 인형은 몰라도 이런 것은 이미 각오한 일이라 부끄러워하진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는 게 거짓말은 아니군.)
종이를 파는 노인
사람이 많을 테니 자세히 보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걸세. 어찌나 몰리던지, 쯧쯧. (흔쾌히 알려주기로 한 노인이 비밀스레 이야기합니다.) 그 뒤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제마다 추모의 꽃을 띄우러 온다네. (그는 무척 감사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 깔린 자랑의 기색을 읽을 수 있습니다. 타이머를 향한 감사는 분명히 진심이나 그보다 타이머에게 구원받은 순간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유별나게 여기고 있어 보입니다.)

이연화
(세계의 구원자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받은 구원인데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요. 당장 나만 해도 신성현을 만나 마음을 쏟아붓고 있잖아요. 당연한 섭리입니다. 기대는 자를 향한 마음이 커져가는 것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챙겨온 종이꽃 값만큼의 동전을 내려두었습니다.) 이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보답이에요. 내일 꼭 타이머님을 뵙고 찾아올게요.

신성현
(함께 종이꽃 값을 내려둔 신성현이 당신의 곁에 선다. 우리의 미래가 될 그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사람들의, 도밍게즈 전체의 마음을 우리가 곧 받게 되는구나. 구원자 역할을 하며.) 내일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능력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꼭 보러와 주십시오.
종이를 파는 노인
걱정하지 않아도 타이머님들을 보러 갈 걸세. 자네들이나 인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까딱하면 밀려나기 십상이니. (얇은 종이 두 장을 손에 쥐여줍니다.) 좋은 시간 보내게나.
그런데 보러오는 게 아니라 보러 가는 것 아닌가?

이연화
(은은한 웃음으로 신성현의 손을 콱 잡습니다.) 저희가 먼저 가 있을 거란 소리예요. 늦으시면 안 알아봐 줘요! (무어라 말을 붙일까 봐 후다닥 벗어납니다. 이 형이?)

신성현
그, 그런 겁니다. (아차, 말실수를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서둘러 당신이 알려준 대로 입을 다물었다. 끄덕끄덕. 미안….)
GM
우리가 헐레벌떡 달려간 곳은 호수의 난간 쪽입니다.
그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아이가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눈이 마주쳤나?

이연화
(꾹, 꾹 신성현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처신 잘해요. 우린 아무것도 못 본 거예요… 돌아다니는 형제인 양 연기합니다.) 여기 되게 사람이 많네요. 저희도 종이꽃 하나 접어서 추모해요. (타이머는 추모 안 하니까.)

신성현
(긴장 속에 모자를 눌러 쓴 신성현이 필사적으로 침착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럴까~. 내 동생이 바란다면 뭐든 해줄 수 있지~.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접자~.

이연화
(절망감을 느낍니다. 신성현의 입에 캐러멜 과자를 넣어 봉인합니다.)

신성현
(…다물라는 뜻을 알아듣고 가만히 씹는다.)
GM
넘어갔나…? 의심했을 때, 아이가 먼저 말을 겁니다.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
아빠를 만나러 왔어요. 수도에서 일하시거든요. (앳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는 신성현과 당신에게 퍽 친밀하게 굽니다.)

이연화
(넘어가는 건 무리였나 봅니다. 신성현의 입에 과자를 넣어주면서 능숙히 대처합니다.) 그래요? 나도 아빠랑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종이꽃만 접고 가봐야겠어요. (우리가 아는 사이였나… 의아함에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핍니다.)

신성현
(단맛에 오만상을 쓰고 우물우물….)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
(평범하게 생긴 아이는 눈을 내리뜨곤. 당신과 우물대는 신성현을 번갈아 봤습니다. 아이의 눈동자가 신성현에게 꽂힙니다.)
오빠, 타이머지요?

이연화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착각이에요. (신성현의 잘생김이 결국… 그의 후드 끈을 쭉 잡아당깁니다.)

신성현
…. (끄덕, 끄덕끄덕. 앞에 안 보이는 게 다행이었다.)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
거짓말. (맑게 웃은 아이는 이미 다 아는 눈치였습니다. 난간에서 내려와 당신들의 앞에 섭니다.) 옆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 알고 있어요.
태어나서는 안 될……
GM
말을 채 마치기 전에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를 끌어당깁니다.
아이의 어머니
아리아! 위험하다고 했잖아. 어서 이리 와!

이연화
잠깐만요. (태어나서는 안 될… 뭐라고? 황급히 한 걸음 다가간다.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다.) 방금 뭐라고 하려던 거예요?

신성현
(이상한 소리에 후드 끈을 풀고 당신과 함께 다가선 채였다.) 이… 동생을 알고 있는 거야?
난간에 매달려 있는 아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중에 또 봐요, 오빠들. (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서둘러 부모의 뒤에 숨습니다.)

이연화
(안 되겠어요. 말해줄 분위기가 아니군요. 이상하게 보일 순 없습니다, 우선 물러나서 나중에 물어볼 사람을 찾아야겠습니다.) 곤란하게 해서 미안해요. 좋은 축제 시간 보내요, 친구.

신성현
(이연화의 손을 쥔다. 서둘러 떠나가는 아이를 그저 보내주었다.) 신경 쓰지 마, 이연화. 내가 장교님께 물어볼게. 넌 들을 필요 없는 말이야. (태어나서는 안 될…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의 파트너에게. 파트너가 될 사람에게.)

이연화
형. (머리가 아팠습니다. 기분 좋은 데이트의 끝에서 마주한 알 수 없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립니다. 카운터의 존재와 아이가 말한 그 말.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립니다.) 난 괜찮아요. 누가 뭐래도 이연화는 신성현의 파트너예요. (그래. 설령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였어도 신성현의 파트너라는 건 변함없어요. 그거면 돼요. 당신을 안습니다.)

신성현
(당신을 꽉 안아주었다.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해주고 싶었던 끝에서 하필 이런 말을 들려주게 되었다는 게 속상했다. 그의 등을 쓸어내린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나의 파트너야. 나는 너의 파트너고. 이건 달라질 수 없는 사실이 될 거야. (입술을 꾹 다문다.)
GM
축제 곳곳을 둘러보면 하늘이 슬금슬금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댕, 댕, 댕…… 광장의 시계탑이 울어댑니다. 벌써 저녁 8시입니다.

이연화
(신성현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신경 쓰이는 건 또 하나가 있습니다. 저 아이가 말하는 게 나일지, 내 옆에 있던 타이머인 신성현일지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둘 중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를 그 말이… 과연 누구에게 해당되는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에게서 살풋 떨어진 고개는 어느새 밝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있죠, 나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형이 처음으로 데리고 나와 준 축제에서 데이트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해보고. 너무 기뻤어요.
그래서 괜찮아요. 누가 뭐라든 내겐 형만 있으면 돼요. (손을 고쳐 잡은 이연화가 떨어져 나옵니다. 흔들림 없는 얼굴로 바라봅니다.) 가요, 우리가 있을 곳으로.

신성현
(야속하게 흐른 시간을 안타까워하던 마음은, 이연화의 밝고 단단한 웃음에 희석된다. 당신이 이토록 행복해하고 있는데 내가 속상해하는 건 맞지 않았다. 너를 위한 일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그걸로 됐다.) 나도 행복했어. 혼자가 아닌 둘이 축제를 구경하고, 둘러보고, 맛있는 거 먹고 놀러 다녀서. 앞으로 너와 함께할 축제가 기다려지게 될 것 같아.
가자. 이제 갈 곳은 누구도 우리에게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곳이니까. (아직 시간은 많았다. 당신에게 더 완벽한, 행복한 하루를 선물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급해하지 않는다.)
GM
즐거웠고, 행복했고, 참으로 설렌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 멀리 DOT의 꼭짓점이 보입니다. 우리가 떠나온,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자, 손을 잡고 돌아갑시다.
《씬 종료》
◆ #Scene 8. 타이머 전시회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10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10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53 → 63
[ 신성현 ] 침식률 : 58 → 68
[ 이연화 ] BN : 0 → 1
[ 신성현 ] BN : 0 → 1
GM
시곗바늘이 아래로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모두 로비에 모였습니다. 눈대중으로 인원을 헤아린 리슬러 부관은 서류철에 무어라고 적었습니다.
아마 전원 출석했다거나 문제없음, 이런 걸 쓴 거겠죠.

리슬러 부관
타이머 展은 내일, 축제 마지막 날에 정식 개장합니다. 오늘 군들에게 먼저 시간을 내준 것은 정식 개장 후 방문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죠.
꽤 많은 사람이 몰려오리라고 예상 중인데…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분에게’ 위험하잖습니까.
GM
무해한 국민이라도 타이머에게 집요한 팬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을 놓칠 턱이 없죠.
카운터의 존재가 소개된 후에는 훨씬 더 유난스럽게 들끓을 거라고 무미건조한 우려가 덧붙었습니다.

이연화
(방금 만난 노인이 떠오릅니다. 타이머에게 구해진 것을 자랑스러워한 시민. 그보다 과격한 팬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의 결정에 납득합니다.)

리슬러 부관
공식 일정이라곤 했지만, 견학에 지나지 않으니 가볍게 다녀오면 됩니다. 개인으로서.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묻는 시선이 뺨에 달라붙습니다.)

이연화
명심할게요. (그럴게요, 그들의 원하는 대답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착한 아이가 되어 신성현의 곁에 섰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신성현
주의하겠습니다. (가벼운 견학이라 이연화에게 부담이 될 일은 없어 보였다. 안심하고 당신의 손을 마주 잡는다.)
GM
설명을 끝낸 리슬러 부관이 자리를 비킵니다. 서관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너머에선 하인리히 장교가 몇몇 연구원이나 일반 군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슬러 부관이 앞서 걷자 곧 어른들이 먼저 DOT를 벗어났습니다.

이연화
(먼저 나서는 그들을 뒤에서 따라갑니다. 신성현에게 속삭입니다.) 형, 집요한 팬에게 피해를 본 적 있어요? 아까 들킬 뻔한 걸 생각하니까 갑자기 걱정돼요.

신성현
나는 DOT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서 그런 적은 드문데 적지 않게 일어나. 타이머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지. 너는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더 조심해.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괜찮아.

이연화
그렇구나… 다른 능력을 가진 무서움보다 동경이 더 앞선 건가. 형 말대로 연화 조심할게요. 부관님도 개인으로서 다녀오라고 했고. (사복을 갈아입고 교복 상태라 이번엔 축제 때와는 견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성현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들 지금처럼 어른들과 군인들이 함께 있을 경우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위험한 돌발 상황은 어른들이 막아줄 거라며 안심시킨다.)
GM
검은 철창을 넘어 아침에 걸었던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다시 걷자면,
시민 1
타이머다.
시민 2
하인리히 장교도 있어.
GM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말이 도화선이 되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침보다 선명한 시선이 따라옵니다. 호감, 호의, 온갖 곱고 귀한 것들을 모아 가루를 낸 것처럼 부드러운 시선들이…….
시민 3
그런데, 쟤네는 누구야?
GM
채 떨어지기도 전에, 누군가 묻습니다.
시민 4
그러게. 저런 교복도 있었나?
시민 5
본 적 없는데. 다음 기수의 타이머 아냐?
시민 1
그럴 리가 있어? 타이머는 한 세대에 하나뿐이잖아.
시민 2
그럼… 타이머의 부관이라던가?
GM
질문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꼬리가 꼬리를 잘라, 계속해서 새로운 꼬리가 돋아납니다.
타이머의 근처에서 걷는 카운터의 존재가 퍽 이질적이었던 모양이에요. 하긴,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하죠.

이연화
(입을 꾹 다뭅니다. 신성현의 충고를 기억해 시선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여지를 주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묵묵히 신성현의 손을 잡고 어른들과 걸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신성현의 파트너라고 선언하고픈 걸 참는 겁니다.)

신성현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이는 신성현은 당신을 잡은 손으로만 느꼈다. 이야깃거리를 흘리지 않기 위해 당신에게 눈길을 주진 못하지만 걸음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나,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침착하게 걸어간다. 잘하고 있어.)
GM
시선은 어느새 호기심이 점철되고,
어린 아이 1
오, 오, 오빠!
GM
소란 사이로 톡 튀어나온 것은 어린 목소리였습니다. 어딘가 낯익은 여자아이 둘이 앞을 막고 두 사람을, 아니, 정확히는 신성현을 물끄러미 올려다봅니다.
쌍둥이처럼 차려입은 아이들은 처음 보는 상대였지만 낯이 익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흑색의 도밍게즈 복장과 짧고 검은 머리카락, 푸른 귀걸이로 단장한 것이 척 봐도 신성현을 흉내 낸 꼴이었으니까.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성현처럼 꾸며 달라며 부모를 신나게 닦달했겠지, 싶을 정도로 쏙 빼닮았습니다.
무려 타이머의 시선이 향하자 두 뺨을 발갛게 붉힌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장미 다발을 내밀었습니다. 꽃송이가 활짝 만개한 푸른 장미입니다.
신성현이 근처에 섰던 당신에게도 성큼, 장미 향기가 다가옵니다.
신성현과 당신에게 각각, 장미를 건넨 어린 눈동자들은 오직 두 사람이 그것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간절함으로 반짝거립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연화
(난처했습니다. 정말, 난처했습니다. 다른 건 무시할 수 있지만 타이머를 향한 동경 어린 아이들의 기대감 가득한 행위는 무시할 수 없어요. 이걸 받아주지 않으면 그림이 좋지 못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구설수에 오를 게 뻔하다면… 결심한 이연화가 아름다운 미소로 제게 건낸 장미를 받습니다. 개인으로서 행동하라고 했죠. 무시와 이야깃거리를 흘리는 것 중에 택하라면 당연 이야깃거리가 나았습니다. 도밍게즈의 구원자를 매정한 사람으로 표현할 순 없습니다. 고맙다거나, 장미가 예쁘다거나 하는 어떤 말은 입에 담지 않은 채.)

신성현
(신성현은 공과 사가 확실하지만 당신에게 그러하듯이 정에 약했다. 특히나 이런 아이들이 내미는 정은 거부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망설임이 눈동자에 떠올라 멈칫거렸지만, …장미를 받아 드는 당신을 봤다. 괜찮을 것이다. 이연화는 투정이 많아도 똑똑한 아이야. DOT에서 지내는 짧은 시간 동안 한 번도 흠 잡힐 행동을 한 적 없다. 당신을 믿고 아이의 장미를 받아주었다. 똑같이 말 없는 미소였다.)
GM
신성현과 당신이 그것을 받아주면 누군가 총성을 울린 것처럼 하나둘 선물과 이야기를 안겨주기 시작합니다.
아직 따뜻한 애플파이, 빨간 풍선, 손수 엮은 사탕 목걸이와 흰 리본을 묶은 파란 장미 수십 송이. 구름보다 커다란 솜사탕이라거나 갓 짠 우유와 치즈까지!
누군가 당신의 목에 사탕 목걸이를 걸어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또 다른 누군가가 신성현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낫구먼!”
꺄악, 꺄아악. 환호성도 끊이지 않습니다.
인산인해. 그야말로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낱말과 단어로 구성된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올해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더 평온한 내년이 찾아오기를!” 누군가 예언의 타이머를 끈질기게 쫓아오며 소리칩니다.
시민 1
세계 멸망이란 게, 진짜인가? 무언가 신의 계시를 받지 못 했냐고?
시민 2
자네들만 믿고 있어. 우리는 언제나 그래.
GM
언니, 오빠, 형, 누나! 저기요! 타이머! 온갖 호칭이 물거품처럼 귓가에 스칩니다. 대답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질문과 호의가 꽃가루처럼 허공을 떠다녔습니다.

이연화
(이런 상황에서 입을 열지 않는 건 꽤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어지럽게 안겨주는 선물들을 손으로 받아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중력을 이용하면 좋을 텐데, 카운터의 정체는 내일 발표되므로 함부로 능력을 선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팔이 후들거리는 이연화가 필사적으로 신성현의 곁에 붙습니다. 그의 모습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가려줄 수 있게.)

신성현
(후들거리는 이연화의 팔을 눈치채고 그의 짐을 함께 들어주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함부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신성현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보다는 능숙히 인파를 헤쳐 나가 길을 열어주며 잡은 손을 이끌었다. 꾹 다문 입술은 열릴 생각이 없었다. 옅은 미소로 사람들을 지나쳐 가기만 한다. 이연화를 제 뒤로 가린다.)
GM
그 사이를 헤치고 나가는 것은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향기로웠어요. 향기로웠지만, 숨을 쉬기 어렵단 점에서도.
“그런데, 옆에는 누군가?”
순간, 바람이 불었습니다.
희고 고운 바람과 함께 쏴아아, 파도 소리 같은 것이 일렁이고 줄에 매달린 것들이 일제히 몸을 흔듭니다.
꽃향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것처럼 시선의 일부가 카운터를 향합니다.
“처음 보는데, 역시 부관을 들이기로 한 건가?”
곤란한 질문이 당도합니다.

이연화
(저 질문은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성현과 잡은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빠른 걸음을 옮겼습니다. 난 몰라요. 모르는 일이에요.)

신성현
(가슴이 조마조마하던 것이 진정된다. 똑똑한 아이답게 리슬러 부관이 설명한 것을 잘 이행하는 당신을 보호한다. 지금은 내가 너보다 커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저들의 시선으로부터 더 잘 가려줄 수 있으니까. 우린 모르는 일이야.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GM
인파 사이로 이동하는 잠깐의 틈 사이를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듭니다. 리슬러였습니다.

리슬러 부관
잠시만요. 지금 다음 장소로 이동 중이라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기계적으로 모든 질문에 대응한 그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던 사람들을 물리치고 눈짓합니다. 당신들의 침묵에 만족해 보입니다.)
GM
1. 침묵하고 무시로 일관할 것.
2. 어떤 이야깃거리도 흘리지 말 것.
3.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
흰 돌이 깔린 바닥을 밟습니다. 건물 사이사이로 난 골목과 도로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캐러멜 냄새가 설탕 냄새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시끌벅적한 인파를 물리치며 걷는 사이 점점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 하인리히 장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거리가 꽤 벌어졌던 걸까요.
당신들을 인도한 리슬러 부관이 앞을 보고 말합니다.

리슬러 부관
마지막 대응은 좋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받아주지도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한 번 받아주면 끝이 없습니다. (쉽지 않은 일임을 아는지 크게 탓하진 않았습니다.) 받은 선문들은 군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이연화
받지 않으면 타이머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 것 같아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어린 아이의 선물이 아닌 건 무시할 수 있어요. (그도 힘들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 혼내진 못할 겁니다. 선물을 옆에 온 군인에게 맡깁니다.)

신성현
그 아이… 선물을 받아주지 않으면 울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다음엔 주의하겠습니다. (결정 자체에 후회는 없었다. 짐들을 맡기고 당신과 리슬러를 따라간다.)
GM
골목을 완전히 내려간 후에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신 옆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리슬러 부관이 덧붙입니다.

리슬러 부관
이번 일로 깨달으셨으니 됐습니다. 세계가 군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두 이상입니다. 그러니 가끔은 깨트릴 필요가 있어요.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건 나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그저… 필요한 일일 뿐. (두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쳐준 리슬러가 이만 잔소리를 끝냅니다.)

이연화
(이상을 깨뜨리는 일이라. 그건 생각 못 했네요. 지나치게 구원자의 이미지를 형성해 놓는다면 그들은 우리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을 게 분명합니다. 흘러가는 저 너머의 구름을 바라본 이연화가 끄덕입니다.) 알았어요. 기대치의 적절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거죠…. (까다롭군요.)

신성현
…네. 저희는 신이 아니니까요. (한낱 능력을 지녔을 뿐인 우리가 모든 이상을 이루어 주진 못했다. 리슬러가 더 혼내지 않기에 자신도 토를 달지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 보이는 건 확실했다.)
GM
의외로 도로에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합니다. 술에 취한 이들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떠들긴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어요. 드물게 지나가는 차량의 창문이 열리고,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흔들곤 했습니다. 타이머를 알아본 거겠죠.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곳곳에서 타이머를 부르고, 외치고, 눈짓하고, 손짓하며, 끌어 당깁니다.
단순히 개인을 향해 쏟아지는 호의와 호감이라기엔 지나치게 두터운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일련의 광경은……
어쩐지 무척 그리운 풍경이었죠. 낯익기 짝이 없어서, 꼭 제자리를 찾아온 듯했습니다. 제게 쏟아지는 호의와 호감, 관심처럼…… 목소리마저 친숙했어요.
당신은 어떤 감각을 느낍니다. 기시감일 수도, 괴리감일 수도 있습니다.

이연화
(왜인지 액자의 검은 호수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합니다. 뭐지, 멈칫거린 발걸음이 그런 적 없었다는 듯 움직입니다. 우리들을, 타이머를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기시감과 괴리감을 내가 왜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이상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신성현의 곁에 서 있는 게 현실적이지 않아서? 소리가 멀어집니다. 기분 탓일 거예요. 아마도. 신성현의 팔을 끌어당겼습니다.)

신성현
왜 그래, 괜찮아? (많은 인파에 겁이라도 먹은 것일까 걱정한다. 당신의 머리를 조심히 쓸어 토닥인다. 신성현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양 행동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해. 거긴 사람이 없다고 들었어.

이연화
아니에요, 갑자기 기시감이랑 괴리감 비슷한 게 느껴져서요.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럴 것이라는 건 타이머를 향한 호의와 매체 속에서 환호하던 그들을 봤을 때 이미 알고 있었는걸요. 굉장히 그립고… 낯익고… 또, 제자리를 찾아온 기분이에요. (그래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성현
(오늘 처음 외출해서 정식으로 행동하는 이연화가 익숙함을 느낀다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너무 붕 뜬 상황이라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아닐까. 연화 넌 오늘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잖아. 무의식중에 상상하던 광경이 겹쳐서 기시감을 만든 걸 수도 있어.

이연화
(찌푸려져 있던 얼굴이 펴집니다. 신성현의 말을 듣고 그의 쓰다듬을 느끼면서 안정감을 되찾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눈빛이 매섭게 빛났습니다.) DOT에 정식으로 입학한 이후 여러 이상한 일들이 있었죠. 돌아가서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형이 말한 대로 내가 느끼는 단순한 착각인지, 뭐가 더 있는지. (그의 팔을 안아 심신의 안정을 취합니다.) 고마워요.

신성현
내 파트너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필요한 건 말만 해. 나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한데 모여 무슨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리슬러 부관
(옆에서 걷던 부관은 속삭임을 듣지 못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봅니다.) 딱 맞춰 도착하겠군요.

이연화
(동료를 가라앉힌 이연화가 순하게 관련 주제를 집어넣습니다.) 이 전시관만 보고 한 밤 자고 일어나면 우리의 시간이에요.

신성현
카운터의 존재를 도밍게즈에 알리는 멋진 무대가 시작되겠지. (설핏 기분이 좋아 보였다.)
GM
도밍게즈의 달은 휘영청 밝기만 합니다. 하늘에 뜬 달이 너무 밝아서, 전시관이 아니라 달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검은 하늘에는 소원 대신 별이 떠서 흰 별이 촘촘하게 달려 있었고요.
그 밤, 걷는 길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가요.
감상과 달리 실제로는 도로를 따라 오 분 정도 걸었을 뿐입니다.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전시관 담당자
(마중을 나온 담당자가 간결한 설명과 함께 하인리히 장교의 옆에 섭니다.) 일부러 그렇게 지었습니다. 가시죠, DOT 여러분들.

이연화
(이쯤 되면 단순히 칭송하는 게 아니라 광기입니다… 저러고 이상을 깨뜨리는 게 좋다느니 설득력이 없습니다. 총총 신성현의 온기나 느껴요.)

신성현
(신성현은 옛적에 포기한 얼굴이다. 부담스러운 전시에도 꿋꿋하게 무표정을 고수한다.)
GM
본관의, 아니, 전시관의 문을 넘기 위해 얕은 계단을 오르려던 하인리히 장교가 문득 멈춰섭니다.

하인리히 장교
이런, 주인공들이 먼저 들어가도록 양보를 해야겠군.
GM
그가 옆으로 비켜서자 아까 나섰던 문과 꼭 닮은 문이 보입니다.
좌우로 나뉜 문은 청동으로 빚고 남색으로 덧칠했는데, 무척 크고 두꺼웠습니다.
상당한 무게를 자랑했지만 누구도 문을 여느라 씨름을 할 필요는 없었어요. 언제나 열린 문이었으니까.
DOT의 모든 건물은 현관을 닫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통입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공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전시관은 생각보다 더 정교하게 베껴다 둔 것 같군요.

이연화
영광이에요. 장교님의 호의에 감사드려요. (태연하게 연기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가 비켜준 곳으로 가 들어섭니다. 아예 DOT 건물을 통째로 옮겨서 전시회 만들 생각을 하다니. 사람들은 참 좋아하겠습니다.)

신성현
(연기를 못하는 신성현은 조용히 장교에게 묵례만 하고 나선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눈빛이 정교하게 베껴다 둔 공간에 감탄하는 중이다. 스케일이 커.)
GM
열린 문 너머로 들어서면 마찬가지로 익숙한 로비가 펼쳐집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DOT의 본관처럼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합니다.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립니다. 다른 점이라면…… 안내 데스크에 아무도 없단 걸까요.
그야, 전시관의 근무시간은 DOT보다 훨씬 짧고, 일찍 끝날 테고.
뒤에서 어른들이 느긋하게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하인리히 장교
잘 만들었군.
전시관 담당자
장교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저희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연화
(저 장교가 원인이란 건 알겠습니다. 보는 사람들의 눈이 없으니 아예 신성현에게 껌처럼 달라붙었습니다. 장교는 우리가 붙어있는 걸 좋아하니까 별말 안 할 거예요.) 난 형 복제판도 좋아요.

신성현
…그게 무슨 소리야. 타이머는 복제할 수 없어, 나도 바라는 바이긴 한데. (타이머가 여럿이 있다면 세상을 두 배로 도와줄 수 있어. 당신의 의도와 다른 말을 중얼거린다.) 하지만 네가 여러 명인 건 당황스러울 것 같아. 보기보다 질투가 많잖아.

이연화
잘생긴 형이 여러 명이라니. (순진한 신성현… 정정해 주지 않은 이연화는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날 조금씩 잘 파악하고 있네요? 맞아요. 형은 여러 명이어도 괜찮지만 나는 안 돼요. 모든 신성현은 연화가 가지구 싶어요. (뽀뽀하고 싶은데. 빤히.)

신성현
DOT랑 사람들은 너처럼 예쁜 카운터가 여러 명인 것을 반길걸? (당연한 소리다. 당장 늘어난 카운터만 해도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곤란하게 이연화의 손등을 간질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봐서 안 돼. 돌아가서, 숙소에서 해줄게. 응? (토닥토닥)

이연화
이연화는 이연화라 반드시 형한테 다가올 거라고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불만스런 표정이 된 이연화가 당신의 손을 깍지 껴 봉인합니다.) 세 번 해주세요.

신성현
그건 어느 이연화든 나를 좋아해 줄 거란 소리잖아. 다섯 번 해줄게. (작게 삐진 게 귀여웠다… 웃지 않으려 입꼬리에 힘을 준다.)
GM
둘씩 나란히 복도를 거닙니다. 이렇게 걷자니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걸었던 복도, 괜스레 뛰던 심장, 수런거리던 목소리, 그리고……. 문 너머의 상대.
그러나 이곳은 DOT가 아니고, 두 사람은 이미 만났습니다.
벽 좌우에는 섬세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해와 달이 뜬 하늘과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 희고 고운 모래사막, 얼어붙은 땅과 바람이 머무는 들판. 곳곳마다 열네 개의 기둥이 서 있습니다.
신의 손가락이건 최초의 시곗바늘이건, 혹은 그 둘 다일 기둥들이. 기둥 아래에 진 그림자가 유난히 캄캄합니다. 섬세하게 신경을 쓴 티가 났습니다.
왼쪽을 보아도 오른쪽을 보아도 그림은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해가 떴는가, 달이 떴는가의 차이입니다. 왼쪽 복도는 아침을 맞은 세계였고 오른쪽 복도는 저녁을 맞은 세계였거든요.

하인리히 장교
이 그림은 세계를 상징하기에 앞서 하루를 상징한다네. 아침과 저녁, 하루는 둘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뒤따라오던 하인리히 장교가 아는 체를 합니다.)

이연화
오전과 오후 말이군요. (세계의 창조와 멸망을 표현한 것일까 감상하던 이연화가 뒤를 돌아보고 대꾸합니다.) 정교한 DOT 모양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요. 이곳에 처음 온 기억이 날 정도로 예뻐요. (신성현과 만난 첫 만남을 떠올리자 기분이 들뜹니다. 놀러 다니느라 줄어들었던 기력이 차올랐습니다. 잡은 손을 꼼질거려요.)

신성현
(갑자기 호출됐을 땐 상상도 못 하던 당신이 일상에 스며들어 중요한 존재가 되었을리라고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해줘도 모를 것이다. 그림들이 수려하게 꾸며진 벽화를 하나하나 훑었다. 당신을 단단히 잡는다.) 열네 개의 구역과 밤낮… 정말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자네들을 위해 마련한 전시장인데 그럼.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빙글 웃은 장교는 벽화의 끝을 봅니다.) 구역의 최초, 첫 모습이지.
GM
열네 개의 구역을 따라 그린 벽화가 끝나자 전시관의 입구가 펼쳐졌습니다. 문은 세 개입니다.
전시관Ⅰ. 구원의 시간
전시관Ⅱ. 쌓여온 역사
전시관Ⅲ. 지나간 생애

하인리히 장교
자, 친애하는 우리 군들. 이곳부터는 자유 시간일세. 원하는 곳부터 둘러보고 돌아갈 시간쯤에 호출하겠네. 전시회의 기본 에티켓은 알고 있으리라 믿네.

이연화
(자유 시간? 졸린 기색을 떨쳐낸 이연화가 끄덕입니다.) 네, 기물 파손하거나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조용히 전시관만 둘러보고 올게요. 감사합니다.

신성현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이 두 사람은 나서서 소란 피우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리처럼 따라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편안해진다.)

하인리히 장교
아주 믿음직스러워. 나는 1부터 천천히 둘러볼 예정이네. 중간에 이상 있거나 할 말 있을 때는 알아서 찾아오게나. 해산! (그러므로 얌전한 아이들이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는 군들이 뒤에서 따라가게 만듭니다.)

이연화
(군인들이 있건 말건 상관없습니다. 장교의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신성현의 팔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장교님은 1번부터 보신다니까 우린 3번부터 둘러봐요. 빨리 가요, 형. 전시관 데이트하는 거예요! (그새 신났어요.)

신성현
뛰면 안 돼, 이연화.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가. (얌전하게 지낸 덕에 감시에서 벗어나 둘이 전시회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건 반가웠다. 당신을 따라 열심히 걸어간다.) 지나간 생애부터 둘러보자.
GM
✦ 전시관Ⅲ. 지나간 생애
턱없는 문을 넘어서자 전시관Ⅲ의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복도가 없고, 벽도 없는 전시관Ⅲ은 한눈에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천장이 무척 높아서 고개를 다 들어도 위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이라면…… 전면의 액자들일까요.
흰 액자는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입니다. 어찌나 개수가 많은지 한 벽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세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였어요. 수백, 수천 개는 되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액자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걸려 있습니다.
역대 타이머.
여태까지 우리가 나고 자라며, 혹은 책과 영상을 통해 보았던 이들의 사진이 액자 속에 갇혀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 얼굴도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얼굴도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어른들은 짧게 묵념합니다.
우리처럼 전시관Ⅲ에 먼저 온 리슬러 장교와 눈이 마주칩니다.

리슬러 부관
이곳에는 타이머의 사진이 걸릴 예정입니다. 죽은 이들을 잊지 않도록. (깔끔하게 도슨트 역할을 해줍니다.)

이연화
(앗… 사람 없는 곳으로 가려는 건 누구나 똑같았습니다. 리슬러는 선이 확실해서 오히려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지나간 생애가 역대 타이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네요. 엄청 높아서 내 키로는 다 보이지도 않아요. (고개가 아팠습니다.)

신성현
(고개를 쭉 빼 까마득한 천장을 찾으려던 신성현이 포기한다. 어두운 위를 볼 수 없었다.) 도밍게즈의 긴 역사 동안 함께한 타이머가 이렇게나 많았다니…. (언젠간 나도, 말로 꺼내지 않은 생각이다.)
GM
천장이 유난히 높더라니. 1대, 2대쯤 되는 이들의 얼굴은 까마득해서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사진 속에 갇힌 얼굴들은 하나 같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서로 간에 닮아서가 아니라 모두 타이머라서. 사진이란 피사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담는 법이니까. ……조각상과 마찬가지예요.
아래쪽의 빈 액자들에 시선이 닿습니다.
아마 저 중에는 우리의 액자가 될 것도 있겠지.
언제가 될까? 평균 연령이 반백 살이라지만, 어디까지나 통계입니다.
사진 속에는 상당히 앳된…… 또래의 얼굴도 여럿 보였습니다.

이연화
(빈 액자에 닿은 시선이 멈춥니다. 우리도 언젠간 저곳에 남겨져 영원히 허공을 바라보게 되겠죠. 타이머의 수명은 반백 살일 수도,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대 타이머가 나타나면 신성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궁금해집니다.) 카운터는, 어떻게 될까요. 타이머처럼 다음 대 카운터가 타이머와 함께 나타나게 될까요?

신성현
(종이꽃으로 추모하는 것 대신 사진 속 타이머들에게 짧게 묵념한 신성현이 고개를 든다. 새로운 의문에 아리송하게 대답했다.) 맞아… 카운터는 갑자기 나타난 타이머와 다름없었지. 네 말이 가장 유력하지 않나? 앞으로 세계에 두 명의 타이머가 태어나게 된다는 거. 서로의 파트너가 될 28명의 능력자들. 사실 너희에 대해 알려진 게 너무 적어서 잘 모르겠다.

이연화
우리는 정말 무슨 존재인지 점점 헷갈리는 것 같아요. 존재 자체는 타이머와 똑같은데 기존 타이머들과 공명할 수 있는 파트너고, 최초의 카운터가 될 예정이죠. 만약 이대로… 14명의 타이머만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형이 날 두고 사라지면. 그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신성현
(답지 나오지 않는 문제다. 혹시 모를 일을 걱정하는 당신을 꼭 안아주고 떨어진다.) 카운터에 관한 모든 건 함부로 확언할 수 없어. 다음 세대 카운터가 나타날지, 아이들이 14명에서 28명으로 늘어날지 전부. 그래도 이연화… 괜찮을 거야. (당신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평생 네 옆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했지?

이연화
(불길하게 넘실거리던 의문을 신성현이 달래주었습니다. 아직 알고 싶은 것, 걱정되는 것이 많지만 가만히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이랬는데 나 두고 홀로 사라진 순간 완전 미워할 거예요. (알 수 없는 고민을 계속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깊은숨을 쉬었습니다.) 적어도 50살까진 살아요. 형은 갈수록 잘생겨질 거예요. (그에게 기대 천천히 걷습니다.)

신성현
알았어, 알았어. 외로움 많은 파트너를 혼자 두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 많은 약속까지 한 나인데. (50까지 너무 먼 미래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우리는 결국 당장 내일,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치워질지도 모르는 운명인데도.) 넌 50살이 되어도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 같아. (모르겠다. 이연화 볼 콕.)
GM
사진 속에 죽은 이들에게 묵념했을까. 혹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을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고개를 돌려 걷자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른들은 이미 자리를 비켰습니다.

이연화
(우리들의 처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타이머. 액자 속 박제된 앳된 또래가 내가 될 수도 있는 타이머. 이연화는 신성현 몰래 기도했습니다. 다음 대 타이머가 영원히 태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제 파트너를 탐내는 아주 이기적인 소원이었습니다. 당신을 끌고 2관으로 데려가 버립니다.) 우린 아직 앞날 창창한 아이들이에요. 죽음 생각하지 말구 쌓아온 역사에 가봐요.

신성현
(세대가 일찍 교체돼서 이연화가 혼자 남게 될 미래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생각하기 두려워 미뤄둔 문제를 액자 속 앳된 얼굴이 상기시켰다. 침잠한 눈동자가 당신에게 끌어올려지고, 빛을 되찾는다. 복잡하게 웃는다.) 아직 정식 임관도 받지 못한 상황에 괜한 걸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무사히 졸업 파티를 지날 수 있을 거야. (성인 때 이룰 약속이 있었다. 죽음을 등지고 역사로 향한다.) 가자.
GM
✦ 전시관Ⅱ. 쌓여온 역사
전시관Ⅱ의 내부는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암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흘러 내렸습니다. 때마침 스크린에는 어떤 영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오, 10시 군들. (1에서 건너온 장교가 여러분을 알아봅니다.) 이곳은 시청각실이라네. 타이머와 관련된 뉴스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따위를 볼 수 있어.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생략할 거지만, 원한다면 수업 시간 중 여유가 있을 때 틀어달라고 말해두겠네.

이연화
정말요? 반가운 소식이네요. 우리에 관련된 건 한번 봐보고 싶어요.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요. (장교에겐 조금 아이 같고 착한 카운터로 보이게 미소 짓습니다. 스크린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부탁드릴게요.

신성현
익숙하게 지나갔던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요청하고 싶습니다. (스크린에 흘러가는 영상을 주시했다.)

하인리히 장교
군들이 부탁하는데 왜 안 들어주겠나. 빠른 시일 내에 수업에서 시청할 수 있을 거야. 영상이라곤 해도 저런 거지. (첫날 들었던 장난스런 목소리로 스크린을 가리킵니다.)
GM
얼핏 스쳐본 영상에는 낯익은 얼굴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신성현과 당신입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뉴스, 애니메이션 따위라고 했는데, 저건 진짜 우리잖아?
때마침 영상 속 당신이 입을 엽니다.
“신성현… 형?”
“맞…아. 내가, 신성현이야.”
맙소사! 신성현과 당신이 처음 만났을 때예요. 언제 촬영한 거야?!

이연화
…. (웃음이 경직됐습니다. 겨우 유지한 채 장교에게 고개를 돌립니다.) 언제… 찍은 거예요? 설마 저희 방에서 일어난 일도 촬영되나요?

신성현
(신성현의 귓가가 붉어진다. 상대가 장교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입이 달싹이길 반복한다.) 초상… 초상권 침해 아닙니까? (감히 이런 말을….)

하인리히 장교
이런, 우리를 무엇으로 보는 건가? 아주 개인적인 일이 일어나는 숙소까지 CCTV가 설치되어 있진 않아. 화장실이나 숙소를 제외한 DOT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활용한 영상이라네. (물론 신성현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을 끌지. 문제가 없는 수위로 편집해서 내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단 식입니다.)

이연화
(그랬죠… 눈이 흐려졌습니다. 저 장교도 이상하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네요. 그나마 숙소엔 CCTV가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뭔지.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훈련…실, 영상도요? (제발)

신성현
(훈련실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와 이연화의 눈물 사태를 떠올린다. 아예 목까지 붉어진 신성현이 말을 더듬는다. 희귀한 광경이다.) 그 수위가 어느 수위인지 조심스레 질문하고 싶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두 사람과는 다르게 장교의 입술은 씰룩 올라갑니다. 이 사람,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흠흠, 자네들이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한다니 어쩔 수 없구만. 내 담당자에게 말해 특별히 그 영상은 빼주도록 하지. (스쳐 지나가며 산뜻하게 말합니다.) 농담일세. 개인적인 영상은 넘겨주지도 않았네.
GM
장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시실에 울려 퍼집니다….

이연화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얼굴을 쓸어내리고 흐트러지려던 표정을 간신히 수습합니다.) 감사…해요. 보여주기식 편집으로 몇 장면만 상영한다 이거죠? (아… 인권 없는 타이머란 어디까지 가는 것인가요. 숙소에만 CCTV가 없다는 정보만 건졌습니다.) 저흰 이만 다음… 다음 전시관으로 가봐야겠어요. (형 손을 잡아요….)

신성현
믿고 있…겠습니다. 이상한 것만 내보내 주지 말아주십시오. (모든 게 보고되고 알려지는 타이머의 생활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평소에 정신을 바싹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번 더 다짐했다. 급하게 이연화를 따라 빠져나간다.) 안내 감사드립니다.

하인리히 장교
(어린 아이 놀리는 게 뭐가 재밌다고 웃음을 지우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농담이라니까. 설마 자네들의 긴밀한 생활을 널리 퍼뜨리겠나? 안심하고 구경하게. (보내줍니다.)
GM
✦ 전시관Ⅰ. 구원의 시간
낯부끄러운 광경을 피해 달아난 곳은 천장과 벽을 모두 남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흰 석고로 빚은 조각상들이 서 있고 조각상의 수는 스물 두 개입니다. 두 명의 사람이 한 쌍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한 것으로 유려한 곡선이 진짜 사람 같습니다.
전시관 곳곳에 배치된 구조로 시곗바늘의 방향을 따라 걸으면 차례대로 살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중앙에는 ‘높은 탑’이 서 있습니다.

이연화
(하아, 급하게 걸어온 이연화가 숨을 돌립니다. 벽에 기대 초췌한 이마를 쓸었습니다.) 형… 우리 앞으로 시간 빌 땐 무조건 숙소에 틀어박히는 걸로 해요. 형의 풀어지는 얼굴은 나만 보고 싶단 말이에요. (이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신성현
말하지 않아도 평생 그렇게 지낼 생각이야. 설마 CCTV를 이용해 우리 만남을 내보낼 줄은 몰랐어. (아직 얼굴이 뜨거웠다. 차가운 손으로 덮어 체온을 식히고, 질린 표정을 드러낸다.) …CCTV가 있는 곳에선 조심하기. (알아서 약속함.)

이연화
조심하기. (결의의 새끼손가락을 겁니다. 비장한 도원결의와 다른 게 없습니다.) DOT의 기물을 파손할 수도 없고, 사각지대를 천천히 찾아봐요. (몰라몰라… 숙소 지박령이 될 거예요. 형의 손을 잡고 높은 탑으로 가요.)
그나저나 여긴 조각상 전시실인가요? 구원의 시간이라는 게 짐작이 안 가요.

신성현
용돈에서 깎이는 것도 모자라 훈계를 많이 듣겠지. (가장 간단한 약속이지만 가장 무거운 약속이었다… 당신에게 흐물흐물 끌려간다. 기력이 다 빨렸다. 주위를 슬 둘러본다.) 그냥 대리석 조각상들로 보이긴 해. 아, 저 높은 탑은 오벨리스크네. 조각상 전시실이 맞는 것 같아.
GM
하나의 거대한 석고를 깎아 만든 높은 탑은 그저 새하얗습니다.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입니다.
오벨리스크의 그림자가 바닥으로 드리우면 꼭 시침 같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조각상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리구슬이 쏟아진 바다에 선 조각상.
제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불붙지 않은 성화에 화살을 겨눈 조각상.
제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세계수라 부를 법한 커다란 고목 아래 선 조각상.
제4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번개를 쥐고 휘두르는 조각상.
제5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얼음처럼 투명한 유리 속에 갇힌 조각상.
제6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온갖 동물을 거느린 조각상.
제7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유일하게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흩날리는 조각상.
제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꿈을 꾸듯 눈을 감은 조각상.
제9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발아래 해골을 쌓은 조각상.
제10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각각 허공과 구덩이 안에 서 있는 조각상.
제11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조각상.
제12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차마 잊지 못한 무언가를 돌아보는 조각상……
정확히 열 두개. 시작과 끝이 없는 불완전한 조각상들이 서 있습니다. 석고로 빚었다지만 온전히 하얀 것을 제외하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것의 얼굴은 신성현도, 당신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계가 바라고, 열망하는, 가장 완벽한 구원자의 모습이 그곳에 서 있을 뿐입니다.

이연화
(그림자가 드리워 시침 형상을 한 오벨리스크. 정말 인상적인 모양입니다. 12시간을 빛 방향에 따라 하나씩 가리키겠지요. 높은 탑을 중심으로 빙 돌던 이연화가 10시 조각상 앞에 멈춰 섭니다.) 타이머들이 정말 많으니까 얼굴은 뭉뚱그렸네요. 한 사람보다 누구도 닮게 만들지 않은 게 낫긴 하겠죠. 그런데 0시랑 13시가 없어요. (두리번)

신성현
호수에서 만난 분처럼 한 세대 안에서 타이머가 갈리는 경우도 있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겠어. 그림자 연출과 섬세한 조각상이 정말 정교한데… 0시랑 13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당신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걷던 신성현이 갑자기,) 윽,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강하게 이마를 부딪친다.)
여기… 뭔가 있어. 벽 같아. (이마를 감싸고 문 좌우에 위치해 있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연화
형, 괜찮아요? (후다닥 달려가 신성현의 이마를 문질문질 만져대는 것도 모자라 호오 분 후 쪽 뽀뽀하는 것으로 응급처치를 마칩니다. 내 소중한 신성현의 잘생긴 얼굴이!) 숨겨진 공간에 0시랑 13시를 숨겨두었을지도 몰라요. (눈을 가늘게 뜨고 투명한 벽을 노려봅니다.)

신성현
약간 부딪친 것뿐이야. 다치지 않았어. (이리저리 문질문질 만져져서 아픔을 싹 잊은 신성현이 부딪쳤던 곳을 조심스레 더듬는다. 내 얼굴 진짜 좋아하네….) 이건… 정말 여기에 숨겨두었구나.
GM
신성현이 부딪친 것은 문 좌우 나란히 서 있던 태양과 달을 끌어안은 조각상이었습니다.
어찌나 반질반질하게 닦아두었는지 지독하게 투명해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제0시와 제13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분명합니다. 0과 13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수. 그럴싸한 연출이네요.

이연화
잘 안내하지 않으면 형처럼 부딪치는 사람이 속출하겠어요. 이건 나중에 장교님께 말씀드려요. (감히 신성현의 이마를 때린 조각상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잘생긴 얼굴을 너무나 아껴 하는 이연화에게 조각상이 도전을 건 것입니다.) 이런 투명한 조각상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신기하네요. (뽀득뽀득 응징하고 물러섭니다.)

신성현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안전 하나는 걱정되긴 하다. 아이가 달려가다가 부딪치면 꽤 아픈 상처를 입을 거야. 장교님이 3관에 계시던가, 마침 1관이니 나가서 직원분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당신을 달랜다….)

이연화
그럴까요? 다 둘러보기도 했고 어차피 장교님이 호출할 곳은 우리가 흩어졌던 곳일 확률이 높겠죠. 입구 거기 하나잖아요. (형의 이마를 꼼꼼히 살펴 멀쩡한 걸 확인합니다. 그를 데리고 전시관을 빠져나가기로 합니다.)

신성현
응. 빠르게 둘러본 우리와 다르게 부르실 때까진 시간이 조금 더 남았어. 직원에게 말하고 오는 정도는 충분히 돼. (이연화와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선다.)
GM
전시관을 모두 살피고 돌아 나오면,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문이 있습니다.
안내 데스크 옆에 딸린 문은 특이하게도 아치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철제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장미가 덮여 있습니다.
장미 향기가 전시관의 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죽음을 추모하는 것처럼.
오늘따라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지치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숙소건, 집이건, 어디든 좋으니 이곳을 나가고 싶어요.
그러나 어른들은 이미 보여주기식의 관람을 마치고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미래를 목격한 아이들뿐입니다.
돌아가겠다고 고집부린다 한들 통하지 않을 겁니다. 목적을 빨리 해치우는 것이야말로 휴식으로의 지름길이겠죠.

이연화
(체력 좋은 신성현과 다르게 이연화는 원체 체력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내 기력은 다 머리 굴리는 데에 쓰고 있어요. 저건 또 뭐지, 나가려던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푸른 장미 아치가 생각나네요. 저기에서 손잡고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질까요? 저것도 전시물인 것 같으니까 보기는 해야겠죠? (총총.)

신성현
어… 저런 건 본 적이 없는걸. 왜 아까는 몰랐지? 이렇게 눈에 띄는데. 활짝 핀 장미가 가득한 아치는 처음 봐.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면.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아치로 다가갔다. 당신이 힘들지 않게 느긋한 걸음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와서 전시관 아치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 줄지도 몰라.
GM
얼른 보고 돌아가자. 체념과 비슷한 생각에 이끌려 아치문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장미는 활짝 만개한 탓에 내일이면 시들기 시작할 것 같았습니다.
밤 내내 화려하게 피어있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꽃잎을 떨구겠죠. 지금 우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아치문 아래에 섰을 때였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가 우리를 부른 것은.

하인리히 장교
자네들, 거기서 뭐 하는 건가?
GM
목소리는 분명히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이연화
(장미 아치 아래에 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여기 아치문이 있어서요. 구경하고 가려는데 전시물이 아니었나요?

신성현
함부로 건들면 안 되는 겁니까? (꽃으로만 이루어진 아치라 그럴 수도 있겠다. 갸웃거린다.)
GM
뒤를 돌아보면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 그 외 일행들은 입구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그곳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이쪽은 보지 않는 건가?

하인리히 장교
아치문이라니? 거긴 아무것도 없어. 뭣들 하나. 돌아가야지.

이연화
…네? 여기에 분명히, (그럴 리가 없어요. 주위를 홱 둘러봤습니다. 나 홀로 그런 게 아니라 신성현까지 아치를 보고 함께 왔다고요.)
GM
아치문을 돌아보자, 귀신에 홀린 듯.
흰 벽이 시야를 가립니다. 새파란 장미도, 은색 아치도 없는 평범한 흰 벽.
이상한 일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환각인가? 싶지만 함께 모여든 제8시의 타이머와 카운터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입니다.

신 현
내가 헛것을 봤나… 아까까진 아치문이 있지 않았어?

헤일리 로렌스
있었죠. 푸른 장미가 가득한 게 신기해서 구경하려고 온 건데요.

메이 란
환영은 아니래잖아. 단체로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GM
그러니까,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도 모두 이 광경을 목격한 거예요.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걸까요? 바깥에선 어른들이 “빨리 나오라”며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연화
(아치문이 있던 자리에 서서 감쪽같이 사라진 흰 벽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웅성거리는 타이머와 카운터들의 소리. 우리에게는 장미로 이루어진 아치가 보였어요.) 일단, 가요. 어른들을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나중에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겠어요. (형. 신성현을 확인합니다. 나만 본 거 아니죠.)

신성현
단체로 환각이나 미친 게 아니라면 우리가 본 아치문은 헛것이 아니야. (심각한 표정이었으나 당신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봤어, 그 새파란 장미와 은색 아치를.) 보지 못한 어른들에게 우길 방법은 없어. 이연화의 말대로 하자.

이연화
(다행입니다. 또 나만 본 게 아니라서. 모두가 보았고 모두의 앞에서 사라진… 아.) 수업 중 들었던 떨어지는 소리. 타이머와 카운터만 들은 그 소리와 연관 있는 게 분명해요. (아이들에게 속삭입니다. 어른들이 재촉하기 전 밖으로 나섭니다.)
내일은 무대에 서느라 시간이 없을 거예요. 내일모레, 그때 다시 와요.

신성현
소리…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깜빡 있고 있었어. 하필 전시회에 저런 게 나타난 건 대체 무슨 일일까. (이연화의 뒤를 따른다. 눈동자가 아치가 있었던 곳에 머물다 떨어진다.)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당분간은 더 살펴볼 수 없겠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움직인다.)
GM
관람은 끝났고 조각에 불과한 타이머와 카운터에게 이별을 고할 때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돌아갈 시간입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잊을 수 없는 장미 향기가 발목을 붙잡습니다. 타이머의 상징은 그저 시간일 텐데, 이곳의 시간은 멈춘 듯했고 오히려 때 이른 장미만 만개했습니다.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름도 뭣도 아닌 계절에 핀 장미는 그야말로 불가능한, 기적의 상징이었어요.
전시회를 벗어나 도로를 걸어, 달에서 멀어지는 동안 때마침 광장의 시계탑이 정각을 알리며 울어댔습니다. 밤이 깊어 하늘은 어두컴컴합니다.
우연일까?
혹은 이 또한 어떤 운명인가?
그런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따위 알지 못했습니다.
내일의 ‘그 일’이 훗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도 알 수 없었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결단코 그 문을 열어젖혔을 테니까.
◆
타이머 전시회를 끝으로 축제 전날의 일정이 끝났습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는 밤이 내려앉은 숙소로 돌아와 짧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내일 진행할 무대를 위해 의논하거나, 오늘 보고 들은 의아한 것들에 대해 의논하거나.
서로 껴안고 단잠에 빠져도 좋습니다.

이연화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뽀송하게 씻고 나온 이연화가 침대에 걸터앉아 일정표를 뒤적이는 신성현 옆을 꿰찼습니다. 그의 어깨에 기대 내일의 일정을 훔쳐봅니다. 오늘은 참 행복하고 또 기이한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건….) 형, 그 푸른 장미 아치요.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환각의 타이머와 카운터가 한 짓도 아니고 단체로 확인한 문이 갑자기 사라졌잖아요. 어른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건지, 어른들이 볼 때 사라진 건지 모르겠어요.

신성현
(자유 시간이 주어졌던 오늘과 다르게 아주 바쁜 내일 일정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혼자가 아닌 둘이 꾸며가는 무대를 실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막 욕실에서 나와 따뜻한 김이 피어나는 이연화를 돌아본다. 그가 둘러싼 수건으로 이연화의 젖은 머리칼을 말려주었다.) 1층 도서관에서도 갑자기 사라지는 푸른 장미 아치에 대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어. 우리가 오늘 갔던 연인들의 명소에 대해서만 나와 있었지. 타이머와 카운터를 전시하는 건물에 나타난 죽음의 추모 향기… 감이 안 오네. 한 명쯤은 우릴 돌보던 어른들이 있었을 텐데 전부 보지 못했다면 후자일지도 모르고. 넌 어떻게 생각해?

이연화
(탈탈 신성현에게 머리가 말려집니다. 어지럽지 않게 다정히 말려주는 손길이 좋았습니다. 튀어 오르는 물기에 눈을 감고 으음… 끙끙대던 이연화가 퍼뜩 눈을 뜹니다.) 잠깐, 방금 뭔가 떠올랐어요. 형이 죽음의 추모 향기라고 했죠? 그거 하면 공원에 있는 코마니 호수가 있잖아요. 아치의 장미 향기는 죽음을 추모하는 것처럼 전시관의 바닥으로 가라앉았어요. 그리고 코마니 호수는 역대 타이머들의 이른 죽음을 추모하는 호수죠. 그 아치는… 혹시 타이머들에게 죽음이 가까워질 때 나타나는 아치라던가…? 우리 죽어요? (너무 나간 발상이지만 일리는 있습니다!)

신성현
안 죽어. (꾹꾹 바싹 말려 감기에 걸리지 않게 마무리한다. 푸스스 웃음이 나온다.) 액자 속에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있던 건 맞아. 하지만 같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탄생 시기에는 1~3년의 차이가 존재해. 아치는 전원이 봤었지? 너처럼 각성한 지 1년도 안 된 타이머가 있는데 죽음으로 향하는 문이었다면 나를 비롯한 몇 명에게만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이연화의 허점을 차분하게 집어낸 신성현은 젖은 수건을 중력으로 조종해, 의자에 걸어둔다.) 코마니 호수와 관련 있다는 건 부정 못 하겠지만.

이연화
나도 알아요. 형 심심할까 봐 농담한 거예요. (똑똑한 이연화가 그걸 몰랐을 리는 없지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자 신성현이 꼼꼼하게 말려준 고운 머리칼이 부드럽게 퍼졌습니다. 당신을 향해 돌아눕습니다.) 첫 수업 때 들린 뭔가 떨어지는 소리, 그다음 액자 속 호수를 봤을 때 느꼈던 불안함과 불쾌감. 중요한 걸 잊고 있었던 것 같았고… 이번에도 사람들에게 호의를 받으며 기시감이 느껴졌죠. 뭔가 있는 건 진짜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교회에서 들었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 해야 한다’는 말과 아리아라는 아이의 말까지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라구요. (제 옆을 팡팡 칩니다. 같이 누워요.)

신성현
믿어줄게. 네 똑똑함은 나도 잘 알고 있거든. (이만 보고서를 두고 침대에 올라가 자리한다. 이연화와 함께한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바라볼 때마다 색다른 온기가 들어찼다. 이불을 당신 가슴까지 올려준다.) 자꾸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 정확히 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너무 위험해. 갈수록 표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내가 잘 생각해 봤는데. (아리아가 말한 말. 당신이 다른 생각을 할까 봐 직접 말하진 않았다.)
아이는 부모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어. 내가 태어나서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던 타이머가 죽었고, 그래서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타이머의 세대교체는 불확실하며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야. (전 세대 타이머에게 노인과 다른 각별한 이상을 품었을 사람.)

이연화
나만 똑똑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일리가 있어요, 부모님이 전 세대 타이머를 그리워하는 걸 계속 듣다 보니까 순수하게 학습한 말이란 가설… 형에게 말한 쪽이면 그쪽으로 생각하는 게 낫겠어요. (폭신한 이불에 갇혀 부스럭대던 이연화가 당신을 끌어안습니다. 허리를 둘러 안아 꽉 붙들었습니다. 따뜻해요.) 형 잘못 없어요. 신성현 없었으면 이연화도 없었어요. 고작 그딴 말에 신경 쓰지 말아요. (내게만 집중해요, 고개를 들면 당신과 바로 지척까지 얼굴이 가까워집니다.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50살까지 살아달라는 말, 명심해요. 난 이상한 일의 위협에 굴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알 수 없는 일이라도 괜찮아요.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미래에는 정체를 알아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바빠서 자세히 알아볼 수 없는 것이죠.)
푸른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 무대가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알아봐요. 우린 장미가 국화인 나라의 타이머, 카운터잖아요. (시간을 흐르게 만드는 자들. 시간은 우리 편이에요.)

신성현
(아이처럼 다가와 품에 안긴 이연화를 소중히 마주 안았다. 물기가 덜 말라 촉촉한 동시에 보들보들한 머리칼이 입술을 간지럽힌다. 당신의 앞머리를 쓸어 만지는 등 노곤한 손길을 퍼붓는다. 은은한 전등이 우릴 비추는 가운데 속삭인다.) 타의로 시간에게 선택받아 각성한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 잘못이 있다면 같은 인간인 우리에게 과도한 감정을 품은 그자들의 잘못이겠지. 타이머는 구원자이기도 하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해. (이상을 깨뜨려 줄 필요가 있다는 리슬러 부관의 말. 마음에 와닿았다. 달콤한 이연화의 체향을 느끼고 편안하게 호흡한다.)
기적을 상징하는 푸른 장미와 비슷한 눈 색을 지니고 태어났으니까, 50살까지 충분히 살 수 있지 않나? 정 모르겠을 땐 오늘 본 마법 같은 장미의 힘이 행운의 상징이라고 치자. 너와 나의, 타이머와 새로 나타난 카운터의 앞날을 축복하는. (그래, 시간은 우리 편이다. 타이머가 있어서 시간이 존재하므로 같은 편이 아닐 수 없다.)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해도 충분해. 내일은 대망의 그날이야, 리허설 준비하면서 졸지 않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 해. (쪽, 이연화의 이마에 뽀뽀한다.) 그렇지?

이연화
(어린 아이들은 원치 않게 각성해 DOT에 끌려와 평생을 구원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 죽을지, 언제 호수 위에 떠오른 종이꽃 중 하나가 될지, 그리고 언제 액자 안에 전시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평생 군의 통제를 받아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에게 잘못까지 있다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불합리하고 싫습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탐낼 수 있는 신성현의 입술에 뽀뽀합니다. 이마 정도로는 부족해요.) 형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아니니까…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믿을게요. 아치는 전 타이머를 추모하고 우릴 응원해 주기 위해 나타난 걸 거예요. (멋대로 생각합니다. 저쪽이 먼저 멋대로 나타났다 멋대로 사라졌습니다.)
모든 타이머, 카운터 중 형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 줄게요. (기대감에 부푼 미소로 당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자장가 같았습니다.)
잘 자요, 형. 내일 만나요.

신성현
(용기 내어 다가가면 몇 배는 욕심 내서 다가오는 이 아이가 좋았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려 붙어있는 파트너는 우리가 짊어진 역할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 들었다. 내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으면 좋겠어. 그 소리는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해하는 네게 자장가가 되어줄 테니. 작은 이연화의 등을 도닥인다. 자장자장, 하면서.) 새 타이머… 내일은 카운터가 될 존재를 하늘이 칭송해서 장미 꽃다발 대신 선물해 준 아치.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이것도 괜찮다.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어. 모든 타이머, 카운터 중 너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 줄게. (같은 약속, 같은 다짐. 당신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는다.)
잘 자, 이연화. 내일 만나.
GM
우리는 파트너에게 고요한 굿나잇 인사를 건네 잠에 듭니다.
오늘은 다사다난 하루였어요. 내일도 아마 그렇게 되겠죠. 축제의 꽃, 타이머가 능력을 선보이고 카운터의 존재를 이 세상에 각인시키는 자리니까요.
정신없을 내일을 위해 지금 많이 자둬야 해요.
고단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단잠에 빠지겠지만요.
별이 촘촘히 박힌 축제 전날이 완전히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가 막을 올렸습니다.
《씬 종료》
◆ #Scene 9. 세계 멸망 피날레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8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5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63 → 71
[ 신성현 ] 침식률 : 68 → 73
GM
축제가 한창입니다. 거리는 떠들썩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은 구름과 흰 새, 손수건과 종이 가루 따위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타이머의 교복, 제복과 비슷한 희고 검은옷을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습니다.
흑백의 고운 색으로 점철된 세계란 어찌나 완벽한지.
땅거미가 건물을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하늘은 딱 좋은 색으로 물듭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처럼 윤기가 도는 주황색이었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은 어렴풋하게 사라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래,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꼭 그랬어요.
수도의 광장에는 커다란 무대가 설치됐습니다. 매해 이맘때쯤이면 설치하고 철거하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오르내리는 흰 차양이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립니다. 가장 어두운 밤이 찾아오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가라앉는 시간을 기다리며.
“언제 시작한대?”
“곧 시작할걸. 이제 10시잖아.”
“나 너무 기대돼.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야.”
객석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습니다. 어느 곳이랄 것 없이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무대 뒤편에 서 있는 타이머와 카운터의 귀에도 그들의 소리가 확연히 들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존재가…… 이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네, 오늘은 바야흐로 축제의 마지막 밤.
타이머의 존재를 드러내고 카운터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사이좋은 파트너’의 모습을 연출하라고 내내 요구받은 그 순간이에요.
인이어를 귀에 걸고,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이런저런 상황을 살핀 스태프 하나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스태프
준비됐나요?

이연화
(오늘 이날을 기다리며 모든 걸 미뤄둔 채 집중했던 것입니다. 타이머의 존재를 드러내고 카운터의 존재를 증명하는 날. 자신은 모두의 앞에서 신성현의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신성현의 손을 잡은 이연화가 웃으며 대답합니다.) 준비됐어요.

신성현
(다가올 시간은 내가 아닌 이연화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저를 잡은 손을 깍지 껴 엮어주었다. 사이좋은 파트너의 모습을 연출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소중했으므로.) 준비됐습니다.
스태프
신호하면 제0시부터 순서대로 나오면 돼요. 두 사람이 함께 나와야 하고, 되도록 친한 티가 나게. 친밀하게. 무슨 뜻인지 알겠죠? 지금처럼 손이라도 잡으면 더 좋아요. (두 아이의 등을 두드려 줍니다.)

이연화
명심할게요. 실수하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되새겼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린 잘할 거예요. (신성현에 대한 신뢰가 깊게 깔려있습니다. 그의 팔을 끌어안습니다.) 여기서 우리보다 친밀해 보이는 사람은 없을걸요.

신성현
(이연화의 머리칼이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히 귓가만 쓸었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카운터는 제가 잘 돌볼게요. 아름다운 무대가 될 거예요.
GM
카메라는 정중앙의 2번을 보라던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사회자의 지시를 잘 따르기만 하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에게 한참 무언가를 떠들던 그는 곧 “네, 네. 준비 다 됐습니다.” 누군가의 호출이 떨어졌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당부한 뒤 사라졌습니다.
무대 뒤편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이 화려한 쇼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이곳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두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위한 자리인데. 우스울 뿐입니다.

이연화
(저들에겐 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타이머와 카운터가 공연할 무대 자체가 중요한 셈이니 그렇겠죠. 상관없습니다, 자신은 신성현만 있으면 됩니다. 지정된 자리에 서서 그의 귀에 속닥거립니다.) 형, 연화 긴장되는데 뽀뽀해 주면 안 돼요? (일생일대의 시작점인 만큼 거짓말은 아닙니다. 사심이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순 없지만.)

신성현
많이 긴장돼? (이연화가 유별나게 침착한 것이지 이런 무대는 어린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인 게 맞았다. 당신의 제안에 순순히 응해 볼에 뽀뽀한다. 간단한 화장이 망가질까 봐 얼른 떨어진다.) 긴장될 땐 손에 숫자를 적어 봐. 우리는 10시니까 10으로. (당신의 손을 가져와 10을 그린다. 느릿한 손끝이 손바닥을 가른다.) 어때?

이연화
형이 돌봐줘서 긴장이 잦아드는 것 같아요. 간지러워요. (신성현의 손가락이 간지러워 흐트러지는 웃음을 피워냈습니다. 자신도 신성현의 손바닥에 10을 적어넣고, 그것에 입술을 대 삼킵니다. 한 가지 동작을 추가한 이연화가 떨어집니다.) 형 긴장을 내가 삼켜서 전부 없애줄게요. 형도 해주세요. (결국 서로의 긴장을 교환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우깁니다.)

신성현
(눈을 깜빡거린다. 그가 제게 해준 것을 보며 손바닥을 움켜쥐었다가, 편다. 신기하게도 심장을 세게 압박하던 긴장이 스르륵 녹아버린다. 당신에게 정말 흡수된 걸지도 모르지. 몸을 숙여 이연화의 손바닥을 삼킨다.) 나는 네가 날 좋아해 줘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어. 처음으로 둘이 무대하는 거잖아. 혼자보단 둘이 훨씬 나아, 잘할 수 있을 거야.

이연화
응, 우리는 실수 없이 아름다운 우주를 만들어 낼 거예요. 10시가 대표하는 중력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요. (내 존재를, 네 존재를. 서로가 삼킨 손을 맞잡아 붙듭니다. 미약하게 떨리던 작은 마음마저 마침내 버렸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신성현
(이어진 손이 하나처럼 느껴졌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연화의 목소리, 그가 하는 행동만이 두 눈에 들어온다. 당신을 곁에 둔 신성현이 앞을 바라본다.)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돼. 우린 10시라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어.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GM
시곗바늘도 평소처럼 움직입니다. 하나, 둘, 셋…….
공연 시작인 10시까지는 채 3분이 남지 않았습니다. 무대로 올라가는 문을 통해 환한 조명이 떨어집니다.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옆에 선 사람의 존재감만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들뜨기 시작한, 혹은 긴장하기 시작한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었을 때,
스태프
자, 이제 시작합니다. 제0시 페어부터 올라오세요. (스태프가 손짓합니다.)
GM
제0시부터 순서대로 타이머와 카운터의 소개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익숙하게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팔려나간다면 이 순간 또한 온갖 곳에서 부티나게 팔리리라고.
스태프
제10시 페어 올라가세요!
GM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신성현과 당신의 순서입니다.

이연화
(막이 오를 것입니다. 진지한 얼굴로 앞선 타이머와 카운터의 행동을 지켜보던 때는 지났습니다. 자신이 앞서 신성현을 이끕니다. 한 발, 나섭니다.) 가요, 형. (다른 말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전부 해주었습니다.)

신성현
가자, 이연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너와 나는 모두 준비됐고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으니. 당신을 따라 한 발, 내디딘다. 이어 무대 위로 올라간다. 손안에 있는 이 온기만 있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GM
지시를 따라 무대 위로 걸음을 옮기자,
숨 막힐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발아래에 선 사람들의 수는 도저히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너무 많았고, 골목에서 겪었던 인산인해는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준이었습니다.
신성현!
신성현! 신성현! 신성현!
환호성이 터지고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신성현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그중에는 종종 당신을 향한 시선이 섞여 있기도 했습니다.
타이머를 위한 자리에 등장한 새로운 사람이라니! 이상히 여길 만도 하죠.
타이머가 부관을 들였다더라. 그런 입소문이 돈 탓인지 그다지 부정적인 시선은 아니었지만……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이연화
(처음으로 겪는 많은 시선과 환호, 시끄러운 주문들. 눈앞이 아찔했지만 두 다리로 굳건히 서서 버텼습니다. 저를 잡아주는 따스한 다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는 한 난 동요하지 않아요. 정중앙의 2번을 바라본 이연화가 예쁘게 미소 짓습니다.)
GM
다리가 떨리고, 손안이 축축해지지만,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괜찮아요.
신성현의 손은 여전히 당신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잡은 손은 조명 탓인지 홧홧했습니다.
손을 맞잡고 한 걸음, 두 걸음, 무대의 중앙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완벽한 중앙에 섰을 때,

신성현
(신성현이 당신에게 눈짓한다. 우리가 준비한, 그들에게 우주를 선사할 때였다. 한 손을 들어 마안을 생성한 신성현이 주위에 중력을 두른다. 무대 아래 곳곳에 설치해 두었던 그것들이 잘게 진동한다.) 이연화.

이연화
…시작할게요. (푸른 마안은 신성현의 신호였습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파트너를 따라 생겨난 금빛 마안이 하늘을 향해 치솟습니다. 그리고, 신성현이 떠올린 자그마한 구체를 허공에 배치합니다. 황혼이 깔린 밤하늘 아래 하얗게 빛나는 그것은 별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도밍게즈의 우주가 될 거예요.)
GM
두 사람의 중력에 이끌려 떠오른 아주 작은 구체는 선명히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가루처럼 밤하늘을 수놓아 우리의 별, 우주를 만듭니다.
주황색이 빠져나가고 검푸른 하늘을 우주 삼아 펼쳐진 백색 구체들이 제 자리에 정렬합니다.
몇몇 구체들은 우주를 수놓은 별로, 그리고 조금 더 뭉친 구체들은 그 자리에서 모양을 이룬 별자리로.
이리저리 얽히듯 하늘에 그림을 그린 구체가 어여쁘게 반짝입니다.
이어 신성현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면,
팡,
정확히 구체만 가볍게 터져 반짝이는 빛을 떨어뜨립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선 무대 일대는 하나의 우주가 되었습니다.
시간의 현신. 세계의 구원. 타이머와 카운터.
그 이름을 증명하는 능력의 존재에,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신성현과 당신이 모든 것을 끝낸 후에도 잠시간 침묵이 맴돌았습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무대 한 편에 비켜 서 있던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자
도밍게즈가 가장 사랑하는 타이머가 드디어 이 자리에 섰군요. 오, 그리고 가장 사랑하게 될 타이머도요. 신성현, 우리에게 직접 소개해 주겠어요?

신성현
(둘이서 만들어 낸 결과물에 만족하는 듯 상기된 표정을 짓더니, 곧 사회자를 바라본다. 당신의 손을 꾹 쥐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신 10시의 타이머 신성현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 이 아이는…
제 하나뿐인 카운터, 이연화예요.

이연화
(막상 말하려니 심장이 떨리네요. 신성현의 입으로 이 세계에 카운터의 존재를 공표하자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찾아옵니다. 벅차고, 설레고, 또 드디어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반짝이며 내려오는 빛 사이에서 입을 엽니다.) 카운터 이연화예요. 타이머 신성현의 파트너가 되었어요.
GM
매해 이 쇼맨십의 사회를 맡은 사회자는 자연스럽게 신성현과 인사를 나누곤 당신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사회자
정말 귀여운 타이머와 카운터군요! 여러분이 보여준 우주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답니다. 올해 최고의 밤하늘이 될 거예요. 우리는 이 자리에서 소개될, 타이머의 새로운 파트너를 오매불망 기다렸어요.
GM
사회자는 그들이 카운터이며 타이머의 곁에서 세상을 함께 구원할 자라는, DOT의 진부한 대본을 아주 그럴싸하게 연기합니다.
새로운 구원자. 타이머의 파트너.
시간이 선택한…… 또 다른 증명.
당신의 능력을 두 눈으로 보고,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객석이 술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구원자라는 말에 눈을 홉뜨고 숨을 들이켜기도 했어요. 세계 멸망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두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으며…… 빼내기엔 너무 두려운.
그런 세계 멸망의 징조를 정확하게 깨부수는 존재의 등장인 걸요.
신성현을 연호하던 외침 사이에 당신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었습니다. 태초부터 두 사람이 짝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누구도 그 존재에 의문을 표하거나 반감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연화
(아, 이것을 바랐습니다. 신성현의 존재에 이연화라는 존재가 섞여 당연하다는 듯 짝지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이며 자신은 그의 파트너인 명제. 변하지 않는 진실. 멍청하게 우리를 주시하는 그들을 향해 제 얼굴을 빼놓지 않고 보여줍니다.)

신성현
(더는 카운터의 존재를 숨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연화는 자신의 파트너가 되고 나는 너와 영원토록 함께하게 되겠지. 이것이 뭐라고 설레는지, 기분이 좋은지. 아니, 설레는 게 당연해. 네가 인정받는 건 곧 내가 인정받는 셈인걸.)
GM
새로운 카운터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도 잠시 사회자는 익숙하게 다음의 순서를 진행합니다.
사회자
DOT의 말로는 타이머와 카운터는 서로 선택받은 운명이라던데,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나요?

이연화
(사전에 안내받았던 인터뷰 시간이군요. 여기서 실수 없이 잘 대답해야 해요. 침착하게 사회자에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연화를 드러냅니다.) 그날은 마치 신이 점지해 준 운명 같았어요. 특별할 것 없는 마주침이었지만, 신성현 타이머를 본 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하는 것 같았죠. 타이머와 카운터의 만남을 축복하는 것처럼… 저도 모르게 한발 다가가게 되었어요. 본능적으로 깨달았어요.
이 사람이 내 파트너라고.

신성현
(첫 만남을 곱씹는다. 처음 본 얼굴인데도 모든 감각과 본능이 당신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날을. 이어 대답한다.) 저도 같았습니다. 카운터에게 도저히 선을 뗄 수 없었어요. 기묘한 이끌림이 느껴졌고 이연화 카운터가 제게 다가왔죠. 그와 가까워질수록 이끌림은 진해져갔어요. 서로의 존재감이 뒤섞이는 기분….
우리는 틀림없는 파트너였던 거예요.
사회자
두 사람의 접점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둘 다 특별한 이끌림이 느껴졌다면 정말 운명이 점지한 파트너네요! 하늘이 홀로 세계를 지킬 타이머를 위해 안배한 짝이겠죠. 이처럼 낭만적일 수가 있을까요. (관객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칭찬한 사회자가 즐거워했습니다.)
이연화, 타이머가 됐을 때 상당히 놀랐겠어요. 어떻게 능력을 자각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모두 궁금해하죠. 짧게라도 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이연화
(느긋하게 사회자와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린 후 그때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그들은 운명의 파트너라느니 낭만적인 이야기를 몹시 좋아할 겁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잠에 들던 중이었어요. 막 잠에 들 때쯤 큰 진동이 느껴져서 일어나 보니 방 안의 모든 물건이 떠오르는 거 있죠. 주변에는 금빛 구체가 떠다니고… 각성한 여파로 능력이 가볍게 터져 나왔던 것 같아요. 그때 DOT 분들이 와주지 않았다면 전 신성현 타이머가 와준 줄 알고 사방을 돌아다녔을 거예요.
그때의 제 꿈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이어서 그렇게 된 거 아닐까요? (거짓을 약간 섞었습니다.)
사회자
이제 원하던 대로 하늘을 날 수도 있는 훌륭한 카운터가 되었군요. 아까 보니까 조절 능력이 정말 뛰어나던걸요? 신성현 타이머는 중력 힘이 강했던 걸 생각하면 다시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그럼, 파트너로서 신성현은 몇 점인가요?

이연화
맞아요. 앞으로 신성현 타이머를 도와 세세한 능력을 보조하는 카운터가 될 것 같아요. (말하고 싶은 게 아주 많지만 적절히 끊습니다. 너무 말하는 것도 별로일 것 같았습니다. 흘긋 신성현을 본 이연화가 장난스런 목소리를 냈습니다.) 100점 만점에 99점이요.

신성현
(당신의 옆에서 긴장을 덜어주다가 들린 대답에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사회자에게 눈빛으로 허락받은 신성현이 발언한다.) …나머지 1점은?

이연화
형은 너무 정직해서 아침 7시가 되자마자 정확하게 깨운단 말이에요. 저는 아직 아침잠이 많아할 나이예요. (아이가 할 법한 대답을 가끔 해줘야지요. 퉁명스레 대답하나 신성현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성현
1점이 그런 이유라니. 아무리 그래도 수업에 지각하면 안 돼, 이연화. 비몽사몽한 얼굴은 귀엽지만. (은근슬쩍 호칭 변화를 주어 우리가 이렇게 친하다는 걸 알린다. 사실이잖은가.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었다.)
GM
객석에서 두 아이를 귀여워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사회자
하하, 말은 그렇게 해도 서로 꿀 떨어지는 눈빛을 숨기질 않는데요? 아이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들어요.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속삭입니다.) 애인으로서 신성현은 몇 점일 것 같아요?

이연화
점수로 매길 수 없어요. 잘생기고 능력 있고 타이머잖아요. 내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형 만나고 처음 꺼낸 말이 고백이었을 거예요. (신성현의 반응은 모르겠고 당당합니다.)

신성현
그건, (붉어진 얼굴로 말리려는 틈도 없이 당신이 대답하자, 그가 어쩔 줄 몰라하며 눈을 굴린다. 당신의 손을 꽈아악 잡는다.) …저는 이연화 카운터를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예상외의 대답이군요? (두 사람의 기류를 눈치챈 사회자가 돌발 질문을 생각합니다. 미소가 한층 들떴습니다.) 그 말은… 커서 신성현 타이머에게 고백할 의향이 있다는 뜻인가요? (마이크 들이대요)

이연화
(신성현의 힘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회자와 아주 쿵짝이 잘 맞았습니다. 그의 팔을 오히려 끌어안고 기댑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눈을 반짝입니다.) 비밀이에요! (얼굴만 보면 누가 봐도 알 듯한 답이었습니다.)

신성현
이연화…! (자신에게 누가 봐도 알 만한 얼굴로 달라붙는 이연화, 함께 장난치는 사회자에게 2연속 공격당해 마른세수한다. 장면 하나는 잘 뽑혔으리라.) 저희가 아직… 너무 어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애써 웃는다.)

이연화
(바보 같은 신성현… 자기 반응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줄도 모르고….)

신성현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지는 기분이다.)
사회자
알았어요, 곤란할 신성현 타이머를 위해 장난은 이쯤 할게요. (느슨한 무대에 웃음을 불러와 만족했습니다.) 대신 마지막 질문이에요. 도밍게즈 역사상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 행성을 수호하게 되었는데, 앞으로의 다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연화
(고맙다는 뜻으로 끄덕인 이연화가 망설임 없이 말합니다. 신성현과 함께 약속했고, 이야기 나누었으며 내내 생각하던 것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구원자로서 신성현 파트너가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우리가 만든 우주처럼 반짝이는 도밍게즈를 만들 거예요.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이 되는 파트너, 또 세계 멸망을 저지할 존재로.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어떤 재해가 밀려와도 함께. 신성현의 곁을 지킬 겁니다.)

신성현
(차분해진 신성현이 진지하게 당신의 답을 듣는다. 맞잡은 손을 제 가슴 앞으로 가져와 결심한다.)
저는 역할을 부여받은 구원자로서 이연화 파트너와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요. 우주처럼 반짝이는 도밍게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시련과 재해가 앞을 막을지언정 이 손을 떨어뜨릴 수 없을 거예요. 그리하여 마침내 방해물을 넘어서는 건 우리가 되겠죠. (한 치 거짓도 없는 진심.)
사회자
도밍게즈의 수호자, 구원자답게 반짝이는 신념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한 우리는 멸망하지 않고 세계를 이어갈 수 있을 거예요. 새 계절을 맞이하겠죠. (누군가의 예언처럼. 여러분을 사람들에게 내보입니다. 세계의 멸망을 저지할 아이들이 이 아이들이라고.)
GM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저마다의 감동과 설렘, 온갖 감정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탈탈 소리가 날 정도로 털리고 난 후 무대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면 그건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겠죠.
이제는 남은 순서를 기다릴 뿐입니다. 무대 뒤편에 내려오자 스태프가 의자와 마실 것을 갖다 줍니다.
수고하셨어요,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

이연화
(하아, 참았던 숨을 토해낸 이연화가 스태프가 가져다준 물을 들이켭니다. 티는 안 내도 정말 고단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라던 부관의 말은 과장된 게 아니었습니다. 의자에 털썩 앉기 전에 형에게 안겨듭니다.) 형, 형 무릎 위에 앉을래요. 연화 힘들어요. (부비적. 스태프의 의례적인 말보다 몇 배나 다정한 말을 건넵니다.)
수고했어요.

신성현
정말 잘 해줬어. 실수 없이 완벽한 무대였을 거야. (무대에서 내려온 신성현은 손등으로 식은땀을 한 방울 훔쳐냈다. 이 작은 몸으로 광대한 관심 앞에 서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당신의 품을 느끼면 모든 힘든 마음이 흩어져서, 그저 웃는다. 당신을 가볍게 들어 의자에 앉는다. 무릎 위로 살포시 내려두었다.)
수고했어, 이연화. 이제 조금 쉬어. (쓰담쓰담.)

이연화
당연하죠. 얼마나 준비한 무대인데 실수가 있을 리 없잖아요. 게다가 형이 도와준 무대인걸요. (신성현의 무릎에 앉아 목덜미를 끌어안고, 한껏 제 체취를 묻혔습니다. 이연화는 명실상부한 신성현의 짝이 되었어요. 비로소….)
형도 쉬어요. 13시 페어가 끝나고 나면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갈 거예요.

신성현
모든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짓고 좋아하던 걸 보면 카운터 이연화의 존재 알리기 프로젝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네가 도와줘서 가능한 거지. (말랑한 볼을 가볍게 잡아당긴다. 쪽, 이어서 볼에 뽀뽀한다. 더 이상 당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게 기뻤다.)
우리는 뒤 순서였으니까 얼마 걸리지 않겠네. 자정까지 기다리자.
GM
다음 순서도 무탈하게 흘러갑니다.
누군가 내려오면 누군가 올라가고, 능력이 무대 위를 환하게 장식하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연신 쏟아지는 익숙한 이름들을 듣다가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와 QNA가 이어지는 식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차례입니다. 제13시, 어둠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순서예요. 두 사람은 오래 기다린 것이 지루했는지 금세 계단을 오릅니다.
그들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대의 조명이 먹히고, 어둠이 가득해집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제0시 페어가 띄운 빛이 희미하게 별처럼 반짝입니다.
밤보다 안온하고, 검정보다 진한 어둠이 완벽히 무대에 내려앉았을 때,
파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대 뒤편의 조명이 꺼집니다. 정전이라도 온 것처럼, 혹은 능력에 잡아 먹힌 것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합니다.

이연화
…무슨 일이에요? (그에게 기대 가물가물 졸던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어요. 뭘까, 흐트러진 몸을 벌떡 일으킵니다.) 방금 뭐 이상한 소리 나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어둡죠?

신성현
모르겠어. 갑자기 정전이라도 온 것처럼 사방이 어두워졌는데. (무대 쪽을 바라보던 신성현이 당신을 껴안고 일어선다.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주었다.)
GM
신성현과 당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가까이 있던 다른 타이머와 카운터들도 놀랐는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문득 깨닫습니다.
묻는 목소리도, 대답하는 목소리도 모두 우리, 타이머와 카운터의 것이라고.
스태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무대에서 쏟아지던 환호도, 놀란 관객의 수군거림도, 사회자의 양해 멘트도!
모두 들리지 않아요.
사위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사회자는 더 말을 하지 않았고 무대 뒤편에서 바삐 소리치던 사람들도 모조리 조용해졌습니다.
똑딱똑딱, 끊임없이 흘러가던 시계 소리도 멈춰버렸어요.

이연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불길한 예감, 불길한 기운. 바로 13시 타이머와 카운터를 부릅니다. 신성현이 내려준 바닥을 딛고 제 파트너의 팔을 꽉 붙듭니다.) 어둠, 어둠 좀 걷어줘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신성현
그래, 어둠을 조금 거둬주겠어? 아무것도 안 보여서 상황 파악이 힘들어. (당신의 곁에 있다며 어깨를 감싼다. 하지만 당황한 목소리까지 감출 순 없었다.)
GM
우리들의 부탁에 제13시 페어가 어둠을 거두자 인공적인 태양도 조명도 없는 온전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희미하게 보라색이 섞인 하늘에는 불온한 별들이 총총 떠 있습니다.
붉은색 별이에요. 달도 어쩐지 붉은 듯했어요.
그리고 달빛 아래 드러난 광경은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산 사람도, 죽은 것들도, 움직이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 모든 것들마저……
모두 멈춰버린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구름도 흘러가지 않았고, 달도 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꽁꽁 얼어버린 것처럼 멈춰 서 있습니다.

이연화
사람들이…. (말도 안 돼. 신성현을 이끌고 무대 밖으로 나가봅니다. 멈추었다고? 전부? 불길하기 짝이 없는 하늘과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만 움직일 수 있는지도! 무대 위에 허망하게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멈추었어요… 시간이. 갑자기 왜?

신성현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내 파트너인 당신만은 움직인다는 게 그사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심각하게 주위를 둘러본 신성현은 당신과 멈춘다. 정지한 움직임. 정지한 시간.) 모든 게 멈추었는데 우리만 움직이는 이 상황은 대체, 대체….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괴이했다.)
GM
12시를 알려야 하는 광장의 시계탑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세계의 종말이라기에도, 축제의 마무리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었습니다. 이 순간이 소설이라면 아마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4월 20일, 도밍게즈의 건국을 축하하는 마지막 날.
타이머와 카운터만을 남겨두고, 세계가 멸망했다.
……라고!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이연화
(입술을 꽉 물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다잡아야 해요. 뭐가 뭔진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이대로 시간을 보낸다고 세계가 다시 움직일지 어떨지 알 수 없어요. 우리가 움직여야 해요. DOT의 사람들도 전부 멈췄을까요? (중력으로 사람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신성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짚이는 일이 없어… 우리가 만난 뒤로 이상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그런 불길한 사실만 깨달을 뿐. 당신의 손에 깍지를 낀다.) 세계가 멈추고 우리만 움직인다면 DOT 사람들도 멈춘 건 피해 갈 수 없겠지.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건 어때, 그게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

이연화
(누군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 그 말이 스쳐 갑니다. 우리가 만난 뒤로 이상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 구원자일까요. 카운터의 존재가 이상을 불러일으킨 건 아닐까요. 차마 할 수 없는 질문을 눌러두었습니다.) 우리, 아니면 그때처럼 해봐요. 능력이 사라졌을 때 나누어서 해결하던 거요.
하필 축제가 끝나기 전에 시간이 멈추었어요. 어젠 죽음의 추모 향기가 드리우는 장미 아치가 생겼고, 축제 때 변하는 것은 하나뿐이죠. 호수로 가보고 싶어요. 거기에 무언가 있을지도 몰라요. (부정합니다. 우리가 만나서는 안 되었다는 그런 말은 믿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른 곳을 가보고.

신성현
(망설인다.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흩어지게 만드는 게 정말 괜찮은 선택일까, 하지만 당신의 얼굴을 보고 그저 끄덕인다.) 좋아. 모든 게 멈춘 상황에서 우리에게 위험할 게 뭐가 있겠어. 만약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돌아오라고 말할게. 축제 때 검게 물드는 호수… 단서가 되길 바라야지. (결심한 신성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흔들림 없는 얼굴로 당신의 옆에 서 있었다.)
가자. 우리는 시간이 존재하게 만드는 타이머와 카운터야.

이연화
할 수 있어요. 조금씩 이상 징조를 보였던 것들과 지금 상황이 이어져 있을 거예요. 교회와 호수, 푸른 장미 아치.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징조를 보였던 곳은 전부 가볼게요. (이연화가 중력을 조작합니다. 생성된 단 하나의 마안이 넓게 퍼집니다. 곧이어 당신과 자신이 들어갈 만큼의 금빛 포탈이 되었습니다.)
《디멘션 게이트》 Lv1 | 메이저 | 자동 | 효과 참조 | 지근 | 공간을 비틀어 멀리 떨어진 아는 장소와 연결되는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이펙트.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71 → 74

이연화
공원과 연결해 두었어요. 이건 계속 열어둘게요. (신성현을 데리고 공원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신성현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당신이 말한 방안을 설명한다. 상황이 정리되어 각자 갈 곳이 정해지자 마음을 다잡는다.) 교실에서 들렸던 소리는 어디에서 난 것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정확히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할 수 있어. 네가 이상함을 느낀 곳에 모두 데려가 줘. (난 언제나 이연화를 도울 것이다. 당신과 게이트를 건넌다.)
GM
아이들은 우리의 말에 따라 곳곳으로 흩어져 상황을 확인합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코마니 호수가 있는 공원.
타이머와 카운터의 무대를 보느라 공원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던 꽃과 나무마저 멈춘 이 공원은 하나의 풍경 같습니다.
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가 그대로 우리를 맞이했고 검은 호수에 떠 있는 종이꽃들까지 멈춘 상태입니다.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네요.

이연화
이 장미 아치는 그 장미 아치가 아닌가 봐요. 그때 느꼈던 기분과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혹시 몰라 장미 아치에 손을 댑니다. 딱딱하고, 조각상 같습니다.)

신성현
그건 뜬금없이 전시실에 나타난 아치였으니까. 단순히 사랑 관련 소문이 있는 이 아치는 그것과 관련 없는 게 확실해졌네. (당신이 손을 대도 변함없는 아치를 보고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이연화
뭔가 그걸 찾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직접적으로 다가왔던 아치가 이 상황의 열쇠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아치는 몰라도 호수… 지금의 우린 호수에 들어갈 수 있어요. (신성현과 호수에 달려갑니다. 보안관이 움직일 수 없는 정지된 시간이었습니다.) 관건은 물이 움직이냐는 건데.

신성현
내 생각도 그래. 어른들은 못 보고 우리만 봤던 장미 아치, 그리고 모두가 멈췄지만 우리만 움직이는 이 상황. 갑자기 나타난 아치라 찾을 만한 방법도 없어서…. (이연화를 따라 간 신성현은 잠시 고민하다, 중력을 조종해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당신과 자신을 공중에 띄우고 발끝만 호수에 닿았다.) 직접 알아보면 되지.
GM
툭, 호수의 표면과 발끝이 맞닿으면 돌 같은 감촉이 느껴집니다.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꽉 차 있는 물 입자가 누군가의 침입을 허락해 흐트러질 순 없으니까요.
이 호수도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곳 또한 비슷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연화
틀렸어요… 들어갈 수 없어요. 정말 아치를 찾는 게 정답인가요? 우린 어떡해야 해요? (감이 오는 게 전혀 없습니다. 똑똑하면 뭐 해요, 이럴 땐 도움이 안 되는데. 호수 표면에 주저앉아 손톱을 물어뜯었습니다.) 이대로 평생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신성현
이연화. (호수 표면에 주저앉은 당신에게 한쪽 무릎을 굽힌다. 높이가 같아져 시선을 마주한다. 당신의 손을 부드러이 빼내 제 손에 붙들어 두었다.) 너무 혼자만 해결하려 하지 마. 네 곁에는 나도 있고 다른 아이들도 있어. 다 같이 머리를 모아보는 방법이 남아있잖아. 우선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시간이 흐르게 할 방법을 찾는 거야. (당신을 끌어안는다. 정지된 세계에서 살아 숨 쉬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이연화
(신성현의 품에 안겨 색색 호흡했습니다. 거칠어졌던 숨이 천천히 사그라듭니다. 쿵, 쿵 일정하게 박동하는 고동 소리. 내 옆에 당신이 있다는 증거. 당신의 품을 파고들어 웅얼거렸습니다.) …알았어요. 잠깐 무서워서 그랬어요. 내가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도 괜찮아졌어요. 여기엔 나 혼자가 아니라 형이, 다른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돌아간 뒤에 천천히 생각해 봐요. (시무룩해졌습니다.)

신성현
힘들 땐 쉬어. 오늘 열심히 준비하고 무대에 서느라 체력이 떨어져서 그래. 곧 12시야, 어린 아이는 잠에 들 밤. 시간이 정말 멈춘 거라면 휴식하고 움직일 시간이 무한정이라는 뜻도 돼. 조급해하지 마. 네 곁엔 내가 있어. (착하지, 머리칼을 느리게 쓰다듬은 그가 이연화를 들고 일어선다. 처음 당신을 안아 DOT 곳곳을 소개해 줄 때와 같은 모습이다.) 눈을 감고 머리 좀 식혀.

이연화
응… 형 말 들으니까 피곤한 게 느껴지는걸요. (정말입니다. 어제, 오늘 내내 바짝 긴장해서 움직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약한 몸이 적색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당신의 목에 팔을 두르고 온몸을 기댔습니다.) 고마워요. 옆에 있다고 해줘서, 내 파트너가 형이라서. 몇 분이면 충분해요. (어두운 얼굴로 멀어지는 호수를 봅니다.)

신성현
뭘, 당연한 사실인데. 열심히 달려온 카운터를 위한 휴식 시간도 있어야 해. 둘이서 함께, 알지? 네 짐은 곧 나의 짐이야. 우린 모든 걸 함께 헤쳐 나가는 파트너니까. (당신이 만든 게이트로 돌아가 귀환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본인조차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GM
아무 소득 없이 공원에서 돌아왔으나 그렇다고 상황이 악화된 것도 아닙니다.
각자 흩어져서 이상한 곳을 살펴본 아이들은 당신과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이 정지한 세계. 우리만 남은 세상.
세계는 타이머와 카운터를 구원자라고 부르지만…… 멸망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오늘, 애석하게도 타이머와 카운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모인 무대 뒤편에서 흐르지 않을 시간이 지나갑니다.
《씬 종료》
◆ #Scene 10. 시계 바늘의 방향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2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10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74 → 76
[ 신성현 ] 침식률 : 73 → 83
[ 신성현 ] BN : 1 → 2
GM
아침이 왔습니다.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달과 별은 그 자리에 풀칠한 것처럼 불온한 색으로 빛날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멈춰 서 있어요.
웃고 떠들던 그대로, 손을 잡고 걷던 그대로, 돌아서던 그대로, 박수갈채를 보내던 그대로.
무구하고 기쁨에 찬 얼굴이 생생합니다. 자신의 시간이 멈췄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폼페이의 그 날처럼!
다른 점이라면 화산재 대신 부서진 빛만 떠다닌단 걸까요.
문득, 전시관에서 보았던 조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퍽 닮았거든요.
사람이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마저 멈추어 버린 걸까요? 혹은 생생하게 움직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확신하는 건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우리는…… 고민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왜 멈췄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 돌이킬 수 있을지. 구원자로서 우리가 처음 가진 사명이니까요.
시간은 왜 멈췄을까? 답을 아는 이는 없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맞이했고, 답을 내놓고, 정답인지 오답인지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연화
(조금 휴식하고 컨디션이 돌아온 이연화가 하나씩 돌아봅니다.) 우리가 느낀 이상한 징후는 몇 가지가 있었어요.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교회의 알 수 없는 소리, 전시회에서 본 푸른 장미 아치. 전시실엔 아치가 없다고 했죠?

신성현
응, 거기도 아치는 없었대. 이상한 기운이나 특별한 것도 없었고. 시간을 멈춘 이유를 알 수 없으니까 작은 단서를 찾는 게 우선이야.
GM
자, 이상했던 징조를 돌이켜 볼까요.
세계 멸망의 예언과 전 세대 예언의 타이머가 내놓았던 해결 방법. 갑자기 나타난 카운터와 홀연히 사라진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불가능과 기적이 순서대로 교차하는 배치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떠들던, 일어날 리 없다고 부정한 세계 멸망.
시시각각 다가오던 세계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낸 한 줄의 예언.
타이머는 오직 하나뿐이라던 세계의 섭리를 깬 카운터의 등장과,
기적을 상징하는 새파란 장미의 아치문.
데칼코마니처럼 좌우의 아귀가 딱 들어맞습니다. 이것이 만약, 정말로 예정된 멸망이라면……
타이머와 카운터로서,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단 건 아닐까요.
그래서 예언의 타이머는 카운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멸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걸지도 몰라요. 물론 모두 추측입니다.
시계는 울지 않습니다. 세계는 고요합니다. 새파란 장미는 무르익었지만, 꽃잎을 떨구지 않아요.
문득 아치문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단 사명감에 가까운 감각이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연화
(벽에 기대던 몸을 일으킵니다. 전부 모인 타이머와 카운터를 돌아봅니다.) 내 생각은 아까와 다르지 않아요. 우리는 전시실에 나타났던 푸른 장미 아치를 넘어야 해요. 그것이 이 세계의 멸망을 알려주는 징조였고, 그래서 시간이 멈춘 거예요. 그것이 있을 장소를 찾아다녀야 해요. 가지 않은 곳이 어디 있었죠?

신성현
홀연히 나타난 것부터가 수상했지. (당신과 비슷하게 신성현도 아치문을 떠올린다. 내내 수상하다고 말했던 그것.) 기적을 상징하는 파란 아치문이라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도 있어. 하지만 어디에 있을까… 전시관에는 없댔는데. 흡사한 공원의 장미 터널도 아니었고.
GM
혹은 전혀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 정보-DOT 판정 : 난이도 10 ⚜

이연화
공원의 그건 그냥 평범한 아치였어요. 기적처럼 나타난 아치니까 더 특별한 곳에 있을 거예요. 잘 생각해 보면….
(2+1)dx+1 정보:DOT 판정 (3DX10+1) > 9[3,6,9]+1 > 10
GM
전시관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생김새였습니다.
DOT의 본관을 본떠 지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거든요.
마중을 나온 전시관의 담당자가 “일부러 그렇게 지었습니다.” 했었죠.
전시관은 본관을 본떠지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오히려, 전시관이 아니라……

이연화
DOT. DOT예요. 전시관이 DOT를 본떠 만들었는데 거기에도 없다면 남은 곳은 본관 하나뿐이에요. 혹시 모르니까 가 봐요, 시간은 많아졌고 우린 언제든 움직일 수 있잖아요. (게이트를 한 번 더 엽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전부 들어갈 수 있도록 크게 열었습니다.)
《디멘션 게이트》 Lv1 | 메이저 | 자동 | 효과 참조 | 지근 | 공간을 비틀어 멀리 떨어진 아는 장소와 연결되는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이펙트.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76 → 79

신성현
맞아, 전시관은 DOT를 본떠 만들어 최대한 비슷하게 지었다고 했었어. 아직 DOT 본관에는 가본 적 없으니까 네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 밑져야 본전이지. (당신을 따라 일어나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바로 출발하자.

이연화
이제 생각났어요. 본관엔 엘리베이터에 없는 지하 2층이 있었댔죠? 가는 김에 거기를 한 번 살펴봐야겠어요. (아이들이 전부 게이트를 빠져나가면 마지막으로, 신성현과 넘어갑니다.)

신성현
프레헨이 타봤을 때 그런 버튼은 전혀 없었댔어. 엘리베이터까지 정지되어 있지 않다면 지하 2층으로 가는 방법이 있을 거야. (금빛 게이트를 넘어간다.)
GM
당신이 연 디멘션 게이트를 타고 도착한 DOT 본관은 언제나처럼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지금도 그렇습니다.
청동으로 빚은, 남색으로 덧칠한 문을 지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본관의 로비입니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열두 개의 별자리가 그려진 남색 천장,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붓의 흐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섬세하게 회칠을 한 벽. 언제나 그렇듯 흠 없고 점 없이 완벽하기만 한.
안내 데스크에 앉은 직원도,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도 모두 멈춰선 상태입니다.
그때 전시관의 구조가 어땠더라. 전시관을 모두 돌고난 후, 안내 데스크의 옆에 세워졌었지.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돈 시선이 비로소 장미 아치가 있던 곳에 다다릅니다.
그곳에 있던 것은,
엘리베이터입니다.
띵.
멈춘 시간을 깨트리고 요란한 소리가 울립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였습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선 채 내려갈 채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열린 문이 어쩐지 우리를 기다리는 괴물의 입속인 양 께름칙합니다.
우연인가?
혹은 운명인가?
새파란 장미는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의 문설주는 둥글긴커녕 각지고 네모나지만…… 위치는 분명히 같았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어요.
시간이 멈췄다면 엘리베이터 또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서 이것만은 움직이는 건가요?
그러나 장미 아치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들어오라는 것처럼, 문을 닫지 않고 내내 그렇게 서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하지?

이연화
우연이 아니에요. 장미 아치와 같은 위치, 모든 게 정지된 세계에서 우리처럼 움직여 들어오라는 듯 기다리는 것까지. 우연이 두 변 겹치는 순간 필연이라죠. 나는 갈 거예요.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신성현
네 말이 맞아. 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시간은 계속 멈춰 서 있고 우린 언제까지나 홀로 움직이겠지. (당신을 이어 엘리베이터에 탄다. 괴물의 입속이어도 상관없다.) 우린 나아가야 해.
GM
그러나 타이머와 카운터가 모두 탄 후에도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몇 층으로 갈지, 버튼을 눌러주어야 움직일 모양입니다.
지하 1층부터 4층, 그리고 옥상까지. 총 6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몇 층으로 가야 하지?

이연화
(프레헨을 봅니다.) 그때 장교가 지하 2층을 갔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갔는지 짐작 가는 거 없어요?

프레헨 크리스틴
제가 타서 확인해 봤을 때도 이때랑 똑같았어요. 지하 2층을 나타내는 버튼은 없었고 짐작 가는 것도 없었죠. 하지만 분명히 지하 2층이었어요. 장교님이 올라오신 곳.

이연화
어쩔 수 없죠. 이것저것 누르다 보면 뭔가 될 거예요. 우릴 여기로 인도한 장미 아치가 지하 2층, 혹은 와야 할 곳으로 안내해 주겠죠. (버튼을 아무거나 콕콕 눌러댑니다.)

신성현
막 특정한 순서로 버튼을 눌러야 지하 2층으로 갈 수 있다던가…? 책에서 보면 다들 그러잖아. 암호 숨겨두고. (빠안히)
GM
그러나 당신이 버튼을 아무리 둘러봐도 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움직일 기미 없이 잠잠합니다. 몇 층을 눌러도 똑같습니다.
그때 어떤 위화감이 움틉니다.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잠잠하던 그것들이 요동칩니다.
정확히 엘리베이터의 버튼 중 가장 아래, 긴급 호출 버튼을 가리킵니다. 꼭 그것을 누르라는 것처럼!

이연화
…형은 천재예요.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암호처럼 숨겨둔 지하 2층 버튼이 있는 것. 능력이 이끄는 대로 긴급 호출 버튼을 누릅니다.) 내 능력이 여길 가리키고 있어요. 푸른 장미 아치가 우릴 이끌어 주는 것 같아요.

신성현
똑똑한 파트너를 둔 덕분이지. (같은 위화감을 느낀다. 비상 호출 버튼을 가늘게 뜬 눈으로 본다.) 이거… 능력이 덧씌워져 있는 것 같아.

딜런 펠릭스
환각이에요. 우리 능력과 비슷해서 알 수 있어요. (제8시 환각 타이머가 말했습니다.)

아델 헤스티아
상당히 정교한 방식의 환각이네… 지하 2층에 대체 뭐가 있길래 그런 걸까? (제8시 환각 카운터도 살펴보고 심각해집니다.)
GM
그 버튼을 누르면 파란 LED 램프가 점등합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판에는 정확히 B2, 지하 2층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공간입니다.
1D2 (1D2) > 2
덜컹, 덜컹, 덜컹! 갑작스럽게 엘리베이터의 몸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연화
장교가 환각을 덧씌워서 감출 정도면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잠깐, 다들 꽉 잡아요! (아래를 살펴보기도 전에 떨어져서 죽게 생겼습니다. 신성현과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움켜쥡니다.)

신성현
뭔진 몰라도 불청객을 반기지 않는 장소라는 건 알겠어. (당신이 넘어지지 않게 받쳐준 신성현이 다급히 손을 뻗는다.)
GM
쾅! 소화라도 시작한 것처럼 요란하게 좌우로 뒤틀던 그것은 곧 문을 닫아 젖히고…… 우당탕탕! 아래로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성급하기 짝이 없는 속도입니다. 내장이 위로 치밀고, 공기가 역류하는 감각이 선명하게 뇌를 흔듭니다.
멀미라고 표현하기엔 지나친 부유감은, 제대로 서 있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곧 직감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처박혀 납작한 파이가 되고 말 거라고!

이연화
(아! 신성현이 손을 뻗자 자신이 중력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걸 떠올립니다. 아이들의 몸을 살포시 띄우고 엘리베이터의 속도에 맞추어 내려갑니다.) 형!

신성현
잘했어! (아이들은 이연화에게 맡긴다. 이 추락하는 엘리베이터를 멈출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잠깐 흔들릴 거야!
《고철의 다리》 Lv1 | 메이저 | 자동 | 효과 참조 | 시야 | 중력을 조종하여 고철이나 잡동사니 등을 모아 커다란 발판을 구축하는 이펙트.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모든 집중력을 끌어모아 엘리베이터를 이루는 물질을 조종한다. 거세게 흔들리는 무거운 몸체를 아래에 나 있을 길을 따라 힘겹게 내린다. 아이의 힘으로 견디기엔 너무나 무거워 고작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한계였다.) 도착한다…!

이연화
충분해요. 아이들은 제가 감쌀게요. (마안이 맹렬히 회전했습니다. 반짝이 가루를 조종하고 무대에서 했던 것처럼 아이들 하나하나를 감싸 충격에 대비합니다.) 이 정도면 다치지 않을 거예요!
GM
퍽!
바닥에 처박히다시피 떨어졌을 때 모두의 교복 자락이며 머리카락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진 굳이 묘사할 필요 없겠죠.
다들 어딘가 혼이 나가거나 잔뜩 휘청인 상태로 열리는 문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신성현과 당신 덕에 잘 구워진 납작한 파이가 되는 일은 면했지만.
내리라고 재촉하듯 파란 LED 램프가 점등합니다. 엘리베이터의 안내판에는 정확히 B2, 지하 2층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정신이라곤 하나도 없는 착지입니다.

이연화
지하에 도착하기 전에 죽게 생겼네요… 좀 추락했다고 폭발하거나 그러진 않겠죠. (혹시 몰라 아이들을 둥둥 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내보냅니다. 자신이 뒤따라갑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형. 괜찮아요? (가장 중요한 신성현의 상태를 살핍니다.)

신성현
올라올 때를 대비해 망가지지 않게 내려뒀어. 아마 고장 나진 않았을 거야. (몸체를 받치던 팔이 저린 듯 두어 번 흔드는 것 빼고는 멀쩡했다. 당신을 쓰다듬는다.) 도와줘서 고마워, 나도 네 덕분에 살았어. (혼자서는 많은 아이들을 책임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연화
그래도 어디 아프거나 갑자기 힘들어지면 말해요. 긴박한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폭 안아준 이연화가 쓰다듬을 받고 물러납니다.) 드디어 지하 2층을 살펴볼 수 있겠어요.

신성현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지 않고 미리 대비해 두는 것이 좋은 파트너의 조건이지. 걱정하지 마. (이연화와 대화하며 완전히 회복한다. 당신을 데리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선다.) 장미 아치가 우리를 데려온 곳.
GM
우여곡절 끝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불이 꺼진 탓일까. 옆에 선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위가 어두웠습니다. 제13시 페어가 내린 어둠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독약 냄새가 싸하게 코끝을 스칩니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내키지 않는 냄새입니다. 병원이라기엔 지독하게만 느껴집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일까요?
그러나 신성현과 당신이 한 발 내딛자마자 센서가 작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불이 켜집니다.

이연화
윽, (빛의 타이머와 카운터를 부르려 하던 찰나 밝혀진 어둠에 눈을 찌푸립니다. 익숙해지려 노력하며 밝아지는 안을 봅니다.) 소독약 냄새. (…연구실이라거나.)
GM
금세 주변이 환해집니다. 불이 켜지고, 지하 2층의 모든 곳이 밝은 빛 아래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14개의 원형 유리관과 멈춘 당신과 연구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원통이 놓여 있습니다.
안쪽에는 철제문이 딸려 있습니다. 여러 대의 CCTV가 모서리에 매달려 있었지만 모두 멈췄는지 움직이거나, 액정을 빛내진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DOT 본관 지하에 이런 것들이 왜 필요로 한단 말인가요?

이연화
(눈을 깜빡입니다. 혹시나 하던 광경이 실제로 펼쳐지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감정을 다스려 냉철한 눈으로 모든 것을 훑었습니다.) 연구실이네요. CCTV도 멈추어서 우릴 확인할 걱정은 없어요. 이곳이 뭘 연구하는 곳인지 한 번 둘러봐요, 형. (미약한 두려움에 신성현의 손을 잡습니다.)

신성현
엘리베이터만 움직였지 이 사람들은 전부 멈추었어. CCTV나 들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뭘 연구하길래 지하 2층에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었는지, 알아봐야겠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불길함에, 이상함에. DOT가 왜 이런 걸….)
GM
우리는 본격적으로 연구실을 조사해 보기로 합니다.
《정보 수집 페이즈》

이연화
(이연화는 가장 먼저 보이는 원형 유리관으로 다가갔습니다. 14개의 유리관. 14시의 타이머 카운터. 결코 달갑지 않은 예감이 저를 스쳤습니다.) 형, 여기… 어쩌면. (우리를 연구하는 곳일 수도 있어요. 이걸 말해도 될까요.)
1d10 | 조사 침식 (1D10) > 10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79 → 89
[ 이연화 ] BN : 1 → 2

이연화
(2+2)dx+1 정보:DOT 판정 (4DX10+1) > 9[3,6,8,9]+1 > 10

신성현
…네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아. (마침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원형 유리관 앞에 다가가 멈춘다. 헛숨을 들이켠다.)
GM
✦ 원형 유리관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선 원형 유리관에는 모두 정체불명의 액체가 꽉 차 있습니다. 투명한 파란색으로 물든 그것은 꼭 장미의 색을 훔친 것처럼 흐릿합니다.
각 유리관에는 숫자와 간단한 낱말이 적힌 네임택이 붙어 있습니다.
〈제0시, 빛〉, 〈제1시, 물〉, 〈제2시, 불〉, 〈제3시, 식물〉, 〈제4시, 전기〉, 〈제5시, 얼음〉…… 구태여 더 읽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전부 시간이 부여한 숫자와 능력을 적어둔 것이었으니까. 마침 수도 14개였으니 딱 떨어집니다.
하지만 타이머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입니다. 카운터인 당신도 연구를 도왔지만 이런 곳의 존재는 알지 못했어요.
네임택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숫자 몇 개가 적혀 있습니다.
정보가 공개됩니다.

이연화
(네임택을 확인하자마자 물러섭니다. 처음엔 14명의 타이머를 살펴보는 공간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제10 중력, 그리고 내가 온 날짜. 대략 반년 전부터 일주일 사이 늘어져 있는 날짜 중 하나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날입니다. 신성현의 손을 놓고 물러섭니다.) 형, 나… 나 혹시…. (말을 잇기 힘들었어요. 파트너를 놓고 스스로 맞잡은 손끝이 떨려옵니다.) 아니라고 해줘요.

신성현
(충격에 빠진 제 손에서 당신이 빠져나간다. 텅 빈 손안에 온기 대신 싸늘한 추위만이 들어찬다. 가슴이 얼어붙은 것 같은 추위였다. 망설이다 당신을 향해 다가간다. 맞잡은 그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아니야. 너는 여기 오기 전까지 지내던 기억이 있었잖아. 네가 그런 거라면 왜 기억들이 있겠어. 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네게 무어라고 해주고 싶은데, 도저히… 방황하던 신성현은 당신의 행동들을 떠올린다. 그래, 지금 이연화가 바라는 말은. 어쩌면 제게 듣고 싶어 할 말은.)
누가 뭐래도 너는 내 파트너야.

이연화
(멈추었던 숨을 들이마십니다. 익숙하고 불쾌한 소독약 냄새가 폐부를 찌르지만, 그 사이 늘 저를 안아주었던 당신의 시원하고도 달콤함이 빠지지 않은 체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이연화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을 유악한 얼굴로 올려다봅니다. 맞아요. 내가 바라는 건 아니라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만약…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게 맞더라도.
날 떠나지 마요. 부탁이에요. (내 옆에 있어줘, 날 좋아해 주던 그 모습으로.)

신성현
…내가 왜 널 떠나. 하나뿐인 파트너를 왜,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신을 끌어안는다. 소독약 냄새가 아닌 달콤한 향이 저를 감싸고 맞닿은 고동 소리가 서로의 박자에 맞추어 일정해진다. 추위가 물러난다.) 이연화. 우리가 했던 약속 기억해? 나는 영원히 네 곁에 있어줄 것이고 너는 내게 정식 임관을 받는 날 해줄 말이 있다는 약속.
그걸 이루어야지.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타이머 신성현은 이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세계에서… 카운터 이연화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결심했어.
그런 말 하지 마.

이연화
(두근, 두근.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당신에게 기대는 바람에 내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흔들리고 유약한, 불안하기만 한 표정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네가 아니었다면 무너졌을지도 몰라. 이를 악물었습니다.) 응… 잠깐 확실한 것도 아닌 정보에 너무 동요했어요. 어차피 형은 내 옆에 있어 줄 건데. (그거면 됐잖아. …정말, 괜찮을까? 타이머에게 능력을 빼앗기던 그때가 사실은 정해진 결과는 아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잘라낸다. 생각하지 마. 함부로 의심해선 안 돼.)
단순히 우리의 능력을 연구한 걸 수도 있죠. 내가 저기서 걸어 나왔다고 단언하기엔 정보가 부족해요. 더 살펴봐요, 우리. (스스로 쥐던 손을 풉니다. 마침내 당신과 손깍지 낍니다.)

신성현
연구실의 정체와 목적을 완전히 살펴본 게 아니잖아.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이연화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어. 그의 걸어 나왔다는 말, 즉 이연화가 ‘만들어진’ 카운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푸른 액체가 검게 일렁이는 것 같았다. 저것으로부터 당신을 감추기 위해 손을 잡고 제 품에 끌어당긴다. 누가 들으면 너무 나간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저 넘어가기엔 여태까지 겪은 일들이 너무나 이상했었다. 그 탓이다.)
난 비인도적인 잘못을 저지른 단체에게 충성할 생각 없어. (이것이 사실이고 네가 원한다면 DOT로부터 등을 돌려주겠다고. 위험한 발언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저 연구원… 음, 애쉬가 들고 있는 책이 신경 쓰이네. (어쩐지 얼굴이 낯익더라니. 멈춰 있던 연구원은 연구 보고를 설명하고 지시한 애쉬였다.)
GM
그렇습니다. 낯익은 얼굴의 연구원 애쉬 또한 커다란 책을 든 채 조각상처럼 꼿꼿하게 멈춰버렸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미묘한 색의 가죽 표지가 눈에 띕니다. 요즘 책도 이런 가죽 표지를 쓰던가요?

이연화
(내가 원한다면 DOT에게서 등을 돌려주겠다니. 흔들리던 눈빛에 빛이 조금 돌아옵니다. 잡은 손을 꼼질거립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형은 정말이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말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고백 같았단 말이에요. 아무튼 애쉬까지 관련되어 있었나요… 많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의 책을 중력으로 콱, 빼내 신성현의 손에 들려줍니다.) 같이 봐요.

신성현
혹시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나는 그냥 그 정도로 네 편을 들어주고 싶다는 소리였어. 넌 날 대가 없이 좋아해 주고 곁에 있어 준다는 파트너니까. (그쪽으로 착각한 듯했다. 당신이 건네준 책을 받으면 신성현의 표정이 흠칫 찌푸려진다.) 이거 되게 느낌이 별로다. (펼칩니다.)
1d10 | 조사 침식 (1D10)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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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현 ] 침식률 : 83 → 93

신성현
(2+2)dx+1 정보:DOT 판정 (4DX10+1) > 5[1,4,5,5]+1 > 6
GM
✦ 커다란 책
애쉬에게서 빼낸 미묘한 색의 가죽은 어쩐지 서늘하고, 끈적거리며, 희미하게 사향 냄새가 납니다.
불길한 감촉이며 아무리 봐도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읽을 법한 책은 아닙니다.
정보가 공개됩니다.
무언가를 사용하기 위한 설명서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문장도 당신과 신성현이 가진 의문에 해답이 되진 못합니다.
이런 건 왜 읽고 있던 걸까요?

이연화
기분 나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좋아요, 날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는 말이잖아요. (신경 쓸 것 없다며 새침하게 책을 보던 이연화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게… 과연 뭘까요? 이런 기계는 살면서 본 적 없어요. 표지도 기분 나쁘고 이상한 내용밖에 없네요. 연구실 내에 있을까요?

신성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책을 탁 덮는다. 불길해서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애쉬에게 고이 돌려… 끼워준다.) 우리가 알던 기계나 물질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건 알 것 같아. 직접 봐야 감이 올 것 같은데. 찾아보면 나오지 않을까? (커다란 원통을 가리킵니다.) 저런 거라든가.

이연화
14개의 파란색 원통 액체와 우리가 온 날짜, 그리고 불길한 책이라. 아깐 너무 추측해서 내가 그렇고 그런 건 줄 이젠 당최 알 수가 없네요. 한 명의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가 괜히 그런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신성현을 데리고 커다란 원통 앞으로 가요.) 저 기계가… 카운터를 만들기 위한 기계에 대한 설명이라면? (목소리가 가라앉았습니다.)

신성현
(아니라고 부정하기엔 연구실에 있는 것들이 나타내는 게 명확했다. 딱 한 명의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유리관과 카운터가 이곳이 온 날짜가 적혀 있던 네임택, 장미의 색을 훔친 액체….) 카운터의 존재가 멸망을 저지할 거라던 하인리히 장교의 말은, 기만이 되는 거겠지. (심장이 저릿 아파온다.)
GM
✦ 커다란 원통
빛나는 원통은 단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높이 30cm 정도에 지름은 그보다 약간 작고 볼록한 앞부분에 신기한 소켓 세 개가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생김새인데, 유리창도 없어서 내용물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이연화
그 장교, 원래 태도가 이상했어요. 처음은 그렇다 치는데 우리의 능력이 사라진 날 있죠. 지하 2층에서 올라온 장교는 놀라지도 않았을 게 분명해요. 오히려 우리 둘이 붙어있으라고 말했다잖아요. (반감이 커졌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원통을 이리저리 건듭니다.) DOT가 전부 한통속일지, 애쉬와 장교를 포함한 일부만 한통속일지.
1d10 | 조사 침식 (1D10)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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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화 ] 침식률 : 89 → 99

이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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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현
붙어있으면 된다느니 의뭉스러운 건 그냥 성격인 줄 알았어. 그런데 장교가 이 연구실의 내용을 전부 알고 있고, 의도한 사람이었다면. DOT는 전 세계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거잖아…. (누가 관계자고 누가 무고한 사람인지 앞날이 깜깜했다. 중력으로 살짝 건드려 봤지만 내용물이 출렁거리기만 한다.) 되게 무거워, 이거.
GM
정보가 공개됩니다.

이연화
추출…한, 뇌…. (욱, 생리적인 불쾌감에 구역질이 나옵니다. 이연화는 이런 것에 익숙해지기 전이었는걸요. 통을 건드리던 것을 멈춥니다.) 애쉬가 이런 걸 쓰고 있었다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그럼 저건 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액이고 기억을 읽는 기계… 아르고라는 사람의 뇌를 담아놓은 거예요. (저게 뭐길래? 신성현을 한 번 봅니다.) …사용해 볼까요?

신성현
(눈살을 아주 많이 찌푸리고 있었다. 사람의 뇌를 보관하는 것도 모자라 뇌의 기억을 읽는다고? 이게 말이 되나?) 한쪽에 보관해 둘 정도면 굉장히 중요한 내용 아니겠어? 저걸 사용해야 연구실에 관한 내용이 나올지도 모르고… 이곳을 왜 어째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내키지는 않지만. (끄덕, 동의한다. 당신의 등을 쓸어내린다.)

이연화
(신성현의 손길에 울렁거리던 속이 좀 가라앉습니다. 후우, 심호흡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무섭다고 물러날 순 없어요. 돌아가기에도 이미 늦었고요. 이런 걸 보고 멀쩡히 생활할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원형 유리관을 본 나는. 책에서 본 대로 이것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무슨 기억을 담아두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줘. 이 연구실에 대한 것, 그리고 나아가서 카운터에 대한 것을.)

신성현
때로는 그곳이 가시밭길이라 하여도 나아가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야. 네가 나아가는 곳은 나도 따라갈게. 아무것도 모른 채 DOT에게 이용당할 생각은 없어. (당신을 도와 뇌 보관통을 활성화한다. 적절한 소켓, 진공관과 발성판, 금속 원반.)
GM
◆ #Trigger Scene 11. 어떤 ■■
조건 : 뇌 보관통을 사용한다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3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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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화 ] 침식률 : 99 → 102
[ 이연화 ] BN : 2 → 3
[ 신성현 ] 침식률 : 93 → 95
GM
뇌 보관통을 정확히 사용하면 렌즈를 통해 벽면에 어떤 장면이 투영되고, 단조로운 나레이션이 시작됩니다.
흑백 영화처럼 모두 회색인 데다 상당히 화질이 좋지 못해서 더더욱 도밍게즈의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TV도 녹화한 영상도 아니므로 장면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운 좋게 흘러나오는 것들을 훔쳐보고 주워들을 뿐입니다.
✦ 어떤 예언
깜빡, 깜빡, 깜빡. 눈을 감았다 뜨는 것처럼 시야가 재조명되더니 낯익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예언의 타이머입니다. 그는 신중하게 말합니다.
예언의 타이머
세계가 멸망할 거예요. 시간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 다 닳아가기 때문이니, 이제 타이머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 어떤 예언
주변에는 하인리히 장교와 리슬러 부관을 비롯해 몇몇 연구원이 보입니다. 모두 DOT의 직원입니다.
예언의 타이머
다른 방법을 찾으세요. 새로운…
✦ 어떤 예언
뒷말은 들리지 않았으나, 당신은 이미 다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연화
(…카운터를 찾는 것, 혹은 ‘만들어 내는’ 것. 말없이 어떤 예언을 지켜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심해로 떠밀어 가라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타이머만으로는 부족하다니. 그래서 우리를 만들어 낸 건가요? 어떻게? 해답은 이 뒤에 있겠죠.)
✦ 어떤 샘플
영상이 흘러갑니다. 기억의 주체인 연구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내키지 않는다거나, 두려워한다기엔 지나치게 삭막한 나레이션입니다.
연구원
정말 괜찮겠어요? 내키지 않아요.
✦ 어떤 샘플
시야의 맞은편에 선 것은 마찬가지로 전 세대의 타이머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팔을 내밀었고,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누군가는 또 다른 신체 일부분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를 위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이 방법뿐이니까.”
목소리 너머로 장면이 바뀝니다.
시체 안치실입니다. 냉동 보관되어있는 것들은 전부…… 익숙한 시체들입니다.
전전 세대, 혹은 전전전 세대……. 죽어서도 시체조차 묻히지 못한 그것들은 서랍에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가 문가에서 지시합니다.

하인리히 장교
유전자 샘플 확보해. 조심히 다뤄.

이연화
(눈을 잠시 내리깔았습니다. 이미 예상한 정보들인데 직접 눈으로 듣고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신성현을 쥐던 손에 힘이 빠집니다. 유전자 샘플, 냉동 보관된 샘플, 확연히 다가오는 실험의 흔적들… 숨이 떨렸습니다.)

신성현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DOT 아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빠짐없이 알아낼 것이다. 당신이 힘을 놓아도 자신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를 제 쪽으로 데려와 어깨를 감싸주었다. 내 체온이 전달될 수 있게. 우리는… DOT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긴 할까.)
✦ 어떤 기적
“타이머의 능력은 유전되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누군가 밋밋하게 소리를 지르자, 하인리히 장교가 단언합니다.

하인리히 장교
그걸 해내기 위해 자네를 고용한 거야.
✦ 어떤 기적
“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겁니다.”

하인리히 장교
자네가 가부를 판단할 일이 아닐세.
✦ 어떤 기적
“이건, 불가능해요.”
영상 속 하인리히 장교의 입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하인리히 장교
그렇다면 기적이라도 만들어 내.
✦ 어떤 괴물
다음의 장면은 상당히 끔찍했습니다. 흐물거리고,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흰 대리석 바닥은 그것이 흘린 진액으로 끈적끈적해졌습니다.
화질이 나쁘고 음질이 더러운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누군가 한숨을 쉬며 가운의 소매를 걷어 올립니다.
“실패라니까. 도저히 무리야. 다른 방법이 필요해.”
마찬가지로 지친 누군가 “다른 방법은?” 물었고,
“그래, 전혀 다른……”
지직, 지지직.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 어떤 이름
“성공, 성공이야!”
여전히 억양과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뛸 듯이 기뻐합니다. 두 눈은 똑똑히 원형 유리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옅은 회색으로 보이는 그 물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들어있습니다.
네, 당신입니다.
자신의 얼굴을 목격하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말합니다.
“이들을 카운터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이연화
(사실을 확인받은 나의 기분은 어떠할까요. 자신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저를 끌어당겨 안아주는 신성현, 눈앞에서 흘러가는 영상, 고저 없는 목소리와 영상 속 보이는 나의 얼굴. 나의, 카운터의… 그리하여 그는 웃었습니다. 내 존재 가치와 탄생과 목적을 확인하고 웃은 겁니다. 아, 나는.) 신성현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군요. (억울한가? 서러운가요? 아니, 아닙니다. 나는 기뻤습니다. 어차피 네 곁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 숨마저 당신에게 바치는 미래라서! 온전히 너를 위해 죽겠구나. 너를 위해 태어나고 쓸모가 다하면 너와 함께 묻히겠구나. 당신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없었거든요.)

신성현
(이연화, 당신의 이름을 부르려다 멈춘다. 당신은… 내가 감히 부를 수 없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유리관 속에 잠들어 상영되는 이연화와 제 옆에서 수많은 것들이 뒤섞인 감정으로 웃고 있는 이연화가 멀게 느껴진다. 당신의 어깨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지금 네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걸. 자격이 없다는 걸. 시선을 피한다.) …미안해. (당신이 바라지 않는 사과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네가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었거든.)
✦ 어떤 대화
이어 흘러나온 것은 또다시 예언의 타이머입니다.
예언의 타이머
표정이 좋지 않네요, 아르고.
✦ 어떤 대화
뇌의 주인을 부르며 곁에 앉은 그는 커피잔을 들고 있습니다.
아르고는 한참 고민하다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아르고
정말 괜찮겠어요? 내키지 않아요.
예언의 타이머
나는 분명히 세계 멸망을 봤어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뿐이에요.
✦ 어떤 대화
단호한 대답이 돌아오지만, 연구원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얼굴입니다.
예언의 타이머
예언을 하나 하죠.
아르고, 당신은 양심으로 인해 사는 내내 시달릴 것입니다. 양심을 죽인즉 당신이 살고, 양심을 살린즉 당신이 죽습니다. 세계의 모든 구조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훼방을 놓았다간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양심을 따라 행동하고자 한다면.
✦ 어떤 대화
예언의 타이머는 조금 망설이다가, 마저 예언합니다.
예언의 타이머
당신의 ■■,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겁니다.
GM
연구소는 결백합니다. 천장도 바닥도 온통 하얀색이었습니다. 건조한 공기에는 날 리가 없는 소독약 냄새가 빽빽하게 차 있었고, 문득, 하인리히 장교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2053년의 새 계절을 맞을 거야.
GM
그 목소리는 예언의 타이머가 들었던 예언과 똑같았고, 당신은 다음에 올 문장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하인리히 장교
눈앞의 이들이 그 증거지.
GM
그가 그때 당신의 어깨를 잡아 한 발 앞으로 끌어냈었죠.
단순히 표면적인 행동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앞으로 끌어당긴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물밖으로……. 불쾌한 이야기니 여기까지 할까요.

하인리히 장교
지난 예언의 타이머는 매우 훌륭한 이였지.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거웠어.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점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함께 점지받곤 했단 거야. 많은 이들이 세계 멸망의 예언이 예언의 탑으로부터 시작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GM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란 건 이런 식이었던가. 눈과 귀가 밝고, 입이 무겁다는 것은 도덕과 정의의 죽음을 의미했던가.
전 세대 타이머는 어떤 심정으로 그 명령에 순응했는가. 자의였는가, 타의였는가. 진정으로 그들은 구원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걸까.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산재하고,

하인리히 장교
DOT는, 타이머는 이미 그 미래를 알고 있었네. 그 예언이 퍼질 것도,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도, 그리고… 새로운 구원자가 나타날 것마저도!
GM
쏟아지는 깨달음이 선명했습니다.
신은 인간의 탄생을 확신합니다. 스스로 빚어낼 것이기에. 그렇다면 하인리히 장교가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들은 스스로, 카운터의 창조주를 자처했으므로.

이연화
(얼굴을 감쌌습니다. 어깨가 들썩입니다. 우는 것이 아니에요, 웃는 것이지. 하, 하하… 하하하! 새된 소리로 웃은 이연화가 문득 손을 내렸습니다. 신성현을 바라보고, 그 일렁이는 눈빛과 광기에 찬 표정이 당신을 향했습니다. 네 두 손을 가득 쥐어 도망갈 수 없게 만듭니다. 실은 내가 당신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게 만들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백한 연구소 바닥을 한 걸음, 두 걸음 디뎌 당신에게 가까워집니다. 조금은 지친 목소리로,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있죠, 형, 신성현… 나의 타이머. (내 운명의 짝. 파트너. 허공에서 푸른빛과 금빛이 얽힙니다.)
…도망치지 마요. 이제 내가 있을 곳은 정말, 정말 형 하나뿐이에요. 갈 곳이 없어요. 난 형의 파트너가 아니면 안 돼요. (제발. 당신을 간절히 쥔 손이 형편없이 떨렸습니다.)

신성현
(당신을 돌아보기 무서웠다. 도밍게즈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 기어코 카운터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 DOT와 하인리히 장교, 연구원 아르고, 예언의 타이머. 그 벅찬 정보들은 제 머리와 심장 모든 것을 두들겼다. 괴로워. 일생에 운명적으로 만난 네가 사실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파트너라는 소식이 너무나 괴로웠다. 미친 듯이 웃고 종내엔 저를 붙들어 바라보게 만든 이연화를 처참하게 마주한다. 초조함에 입술이 메마른다.) 이연화…. (갈라지는 목소리가 흐트러진다. 당신을 품에 가둔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서.)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는 명실상부한 나의 파트너이고, 카운터이며, 내가 책임져야 할 존재야. (뭣도 모르고 기뻐하던 과거의 내가 싫었다. 모든 걸 알게 됐음에도 당신을 붙잡으려 하는 내가 끔찍했다. 하지만, 이연화는 제 곁에 있고자 한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끔찍한 저를 내어주어야 한다.)
내 모든 걸 줄게.

이연화
(당신의 온기가 저를 감쌉니다. 그러자 바늘로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괴로워하는 거구나. 신성현을 꽉 끌어안은 손이 당신의 옷자락을 쥐어 끌어내립니다. 벽을 긁듯, 바닥을 긁어내듯, 제 안에 들어찬 감정을 꺼내려는 듯… 네가 날 떠나 카운터 이연화의 존재마저 사라질까 봐.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습니다. 공허하고 텅 빈 마음에서 흘러나올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끔찍하게 허기지는 감각에 당신의 모든 걸 삼켰습니다. 그의 존재, 숨결, 온기, 시간. 힘겹게 호흡합니다.)
주어진 내 운명에 거부할 생각 없어요. 내게는 원래도 신성현밖에 없었어요. 이걸로 온전하게 증명받은 것뿐이에요. 이연화는 신성현만을 위해 살아가리라고. 세상을 구원한다던가, 멸망을 저지한다던가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내 숨은 형이 책임진 거예요. 내 모든 걸 줄게요… 그러니 형의 모든 걸 줘요…. (더 세게 안아줘. 날 붙잡아 줘. 당신의 품에서 위태롭게 존재합니다.)

신성현
(고작 세계의 멸망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생명은 지나치게 사랑스러웠다. 위태로웠고, 불안정했다. 더 빈틈없이, 더 거리 없이 당신과 맞닿는다. 크게 뛰는 심장과 서로의 숨이 뜨거웠다. 어쩌려고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어쩌려고 한 생명을 창조했을까. 너와 내가 받아들이기엔 잔혹한 현실이다. 세계는 카운터에게 기대 멸망하지 않겠지. 하지만, 카운터는? 그들은 누가 챙겨주지? …답은 나와 있었다. 널 챙길 사람은 오로지 파트너인 나였다. 네 이마에 입을 맞춘다.)
가져가. 내게 원하는 것 전부, 그 과정에서 네가 날 상처입힌대도 탓하지 않을 거야. 넌 그럴 자격이 있어. 사과받을 자격이 있어…. (이렇게라도 이연화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세계를 구원하지 않아도 돼. 멸망을 저지하고 그들을 위해 싸우지 않아도 돼. 그냥…
그냥 내 옆에 있어.

이연화
(신성현의 호흡을 나누어 받아 부족한 것을 채운 이연화가 고개를 듭니다. 일그러진 표정이 평온하게 돌아옵니다. 작고 옅은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습니다. 당신에게 흘러가 사라질 것만 같았던 그는 이 땅에 서 있습니다. 네가 내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네 존재를 내게 쥐여줌으로써. 희미하게 미소 짓습니다.) 응… 나는 신성현의 곁에 있고 싶어요. 만들어진 생명체라 하더라도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형을 향한 내 마음은 진짜인걸요. (눈을 감습니다. 신성현이 최초로 보여준 밤하늘이 반짝였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걸로 충분합니다.)
우리… 밤하늘 또 보러 가요. 진짜 밤하늘 말고 형이 보여준 우주요. 별과 바다, 내가 가고 싶은 곳. 형이랑 가고 싶은 곳. (네가 사라지기 전에. 전시관 액자에 걸리고 종이꽃으로 추모받기 전에.)

신성현
(손대면 금방 지워질 만큼 희미한 미소였다. 그것이 더욱 마음 아프게 예뻤다. 이 완전한 존재를 어찌 한낱 창조물로 대할 수 있겠어. 너는 나와 동등한 카운터이고 파트너인데. 당신의 눈가를 쓸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지만 내 눈엔 꼭…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널 향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맹세할 수 있어. 나는 여전히 이연화를 애정하고, 좋아하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해.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어. 이런 슬픈 미소가 아니라 진실된 미소를. 내내 느끼던 바람과 똑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너를 닮아 반짝이는 걸 보러 함께 가자. (살아가자. 그가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줄 것이다.)
GM
깨끗한 대리석 벽면에 얼핏 인영이 비칩니다. 서 있는 것은 스물여덟 명이었는데, 비치는 것은 열네 명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비치지 않는 쪽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가지고 있던 기억들은 무엇인가. 왜 축제에는 아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는가. 어째서 DOT에 도착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족이나 지인의 연락을 받지 못했던가. 그 모든 것의 답을 깨닫는 순간,
운명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래, 우리는 서로의 운명이었던 거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를 위해 예비된 운명이었던 거지.
목전의 상황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내내 멈춰있었던 것이지만, 귀가 먹먹해서 유난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씬 종료》
정보 조사 페이즈를 이어갑니다.

이연화
(한참이나 신성현의 품에서 진정하던 이연화가 몸을 일으킵니다. 어두워진 얼굴을 집어넣고 꾸며낸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형과 내가 아름다운 것을 보러 가기 위해선 작금의 사태부터 해결해야겠죠. 나는 괜찮아요, 형. 형이 내 옆에 있어 주잖아요. (그거 하나면 만족합니다. 쪽, 볼에 뽀뽀합니다.) 저거 확인하러 가요. (그리고 철제문을 확인해 봐요.)

신성현
이런 걸 보고 활발하게 수긍하는 게 더 이상한 거야. 네게 느낄 죄책감은 용서해 줘. 이것조차 네겐 기만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쓰담쓰담. 힘없이 당신을 쓰다듬은 그는 조용하게 따라간다. 당신의 평소 얼굴이 신경 쓰였다.) 부탁할 거 있으면 말만 해.
GM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고 다가간 철제문은 단단히 잠겨 있어 열리지 않습니다. 카드를 태그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연화
(빠안. 신성현에게 제 입술을 톡톡 칩니다.) 그럼, 내가 뭘 원하는지 알죠? 죄책감은 뭐라 하지 않을게요. 이거 해줘요.

신성현
…그거면 돼? (황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이 상황을 어쩌면 좋나… 당신에겐 평생 이길 수 없으리란 직감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이연화의 입술에 뽀뽀한다.)

이연화
이거면 돼요. 지금은요. 나랑 형이 더 컸을 때 진짜 하고 싶은 걸 말해줄게요.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그래요, 달라진 건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신성현을 위해 살고 신성현은 나를 소중히 대해줍니다.) 두 번째 바라는 건 철제문을 열 카드키 찾기? (기웃.)

신성현
컸을 때…? 아직은 못 들어준다는 건가, 좋아. 그때까지 기다려서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래. (당신의 애교 덕분에 활력이 약간 돌아온다. 철제문을 둘러본 신성현이 같이 주위를 훑는다.) 카드키를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연구원 애쉬를 가리켰다.)

이연화
그때 가서 자연스레 알게 될 거예요. 우린 너무 어려서 안 돼요. (총총 애쉬가 있는 쪽으로 가 카드키를 가지고 있나 뒤져봅니다.) 정지한 시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고요.

신성현
하긴, 이 상황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복잡한 건 나중에 생각하자. (조각상처럼 멈춘 애쉬를 이리저리 뒤진다. 그가 연구에 참여한 시점부터 미안함은 사라졌다.)
GM
애쉬를 이리저리 뒤지던 당신은 그의 연구 가운 주머니 속 들어있던 사원증 하나와 담배 한 갑, 라이터를 발견합니다.
이 연구원… 그렇게 안 생겨놓고 흡연자였습니다.

이연화
나 같은 어린 아이를 돌보는데 흡연자라니. 이건 압수예요. (담배랑 라이터랑 사원증을 압수합니다.) 나가서 저 멀리멀리 버려버리죠. 사원증이 카드키가 아닐까요? (철제문으로 돌아가 대봐요.)

신성현
갑자기 괘씸해지네…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담배나 피워? 그런 흉물은 내가 버릴게. (끄덕, 멀리멀리 버려버리는 것에 동조한다. 이연화에게서 담배를 가져와 철제문으로 간다.) 신분을 증명하는 사원증은 가능할지도.
GM
삑, 우리의 예상처럼 사원증을 태그한 인식기가 소음을 냅니다.
그리고 철문이 살짝 열립니다.

이연화
됐다, 이게 키가 맞았어요. 들어갔다가 갇히면 곤란하니까 살펴보고 나와서 돌려놓죠. (형 손 잡고 조심스레 들어가 봅니다.)

신성현
그러는 게 나을 것 같아. 여기에 시간을 돌려놓을 힌트가 있을까…. (당신을 따르며 조심스레 들어간다.)
GM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독약 냄새가 무척 짙고 온도가 서늘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위가 뼈를 파고들 정도입니다.
이상한 약품과 수술대, 생체 바이오리듬을 확인하는 기계같이 수술실에서나 쓸 법한 장비들로 가득하고…… ‘캐비넷’ 위에는 이상한 것들이 담긴 ‘병’이 줄 서 있습니다.

이연화
시간을 돌려줄 힌트라기보단… 뇌 영상에서 봤던 것 중 하나인 증거가 있는 곳으로 보여요. 진정되고 보니까 더 끔찍해요. (몸을 부르르 떱니다. 캐비넷을 먼저 살펴봅니다.)

신성현
수실대와 약품… 영상 속 타이머들에 관련한 것들이 있는 장소 같은데. 너무 끔찍하면 보지 마. (당신을 이리저리 걱정한다.)
GM
커다란 정사각형 칸이 여럿 나열된 캐비넷. 벽면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작게 난 유리창 너머로 전 세대 타이머의 시체가 들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영상에서 보았던 대로 신체 일부가 없습니다.
손톱, 머리카락 따위는 티나지 않지만 눈, 손가락 같은 것들은 상당히 눈에 띄는 결여점이니까요.

이연화
형 말대로 할 걸 그랬어요. (으, 하며 물러납니다. 신성현 뒤에 숨어 캐비넷 위에 올려져 있는 병을 중력으로 끌어내립니다.) 저기 보지 마요. 시체 들어있어요.

신성현
냉동고같이 추운 건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한 온도였나 보네.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게 좋겠어… 아, (당신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잡아 멈춘다.) 이것도 그거야….
GM
선반에 세워진 유리병에는 끈적한 투명 액과 함께 이상한 것들, 눈동자라던가 내장의 어딘가, 혹은 뼈 같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분명 사람의 것이겠죠.
주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병에 정확하게 쓰여 있었거든요.
6시, 8시, 11시라던가, 13시. 이름 따윈 없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습니다.

이연화
…. (완전히 신성현 뒤에 숨었습니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울상을 지었습니다.) 형, 나 나갈래요. 여기 있기 싫어요. (그거잖아요. 시체 안치실!)

신성현
같은 생각 중이었어. 우리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야, 다른 아이들한테도 오지 말라고 하자. (병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철제문 밖을 빠져나온다.)
GM
신성현과 밖으로 나가는 당신은 문득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흰 천장에는 검붉은 것들로 모독적인 무언가가 쓰여 있습니다. 읽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글자와 무늬입니다.
어떤 주문처럼, 주술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연화
어… 잠깐만요. 저건 뭐예요? (시선이 마주친 검붉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신성현
어떤 거? (당신의 손끝을, 천장을 본 신성현이 고개를 젓는다.) 나도 모르는 건데. 그… 보존을 위한 거 아닐까? 저 뇌 보관통처럼.

이연화
우음… 모양만 기억해 놨다가 나중에 도서관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연구실에 있는 게 DOT 도서관에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신성현의 손을 잡아 이끕니다.) 그냥 나가요.

신성현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적으니까. 그래도 연구소는 다 둘러봤어. (읽을 수 없는 탓에 대강 모양만 눈에 담아두었다. 당신에게 이끌려 철제문을 빠져나간다.)
GM
연구소 곳곳을 둘러본 우리는 시간을 해결할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생각지 못한 사실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품으며 누군가는 화내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그저 받아들이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더 단단히 잡을 뿐이었습니다.
진실을 알았다고 한들 당신의, 신성현의 마음이 달라지진 않으니까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씬 종료》
《클라이맥스 페이즈》
◆ #Scene 12. 정지된 세계

이연화
1d10 | 등장 침식 (1D10) > 10

신성현
1d10 | 등장 침식 (1D10) > 4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02 → 112
[ 신성현 ] 침식률 : 95 → 99
GM
곳곳의 풍경이 참담합니다.
할 말을 찾기 어려워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소독약 냄새 대신 새파란 장미 향기가 흠뻑 폐를 파고들었습니다. 질식할 것처럼 짙은 향기는 엊그제 맡았던 그것과 똑같습니다.

이연화
(이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찰나. 폐를 파고든 죽음의 장미 향기가 느껴져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장미… 장미 향기가 나요. 어제 맡았던 그 향기요. (어디지, 어디에 있어?)

신성현
장미 아치가 괜히 같은 장소에 있는 게 아니었어. (신성현의 고개가 당신과 똑같이 돌아간다. 새파란 향기. 질식할 듯 농도 깊은 장미.)
GM
고개를 돌리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다시금 새파란 장미로 장식한 아치문이 서 있습니다.
멀찍이 서 있는 이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장미 향기가 짙어지고, 바람도 불지 않는데 너울, 너울 꽃송이가 흔들립니다.
이번엔 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요?

이연화
…들어오라는 것 같죠.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준 아치가 이번엔 또 무엇을 알려줄지, 확인하러 가봐요. 난 더 이상 놀라울 게 없을 것 같아요. (쓰게 웃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깍지 껴 잡습니다.) 형.

신성현
그래. 엘리베이터가 흔들린 것 빼곤 우리를 인도하는 길인 양 모습을 드러내 주었으니까. (위험할 땐 내가 지키면 된다. 당신과 엮은 손을 놓지 않는다.) 가자.

이연화
(신성현과 함께 너울, 너울 흔들리는 푸른 장미 아치를 건넙니다. 공원의 아치는 손잡고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면서요? 여기는 어떨까요.)

신성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랑 아닌 다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 이 장미는 기적을 상징하거든.)
GM
기적과 같은 존재가 기적 아래를 건넙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아치문을 넘어서면 그곳은……
코마니 호수였습니다.
검게 물들어 있던 호수가 달빛을 받아 순간 반짝이고 종이꽃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코마니 호수의 이야기를 기억하나요?

이연화
우리가 갔을 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뒤를 돌아봅니다. 공원의 풍경, 우리가 건넌 아치는 사랑을 이루어 주는 장미 아치. 장미 향기에서 느낀 죽음의 추모는 착각이 아니었던 거예요.) 건국 축제 단 이틀간 수면이 검게 물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죠. 이때 호수에 빠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미신이 전해지고요.

신성현
타이머의 이른 죽음을 기리는 코마니 호수. 검게 물드는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신의 섭리…. (장미 아치가 인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훗날 우리를 추모할 종이꽃이 반짝이는 것을 바라본다.)
GM
1년 365일 중 단 이틀, 새까맣게 변하는 물.
이 시기에 호수에 빠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소문이 돕니다.
보안관이 항상 주시하고 있으므로 누군가 빠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곳엔 오로지 우리뿐입니다.
너덜너덜하게 찢긴 죽음의 종이꽃들을 머금고 살아온 검은 호수는 지금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세계가 멈춘 세상에서 오롯이 호수의 물만이 세차게 일렁입니다.
불길한 파동의 몸집을 키워갑니다.

이연화
(신성현을 뒤로 이끕니다. 거대한 존재는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불길했습니다. 검고 커다란 자연, 신의 섭리를 품은 신비한 호수.) 뭔가 이상해요. 호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불현듯 느꼈습니다. 저기에 답이 있어요.)

신성현
(당신을 따라 물러선다. 아이들을 제지하고, 호수를 피해 경계한다. 당신 앞을 가로막는다.) 쉽게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거지. 신은 늘 인간을 시험하고자 하시니까. (물의 장벽이 고고하고도 장엄했다.)
GM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힘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무슨 힘인지는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검은 물 너머에 어떠한 해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이연화
(신의 시험이라. 만들어진 존재가 이 도밍게즈를 구원할 수 있을지 확인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신을 거스른 카운터의 존재를 시험한다는 건가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겠습니다.) 28명의 타이머와 카운터의 힘을 합쳐야 할 때예요. (공중에 생성된 금빛 마안이 어느 때보다 선명히 빛납니다.)

신성현
(이것이 카운터의 존재를 시험하고 이 땅에 머물도록 허락하는 과정의 시련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넘어가 줄 것이다. 내 파트너를 옆에 두기 위해서. 이연화에게 맞추어 나타난 검푸른 빛 마안을 손안에 쥐었다.) 우리가 넘어서지 못하는 건 없어. (그렇게 만들 거야.)
GM
어느새 물의 장막은 우리를 둘러쌉니다.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힘을 일깨웁니다.
세계에서 단 14명, 이제는 28명이 된 아이들의 능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 충동 판정 : 난이도 9 ⚜

이연화
(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어요. 신성현을 위해 태어나 그의 곁에 존재하려면 이 세상이 돌아와야 합니다. 나의 타이머, 그의 카운터… 이성을 차갑게 식혔습니다.)
(4+3)dx | 충동 판정 (7DX10) > 10[3,6,6,7,7,10,10]+10[6,10]+3[3] > 23
2d10 | 충동 침식 (2D10) > 9[3,6] > 9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12 → 121

신성현
(호수가 일깨우는 잠재된 능력이 요동치고 움직이는 와중에도 제 신경은 당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훌륭하게 시련을 이겨내는 당신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구원자의 모습이었다. 뒤처지면 안 돼. 나는 널 지켜야 해. 주먹을 움켜쥔다.)
(2+2)dx | 충동 판정 (4DX10) > 9[1,4,7,9] > 9
2d10 | 충동 침식 (2D10) > 13[9,4] > 13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99 → 112
[ 신성현 ] BN : 2 → 3
GM
고작 이런 것으로는 우리의 유대를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타이머, 나는 카운터. 머지않아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지켜낼 신이 점지한 운명의 구원자입니다.
그러니 신의 섭리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투 개시》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는 우리와 5m 거리에 있습니다.
호수가 한 인게이지, 그리고 신성현과 이연화가 한 인게이지입니다.
《셋업 프로세스 : 1라운드 개시》
《이니셔티브 프로세스 : 순서 결정》
◆ 순서 :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메인 프로세스 : 마이너/메이저》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그것은 한없이 높은 곳에서 여러분들을 내려다 봅니다.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도밍게즈를 구성하는 요소의 존재 증명. 12개의 숫자와 숨겨진 2개의 숫자, 14명의 타이머와 카운터. 그들의 생을 품은 호수가 흐릅니다. 하늘 높이 치솟습니다….
15dx10+5 【죽음의 추모】 《오리진:레전드》+《완전한 세계+빗방울 화살》 | 마이너+메이저 / 〈RC〉 / 대결 / 씬(선택) / 시야 | 다이스 15D+5 / 크리치 10 / 공격력 19 (15DX10+5) > 10[1,1,1,2,2,2,3,3,4,4,5,8,8,9,10]+9[9]+5 > 24
대상 : 이연화, 신성현

이연화
(하늘 높이 치솟아 곧 검은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하는 호수의 압력은 우리 모두를 노렸습니다. 이연화는 떨어져 내리는 방울을 역으로 올리려 중력을 바꿉니다.) 쉽게 막을 수 없겠어요. 조심해요.
(1+3)dx+1 회피 판정 (4DX10+1) > 8[5,5,6,8]+1 > 9

신성현
(자연이란 곧 이 세계를 이루는 신의 흔적. 한낱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이치였다. 손에 쥔 마안을 휘둘러 제 쪽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차단해 본다.) 쉽지 않을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어. 너도 조심해, 이연화.
(4+3)dx+1 회피 판정 (7DX10+1) > 8[1,1,2,4,5,7,8]+1 > 9
GM
우리의 힘은 신이 내려준 것입니다. 그러니 신을 품은 자연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거스르는 중력은 호수가 떨어뜨린 물방울을 친밀한 것을 반기는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에게 닿은 부분은 시간이 정지된 듯 멈추고 조각상처럼 굳어갑니다.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3d10+19 | 대미지 (3D10+19) > 21[10,6,5]+19 > 40
system
[ 이연화 ] HP : 26 → 0
[ 신성현 ] HP : 30 → 0

이연화
(우리마저 정시시켜 버리겠다는 뜻인가요… 빠르게 퍼져가는 마비를 이 악물고 떨쳐냅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신성현의 곁에 선 건데. 나는 질 수 없습니다.) 내겐 한 사람만 있으면 돼요.
✦ 타이터스 승화/전투 불능 회복 : 하인리히 장교
(저를 만든 진짜 창조자 따위, 창조자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system
[ 이연화 ] 로이스 : 4 → 3
[ 이연화 ] HP : 0 → 11

신성현
(빗방울에 받아 굳은 팔을 붙든다.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것처럼 거대한 빗방울을 손으로 치워버렸다. 이연화에게 내어줄 이 숨을 지금 포기하지 않는다. 약속했어. 네 것이 되어주기로.)
✦ 타이터스 승화/전투 불능 회복 : 연구원 애쉬
(이 일에 동조한 그를 예전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대할 수 없었다.)
system
[ 신성현 ] 로이스 : 4 → 3
[ 신성현 ] HP : 0 → 14
GM
《이니셔티브 프로세스 : 순서 결정》
◆ 순서 : 이연화
《메인 프로세스 : 마이너/메이저》

이연화
(호수의 공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난 뒤에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그의 금빛 마안이 저를 둘러싼 호수에 가까이 붙습니다. 그것은 막대한 질량을 내뿜어 얇게 흐르는 검은 장막을 억누릅니다. 자유자재로 흐르는 물을 비틀고 구부러뜨릴 순 없지만,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신성현의 카운터가 될 거예요. 신의 섭리를 벗어난 존재라고 해도 좋아요.
12dx7+13 【100↑ Walpurgis Night】 《C:발로르+검은 철퇴+흑성의 문+애큐러시》 | 메이저 / 〈RC〉 / 대결 / 단일 / 시야 / - | 다이스 12D+13 / 크리치 7 / 공격력 18 / 침식 7 (12DX7+13) > 10[1,1,1,2,4,5,5,6,8,8,9,10]+10[4,6,8,8]+10[5,7]+3[3]+13 > 46
대상 : 호수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21 → 128
GM
이 땅에 내려앉은 중력은 우리가 파트너라는 정해진 명제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중력을 가속합니다.
상식을 벗어난 중력은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비틀어 호수가 아이들의 앞을 막을 수 없게 짓누릅니다.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5+3)dx+2 회피 판정 (8DX10+2) > 10[1,1,4,5,6,10,10,10]+9[2,8,9]+2 > 21
당신의 힘은 유연하게 흐르는 물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중력입니다. 금빛 마안이 집어삼킨 물이 하나, 둘 떨어져 호수로 돌아갑니다. 짭조름한 소금기 냄새가 사방에 퍼졌습니다.

이연화
(중력을 조종하던 손을 꾹 쥐면, 팡. 짓눌린 물방울이 퍼져 바닥을 적십니다. 물을 잠시나마 고정하는 방법은 땅에 흡수시키는 것입니다.)
5d10+18 | 대미지 (5D10+18) > 26[5,8,4,2,7]+18 > 44
GM
당신에게 흩어진 호수가 넘실거립니다. 아까보다 확연하게 얇아진 두께입니다.
우리는 미약한 희망의 너머를 볼 수 있습니다.
《이니셔티브 프로세스 : 순서 결정》
◆ 순서 : 신성현
《메인 프로세스 : 마이너/메이저》

신성현
(이연화의 시도로 호수를 멈추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를 도와 장막을 거두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신성현의 손끝부터 검푸르게 물들기 시작한다. 쥐었던 마안을 두른 끝에는 짐승의 손톱처럼 날카로워졌다.)
【100↑ Blue moon】 《헌팅 스타일+파괴의 손톱+완전수화》 | 마이너 / - / 자동 / 자신 / 지근 / - | 다이스 / 크리치 / 공격력 / 침식 10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112 → 122

신성현
(눈 깜짝할 새에 호수의 앞으로 도약한 그는 팔을 가볍게 휘두른다. 팔에 두른 마안이 물과 닿지 않도록 해주었고, 자신과 닿은 물은 쾅, 굉음을 내며 헤쳐진다. 무거운 중력과 인간을 벗어난 힘이 더해진다.)
18dx7+2 【100↑ Wolfpack】 《C:발로르+순속의 칼날+짐승의 힘》 | 메이저 / 〈백병〉 / 대결 / 단일 / 무기 / - | 다이스 18D+2 / 크리치 7 / 공격력 28 / 침식 7 (18DX7+2) > 10[2,2,4,4,4,5,6,6,6,7,7,8,8,8,8,9,10,10]+10[1,2,2,4,5,5,6,7,8]+10[4,7]+10[10]+3[3]+2 > 45
대상 : 호수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122 → 129
GM
이연화 당신이 모든 중력을 순수하게 지배하는 힘이었다면, 신성현은 중력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을 내리누르는 힘.
흡사 폭포가 생겨나는 것처럼 물과 사람의 신체가 마찰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났습니다.
장막에 뛰어들어 팔을 휘두른 신성현에 의해 벽 한쪽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습니다.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5+3)dx+2 회피 판정 (8DX10+2) > 10[2,2,3,3,5,5,8,10]+5[5]+2 > 17
이연화의 중력, 그리고 연이은 신성현의 힘을 감당하기엔 물은 유연하지만 너무 유약하죠. 기세를 잃은 장막은 뚫린 거대한 구멍을 메꾸기 위해 장막을 더 얇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물의 장막 너머 풍경이 비추어지기 시작합니다.

신성현
5D10+28 | 대미지 (5D10+28) > 21[3,8,1,3,6]+28 > 49
네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 조금만 더 하면 장막을 없앨 수 있을 것 같아. (장막을 모든 힘을 담아 친 뒤 물러난 신성현이 검은 물 너머 흐릿하게 드러난 공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당신에게 시선을 옮겼다.)
포기하지 마. 시간을 돌려서 내 파트너인 카운터가 되는 거야.
system
[ 신성현 ] 로이스 : 3 → 4

이연화
포기할 생각이었다면 내 진실을 알게 된 그때 형을 두고 떠났을 거예요. 나는 신성현 없이 못 사는 존재라구요. (옅게 웃습니다. 신성현은 자신에게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내 옆에 있어 주는 것 같습니다.)
형이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죠. 난 움직이는 바다랑 별, 제10구역의 우주를 봐야 해요. 정지된 세계는 내게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함께 돌아가요. 형.
(로이스 신성현을 슈페리얼 로이스로 지정합니다.)
system
[ 이연화 ] 로이스 : 3 → 4

신성현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이,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단순한 호의를 벗어나 보다 깊은 애정이 와닿는다. 삶이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네 말이 맞았던 거야. 넌… 정말 나 하나만 보고 따라와 주고 있었다. 당신에게 조금은 슬픈 미소를 짓는다.)
내게 걸어준 기대가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할게. 나는 널 그저 파트너가 아닌 내가 지켜야 할 나 그 자체로 인식할 생각이야. (당신이 사라지면 나의 반쪽이 사라지는 거지. 이연화가 먼저 내게 큰 마음을 건네주었다면, 그에 맞는 조각을 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곧은 눈빛이 당신과 마주한다.)
함께 돌아가자, 이연화.
(로이스 이연화를 슈페리얼 로이스로 지정한다.)
GM
우리는 이제 그저 서로의 운명인 타이머와 카운터의 관계를 벗어났습니다.
현재에서 더 나아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으로, 나의 단 하나뿐인 존재로, 내가 이곳에 머물게 하는 유일한 시간으로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줄 것입니다.
《클린업 프로세스 : 1라운드 종료》
《셋업 프로세스 : 2라운드 개시》
《이니셔티브 프로세스 : 순서 결정》
◆ 순서 :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메인 프로세스 : 마이너/메이저》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을 가로막는 이 호수를 먼저 처리해야겠지요. 두 사람의 결단을 눈치채듯, 호수의 일렁임은 더욱 심해져만 갑니다. 검은 장막을 끌어 올리고 한 번 더, 빗방울을 쏘아냅니다.
만들어진 존재와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일까요. 전보다 맹렬한 기세입니다.
15dx10+5 【죽음의 추모】 《완전한 세계+빗방울 화살》 | 메이저 / 〈RC〉 / 대결 / 씬(선택) / 시야 | 다이스 15D+5 / 크리치 10 / 공격력 19 (15DX10+5) > 10[1,1,3,3,4,5,6,7,7,8,8,8,9,10,10]+10[9,10]+2[2]+5 > 27
대상 : 이연화, 신성현

이연화
(신성현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허나 사방을 채우는 빗방울이 걸음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달려가서 저 손을 잡고 싶어요. 깍지 껴 그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에게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받고 싶어요. 빗방울을 헤쳐 나갑니다.)
(1+3)dx+1 회피 판정 (4DX10+1) > 9[1,2,6,9]+1 > 10

신성현
(당신에게 손을 뻗기엔 우리 거리가 너무 멀었고 호수까지 방해하고 있었다. 아까 이동하지 말 것을 그랬다. 그 옆에 있었다면 손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온몸과 바닥을 적시는 빗방울이 새카맣게 흘러내린다.)
(4+3)dx+1 회피 판정 (7DX10+1) > 10[2,3,3,5,6,6,10]+6[6]+1 > 17
GM
소용없습니다. 장대비를 내린 빗방울을 인간이 피할 방법은 우산을 펼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펼칠 우산이 없잖아요. 힘없이 검은 죽음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맹렬하게 쏟아진 빗방울이 곳곳에 스며들어 타이머와 카운터의 시간을 정지시킵니다.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3d10+19 | 대미지 (3D10+19) > 18[10,7,1]+19 > 37
system
[ 이연화 ] HP : 11 → 0
[ 신성현 ] HP : 14 → 0

이연화
(이제는 한 발 내딛기가 힘들 정도로 눈앞이 흑으로 뒤덮입니다. 몸이 둔해지고,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무대 아래 멈추어 선 사람들을 따라 정지될 것 같아요. 필사적으로 신성현의 뒤를 쫓아 그의 존재를 확인받았습니다. 내가 살아있게 하는 이유가 저기 있어요.)
✦ 타이터스 승화/전투 불능 회복 : 세계의 멸망
(내 의지는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끊어지지 않을 거예요.)
system
[ 이연화 ] HP : 0 → 11
[ 이연화 ] 로이스 : 4 → 3

신성현
(반짝 정신을 잃고 깜빡였을 땐 시간이 몇 초 정도 흘러가 있었다. 정지된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나, 내가 모르는 시간이 수십 수천 년 흐르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그때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면, 저를 바라봐 주는 이연화가 보인다. …네가 나를 살아있게 해. 당신과 똑같았다.)
✦ 타이터스 승화/전투 불능 회복 : 하인리히 장교
(도밍게즈에서 살아오며 뿌리 깊게 박힌 신념을 단번에 뽑아가는 애정이었다.)
system
[ 신성현 ] HP : 0 → 14
[ 신성현 ] 로이스 : 4 → 3
GM
아, 그래요.
우리는 들이닥치는 서로의 존재감에 휘둘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당신의 파트너에게 홀린 듯 시선을 빼앗기고 이끌려서, 결국 이 자리에 살아있게 만드는……
시간이 아닌 ‘내’가 선택한 파트너입니다.
《이니셔티브 프로세스 : 순서 결정》
◆ 순서 : 이연화
《메인 프로세스 : 마이너/메이저》

이연화
(마이너로 전투 이동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성큼 신성현에게 다가가 잡고 싶었던 그의 손을 잡습니다. 검은 호수에 젖어 축축한 손이 맞닿자 만끽하고 싶었던 온기가 전해집니다. 이연화가 속삭였습니다.) 형, 나는요. 이연화는 사실 형을 위해 태어났다는 게 기뻤어요.
당황스럽고 믿을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가득했죠. 내가 사람인 이상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왜인지 알아요? (이번엔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늘 공원에서 당신에게 보여주었던 찬란하고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을 거예요.)
형은 모든 걸 알고도 나를 사람으로, 파트너로, 이연화로 애정해 주기 때문이에요.
(이연화의 마안이 여태껏 내어본 적 없는 중력을 회전시켰습니다. 우리에게 내리던 물방울이 하늘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성현의 곁에 있기 위해 하늘을 거슬러야 한다면 내 기꺼이 그리하겠어요. 멈추어야 할 건 우리가 아니라 저 호수입니다. 타이머가 선택한 나를 막지 말아요.)
12dx7+13 【100↑ Walpurgis Night】 《C:발로르+검은 철퇴+흑성의 문+애큐러시》 | 메이저 / 〈RC〉 / 대결 / 단일 / 시야 / - | 다이스 12D+13 / 크리치 7 / 공격력 18 / 침식 7 (12DX7+13) > 10[1,2,2,2,3,4,8,9,9,9,10,10]+10[1,2,4,5,7,8]+6[1,6]+13 > 39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28 → 135
[ 이연화 ] BN : 3 → 4

신성현
(쏟아지는 빗방울을 뚫고 다가와 저를 잡아준 당신에게 홀린 듯 시선을 빼앗겼다. 눈을 깜빡이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웃는 당신이 제 뇌리에 각인된다. 너는 존재만이 아닌 네 모든 걸 나에게 각인시켰다. 타이머와 카운터가 연결되었다는 숫자 10이 새겨진 눈동자가 푸르게 빛난다.)
…네가 기쁘다는 말에 미안해라든지, 슬퍼해도 된다든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 정의하고 결정한 감정이니까. (꾸밈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 당신의 손을 어루만진다. 부드럽게 타고 내려가 손가락과 손가락을 엮는다. 차츰 안정되는 마음과, 당신에게 이끌리는 운명이 강해진다.)
그저 아끼기만 할게. 사람으로, 파트너로, 이연화로 있어 주는 널 애정하고 손 잡아줄게.
네가 그것을 바라니까. (충격에 빠진 이연화가 가장 처음으로 말했던 말은 도망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영원히 그의 곁에서 함께하는 것. 그게 당신의 이 미소를 유지할 방법이었다.)
GM
반짝, 내려오던 물방울이 멈추었습니다.
제자리에서 회전하던 물방울은 당신의 힘에 머리를 조아리며 조금씩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검은 물방울에 비추어진 달빛이 우리들을 밝혀줍니다.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5+3)dx+2 회피 판정 (8DX10+2) > 8[1,2,3,4,4,7,7,8]+2 > 10
마지막에는 시간을 가두던 물의 장막까지 올려버리겠죠. 당신의 의지가 그러고자 하니까요. 호수는 잠잠하게 밝은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연화
영혼으로 이루어진 파트너라 그런지…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네요. 기뻐요, 형. 형의 파트너가 된 건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이었어요.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그의 입술과 제 입술을 겹칩니다. 고요하고 작은 온기가 맞닿습니다.)
그 마음, 영원토록 변치 말아요. (공기가 변화합니다. 다정하게 물방울을 올려내던 이연화가 힘을 가해, 모든 물의 장막과 검은빛 장대비를 걷어냅니다. 높은 중앙에 모아 압축하고, 압축하고, 또 압축합니다.)
4D10+18 | 대미지 (4D10+18) > 30[8,10,6,6]+18 > 48
GM
공중에 모여들어 중력에 짓눌러 한계까지 압축된 호수가 펑,
터져버립니다.
호수는 비처럼 떨어져 내리지 않고 하늘을 부유합니다.
소용돌이를 이룬 검은 호수가 바람을 휘날립니다.

신성현
변치 않아. 널 파트너 그 이상으로 생각하겠다 한 순간부터 결정했어. 네 존재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당신의 손을 들어 그 손등에 입을 맞춘다. 새어 나오는 웃음은 이연화를 닮아 찬란했다.)
지금의 우린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시간이 되어 세계를 지켜낼 수 있어. 둘이 함께. (무겁게 모여드는 호수를 잔잔한 얼굴로 주시한다.)

이연화
둘이 함께…. (마음에 쏙 드는 단어였습니다. 신성현과 서서 호수를 바라봅니다.) 푸른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이죠. (호수가 모여드는 것에 맞추어 제 마안이 한곳에 합쳐집니다. 거대한 크기가 된 금빛 마안이 검은 물이 모여든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형이 나와 세계를 살린 거예요.
GM
《이니셔티브 프로세스 : 순서 결정》

검게 물든 코마니 호수
《가속하는 시간》 Lv1 | 이니셔 | 자동 | 자신 | 지근
호수는 중앙으로 파고든 마안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낱 인간의 힘으로는 자연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섭리이기 때문이에요. 고로 금빛 구체를 그대로 머금은 호수가 선언합니다.
이 호수는 당신들의 죽음마저 삼키겠노라고.
15dx10+5 【신의 섭리】 《완전한 세계+빗방울 화살+세포침식+카라미티 스매쉬+캄비세스의 제비》 | 메이저 / 〈RC〉 / 대결 / 단일 / 시야 | 다이스 15D+5 / 크리치 10 / 공격력 49 (15DX10+5) > 10[1,2,3,3,3,3,4,5,6,7,9,9,9,10,10]+8[4,8]+5 > 23

이연화
(원하는 대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죽음마저 삼키겠다고요, 인간은 자연을, 신을 막을 수 없다고요. 그것은 평범한 인간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멸망을 저지할 타이머, 카운터. 호수를 살라 먹고 시간을 돌려 도밍게즈가 존재하게 할 것입니다. 신성현이 이연화를 존재하게 만든 것과 같이.)
인간의 기적을 보여줄게요.
《시간의 관》 Lv1 | 오토 | 자동 | 단일 | 시야 | 침식치 +10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35 → 145
GM
―!
단 몇 초, 당신에 의해 시간이 멈추었습니다.
세계가 정지한 세계에서 또다시 시간을 멈춘 것입니다.
흘러내릴 공간을 찾지 못해 정지한 그것은 스스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물방울들이 산산이 부서지면 반짝거리게 주위가 환해집니다.
축제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둠이 물러가고, 비로소 호수에는 희고 투명한 물결이 찰랑거립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에요. 분명히 수면의 색이 밝아옵니다.
둥글게, 둥글게, 원만한 원을 그리며 물결이 칩니다. 호수 바닥이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종이꽃이 소금기에 녹아 물속으로 스며들고……
《전투 종료》

이연화
(마지막 한 방울의 기력까지 짜내 발휘한 이연화가 가쁜 숨을 쉽니다. 이런 출력은 난생처음이에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당신에게 기댑니다. 검은색이 물러가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호수를 하염없이 쳐다봅니다.) 두 번은 못 해요… 이제 해결됐겠죠?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신성현
(내가 너와 세계를 살린 거라니. 이연화를 살림으로써 그가 세계를 구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가. 하지만 네 손으로 직접 살린 모두인데. 떠오르는 많은 할 말을 삼켰다. 네가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을 터였다.) 정말 아름다웠어. 기적이었고, 그 자체로 푸른 장미였어. 불가능을 넘어선 기적을 네가 이루어 냈어. (당신을 껴안다시피 부축한다. 물에 젖은 네 얼굴을 소매로 훔친다.)
밝아진 호수를 보면 그런 것 같아.
GM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당신과 신성현은 어떤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수도입니다. 꽃가루가 흩날리고, 사람들이 환호하며 웃고 떠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상태로’ 멈춰있습니다. 호수에 비춰야 할 것은 밤하늘이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곳에는 어젯밤 무대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대 뒤에 원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어요. 광장에 서 있는 그 시계탑입니다.
당신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호수 속의 시곗바늘은 보란 듯이 움직입니다.
결국 닿은 곳은 정확하게 12시 정각입니다.
그 순간 다시 꽃가루가 흩날리고, 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타이머와 카운터들이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듭니다.

이연화
(그에게 대답할 힘도 없어 늘어져 있던 이연화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시계탑. 호수는 우리에게 시계탑을 보여주려던 거예요. (벌떡 일어납니다. 반짝이는 물방울이 움직임을 따라 흩날립니다.) 저걸 움직이면 우리 시간이 돌아올 거예요. 어서요, 형. 이제야 방법을 찾았어요! (당신의 손을 잡아 달립니다.)

신성현
광장의 시계탑… 저거구나. 무대엔 없으니까 거길 움직이라는 거야. 우리 시간은 11시와 12시 사이에 멈춰있잖아! (덩달아 들뜬다. 세계를 움직이고 멸망을 저지할 단서가 생겼어. 당신의 손을 잡고 부지런하게 뛰었다. 물을 흠뻑 머금은 발자국이 생긴다.)
GM
호수 아래의 세계는 여전히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화려하게 춤을 춥니다.
자정을 기점으로 풀리는 마법이라니.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시계의 바늘을 움직이면 무언가가 달라질 거예요. 호수가 보여준 광경이니 틀림없어요!
세계를 구하고 싶은가, 아닌가는 정해져 있는 답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곳은 움직이는 도밍게즈뿐이거든요.
아이들의 발자국이 공원에 새겨졌다가 사라집니다.
손을 잡고 달리며 향한 광장은 텅 비어 큰 시계탑만 혼자 서 있습니다.
침과 초침이 존재하지 않는 바늘은 11시와 12시 사이에 애매하게 멈춰있습니다.
중력을 조종하는 우리에게 먼 거리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연화
형… 형의 힘이 필요해요. 나와 함께 저 시곗바늘을 정각으로 옮겨주세요. (호수를 저지하느라 힘이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당신과 잡은 손을 시계탑의 바늘을 향해 듭니다. 짧게 숨을 들이켠 이연화가 준비를 끝냈습니다. 세계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나보다 신성현이 지니고 있겠죠. 그러므로 나는 세계를 구할 겁니다. 그의 의지가 곧 나의 의지예요. 내 존재의 이유. 내 영혼의 반쪽. 중력이 조금씩 일어납니다.) 세계를 돌리는 거예요.

신성현
내가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네가 원한다면. (고개를 든 신성현이 맞잡은 손으로 시곗바늘을 가리킨다. 드디어,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연화가 신성현의 카운터가 될 수 있도록 함께할 시간을 돌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도밍게즈의 타이머, 카운터였다. 우리의 힘이 합쳐져 조금씩 시곗바늘을 움직인다. 애매하게 멈추어 서 있던 바늘이 12시에 가까워진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GM
중력에 휩싸인 시곗바늘이 천천히 돌아갑니다. 세계가 기이하게 떨리기 시작합니다.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system
[ 이연화 ] 로이스 : 3 → 4
[ 신성현 ] 로이스 : 3 → 4
GM
《씬 종료》
《백 트랙》

이연화
남아있는 로이스 수 : 4
8D10 | 2배 굴림 (8D10) > 48[6,9,1,7,2,6,10,7] > 48
system
[ 이연화 ] 침식률 : 145 → 97

신성현
남아있는 로이스 수 : 4
8D10 | 2배 굴림 (8D10) > 43[6,4,4,3,9,5,3,9] > 43
system
[ 신성현 ] 침식률 : 129 → 86
GM
전원 생환합니다.
《백 트랙 종료》
《엔딩 페이즈》
중력이 멈춘 바늘을 떠밉니다.
손을 겹쳐 시간을 되돌리자, 그제야 시계가 정각을 알리며 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세계가 순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두웠던 밤하늘은 급격하게 색을 바꾸어 청명한 새벽이 되었다가 새파란 아침이 되고, 자줏빛 노을을 지납니다.
재빠르게 회전한 도밍게즈가 다시금 어두운 밤하늘을 드리웠을 때,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크기의 달과 다른 위치의 별이 머리 위에 찾아옵니다.
눈을 깜빡이면, 다시 무대입니다.
타이머와 카운터를 향한 환호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옵니다.
무대의 뒤편에서 그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시간이 멈추기 직전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합니다.
누군가 놓친 풍선이 저 멀리 하늘 위로 두둥실 날아오릅니다.
익숙한 밤하늘을 가르는 풍선은 붉은색. 너머에 뜬 별은 마냥 희고 곱습니다.

이연화
(들이켰던 숨을 토해냈습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멍한 귓가를 두드려 흘러들어오는 소리를 받아들이자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가 돌아왔어요. 멈춘 시계를 되돌려 정각을 만들고, 모든 게 살아 움직이는 세계로 돌아온 거예요. 시선을 내리면 아직 누군가와 잡고 있는 손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타고 올라가 그의 팔을, 몸을, 얼굴을 향합니다. 이연화가 부드럽게 웃었습니다.)
…형. 내 이름, 불러줄래요?

신성현
(머리가 멍했다. 시계를 돌리고 정신을 차리자 무대 뒤편에 앉아있었다. 우리를 부르짖는 환호성과 풍선, 별을 바라보던 것을 돌려 내가 바라봐야 할 사람을 찾는다. 마침 저를 보던 당신과 시선이 어지럽게 얽힌다. 복잡한 감정을 담아 한껏 마주 웃는다. 흔들림 없이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연화. 이연화, 나의 파트너… 카운터. (당신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댄다. 살아있어. 우리 둘 다, 숨 쉬며.)

이연화
(긴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것이면 됐습니다. 신성현이 제 이름을 불러주며 옆에 있어 주는 것. 자신을 잡아주는 것. 고작 당신을 위해 안배된 파트너의 웃음 하나를 지키겠다고 위험을 무릅쓰는 이 타이머가… 비로소 이연화의 시간이 흐르게 만드는 사람이겠지요. 눈을 내리감습니다. 눈꺼풀 위로 신성현과 그가 선물한 밤하늘이 떠오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신성현. …나의 타이머. (앞날이 어떻게 될지, 또 이런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어요. 나는 그냥… 당신을 믿는 거예요. 그에게 전하지 못할 감정을 남몰래 숨겼습니다.)

신성현
(당신이 눈꺼풀 너머로 생각하고 있을 감정이 궁금했다. 그건 내가 함부로 꺼내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도 눈을 감았다.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이연화가 보여준 기적을 되새겼다. 도밍게즈의 구원자, 나의… 타이머의 시간이 흐르게 만드는 카운터. 따스한 숨결을 섞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연화. 네가 알려준 애정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몇 배로, 평생 되돌려 줄게. 그리하여 당신을 잡아둘 수 있도록. 이연화의 모든 감정을 달게 삼킬 것이다.)
GM
세계를 구원한 것을 후회하고 있나요?
진실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할지언정…… 현실은 이토록 당신에게 다정해요.
구원받은 것들은 구원자를 잊었지만, 그럼에도 맹목적으로 신성현을, 당신을, 타이머와 카운터를 사랑합니다.
눈 아래 사람이 가득한 탓에 광장의 시계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 선 바늘의 끝은 정확히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을 거예요.
⚜ Ending : 시계 바늘의 방향 ⚜
현실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1년은 366일이 되어버렸고, 하루의 여백은 온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세계는 당신에게 구원받았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 ————««
정보

◆ 타이머, 새로운 구원자
어떻게 구원할 것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DOT의 주장에 따르면 타이머와 카운터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도밍게즈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 멸망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절묘하게 등장한 새로운 구원자. 진실이 어떻건, 사람들은, 세계는 당신을 구원자라고 부를 것이다.

◆ 본관 구조
지하 1층 : 식당, 바(Bar)
1층 : 로비, 안내데스크, 제1~14회의실
2층 : 훈련실
3층 : 훈련실
4층 : 숙소
옥상 : 스카이라운지

◆ 서관 구조
지하 1층 : 식당, 카페테리아
1층 : 로비, 안내데스크, 도서관
2층 : 교실
3층 : 훈련실
4층 : 숙소
옥상 : 출입 금지

◆ 타이머 가설
세계 멸망은 세계에 부여된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임하는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떠나가므로, 시간이 모두 떠난 세계란 홀연히, 어쩔 수 없이 멸망을 겪게 된다. 시간이 끝나지 않고, 끝없이 순환하며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하다. 공간에 꽂아둘 책갈피 같은 것.
그래서 시간은 타이머를 낳았다. 시간을 세계에 머물고, 존재하게 하는 제물. 타이머가 시간의 아래에서 태어나, 공간을 누비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로 세계라 불리는 공간을 구원하고, 역사라 불리는 시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 도밍게즈 신화
어느 날 불현듯 신은 세계를 만들었다.
손을 뻗어 하늘을 펴고 땅을 빚었다. 눈물을 몇 방울 흘리니 바다가 되었고, 한숨을 쉬니 갈래갈래 찢어져 구름이 되었다. 완벽한 세계를 두고 신은 좌우를 잡아 길게 찢었다. 낮과 밤이 생기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비로소 완벽하게 갈라졌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니 그제야 그의 마음이 흡족하더라.
신의 손가락은 14개였다. 완벽한 숫자가 그의 각 손끝에 있었다. 신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꺾어 세계의 지표로 삼았다. 첫 번째 손가락은 햇볕에 아지랑이처럼 녹아 버렸고, 마지막 손가락은 달빛 아래 산산이 조각나 별이 되었다. 해가 뜨고 달이 지면 세계 곳곳에 선 신의 손가락을 따라, 그림자가 원만한 바퀴를 그렸다.
그림자가 도는 방향을 따라 시간이 생겼다.
무한한, 영원과 억겁을 누리던 신은 처음으로 시간의 존재를 실감했다. 그리하여 손가락들에 큰 복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깊은 호수에 몸을 뉘니 신은 그 자체로 공간이 되었더라. 부러진 채, 땅 위에 남은 신의 손가락만이 숫자와 시간을 주관하며 세계를 구성했다.
그래서 세계에는 14개의 숫자가 실존한다. 녹아 버린 0과 산산조각이 난 13을 제외하고 1부터 12까지. 인류는 12가지 숫자의 섭리를 따라 별에 이름을 붙이고, 날과 달을 나누고, 동물의 머릿수를 헤아려 왔더라. 완벽한 수의 기원이었다.

◆ 연구 보고서
1. 타이머와 카운터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상을 적어 낼 것
2. 일정 면적의 ■■■ 이후 능력이 얼마만큼 향상되었는지 보고할 것
(글씨가 조금 번져서 알아볼 수 없을 것 같다)

◆ 도밍게즈 건국 축제
매해 봄의 가운데, 4월 19일에 열립니다. 총 이틀 동안 진행되며, 수도를 비롯한 모든 구역에서 공휴일로 지정하고 축제가 열립니다. 수도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축제 마지막 날 타이머가 공식적으로 얼굴을 비추고 능력의 실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진행 가이드
손깍지 → 포옹 → 이마 맞대기 → 비쥬 → 입맞춤

◆ 카운터가 들은 예언
세계가 무너지고, 하늘이 찢어지며, 건물이 붕괴하고, 별이 떨어지는, 요란하고 끔찍한 소리와 함께 예언이 내려왔다.
“멸망이 신속히 임하리니, 아무도 멸망의 때인 줄 알지 못하리라……”

◆ 타이머가 들은 예언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며, 꽃샘추위가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는 소리. 녹은 눈이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스며드는 풍경. 겨울이 지난 후의 봄. 그러한 광경과 함께 예언이 내려왔다.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도밍게즈는 새 계절을 맞을 거야. 그리고……”

◆ 사명
도밍게즈 건국 축제의 마지막 순서에 타이머와 등장해서, 능력을 사용하고 세계가, DOT가, 그리고 타이머와 카운터가 건재함을 과시할 것.

◆ 시간이 멈춘 세계
지금부터 모든 것의 시간이 멈춥니다. 수도만 그런 걸까요? TV를 켜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봐도 통신 불가 지역이라는 안내 문구만 확인됩니다. 직감처럼 깨닫습니다. 수도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곳이…… 네, 그렇게 되었단 것을요.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직 타이머와 카운터 뿐입니다. 밤은 더 깊어지지 않고, 새벽이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시곗바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마치, 조각상처럼.
억지로 움직이려 해봐도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단단해졌네요.
이거, 정말 세계 멸망인가요?

◆ 정보
✦ 원형 유리관 〈정보:DOT〉 9
✦ 커다란 책 〈정보:DOT〉 6
✦ 커다란 원통 〈정보:DOT〉 10

✦ 원형 유리관 〈정보:DOT〉 9
〈2051. 10. 08〉, 〈2052. 02. 27〉, 〈2052. 01. 01〉, 〈2051. 12. 17〉……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날짜들은 대략 반 년 전부터 일주일 사이의 어느 날들이었습니다. 이날이 무슨 날이었더라. ……. 고민은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카운터들이 곧 익숙한 날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들이 DOT에 처음 발견되었던, 혹은 스스로 발을 들였던…… 그 날짜였습니다.
불길하게도 유리관은, 딱 한 명의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 커다란 책 〈정보:DOT〉 6
책 표지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씨로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제목 미상
도밍게즈 공용어, 저자 미상, 번역 2029년.
이상한 가죽 표지를 가진 두꺼운 책. 내용은 다행히 도밍게즈의 공용어로 쓰여 있지만, 아주 복잡다단한 기계나 물질에 관한 설명뿐이라 도저히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삽화가 첨부되어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들이다. 그림을 보고 있음에도 어떤 물건이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도밍게즈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 커다란 원통 〈정보:DOT〉 10
라벨에 낯선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아르고. 원통 뒤에는 렌즈와 진공관, 금속 원반을 연결한 작은 상자라던가, 그 외에는 통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매달린 기다린 기계가 서 있습니다. 도저히 도밍게즈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수상쩍은 물건들입니다. 〈커다란 책〉을 조사했다면 사용 방법을 입수합니다.
로이스

이연화
세계의 멸망 | P 흥미 | N 부정(✓) | 신성현이 있는 이 세계는 멸망해서는 안 돼요.

신성현
카운터 | P 연대감(✓) | N 의문 | 우리와 같은 도밍게즈의 구원자.
푸른 장미 아치 | P 신비로움(✓) | N 격의 | 이연화가 제게 약속한 그 장소.

이연화
도밍게즈 건국 축제 | P 전력(✓) | N 불안 | 이 축제의 끝을 보고야 말겠습니다.
푸른 장미 | P 기적(✓) | N 격의 |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적일 거예요.

신성현
도밍게즈 | P 구원(✓) | N 불안 |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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